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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엄마는 내가 목동 애들만큼 공부 잘 하기를 원하지?

#5

 빵집을 시작하며 미자가 정한 목표는 한 달 100만 원 저축이었다. 채 200만 원이 되지 않는 태평의 월급으론 생활비를 대기에도 벅찼으니, 빵집의 순수익이 100만 원은 되어야 한다는 말이었다.


 미자는 하루의 끝에 매일 매출 전표를 확인하고, 그날의 수익을 꼼꼼하게 기입했다. 계절적 편차는 제법 컸다. 빵만 보자면 아주 덥거나 추울 때 장사가 잘 되었고 날씨가 좋은 봄과 가을은 오히려 비수기였다. 5월 선물용 롤케이크, 7~8월의 팥빙수, 12월의 크리스마스와 연말연시 케이크 같은 계절적 특수가 있는 달은, 빵과는 별개로 매출이 좋았다. 명절 연휴도 의외의 성수기였다. 제사 음식에 물린 사람들과 고향에 다녀와 기진맥진한 주부들이 빵을 많이 찾았다. 미자는 명절 당일이 되면 아침 일찍 제사는 제사대로 지내고, 오후엔 부리나케 가게 문을 열었다. 명절마다 집에선 전을 부치고 가게에선 빵을 만들어야 하는 이중의 수고를 견뎌내야 했다.


 그즈음 미자는 유행하는 노래가 무엇인지도 몰랐다. 성수대교가 무너져도 지존파가 잡혀도 주사파로 온 세상이 시끄러워도, 오로지 밀가루 반죽에 이스트를 붓고 휘핑을 쳐 크림을 만들었다. 성실함, 그것이 그녀가 운명과 맞서 싸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미자는 신혼이던 80년대 초반을 생각했다. 안양천변에 신시가지 아파트가 분양한다는 팸플릿이 온 동네에 나돌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안양천변은 불법 주택이 즐비했고 장마철엔 상습 침수가 일상인 지역이라, 판잣집과 사람이 동시에 떠내려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던 그런 동네였다. 각지에서 서울로 올라와 자기 집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이 만든 거대한 폐허 같았다. 태평은 그런 동네는 사람 살 곳이 아니라며 분양 팸플릿을 지라시 취급했다. 하지만 미자는 ‘신시가지’라는 말이 자꾸 마음에 남았다. 새로운 곳에 살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사람이 될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보증금 천만 원짜리 단칸방에서 시작한 미자에게 분양가 5천만 원은 자력으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미자는 혹시 몰라 태평에게 돌아가신 시아버지가 물려줬다는 의정부 땅을 팔아 세간에 보탤 수 있는지를 슬쩍 물었다. 하지만 남편의 대답은 우리가 욕심낼 땅이 아니라는 타박뿐이었다.


 분양이 끝나고 택지 개발과 시공을 거쳐 88올림픽이 시작할 무렵, 안양천변 신시가지 아파트엔 본격적인 입주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임대 주택의 분양 전환이 마무리된 90년대 중반이 되자 그곳은 서울의 서부 지역에선 누구나 이사를 원하는, 그야말로 완벽한 신시가지가 되었다. 산이 많은 서울에선 드물게 넓은 평지로 이루어져 있어 여름이나 겨울에 고생이 덜했고, 페리의 ‘근린주구론’을 따른 도시 설계답게 초, 중, 고등학교 모두 단지에서 안전하게 걸어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 주부들의 선호도가 대단했다. 그러다 보니 학령기 인구가 많아져 주변의 값싼 상가에 학원들이 많이 들어섰고, 자연스럽게 학군을 이뤘다. 그곳이 바로 지금의 ‘목동 아파트’였다.  


 미자와 태평은 결혼 이후 10년간 먹을 것 덜먹고, 입을 것 덜 입으며 최선을 다해 돈을 모았다. 성과가 없진 않았다. 반지하 단칸방에서 시작해 집 주인과 화장실을 같이 쓰는 남의 집 1층 살이를 거쳐 라일락이 멋들어지게 핀 화곡동의 불란서 주택을 샀고, 주택을 재건축하여 3층짜리 빌라 꼭대기에 사는 ‘주인집’이 되었다. 그래도 결국 빼줘야 할 전세금을 제외하면 당장 손에 남는 돈은 1억 원 남짓이었다.


