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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신도시엔 역방향 출근이 없다

#2

신도시엔 역방향 출근이 없다. 출근 시간에는 업무지구로 향하는 도로만이 막히고, 퇴근 시간에는 주거지구 방향의 도로가 극심한 정체를 겪는다. 신도시 사람들은 정체의 이유를 도로의 용량에서 찾지만 문제는 그리 간단치 않다.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도로로 차량이 몰리는 근본적 원인은 업무와 주거를 용도별로 깔끔하게 분리한 도시설계에서부터 찾아야 한다. 그 기원을 찾는다면, 르코르뷔지에의 ‘빛나는 도시’까지 연원이 올라간다.  

    

 월요일 아침, 진오는 꽉 막힌 진행 방향의 도로와 반대편의 텅 빈 도로를 보며 격자형과 방사형 도시까지 그 생각을 넓혔다. 격자형에서 주거지와 업무 지구의 거리가 2라면, 정방사형에서는 그 거리가 1.414로 줄어든다. 주거지의 모든 곳과 업무 지구의 거리가 가깝다는 점에서 도시 내의 평등성은 방사형이 격자형보다 높다. 동시에 방사형은 최중심부 이외에는 부도심을 허락하지 않는다. 따라서 결절점마다 부도심을 여럿 만들어내는 격자형보다, 어떤 면에선 더 귄위적이다. 파리를 제외하면 전통의 대도시는 격자형에 가깝고, 21세기 이후 지은 신도시는 대부분 방사형에 가깝다. 진오가 나고 자란 ‘서울’이 격자형의 전형이라면, 그가 일하는 대한민국 최대 신도시 ‘세종’은 완벽한 방사형 설계를 실현한 도시다.  


 부동산 값에도 당연히 이러한 원리가 적용된다. 격자형 도시는 업무지구가 몰려 있는 중심부에 접근이 용이한 결절점에 가까울수록 가격이 높다. 방사형 도시는 어디서나 중심부까지의 거리가 모두 엇비슷하기 때문에, 어딘가 가격이 오르면 곧바로 다른 곳도 키를 맞춘다. 그래서 격자형 도시에서는 어디를 선점했는지가 중요하지만, 방사형 도시에서는 입지 선점 효과가 크지 않다. 오히려 중요한 건 진입 시점이다. 진입 시점에 따른 수익률은 격자형 도시보다 방사형 도시가 훨씬 더 큰 차이를 보인다. 쉽게 말하면, 서울에선 어디를 샀느냐가 더 중요하지만 세종은 언제 샀느냐가 더 중요하다.


 “아빠, 오늘은 일찍 데리러 와. 어린이집 정말 지루해.” 


 진오가 깜빡이를 켜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연이가 칭얼댔다.


 “연이야, 아빠는 회사가 늦게 끝나서 못 데리러 가. 대신 엄마가 오늘 최대한 일찍 간다고 했으니까 어린이집에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지내, 알았지?” 


 아침 일찍 일어난 탓인지 연이는 오늘따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어린이집에 단짝 친구가 없다는 둥, 신발이 작아 발이 아프다는 둥 끝없이 투정을 늘어놓는 바람에 그렇지 않아도 무거운 진오의 월요일 출근은 한결 더 버거웠다.


 청사에 도착하는 마지막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는데 전화가 울렸다. 김 국장이었다. 진오는 손가락을 입에 가져다 대며 연이에게 ‘쉿!’ 하고는,  핸들의 버튼을 눌러 전화를 받았다. 매주 월요일 오전 9시에 열리는 간부 회의에 제출한 자료가 문제인가 싶어 그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꼴깍 삼켰다. 아침에 제대로 챙겨 먹은 게 없는 터라 식도는 뻑뻑하고, 위는 쓰렸다.  


 “이 사무관, 간부 회의 자료 보다 전화했어. 사무실인가?” 


 “아닙니다. 아직 출근 중입니다.”


 “아, 출근 전에 전화해서 미안해.” 


 김 국장은 누가 봐도 미안하지 않은 순간에만 사과를 했다. 진오는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아닙니다, 국장님. 오늘따라 차가 좀 막혀서… 죄송합니다.” 


 기어코 죄송하다는 말을 들은 김 국장은 이제야 본론으로 진입했다.


 “지난번 추경 사업 실 집행률이 20퍼센트로 나오는데, 이거 맞아? 왜 이렇게 낮아?” 


