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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탓하기 미안하게 그는 언제나 성실했다

#4

 “몇 시인데 아직도 안 일어나. 빨리 일어나서 연이 데리고 놀이터라도 가.”


 주말 아침, 민정이 소리쳤다. 진오는 더 자고 싶은 마음에 몸을 양쪽으로 비틀며 이불을 걷어 올렸지만, 이불은 마음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진오의 눈꺼풀이 강제로 개방되며 두 눈 가득 연이가 쏟아져 들어왔다. 


 “아빠, 일어나. 헤헤.”


 해맑은 딸의 웃음에 진오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진오는 일어나며 재빨리 베개 옆의 핸드폰을 확인했다. 9시 40분. 이른 시간은 아니었지만 조금은 더 자고 싶었다. 연이는 이미 아침을 먹었는지 식탁 밑은 빵 부스러기와 요구르트 자국으로 가득했다. 진오는 물티슈를 몇 장 뽑아 끙- 소리를 내며 식탁 밑의 잔해를 대충 닦았다.

 

 “집 청소 좀 해야겠다. 거실이랑 주방이 다 엉망이네.”


 연이의 장난감이 정글 숲의 악어처럼 도사리는 거실의 바닥과, 아침부터 산더미처럼 쌓여있는 설거지를 보며 진오가 중얼댔다. 


 “연이 7시부터 일어나서 지금껏 놀아줬어. 설마 청소도 나보고 하라는 건 아니지?”


 민정의 목소리가 제법 날카로웠다. 연이는 토요일 아침부터 심심하다며 머리카락과 먼지가 가득한 거실 바닥을 등으로 쓸고 다녔다. 부부에겐 별다른 계획이 없는 주말이 전쟁 같은 평일보다 더 두려웠다. 


 “오늘 뭐 할까?”


 진오는 연이가 남긴 빵을 입속에 넣고 우적대며 물었다. 민정도 뾰족한 수가 없긴 마찬가지였다. ‘5세 아이와 갈만한 곳’과 같은 키워드를 포털에 검색하고, 맘 카페를 들락거렸지만 결과는 특별할 게 없었다. 민정이 별말이 없자 진오는 날도 더운데 키즈카페나 가자고 제안했다. 엄마의 마음에 쏙 드는 제안은 아니었지만, 그녀 역시 딱히 대안은 없었다.  


 “둘 다 갈 필요 없으니까 내가 연이 데리고 다녀올게.”


 진오가 큰 호의를 담아 제안했고 민정은 당연한 것 아니냐는 의미로 고개만 끄덕했다. 거실 바닥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연이의 귀는 엄마와 아빠의 대화를 향해 커져 있었다.  


 “싫어 싫어. 나는 엄마랑 갈 거야. 뭐든 엄마랑만 하고 싶어. 아빠랑은 싫어.”


 “왜 오늘은 아빠랑 가자. 저번에도 아빠랑 가서 잘 놀았잖아.”


 진오가 콧소리까지 내며 연이에게 애교를 부려 보았지만 별 소용은 없었다. 


 “우리 가족 다 같이 갈까? 엄마랑 아빠랑 연이랑 셋이서 다 같이 가자.”


 진오는 일부러 톤을 높여 밝게 말했다. 민정은 조그맣게 한숨을 쉬고는 어른도 입장료가 있는데 뭣하러 둘이나 들어가냐며 연이 데리고 다녀올 테니 집안 청소나 해두라고 일렀다. 


 진오 나름대로는 직장 생활과 육아에 모두 열심이라고 생각했지만, 연이는 날이 갈수록 엄마만 찾았다. 젖먹이 땐 아빠의 존재가 흐릿해서 그렇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뭐든지 엄마와만 하겠다는 연이를 보는 진오의 마음은 복잡했다. 


 얼마 전 무료하게 채널을 돌리다 티브이에서 본 아동전문가는 아빠와의 애착관계가 아이의 성장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역설하며 육아는 양보다 질이라고, 하루에 30분만 봐도 아이가 까르르 넘어갈 만큼 재밌게 놀아주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진오는 연이와 있을 때 자꾸 핸드폰으로 손이 갔다. 민정이 핸드폰 좀 놓으라며 타박했을 때, 그는 되려 회사에서 연락이 올까 봐 불안해서 그런다며 짜증을 냈다. 매번 아이와 잘 놀아줘야 한다고 다짐하다가도 손과 눈이 향하는 방향은 늘 같았다. 


 “키즈카페 다녀올 테니까 집안 청소나 좀 해 둬.”


