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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저렇게 착한 아들이 여기 있으니까

#3

 “예전에 살던 불란서 주택이 좋았다. 지붕도 있고 마당이 있어야 사람이 사는 집이지. 멀쩡한 2층 양옥 주택을 왜 부쉈는지 모르겠다. 쯧쯧.” 


 진오가 몇 달간 관찰한 할머니는 불만이 많은 사람이었다. 가족들을 쫓아다니며 전깃불은 왜 켜두는지 잔소리를 했고, 된장이나 고추장은 왜 장독대가 아닌 냉장고에 보관하는지 타박을 했으며, 심지어는 볼 일을 한 번만 보고 왜 아깝게 화장실 물을 내리냐고 사사건건 가족들의 꼬투리를 잡았다. 


 미자는 그럴때마다 한숨을 내쉬며 자리를 피했고, 진현과 진원은 할머니를 마주하기 싫어 학교와 학원이 끝나고도 일부러 늦게 집으로 돌아왔다. 다른 가족들과 달리 태평은 어머니의 잔소리에 ‘제발 좀 이상한 소리 하지 마시라’고 호되게 다그쳤다. 패기 좋던 할머니도 아들의 호통에는 아무 소리도 하지 못했다. 상황이 그러하다 보니 할머니의 말 상대는 어린 손자밖에 없었다. 


 “진오는 옛날 집 기억 나니? 마당에 라일락 나무가 하나 있었는데 봄이면 향기가 집 앞 횡단보도부터 진동을 했단다. 동네 사람들이 우리집 라일락 나무를 얼마나 부러워 했는지… 그 아까운 나무도 공사한다고 다 베어 버리고…”


 미자는 남가좌동과 방화동의 남의 집 살이를 거치면서 주인 집 눈치 때문에 밤마다 우는 진현을 안고 돌아다닌 설움을 온몸으로 기억했다. 자기 집을 사겠다는 일념 하에 진현을 유치원에 보내고는 젖먹이 진원을 안고 발에 물집이 생길 때까지 복덕방을 돌아다녔다. 젊은 여자라며 복덕방 아저씨들에게 무시도 많이 받았지만, 남대문시장에서 신발을 떼다 팔던 미자의 눈썰미도 솥뚜껑 운전만 하던 여느 주부와는 달랐다. 


 부지런히 돌아다닌 끝에 찾은 집은 화곡동의 미니 2층 양옥집이었다. 라일락 나무와 마당이 있다는 낭만적인 이유보단, 반지하 같은 1층에 세를 주면 그만큼 돈을 적게 들이고도 매수할 수 있다는 경제성 때문에 끌렸다. 태평은 집값이 떨어지면 어떻게 하냐며 슬며시 반대했지만, 미자는 집을 키우는 건 여자 몫이라며 강하게 밀어붙였다.


  아들 내외가 서울에 집이 생기자 의정부에서 이모할머니 댁에 얹혀살던 할머니는, 늙으면 아들과 같이 살아야 한다며 화곡동 집으로 슬며시 들어왔다. 그녀의 가장 큰 불만은 대를 이을 손자가 없다는 것이었다. 진현에 이어 진원이 딸임을 확인했을 때, 분만 직후부터 터져 나온 시어머니의 노골적인 실망과 태평의 아쉬운 표정을 미자는 잊을 수 없었다. 그래서 타의 반, 자의 반으로 라일락 집에서 낳게 된 아들이 바로 진오였다. 


 “진오야, 너는 셋방 살이 한 번도 안 해 봤어. 누나들은 울면 들쳐 엎고 골목으로 나가기 바빴는데, 너는 맘대로 뛰어다녀도 누구 하나 뭐라는 사람이 없더라.”


 미자는 진오에게 입버릇처럼 말했지만 누나들도 특별히 남의 집 살이의 설움을 아는 것 같지는 않았다. 대신 누나들은 할머니의 악행만은 분명히 기억했다.


 “할머니는 악마일지도 몰라. 엄마를 괴롭히고 우리를 못살게 군다니까. 옛날 집에 있던 장독대 기억나? 그것도 할머니가 망치로 다 부숴버리고 집을 나갔어. 얼마나 힘이 세던지. 그 이후로 할머니 이야기만 나오면 엄마 아빠는 맨날 미친 듯이 싸우잖아. 할머니만 없으면 우리 집은 지금보다 훨씬 행복했을 거야.”


 진현은 동생들에게 비밀 이야기를 하듯 은밀히 속닥댔다. 진원은 고개를 끄떡였고, 진오는 고개를 갸웃댔다.


