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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평행선이었다

#7

 태평은 난생처음으로 하는 장사가 낯설었다. 손님이 들어와도 친절한 인사가 입에 붙지 않아 겸연쩍게 웃기만 했고, 가격을 물어봐도 바로바로 대답하지 못해 미자를 찾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는 빵집에 없어선 안 될 중요한 재원이었다. 주방에 돌아다니는 쥐를 잡기 위해 구석구석 끈끈이를 설치하고 꼬챙이를 이용해 사체를 처리한다든가, 식빵 슬라이서나 오븐 구석구석을 긴 팔로 청소하는 일은 미자와 미도가 할 수 없는 그의 고유 영역이었다.  


 토요일 반나절 근무가 끝나면 태평은 어김없이 빵집으로 향했다. 남편과 교대한 미자는 집으로 가서 일주일 간 밀린 집안일을 했다. 시어머니가 살림을 봐주고 있다곤 해도 이불 같은 큰 빨래나 화장실 청소는 여전히 미자의 몫이었다. 그렇게 집안일이 끝나면 낮잠을 잤다. 사십 대에 접어든 미자의 몸은 힘에 부칠수록 발효된 빵처럼 자꾸 여기저기 부풀어 올랐다. 


 진오는 토요일 하굣길이 설렜다. 친구들과의 축구나 비디오게임도 마다하고 수업이 끝나면 얼른 집으로 달려와 잠든 엄마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고는 괜히 등에 귀를 대고 누웠다. 엄마의 코 고는 소리와 숨 쉬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진오는 뱃속의 아기가 된 것만 같은 안정감을 느꼈다. 


 한참을 누워있어도 미자가 깰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진오는 할머니가 차려 준 점심을 먹고 빵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 한 중간에는 동네 놀이터가 있었는데, 한 번은 두어 살은 많아 보이는 동네 형이 지나가는 진오를 불러 세우고는 있는 돈을 다 내놓으라고 겁을 주었다. 진오는 시키는 대로 주머니에 있는 전 재산인 이백 원을 주섬주섬 꺼냈는데도, 속고만 살았는지 동네 형은 ‘뒤져서 나오면 백 원에 한 대’라는 클래식한 말을 남기고는 진오의 가방 안 필통까지 탈탈 털었다. 하지만 그렇게 털어대도 정말로 백 원도 더 나오지 않자, 그는 괜히 진오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는 유유히 사라졌다. 


 진오가 그 일을 털어놓자 미자는 동네가 후져서 그런 아이들이 활개를 친다며, 빨리 목동으로 이사 가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흥분했다. 반면 태평은 남자아이들은 그런 일도 당해봐야 강하게 크는 거라며 느긋했다. 부모의 반응 모두 아이에겐 딱히 도움이 된다거나, 위로가 되진 않았고 진오는 혼자 빵집을 갈 땐 놀이터를 경유하지 않고 빙 둘러 가는 것으로 나름대로의 해결책을 찾아냈다.


 일요일 오전은 태평과 진오의 시간이었다. 파란색과 빨간색 뚜껑의 하얀 플라스틱 물통 두어 개와 배드민턴 라켓을 차에 싣고는 뒷 산 약수터로 향했다. 약수터 줄은 사람이 아니라 물통이 섰다. 그래도 본인 차례가 되면 수도꼭지 옆에 서 있다 얼른 물을 담아야 회전이 원활했다.


 “수돗물은 못 마시는데 왜 약수터 물은 마실 수 있는 거야?”


 진오의 질문에 태평은 대답 대신 약수터 벽에 붙어 있는 정기 수질검사 표를 가리켰다. 검사 날짜는 6개월에 한 번씩 갱신되었지만, 유성 매직으로 크게 쓴 ‘적합’이란 결과는 도통 바뀌지 않았다. 


 휴일, 사람이 몰리는 약수터 초입에는 트럭 노점상도 많았다. 주로 옥수수나 과일 같이 누구나 쉽게 사갈 수 있는 신선식품을 팔았다. 


 “한 개에 천 원, 두 개에 이천 원.. 다섯 개에 오천 원.. 열 개에 만 원.” 


 노점상 확성기에서 울려 퍼지는 녹음 방송을 들으면서 부자는 한참을 낄낄거렸다. 여러 개 산다고 깎아주지 않을 거라면 한 개에 천 원만 녹음하면 될걸, 왜 아저씨는 힘들게 열 개에 만 원까지 녹음한 건지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가져온 20L 짜리 플라스틱 물통에 물을 모두 담으면 태평은 약수터 초입에 세워 둔 자동차까지 양손에 하나씩을 거뜬히 들고 옮겼다. 


 “아빠, 나는 언제쯤 물통 두 개를 혼자 들 수 있을까?”


 태평은 중학교 가기 전엔 가능하지 않겠냐고 답했다. 진오는 아빠를 따라가며 자기 몸집의 절반 정도 되는 물통 한 개를 낑낑대며 겨우 옮겼다. 