 자본의 성장 속도는 노동 소득의 축적보다 빨랐다. 그 사이 목동 아파트의 시세는 천지개벽한 동네 분위기에 걸맞게 분양가에서 4배나 오른 2억 원가량이었다. 그간의 노력에도 목동 아파트로 가기 위해 모자란 돈은 몇 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더 늘어난 셈이었다. 미자는 막내 진오가 고등학교를 가기 전엔 꼭 목동으로 가고 싶었다. 그래서 세운 목표가 한 달에 100만 원 저축이었다. 꼬박 8년을 모으면 1억 원이 되는 돈. 너무 늦지 않게 이루고 싶은 목표였다.




 “어쩐 일이야? 여길 다 오고. 밥은 먹었어?”


 오후 늦은 시간. 진현이 빵집 유리 문을 열고 들어오자 미자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중학생인 진현은 학원과 학교를 오가느라 바빴고, 주말엔 친구들과 몰려다니느라 가게에 모습을 비추는 일이 거의 없었으니까. 진현은 엄마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음료용 냉장고에서 사과 주스를 꺼냈다. 목이 말랐는지 매장 중간의 크림색 손님용 의자에 앉아 주스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미자가 남대문시장 안의 수입 과자점에서 떼다 파는 사과 주스는 어지간한 빵 2개를 합친 가격보다 비쌌지만, 처음 보는 모양의 주스를 신기해하며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이 많아 쏠쏠하게 잘 팔렸다.


 “다른 거 먹지. 애들처럼 사과 주스를 먹니.”


 미자의 핀잔에도 진현은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진현이 많이 예뻐졌다. 이제 숙녀가 다 되었는데?”


 미도의 인사에 그제야 진현은 이모도 잘 지냈냐며 대꾸했다. 미자는 요일을 헤아려보며 진현에게 속사포처럼 말을 늘어놓았다.


 “오늘 수학 학원 가는 날 아니야? 집에 가서 할머니한테 밥 차려달라 그래서 밥 먹고 얼른 학원 가. 중간고사 성적표는 나왔어? 나왔으면 엄마 얼른 갔다 줘. 괜히 지난번처럼 중간에 배달 사고 내지 말고.”


 “진현이도 공부 잘해? 하긴, 언니 닮았으면 공부 잘하겠다. 근데 언니 어렸을 때보다는 진현이가 훨씬 이쁜 것 같은데? 진현이가 어릴 때부터 나 닮았잖아.”


 “내가 할머니만 있는 집에 왜 가. 나는 할머니랑 살기 싫다고 분명히 말했잖아.”


 “기집애, 또 그 소리야?”


 미자는 눈을 흘겼지만, 진현이가 할머니를 싫어하는 게 마냥 싫지 만은 않았다. 진현은 다 먹은 주스를 내려놓으며 고개를 반만 돌려 미자를 흘끔 쳐다보았다. 엄마에게 할 말이 있다는, 진현 특유의 제스처였다.


 “엄마, 나이키 신발 하나만 사주면 안 돼? 학원 가면 애들이 다 나이키 신발 신고 있더라고. 로데오 거리에 나이키 새로 생겨서 세일도 많이 하나 보던데.”


 미도는 고개를 낮춰 진현이 신고 있는 신발을 슬쩍 보았다. 브랜드가 없는 시장표 흰색 운동화였다.


 “그래, 언니. 진현이 나이키 신발 하나 사 줘. 빵집 장사도 잘 되잖아. 요즘 애들 중에 나이키 신발 하나 없는 애들이 어딨어.”


 미자는 돈에 있어선 누구보다 단호했다. 아이들 교육비 이외에는 모든 소비가 아까웠다. 매달 100만 원 저축의 선결조건은 불요불급한 소비의 극단적 억제였다.