 “난 그래도 할머니 좋은데. 엄마 대신에 우릴 돌봐주잖아.”


 막내의 말에, 진현은 바로 쏘아붙였다.


 “우리가 아니라 너를 돌봐주는 거겠지. 아직 혼자 잠도 못 자는 꼬맹이랑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겠니.” 


 중학생 특유의 똑단발을 휘날리며 진현은 자기 할 말이 끝나자마자 방으로 들어갔고, 진원은 언제나 그렇듯 빙긋 웃을 뿐 별말이 없었다.


  80년대 내내 서울에는 집이 모자랐다. 아니, 사실은 해방 이후 늘 그랬다. 서울로 밀려드는 사람의 숫자와 욕구는 커졌지만 집을 짓는 속도는 그만큼 따라가지 못했다. 정부는 90년대에 들어서자마자 주택 건설 200만 호 건설이라는 목표 아래 다가구주택 건축 기준을 완화했다. 반지하층이나 옥외 계단은 용적률에서 제외하였고 몇 가구가 살든 주차장도 1면만 있으면 되었다. 


 이미 골목에는 단독주택이 여럿 헐리고 있었다. 미자가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2층 양옥집을 허물고 3층 빌라를 지으면 세를 2배 이상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할머니는 며느리의 계획을 반대했다. 

마당이 없는 집은, 사람 사는 집이 아니라는 이유였다. 결혼하고 10여 년. 아들을 못 낳는다는 구박에도, 너네 집에서는 그렇게 가르쳤냐는 호통과 트집에도 무던히 참았던 미자는 집 문제에서만큼은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시어머니의 잔기침에도 움찔하고, 호통이라도 치면 눈물이 찔끔 나던 20대의 미자가 아니었다. 아이 셋을 낳은 엄마는 강했고, 또 그래야만 했다.


 “어머님이 결혼할 때 보태주신 것도 없잖아요. 진현 아범이랑 단칸방에서 시작해서 여기까지 고생고생하면서 왔는데 도대체 왜 그러시는 거예요. 도와달라는 말이 아니라 방해만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말씀이잖아요.”


 “내가 지금 마당 있는 집에서 살자고 하는 게 방해라는 이야기니? 아이고, 내가 빨리 죽어야지 너무 오래 살았더니 별의별 꼴을 다 본다.” 


 고부간의 싸움은 날로 심해졌지만 태평은 개입하지 않았다. 아내의 말에 동의하면서도 어머니의 고집을 꺾을 자신은 없었다. 자꾸만 앞으로 나아가려는 미자의 진취성도 태평에겐 부담이었다. 행여 돌이라도 잘 못 밟아 가족 모두가 넘어질까 두려웠다.


 태평이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온 어느 날, 마당 한편에 고이 모셔둔 장독대 여럿이 산산조각 나있었다. 쏟아져 나온 된장과 고추장의 흔적은 장독대가 마치 피를 흘리는 것 같았다.


 “누가 이런거야?” 


태평이 화를 억누르며 물었다.


 “당신 엄마, 그 잘난 엄마! 몰라서 물어? 평생 하는 것 없이 남한테 얹혀사는 당신 엄마가 그랬다고. 나, 더 이상 이렇게는 못 살아. 나랑 갈라서든지 어머니랑 같이 살든지 당신이 선택해. 나, 정말 이렇게는 못 살아!” 미자가 흐느끼며 울었다. 


 태평에게 장독대란 6살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정념이자 집안의 뿌리,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은 가풍 같은 존재였다. 어머니라고 해도 집안의 근간을 파괴하는 걸 장남으로서 용납할 수는 없었다. 비록 장남이라 해도 형제라고는 이복 누나 둘이 다였지만. 


 마침내 그의 결단은 어머니와의 절연이었다. 의정부 이모 댁에 어머니를 놓고 오는 차 안에서 태평은 어른이 되고 처음으로 눈물이 찔끔 났다. 하지만 흘렸던 눈물이 무색하게도, 5년 만에 죽을 병에 걸렸다며 연락 온 어머니를 태평은 외면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싣고 대학병원으로 바로 차를 몰았지만 기나긴 검사 끝에 나온 병명은… 가벼운 당뇨였다.


 “원래부터 당뇨 좀 있으셨잖아. 하긴 죽을 병에 걸린 사람이 어떻게 직접 연락하겠어. 진짜 죽을 병이면 죽어야 연락이 왔겠지. 어떻게 할 거야?”


 미자가 실소를 머금고 물었다. 사실 태평은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알았다. 죽을 병이 아니란걸. 그냥 목소리만 들어도 알 것 같았다.