 진오는 운전대를 잡고 지난주의 기억을 뒤집어 20퍼센트라는 숫자에 대해 생각했다. 각 지자체의 추경이 늦어지면서 전체 실 집행이 지연된 탓이란 생각을 했지만, 확실하게 확인하기 위해선 사무실에 들어가 자료를 다시 살펴야 했다. 최악의 경우를 가정하면, 공무원에게 허위 보고는 지연 보고보다 더 치명적이었다.


 “국장님, 다시 한 번 확인해서 보고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진오는 마음이 급했다. 현재 시간은 8시 47분. 간부 회의 시작까지 그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13분. 그는 세종청사 어린이집 주차장 진입로의 가장 가까운 자리로 직진하여 전면 주차를 했다. 서둘러 내린 후 뒷좌석 문을 열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연이는 차 안의 시간이 지루했는지 신발은 물론 양말까지 동그랗게 말아서 벗어던져 놓았고, 어린이집 가방에 넣어 둔 물병이며 알림장도 너나없이 튀어나와 어질러져 있었다. 


 일그러진 표정의 진오는 연이에게 양말 좀 제대로 펴서 신으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지만, 지금은 그럴 여유도 없었다. 급한 대로 앞 좌석 시트 밑으로 고개를 집어넣고 구겨진 양말을 찾아 낑낑대며 겨우 양말만 급하게 신기고는, 잡히는 대로 연이를 안고 택배 물건 옮기듯 어린이집 선생님께 전달했다. 연이는 아빠의 당황한 모습이 재밌는지, 아니면 오랜만에 아빠 품에 안겨 좋은지 아까의 투정과는 달리 진오에게 매달린 채 꺄르르 웃어댔다. 


 어린이집 정문에서 선생님의 지도에 맞춰 ‘안녕히 다녀오세요’라고 연이는 고개를 숙였지만, 인사를 받아 줄 아빠는 이미 뒤돌아서 문을 나선 이후였다. 선생님은 앞코가 비쭉 튀어나와 발에 맞지 않게 걸쳐있는 연이의 양말을 보며, 신발은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연이는 선생님의 질문에 말없이 주차장을 손으로 가리켰다. 


 진오가 사무실에 도착한 시간은 분침과 초침이 단결하여 12를 덮치기 직전, 디지털시계로 보면 무미건조한 8:59 이었다. 엄밀히 말하면 지각은 아닌데도 이미 모두가 자리를 정돈하고 앉은 월요일 아침의 엄숙한 분위기는 그를 지각생으로 착각하게 만들었다. 진오는 재빨리 책상 위에 어질러진 수많은 a4 용지에서 실 집행률을 확인한 후 핸드폰을 꺼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김 국장이 빨랐다. 


 “이 사무관, 아직인가? 회의 시작하겠어.” 


 “죄송합니다. 자료 확인해 보니 20퍼센트 맞습니다. 지자체 추경이 늦어져서 우리가 예산을 넘겨도 거기서 실 집행이 안 됩니다. 지자체 추경 일정은 다시 정리해서 보고드리겠습니다.” 


 진오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답했고, 김 국장은 예의 사람 좋은 목소리로 ‘알겠다’며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지금부터가 시작이었다. 간부 회의가 끝나자마자 김 국장은 그를 다시 찾을 것이 뻔했다. 진오는 화장실도 한 번 들르지 못한 채, 각종 파일을 짜깁기하여 보고 자료 정리를 시작했다. 


 “이 사무관, 국장님이 무슨 일로 전화했어?” 


 월요일 아침 9시, 전 직원에게 방송되는 간부 회의 라이브쇼를 뚫고 침투할 정도로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진오는 자리에서 어정쩡하게 일어나 파티션 너머 창가 쪽의 곽 과장 자리를 바라보았다. 정신없이 일하느라 인사도 제대로 못한 참이었다. 


 “간부 회의 자료 때문에 전화하셨습니다. 추경 실 집행률 때문에요. 일단 답변드렸고요. 추가적으로 보고 자료 만들고 있습니다. 자료 완성되면 다시 보고드리겠습니다.” 


 “야! 이 사무관. 추경 실 집행률같이 중요한 자료는 내가 미리미리 보고 하라고 했냐, 안 했냐.”


 곽 과장의 짜증은 월요일 아침부터 대단했다. 진오는 더 이상 말을 섞어봐야 피곤해질 것 같아 ‘죄송하다’며 돌아섰지만, 입에는 차마 뱉지 못한 억울한 말들이 가득했다. 