 부자 간의 일요일 약수터 나들이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진오가 정말로 물통 두 개를 너끈히 들 만한 힘이 생겼을 무렵에는 이미 제 친구들과 놀기 바빠 더이상 약수터를 따라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오는 시간이 지나서도 약수터의 풍경을 생각하면 베시시 웃음이 나왔다. 한 개에 천 원, 두 개에 이천 원.. 열 개를 채우기 전엔 끝도 없이 이어지는 노점상 확성기 소리, 무더운 여름날 파란색 약수터 주걱에 콸콸콸 쏟아지는 물을 받아 입에 조금만 닿게 입술을 오므리고 목에 넘기던 청량감, 그리고 물 통 두 개쯤은 양손에 하나씩 거뜬히 들던 젊은 날의 아빠. 약수터는 누나들은 알지 못하고 오로지 진오만이 아는 유년의 기억이었다. 





 “당신 혹시 돈에 손댔어?”


 11시가 훌쩍 넘어 호프집을 제외한 동네의 다른 가게는 모두 간판 불이 꺼진 시간. 가게를 정리하며 매출 전표를 정리하던 미자가 쓰레기를 버리고 들어오는 태평에게 물었다. 태평은 무슨 뚱딴지같은 질문이냐는 표정이었다.


 “피곤해 죽겠는데 무슨 소리야? 계산 잘못한 거 아니야?”


 만든 빵과 남은 빵의 차이만큼이 팔린 빵이고, 하루를 정리하는 시점에는 그에 해당하는 금액이 돈 통에 남아 있어야 했다. 물론 90년대 중반만 해도 현금 장사 위주에 케이크를 사면 크림빵 하나씩은 두루두루 서비스로 껴주었기 때문에 하루 1, 2만 원의 차이쯤은 미자도 그러려니 했지만, 하루 매출액이 이십만 원 내외인 업장에서 십만 원이 차이 나는 건 누가 봐도 이상했다. 게다가 최근에는 그런 일이 유독 잦았다. 


 “돈 통에 손댈 수 있는 사람이 우리 말고 처제 밖에 더 있어? 처제한테 한 번 물어봐.”


 태평의 말에 미자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다음 날, 미자는 눈을 뜨자마자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엄마, 새벽 기도 다녀오셨어요? 통화 가능하셔?”


 “응, 아침 댓바람부터 무슨 일이냐. 애들 밥은 챙겨줬고?”


 “애들은 아직 일어나지도 않았죠. 그건 그렇고.. 엄마, 혹시 요즘 미도가 또 돈 빌려 달라고 해요?”


 미자의 질문에 수화기 너머의 엄마는 한참이나 대답이 없었다. 답하기 곤란한 눈치였다.


 “아니.. 그 저.. 빵집이 잘 되는 거 보니까 미도가 부러웠나 봐.. 뭐라도 배워서 자기 가게를 열어야겠다고 그래서.. 기집애가 시집도 안 가서 기댈 서방도 없는데 불쌍하잖아..”


 “그 나이까지 돈 한 푼 없어서 다 늙은 엄마한테 손 벌리는 애한테 무슨 돈을 빌려줘요? 엄마도 장사해 봐서 알잖아, 그게 아무나 한다고 다 잘 되냐고요. 어디서 또 화투치고 다니는 거 아닌가 모르겠네. 아유, 내가 속이 터져서 정말 못 살겠어.”


 “얼마 안 빌려줬어. 나 돈도 없다, 이제. 너야 어려서부터 알아서 잘 하지만 미도는 워낙 애가 좀 모자라니까. 어미 된 마음으로 매정하게만 굴 수도 없고. 네가 이해해라 미자야, 응?”


 “그래서 얼마 빌려줬는데?”


 미자가 흥분을 가라앉히고 최대한 건조하게 물었다.


 “안 많아. 한 천만 원 정도야. 그리고 미도가 나중에 다 갚는다고 그랬어.”


 “천만 원? 아버지 사고 나셨을 때 받은 합의금을 홀랑 미도한테 줘요? 걔를 뭘 믿고 빌려줘요? 또 화투한다고 다 써버리면 어쩌려고. 엄마, 얼마 전부터 빵집에서 돈이 비어요. 미도가 어디서 또 분명히 사고 친 거야. 그리고 말 나온 김에 엄마는 한 번이라도 나 도와준 적 있어? 내가 대학 가고 싶다고 그렇게 빌었을 때 지금처럼 턱턱 돈 좀 내 놓지. 그땐  뭐 하다가 자꾸만 엉뚱한 사람들한테 돈을 빌려줘요.”


 전화를 끊고 미자는 평소보다 늦게 집을 나섰다. 걸어서 10분이면 되는 거리를 일부러 빙 둘러 갔다. 미자가 마침내 빵집에 도착했을 때 미도는 대걸레를 들고 가게를 청소하며 언니를 반갑게 맞았다.


 “언니가 웬일이야? 이렇게 늦고. 어쩐지 언니가 늦을 것 같아서 내가 먼저 나와서 좀 치우고 있었지. 나 잘했지, 언니?”


 미도는 좋은 일이 있는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하지만 미자는 동생의 기분을 맞춰 줄 생각이 없었고, 눈이 마주치자마자 거두절미하고 물었다.  


