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roniist Jan 24. 2022

시지포스가 산을 내려갈 때

2022년 1월 21일(금)


새해의 기억이 벌써 멀다. 연초에 많이 들었던 임인년 검은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도 어느새 잠잠하다(호랑이의 해 답게 올해 기업들의 신년사에 가장 많이 들어간 사자성어는 호시우보(虎視牛步)였을 것이다. '호랑이처럼 날카롭게 보고 소처럼 우직하게 걷는다'는 뜻의 경영 친화적인 이 사자성어가 기시감이 들어 확인해보니 1년 전 소띠 해에는 우보호시로 사용되었다. 범용성이 좋은 사자성어다). 직장을 다닌 이후로 매년 신정 이후의 며칠 동안은 멍하다. 꽉꽉 채워졌던 세밑이 불과 하루 사이에 텅 빈 세초가 된다는 것은 곱씹을수록 이상하다.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12월 31일과 1월 1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데 회사를 제법 오래 다니다보니 회계연도에 내 생체리듬이 맞춰진 듯 하다.

검은 호랑이가 없으니 검은 고양이라도.

연말과 연시의 낙차가 납득 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갑작스런 변화에 당황해서인지 매년 이 기간의 나는 좀 정신이 나가 있고 대체로 우울하다. 비워진 그릇을 다시 채워나간다는 점에서 2022년은 2021년과 아마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여러 사건들이 발생하고 유의미한 일들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2021년의 반복이거나 2022년 안에서의 반복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 시간들 속에서 기쁨과 행복은 생각보다 빨리 사라지고 슬픔과 아픔은 가슴 한편에 차곡차곡 쌓일 예정이다. 작년, 재작년, 재재작년에도 그랬듯이.


신을 기만한 죄로 지옥에 끌려가 커다란 바위를 산 정상으로 올려야만 했던 시지포스의 이야기는 삶의 반복이 무엇보다 지옥임을 알려주고 있다(그런 의미에서 <닥터 스트레인지>의 도르마무 에피소드는 현대판 시지포스 신화라고 봐도 좋을 듯 하다. 역시 마블은 신화를 쓰고 있다). 시지포스는 몇 차 시도 때쯤 이 행위가 끝없는 반복이라는 것을 눈치챘을까. 아니, 몇 차 시도까지 이 행위의 끝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갖고 바위를 밀었을까. 결국 이 신화가 삶에 대한 은유라면 나는 언제까지 희망을 잃지 않고 삶을 반복할 수 있을까. 한 해의 시작이 시지포스라니 생각보다 임인년의 허무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듯 하다.


서른 두살의 여자는 전 남편과 사별한 후 아들과 함께 작은 해변 마을로 재가를 했다. 세찬 바람으로 인해 일년내내 바다가 울어대는 이곳은 사는 사람도 적고 어선도 거의 없는 조용한 곳이다. 이 마을에서 그녀는 새 남편, 두아이와 나름대로 평화롭게 살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비 그친 선로 위를 구부정한 등으로 걸어가는 전 남편의 모습을 머리 속에서 떨쳐내지 못하고 종종 그에게 말을 걸곤 한다. 그는 어느 비오는 날 저녁, 전차에 치여 사망했다. 죽을만한 이유 같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기에 자살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다.

전 남편이 죽은 지 7년이 지났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가 왜 스스로 목숨을 끊었는지 알 수가 없다.


일본 소설가 미야모토 테루의 단편 「환상의 빛」의 주인공은 짐작할 수 없는 이유로 자살한 전 남편을 이해하기 위해 계속해서 그와의 대화(라기보다는 혼잣말에 가깝지만)를 이어간다. 그녀가 어떤 결론을 얻어내더라도 그것이 전 남편이 목숨을 끊은 이유라고 확인할 방법이 없기에 이 대화는 그저 처연한 헛수고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녀는 끝없이 그를 소환해내어 물어야 한다. 사람이 별다른 이유 없이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하는 이 삶의 불가해함을 아직 받아들일 수 없기 때문에.

같은 제목으로 영화화 되었는데 이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데뷔작이기도 하다.


이 단편 소설을 나는 꽤 자주 떠올린다. 삶의 불가해함을 다루고 있고 문장력, 흡인력이 뛰어난 소설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내가 특히 좋아하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어업을 나가 있는 동안 갑자기 불어닥친 폭풍 때문에 (마을 사람들 기준으로) 잠시 실종되었다가 다음날 아무렇지 않게 돌아온 도메노댁의 이야기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도메노댁은 약간 놀라며 이렇게 말한다.