 연이는 나가는 준비를 하는 내내 들뜬 마음에 뭐라고 끊임없이 조잘댔다. 미안한 마음에 진오는 현관에서 연이의 신발을 신겨주려 허리를 숙였지만 이미 민정의 손가락이 운동화 발뒤꿈치에 들어간 이후였다. 그는 머쓱하게 잘 다녀오라며 손만 열심히 흔들었다. 


 특별히 한 일이 없는데도 진오는 조금만 쉴 요량으로 소파에 털썩 앉았다. 밤새 세상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집어 든 핸드폰에는 얄궂게도 부재중 전화가 있었다. 주말 오전부터 전화를 하는 매너 없는 그의 이름은, 하 사무관이었다. 그는 기재부 담당 사무관으로 예산과 성과평가라는 2가지 목줄로 사업 부처를 옥죄었다. 주말 오전의 연락에도 짜증부터 낼 수 없는 이유였다. 진오는 서둘러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 사무관님. 전화를 못 받았습니다. 죄송해요. 무슨 일이세요?”


 근무시간도 아닌 토요일 아침에 전화를 못 받는 게 전혀 죄송할 일이 아닌데도 ‘갑’에게는 입버릇처럼 사과부터 나왔다. 사과는 꼭 해야 할 사람에겐 한 입 떼기도 어려웠지만 전혀 죄송하지 않은 강자 앞에선 어찌나 수월하게 입 밖에 나오는지 그것참 신기한 노릇이었다.


 “내일 추경안 심의하는 거 알고 계시죠?”


 ‘너네 일을 내가 어떻게 알아’라고 생각하면서도 진오는 ‘알고 있다’고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런데 자료를 이렇게 주시면 어떻게 해요. 단가, 물량 다 근거가 없잖아요. 이렇게 주시면 저도 심의 들어가서 이 사업 방어 못 해요.”


 일 좀 줄어들게 사업이 다 잘렸으면 좋겠다는 속마음을 들킬까 봐 진오는 ‘주말에도 고생이 많으시다’며 일부러 과장해서 허허댔다. 


 “단가, 물량에 대한 근거 붙여서 자료 다시 만들어주세요. 이대로는 심의 못 들어가요. 저도 자료 정리해서 총괄에 넘겨야 하니까 오늘 오후 중으로 주세요. 안 주시면 사업 다 자릅니다. 저 분명 이야기했어요.”


 자료를 넘긴 지가 언젠데 심의 전날이 되어서야 자료 보완을 독촉하는 그의 태만함에 진오는 기가 막혔고, 기재부 예산 심의는 왜 기나긴 평일을 두고 꼭 일요일에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도 밀려왔다. 일선 부처에선 알 수도 없는 저 어딘가의 윗선에서 탑다운 방식으로 진행시킨 추경을 이제 와서 자른다고 협박하는 모양새도 어색했고, 동시에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진오는 자료를 최대한 빨리 보강하겠다며 상냥하게 전화를 끊었다. 어차피 그 역시 누군가의 독촉에 시달리고 있을 터. 공직사회에서 ‘갑’이라는 사람도 알고 보면 그저 거대한 컨베이어 벨트의 작업자일 뿐이라, 앞에서 오는 부품을 조립해 시간 내에 다음 사람에게 넘겨야 하는 운명을 공유하는 동업자에 불과했다. 우연히 순서에 따라 ‘갑’과 ‘을’로 만났을 뿐, 벨트의 속도나 물량 따위는 애초에 선순위의 작업자가 정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그를 원망해 봐야 별 소용없었다. 


 민정이 연이와 키즈카페에서 돌아왔을 때 집은 하나도 정리되어 있지 않았다. 진오는 저녁 먹기 전에 돌아온다는 말을 남겼지만, 민정은 돌아오는 시간은 남편이 정하는 게 아님을 이미 알고 있었다. 진오의 귀가 약속은 그저 미안함에 던지는 인사치레라고 생각하면 차라리 속이 편했다. 괜한 기대가 실망과 다툼으로 연결되는 고리를 애초에 마음 속에서 삭둑 자르는 편이 나았다.  


