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에는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여름 무더위를 견디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 시원한 것들을 충분히 먹어둔다. 보기만 해도 시원하고 잡으면 더 시원한 스무디, 슬러시, 셰이크, 탄산음료 같은 것들을 번갈아 마시다 보면 뭐, 이 여름도 어떻게든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이 아주 잠깐 든다. 이 무지막지한 폭염 속에서 그런 생각을 잠깐이라도 한다는 건 귀한 일이다.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보게 된 것도 비슷한 이유다. 세상에는 문자 그대로 '여름밤의 무더위를 시원하게 날려버리는' 영화들이 있다. 그리고 꼬마 시절이었던 1991년 7월, 한여름의 단성사에서 한겨울의 영화인 <나 홀로 집에>를 본 이후로 헐리웃 영화가 다른 건 몰라도 무더위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날린다는 확신을 갖고 있다. 슈퍼스타와 슈퍼 제작비가 만난 슈퍼 영화를 보고 있으면 어딘가 초현실적이어서 현실의 무더위 같은 건 잊게 되는 것이다(참고로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제작비는 1억 달러라고 한다).
<플라이 미 투 더 문>을 보게 된 것에는 신기한 이유가 하나 더 있다. 당연하게도 그리고 당당하게도 나의 서가에는 읽은 책보다 읽지 않은 책이 더 많은데, 7월이 가기 전에 꼭 읽어야지 하고 눈여겨 봐둔 책이 있었다. <줄라이, 줄라이>. 팀 오브라이언의 작품들을 조금씩 읽어오다가 가장 최근에 구입한 그의 책이다. 구입한 날짜는 7월 2일. 제목 때문에 7월에 구입해야 하고 제목 때문에 7월에 완독해야 한다는 이상한 강박이 생기게 하는 책이었고 아무튼 읽기 시작한 건 7월 셋째 주쯤이었다.
이 책의 초반에는 팀 오브라이언의 책답게 베트남전을 묘사하는 부분이 나온다. 베트남 송짜기강에서 벌어진 교전. 그리고 강변에 널려있는 미군의 시체들. 교전이 벌어진 날은 공교롭게도 영화 <플라이 미 투 더 문> 속 디데이인 1969년 7월 16일, 즉 아폴로 11호가 달을 향해 발사된 날이다. 베트남 전쟁과 달 착륙, <줄라이, 줄라이>와 <플라이 미 투 더 문>, 책과 영화. 이질적인 존재들이 내 세계에서 묘하게 겹쳐졌다. 이런 일은 개기월식보다 드물다. 이러니 둘 다 안 볼 수 없지 않나요. 7월 23일, 밤극장으로 출발.
FLY ME TO THE MOON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에 열을 올리던 1960년대. 베트남 전쟁 참전, 아폴로 1호 발사 실패 등으로 인해 미국 국민들의 '문샷(Moonshot)'에 대한 관심과 지지가 시들해진다. 이에 백악관 소속 인물 모 버커스(우디 해럴슨)는 광고계의 능력자 켈리 존스(스칼렛 조핸슨)를 섭외, 나사(NASA)의 홍보팀으로 파견한다. 아폴로 11호 프로젝트 지휘자 콜 데이비스(채닝 테이텀)는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줄타기하며 달 착륙을 마케팅하는 켈리와 마찰을 빚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그녀에게 협력한다(당연히 둘의 로맨스가 이어진다). 그리고 아폴로 11호의 발사 일이 다가오자 모 버커스는 프로젝트 실패에 대비해 가짜 달 착륙 영상을 준비할 것을 켈리에게 지시하고, 이어 실제 영상 대신 이 가짜 영상을 송출하라고 협박한다. 이 프로젝트에 대한 콜의 진심을 알고 있는 켈리는 고민에 빠지지만... 결국엔 모든 것이 만족스럽고 매끄러운 해피엔드(이번에도 무더위는 시원하게 날려졌다).
영화는 '달 착륙 음모론'에 착안하여 진실과 거짓에 대한 흥미로운 픽션을 만들어낸다. 영화 속 대사처럼 아무도 믿지 않아도 진실은 진실이고, 모두 믿어도 거짓은 거짓이다. 이렇듯 진실과 거짓은 우리와 별개로 존재한다. 우리의 손이 닿지 않는, 달보다 먼 어딘가에 영원불변의 상태로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베트남 전쟁'과 '달 착륙'이 동시에 진행되었다는 너무도 뚜렷한 진실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그 사이의 거리가 너무 멀어서 생각만으로도 아찔한 이 두 진실 말이다.
<플라이 미 투 더 문>의 아폴로 11호가 달에 도착할 즈음, <줄라이, 줄라이>의 데이비드 토드(나흘 전, 베트콩이 쏜 총알에 양발이 관통되어 쏭짜기강변을 기고 있는)의 망상은 이렇게 말한다.
'그 화력 하며 과학기술이란. 질색인 녀석 둘을 저기 올려 보내서 뛰어다니게는 만들어도 여기 지구 행성에 있는 우리들 길 잃은 영혼들을 위해선 아무것도 못 해주잖아. 한심하다, 안 그래? 제기랄, 저들은 너랑 내가 존재한단 사실도 모를걸.'
'삶은 곧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은, 우리로 하여금 어떤 가치보다 선행하는 다른 가치가 있다는 식으로 사고하게 만든다. 올바른 선택의 누적이 더 나은 개인의 삶, 사회를 창출한다는 믿음을 심어준다. 하지만 정작 현실이 굴러가는 방식은 이것과 다르다. 베트남 전쟁과 달 착륙 중 하나를 선택해서 그 문제에 집중해야 할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작동하지 않는다. 현실은 선행이 아닌 병행이다.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비참한 모습으로 죽어가고 다른 한쪽에서는 사람들이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한 걸음의 순간에 함께한다. 이처럼 병행이 선행보다 선행하는 현실을 목격할 때면 나는 방금 바닥에 콜라를 쏟아버린 아이처럼 멍청하게 정지하고 만다.
베트남전과 달 착륙 중 어느 쪽에 더 무게를 둘지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가장 무게를 두고 싶은 것은 저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이 곧 세계가 돌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건 무더운 여름날, 과일 스무디를 마시는 것처럼 어떠한 선택의 순간에 머리를 차갑게 만드는 것이다. 머리가 조금 차가워진 만큼 조금 더 낫거나, 조금 더 새로운 선택을 상상하는 일이 가능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라고 열만 내다가 어떠한 행동도 하지 못하고 낭패를 당한 경우가 얼마나 많았는지. 스무디를 마시는 것, 거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밤극장의 안 좋은 점 한 가지는 영화가 끝난 뒤의 일정이 늘 똑같다는 것이다(집에 가서 잠을 잔다). 달리 뭘 할 수 없으니 집으로 가는 동안 영화를 곱씹는다. <플라이 미 투 더 문>은 이렇게 곱씹었다. 내가 본 스칼렛 조핸슨의 연기 중 최고였고, 채닝 테이텀은 반가웠고, 켈리라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고, 헐리웃의 진화를 실감하였고, 무더위는 로켓과 함께 날아갔고, 켈리와 콜의 옷 색감 때문에 스무디가 먹고 싶었고... 응? 스무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