"앞바다에 나가기는 했는데 너무나 조용해서 점점 이상한 예감이 들기 시작하는 거예요. 분명히 무슨 일이 일어나겠구나, 그런 느낌이 오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그런 기색이 보이지 않을 때 서둘러 배를 돌리기 시작했어요. 깜빡 속을 뻔했지 뭐예요. 그만큼 빨리 알아챘는데도 마우라의 갯바위에 댈 여유조차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마우라에 간 김에 친척집에 들러, 바람이 멎기를 기다리는 버스가 출발할 때까지 잠깐 쉬었다 왔어요." (「환상의 빛」, 미야모토 테루)



평온하던 내가 갑자기 끝없는 우울과 슬픔에 잠식되어 앞이 안보일 때가 있다. 뒤늦게 이 어둠의 원인을 찾으려 해보지만 대부분 이유를 알 수 없다. 원인을 찾으려는 의지라도 있으면 다행이다. 느닷없이 나를 덮치는 삶의 변덕 앞에서 나는 무력하다. 이쯤되면 '아, 역시 인정할수밖에 없네' 라는 심정이 든다. 내 삶은 (어쩌면 나 자신까지도) 내가 통제할 수 없다.


삶의 변덕에 매몰되었을 때는 이미 손 쓸 수 없을 만큼 늦은 것이라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낌새를 알아차리는 것이다. 삶에 대한 감각을 예민하게 벼려서 몸집을 숨겨 나를 기만하고 끝내 덮치려는 파도를 피해 달아나는 것이다. 자신의 직감을 믿고, 있는 힘껏 배를 돌린 도메노댁처럼. 저항이 불가능한 삶의 변덕 앞에서 오히려 우리는 삶의 주인이 될 기회를 얻는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리고 지금, 점점 시지포스(자꾸 쇠똥구리로 분한 내가 상상되는 건 어쩔 수 없다)가 되어가고 있는 나 역시 지금이 바로 조타수가 되어 기를 쓰고 키를 돌려야 할 순간임을 예감한다. 마음 한 켠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작년에 쓰지 않고 남겨둔 의지가 다행히 조금 남아 있다(이 대목에서 작년에 조금 덜 열심히 산 나를 칭찬해주고 싶다). 시지포스로 인한 우울은 시지포스로 해결한다. 장바구니에 1년 이상 담겨져 있던 카뮈의 『시지프 신화』를 결제했다.


이 책은 부조리에 관한 철학에세이인데 그 마지막 장인「시지프 신화」에서 카뮈는 '아래로 떨어진 바위를 다시 굴리기 위해 산을 내려가는 시지포스(카뮈는 시지프라고 표기했지만 나는 시지포스가 포스가 있기에 시지포스라고 쓰기로 한다)'를 포착한다. 시지포스에게 정말 다행이었던 것은 바로 산을 내려갈 시간은 있었다는 것. 시지포스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산을 내려갔을까.


카뮈에 따르면 지옥에서의 시지프에 관한 내용은 신화 속에서 전해지지 않기 때문에 비어 있는 부분을 우리의 상상으로 채울 수 있다. 그리고 카뮈는 형벌의 부조리를 받아들이고 이 투쟁을 계속하기로 결심한 늠름한 시지포스의 모습을 상상할 것을 독자에게 주문한다. 나는 그 주문을 접수하여 내게도 언덕을 내려갈 시간을 주기로 했다.


연말에서 연초로, 겨울에서 봄으로, 밤에서 아침으로 가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변화의 크기에 비해 변화의 시간은 너무 짧아서 매번 아무런 준비 없이 받아들였고 그것들이 축적되어 올해 탈이 났던 것 같다. 앞으로의 삶 역시 지난 삶의 반복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확신이 되자 우울감이 심해졌다. 삶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삶은 깊이 이해하면 이해할 수록 필연적으로 허무주의를 동반한다(허무주의는 눈에 보일때마다 싸워줘야 한다). 이럴 때일수록 삶의 방식, 삶에 대한 통찰, 이해와 같은 것들보다 삶 자체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어렵지만 기억해내야 한다. 생각은 접고 일단 살자.


"정작 우리를 인도하는 것은 삶에 대한 성찰이 아니라 삶 그 자체다"

                                                                                        - 카를로 로밸리


카뮈의 상상 속 시지포스까지는 아니더라도 언덕을 뛰어 내려가면 무조건 웃게 되어 있다는 아이들처럼(이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다시 한 해를 시작하기 위해 웃으며 언덕을 내려가려고 한다. 다행히 아직 구정이 남아 있으니 그때까지는 마음 놓고 신나게 내려가야지. 그리고 예민한 감각으로 삶을 반복한 뒤 2022년이 지나 한 살을 더 먹게 되기만을 바란다. 단지 그것만 바란다.


- 읽고 있는 것 : 시지프 신화(알베르 카뮈), 더 패치(존 맥피), 오블리비언(데이비드 포스터 월리스)

- 마시고 있는 것 : 광화문 커피

- 듣고 있는 것 : 이문세의 노래들






작가의 이전글 브랜딩은 하지 않을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