 “5년이면 서로 할 만큼 한 거 아닌가. 빵집 시작하면 애들 돌봐줄 사람도 필요하고..”


 태평은 말끝을 흐렸고 미자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섯 해는 서로 못 이기는 척 깨진 장독대를 다시 붙이는데 충분한 시간이라고 태평은 생각했고, 미자 역시 천륜을 영영 저버릴만한 용기는 없었기에 갈등은 그 정도에서 봉합되었다. 





 94년 여름은 무척 더웠다. 김일성도 죽었다. 날씨 때문인지, 김일성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내일 전쟁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뉴스는 격앙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어른들은 해가 뜨면 일터로 출근을 했고, 아이들은 학교를 갔다. 


 진오는 빵집이 좋았다. 집에는 없는 에어컨이 하루 종일 틀어져 있었고 태어나 구경도 못해 본 팥빙수도 맛볼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엄마가 거기 있어서, 그래서 좋았다. 학교를 마치고 오후가 되면 집 대신 빵집으로 향하던 진오는 여름방학이 되자 아예 미자와 함께 빵집으로 출근을 했다. 


 ‘부부 빵집’의 유리 문을 열고 들어서면 왼쪽 벽면은 빵으로 가득 차 있었고, 정면에는 계산대가 있었다. 계산대 오른 편에는 성인 남자 키만한 케이크용 쇼케이스가 있었는데 그 뒤와 주방 사이 두 평 남짓한 공간에 가족들의 휴식을 위한 직사각형 평상을 두었다. 평상은 태평이 직접 만들었다. 동네 공사장을 돌아다니며 얻어 온 나무에 못질을 하고, 미끄러지거나 쓸리지 않게 노란 장판을 덮어 마무리했다. 진오는 그 평상에서 여름방학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방학 숙제를 하거나 문제집을 풀었고, 그래도 지루하면 쇼케이스 넘어 맞은편에 있는 조그만 티브이를 봤다. 


 점심시간이 되면 미자는 집에서 가져온 플라스틱 통에서 김치와 몇 가지 반찬을 꺼내 진오와 식사를 했다. 밥을 먹다 손님이 오면 미자는 입을 슥슥 훔치며 일어섰는데, 그럴 때면 진오는 이상하게도 남이 봐선 안될 일을 들킨 것 같이 부끄러웠다.


 땅거미가 지고 퇴근 시간이 지나면 빵집을 찾는 인적이 드물었다. 태평이 회사를 마치고 오기 전까지 미자는 카운터에서 티브이 연속극을 봤고, 진오는 책을 읽었다. 학교 가기 전부터 한글을 빨리 익히고 책을 좋아해서 누나들보다 공부에 유독 흥미를 느끼는 막내아들을 보면 미자는 흐뭇했다. 담임 선생님도 진오가 또래에 비해 똑똑하다며 칭찬을 늘어놓았다. 성의 표시를 해달라는 의미인지는 알았지만, 미자는 애써 외면했다. 중학생이 된 진현을 보니 국민학교 선생에게는 돈을 써봐야 별 의미가 없었다.


 “우리 아들은 공부를 잘하니까, 나중에 판사나 검사하면 되겠다.”


 “판사나 검사가 뭔데?”


 “잘못한 사람들을 벌주는 일인데 돈도 많이 벌고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살 수 있어.”


 미자의 말에 진오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대답했다. 


 “우와, 그러면 나 판사나 검사할래. 돈 많이 벌고 싶어.”


 “돈 많이 벌어서 뭐하고 싶은데?”


 “돈 많이 벌어서 엄마도 천만 원 주고 아빠도 천만 원 주고 할머니들도 다 천만 원씩 드릴 거야. 그러면 우리 가족 모두가 행복할 거야.”


 “누나들은?”


 “누나들은 알아서 열심히 일하면 되지.”


 신나서 조잘대는 막내아들의 말에 미자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매일 아침 저혈압 때문에 눈에 핏줄이 터지고, 차고 뜨거운 반죽을 번갈아 만지느라 손끝이 갈라져도 괜찮았다. 저렇게 착한 아들이 여기 있으니까. 빵집도 순항이었다. 오픈하고 6개월이 지나 허니문이 끝났는데도 임대료와 미도의 인건비를 제하고도 섭섭지 않게 남았다. 미자는 빵집 한구석에서 전자 계산기를 두드리며 미래를 그렸다. 아파트로 이사 가는 꿈, 더 좋은 동네에 사는 꿈, 삼 남매를 좋은 대학에 보내는 꿈. 94년, 그 여름의 열기만큼이나 미자의 마음도 희망으로 불타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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