“엄마한테 돈 빌렸다며? 그거 어디다 쓸거야?”


“엄마가 말했어? 언니한테 괜히 말하지 말라니까 우리 엄마는 은근히 입이 싸. 나도 언제까지 언니네 가게에서 일할 수는 없을 거 아니야. 희숙 언니 이야기 들어보니까.. 아, 희숙 언니 알지? 우리 옆집에 살던. 하여간 그 언니가 이태원에서 외국인들 상대로 손톱에 매니큐어 발라주는 장사를 하는데, 그렇게 잘 된다고 나한테도 한 번 배워 보라 하더라고. 나도 그거 배워서 이 동네에 조그만 가게 하나 내보려는데 밑천이 없잖아. 장사는 밑천으로 하는 건데. 그래서 엄마한테 조금 도와 달라고 했어.”  


 “희숙이 아주 잘 알지. 너랑 맨날 화투치면서 새벽까지 술 마시는 년. 너는 걔가 하는 말을 믿니? 그리고 네가 빌려 간 돈이 어떤 돈인지 알아? 아버지 돌아가시면서 합의금으로 받은 돈이야. 너는 그 돈을 가져다 쓰고 싶니? 나이가 사십이나 처먹어서 엄마한테 마지막 남은 돈을 그렇게 홀랑 가져다 쓰고 싶냐고.”


 미자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소리쳤다. 손님이 드문 아침이었기에 망정이지, 누군가 빵을 사러 가게에 들어왔다가도 뒷걸음질 칠 만한 살벌함이었다. 미도 역시 언니에게 지지 않았다. 웃음기는 사라졌고, 덩달아 목소리는 커졌다. 


 “그 돈 가지고 있어봐야 엄마한테 무슨 소용이 있는데? 그리고 그 돈을 교회에서 가만둘 것 같아? 자식 먼저 앞세워서 불쌍하다는 이야기하면서 엄마 살살 빼 먹을 궁리만 하는 쓰레기들이 천지에 깔려있는데, 차라리 자식인 내가 가져가서 쓰는 게 낫지 않아? 그리고 입은 비뚤어져도 말은 제대로 하자. 빵집은 대단하고 매니큐어 바르는 건 천박해? 어차피 언니나 나나, 망한 집구석에서 대학이라고는 구경도 못해 본 주제들이 먹고살려고 별 지랄 다 하는 거잖아. 언니는 뭐가 그렇게 잘났는데?”


 “그래서 그거 한다고 돈에 손댔니?”


 미자가 차갑게 물었다. 불의의 일격에도 미도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아무리 장사가 잘 돼도 내 월급은 똑같더라. 언니가 주는 50만 원 가지고 월세 내고 친구들 만나면 남는 게 없어. 그래서 내가 기여한 만큼 좀 보충한 것뿐이야. 그리고 잔돈 없을 때는 오히려 내 돈 넣기도 했어. 그까짓 거 얼마나 한다고 그래.”


 “그까짓 거? 나랑 형부랑 번갈아면서 일요일 하루도 못 쉬고 한 달 내내 일해봐야 백만 원 남겨 가기가 쉽지 않아. 카운터만 보면서 오십만 원 가져가는 게 적은 건 줄 알아? 그런데 고마운 줄도 모르고 이제 도둑질까지 해?”


 “도둑질? 언니 말이 너무 심한거 아니야?”


 미도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평행선이었다. 자매는 오로지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기 위한 말을 한참 쏟아냈고, 말이 자꾸만 그다음 말을 만들어냈다. 미자는 동생을 빵집에 끌어들인 걸 후회했다. 오빠가 뺑소니에 그렇게 허무하게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동생을 어릴 때처럼 차갑게 대했을 텐데. 하나 남은 혈육에 대한 애틋함으로 일을 그르쳤단 생각에 마땅히 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며칠이 지났다. 미자는 미도에게 한 달 치 월급이 좀 넘는 돈을 건네며 이제 그만 출근했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 태평의 생각이었다. 미자는 미도에게 한 푼도 주고 싶지 않았지만, 태평은 사람을 내 보낼 때는 아무리 미워도 위로금은 쥐여 줘야 후환이 없는 법이라고 설득했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나는 처제가 언젠가 사고 칠 줄 알았어.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말이야, 개판으로 살던 놈이 갑자기 개과천선하는 법이 없거든. 그래도 더 큰 사고 치기 전에 들켜서 다행이지, 처제가 목돈이라도 들고 어디로 튀었으면 어쩔 뻔했어.” 


 부부는 아이들에게 이모가 외국에 취직했다고 둘러댔다. 진현은 믿지 않았고, 진원은 별 관심이 없었다. 막내만이 이모가 보고 싶다며 조금 징징댔지만 며칠이 지나자 이모를 까먹기라도 한 듯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손님들도 마찬가지였다. 늙수구레한 동네 총각 몇 명만이 미도가 어디 갔는지 물었을 뿐, 매출에는 별 영향이 없었다.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미도의 공백은, 당장은 티가 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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