 ‘간부 회의 자료 제출 자체가 하나의 보고 아닌가? 자료 제출을 위해 서면 보고를 하고, 그 서면 보고를 위해 또 구두 보고를 하고. 우리는 보고를 위해 일을 하는가? 일을 위해 보고를 하는가? 궁금한 게 있으면 금요일에 미리미리 연락을 하지, 월요일 아침이 되어서야 연락하는 심보는 무엇인가? 아니, 애초에 간부 회의는 누굴 엿 먹이려고 월요일 아침 9시에 하는가?’


 소리 내지 않고 홀로 중얼대는 그의 등 뒤로 곽 과장은 기어이 한 마디를 더 보탰다. 


 “미리 보고를 못했으면 월요일이라도 좀 일찍 나오든가. 내가 사무관 때는 7시면 출근 완료였는데 말이야. 세상 참 좋아졌다, 좋아졌어.”


 지난번 회식 때는 일도 많은데 아이 등원까지 한다며 힘내라고, 요즘 세상엔 남자도 그래야 한다고 등 두드려주던 그 사람이 맞나 싶었지만 곽 과장은 회식 때와 일할 때가 전혀 다른 사람인지라 진오는 특별히 놀라지도 않았다. 그래도 싫은 소리를 들었으니 불편한 티를 좀 내줘야지 싶은 마음에 자리로 직행하지 않고 복도로 나가 한숨 돌리려는데, 그만 곽 과장 책상 옆의 조그만 개인용 쓰레기통이 진오의 구둣발에 걸렸다.


 덜그럭덜그럭- 빈 쓰레기통이 굴러가는 소리는 대단히 요란했다. 누가 봐도 진오가 곽 과장에게 들이 받으려 쓰레기통을 걷어찬 것처럼 보였다. 지루한 월요일 아침, 직원들은 모처럼 생긴 싸움 구경을 직관할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면서도 270도를 조망하는 사무직 특유의 스킬로 그들을 주시했다. 의도치 않게 사무실의 검투사로 소환된 진오는 걸음을 멈추고는 너스레를 떨었다. 


 “청사를 누가 이렇게 좁게 지었어. 선풍기며 쓰레기통이며 죄다 발에 걸리네. 시끄럽게 해서 죄송합니다.”


 방백과 함께 고개를 숙인 그는 관객들의 시선에서 서둘러 사라졌다. 복도로 나온 김에 1층 카페로 직행하여 주문을 마치고 커피를 기다리는데, 핸드폰엔 민정이 남긴 부재중 전화와 메시지가 있었다.  


 ‘어린이집 선생님이 전화 오셨어. 연이가 신발을 안 신고 등원했다는데 무슨 일이야?’ 


 ‘차에 있을 거야. 출근할 때 늦을 뻔해서 정신없었어.’


 ‘얼른 어린이집에 연이 신발 가져다줘.’


 ‘하원할 때 가져다줄게. 어차피 어린이집 안에서는 신발 필요 없잖아.’


 ‘어린이집에서 하루에 한 번씩 바깥 놀이하잖아. 오전일지 오후일지 모르니까 얼른 가져다줘.’


 ‘알겠어.’


 메시지가 몇 번 오고 간 뒤 진오는 주머니를 뒤져 차 키를 찾았다. 아직도 간부 회의는 끝나지 않았는지 카페가 있는 청사 로비에서도 방송 소리가 들렸다. 천장이 높은 로비 공간의 특성 때문에 소리가 윙윙 울려 누가 뭐라 하는지는 잘 들리지 않았지만 상관없었다. 어차피 사무실에 있는 사람들도 방송을 집중하여 듣지 않을 테니.


 직원들이 간부 회의를 잘 듣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간부 회의는 1주일 단위로 부르는 지겨운 돌림노래 같았기 때문이다. 예산과 인력을 들여 정책을 집행하면 대한민국의 문제는 모두 해결될 것 같은 장밋빛 보고가 매주 한치도 다름없이 반복되는 지루한 라이브 쇼를 월요일부터 경청하기란 정말로 쉽지 않았다. 게다가 어차피 칭찬은 위로 흐르고 질책은 아래로 흐르는 터라, 좋은 말이 오갈 땐 직원 입장에선 전혀 집중할 필요가 없었다. 가끔 장차관이 호통이라도 한 번 쳐야 과장부터 말단 직원까지 자신에게 내리 꽂힐 지시와 영향력을 가늠하려 잠깐 귀를 쫑긋 세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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