 대기업에 다니는 민정도 진오만큼 바빴던 날들이 있었다. 야근에 회식은 기본이고 주말 출근까지 불사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의 도입은 그녀의 직장 생활을 빠르게 변화시켰다. 근로자 300인 이상을 고용한 대기업은 정부 방침에 충실히 따랐고, 외국계 회사에서나 보던 퇴근시간 PC 자동 종료가 민정의 회사에서도 현실이 되었다.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은근히 바라던 부서장들도 웬만해선 초과근무는 하지 말라며 정시 퇴근을 독려했다. 사람들은 불안한 마음에 퇴근하고도 회사 근처 카페를 전전했지만 몇 달이 지나자 모두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했다. 불과 몇 개월 만에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이민 온 느낌이었다. 반면, 공무원인 진오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공무원은 근로기준법 적용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서울에 있는 본사에서 근무하다, 연이를 낳고 진오를 따라 대전의 지사로 내려왔을 때 민정은 딱 거기까지만 밀리리라 다짐했다. 하지만 엉뚱하게도 주 52시간제의 도입은 육아의 무게 추를 민정 쪽으로 더욱 기울게 만들었다. 한 번 쏠린 무게 추는 가속도를 더해 갔고, 그래서 불안했고, 가끔은 진오가 미웠지만 탓하기 미안하게 그는 언제나 성실했다.




 기재부 심의는 진오가 작성한 원안을 확정 짓는 수준에서 끝났다. 애초에 위에서 원한 추경 사업이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진오가 주말 내내 보강한 자료를 하 사무관이 심의에서 활용했는지는 알 길이 없었다. 노력에 비하면 허무한 일이긴 했으나, 공무원 사회에선 투입이 중요했지 산출이 중요한 건 아니었다.

 

 진오는 주말 간 곽 과장에게 간단하게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일은 엉뚱한 데서 터졌다. 다시 월요일이 돌아왔고 이제 막 출근한 진오를 곽 과장이 몰아붙였다. 


 “이 사무관, 주말에 기재부에 낸 추경 심의 자료 수정본은 왜 보고 안 했어?” 


 “아, 과장님. 기재부에서 급하게 단가, 물량에 대한 근거만 좀 보강해달라 해서 수정했습니다. 어차피 전체 예산액이나 주요 내용은 달라진 게 없고요. 그래서 결과만 간단하게 보고드렸습니다. 주말인데 시시콜콜하게 다 보고 드리면 과장님도 피곤하실 것 같았고요..”


 진오는 말 끝을 희미하게 줄이며 어색한 웃음을 흘렸지만, 곽 과장은 멈출 생각이 없었다.


 “외부에 자료 나갈 때는 과장 컨펌받고 나가는 게 기본 아니야? 국장님이나 다른 데서 자료 찾으면 급하게 수정해서 기재부에 넘겼으니까 나는 모릅니다, 실무자한테 연락하세요. 그러면 되는 거야? 과장 알기를 뭘로 아는 거야, 도대체.”


 진오는 재량이나 실무자의 권한, 일의 순서와 중요도 같은 단어들을 머릿속에서 떠올렸지만 어차피 이런 말싸움에서 직급을 이길 논리는 존재하지 않았다. 


 “다음부터 주의하겠습니다.”


 진오가 두 손 두 발을 다 들었는데도, 곽 과장은 정제된 보고서 형태로 수정 사항을 다시 보고하라며 뒤끝을 부렸다. 진오는 곽 과장 책상 옆의 쓰레기통을 주의해서 살펴본 후 한 걸음 떼었다. 자리에 오자마자 그는 물량과 단가, 변동 이유, 반영 내역, 향후 계획 등을 긁어모아 금방 보고서 1장을 만들었다. 하지만 곽 과장은 오늘 기어이 날을 잡은 모양이었다. 


 “단어 줄바꿈 하면서 잘리지 않게 맞추라고 몇 번을 말해! 여기 밑에 한 줄 남은 건 뭐라도 채워야 보는 사람이 보기 좋을 것 아냐! 그리고 향후 계획에 기재부에서 검토한 결과대로 수용하겠다는 게 계획이야? 계획은 수동형이 아니라 능동형으로 써야 한다고! 도대체 보고서의 기본이 안 되어 있어, 기본이. 공무원이 보고서도 제대로 못 쓰면서 무슨 놈의 일을 하나. 너, 몇 년 차야!”


 신나게 깨지고 자리로 돌아와 습관적으로 열어 본 핸드폰에는 민정이 보낸 연이의 사진이 있었다. 키즈카페에서 찍은 사진이었다. 정글짐부터 짚라인까지 연이는 이제 제법 능숙하게 기구를 탔다. 얼마 전만 해도 다리가 마음을 따라가지 못해 뛰다가 자꾸 넘어졌던 것 같은데, 어느새 자란 손아귀와 무릎의 힘으로 자신의 체중을 버티고 중력을 이겨냈다. 아이의 성장은 선형이 아니라 계단식 같아서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 속도를 따라가기가 버거웠다. 진오는 괜히 미안한 마음에 정글짐 꼭대기에 올라 당당하게 브이를 한 연이의 사진을 카톡 프로필로 바꿨다. 부부의 눈은 비슷한지, 민정의 프로필도 같은 사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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