 “신발 산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래! 학생이 깨끗하게만 신으면 되지. 나이키 같은 소리 하지 말고, 가서 공부나 열심히 해. 그리고 엄마 돈 없어. 욕심부리지 마. 정 사고 싶으면 엄마를 그냥 가져다 팔아.”


  미자의 언성이 높았다. 늘 그랬다. 전혀 그럴 일이 아닌데도 미자는 진현이 무슨 말을 하면 화부터 냈다. 맏이로서 엄마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는 기대감 때문일까. 진현 역시 신발을 사 달라는 말을 꺼낼 때부터 엄마의 반응을 미리 예상하긴 했다.


 “엄마는 내가 목동 애들만큼 공부 잘 하기를 원하지? 반대로 엄마는 목동 아줌마들만큼 나한테 잘 해주고 그걸 바라는 거야? 엄마나 욕심부리지 마. 정말 이놈의 집구석 짜증 나 죽겠어.”


 유리 문에 달아둔 종이 쨍그랑하고 시끄럽게 울렸다. 진현이 문을 세게 열고 나간 탓이었다.


 “그거 하나 사 준다고 하지. 신발 얼마나 한다고. 언니는 참, 사람이 은근히 모질어.”


 “쟤 사춘기야. 무슨 말만 하면 저렇게 화를 낸다니까. 갖고 싶은 게 있어도 참을 줄 알아야지. 그것도 다 경제 교육이야. 그리고 진현이만 사주면 동생들도 사 달라고 줄줄이 조를 텐데, 나 도저히 감당 못 해. 종아리에 핏줄 터져 가면서 여기서 하루 종일 일해봐야 얼마나 번다고 십만 원이 넘는 신발을 턱턱 사 주니?”


 미자는 맏딸에게 못다 한 말을 엉뚱하게도 동생에게 쏟아냈다. 미도 역시 호락호락하진 않았다.


 “화는 언니가 먼저 내던데? 그리고 중학생이면 사춘기 올 만도 하지. 아, 맞다. 언니는 사춘기도 없었지? 옛날에도 학교, 집만 오고 가면서 공부만 열심히 했잖아. 그때나 지금이나 참 독한 사람이야.”


 “그러면 너는 평생이 사춘기니? 너야말로 독하게 좀 살아. 너, 내가 주는 돈은 잘 모으고 있어? 또 그 계집애들 만나서 밤새도록 화투치면서  술 먹고 다니는 거 아니지?”


 “또 잔소리 시작한다. 진현이 이야기가 왜 나한테 튀어. 내가 언니 자식이야?”


 미도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괜히 빗자루를 들고 매장을 쓸었다. 하지만 가게는 오전에 청소를 한 덕에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했다.


 “하긴, 생각해 보면 엄마랑 아버지도 너무 했지. 언니가 그렇게 공부를 잘했는데도 여자라고 대학도 안 보내주고. 공부도 못하는 오빠는 꾸역꾸역 목사 만들겠다고 신학 대학까지 보내주고. 오빠가 그렇게 빨리 하나님 만나러 갈 줄 알았으면 언니나 대학 보내줬으면 좋잖아. 언니는 대학만 나왔으면 뭘 해도 했을 사람인데. 서울 변두리 빵집에서 손이 부르트도록 밀가루나 주무르고 있을 인재가 아닌데, 인생이란 게 참 뭔지.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딱히 청소를 하지도 않으면서 미도는 빗자루를 놓지도 않은 채 혼잣말인지 뭔지 모를 말을 엿가락처럼 늘어놓았다.


 “지나간 일은 다 지나간 일이야. 나이 사십 넘어서 부모 탓해봐야 뭐 하겠니, 자식들이 중요하지. 지금 내가 이렇게 고생하는 것도 진현이, 진원이, 진오 다 좋은 대학 보내려고 그러는 거야. 쟤들은 나중에 어디 가서 나처럼 무시당하지 말라고. 누가 그러더라. 부모가 고생한 만큼 자식은 호강한다고. 지금은 날 원망할지 몰라도 나중에 다 크고 나면 알게 될 거야. 엄마가 어떤 마음으로 자기들을 키웠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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