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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이 사무관이 원래 밤에 활동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6

 정부세종청사. 길이만 3.5km에 이르는 수평의 거대한 회색 매스. 열린 청사를 표방하며 지상에서 옥상정원까지 한 번에 오르내리도록 설계되었지만 정작 보안을 이유로 안팎의 왕래가 막혀 있는, 행정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전형적 불일치를 보여주는 건물. 전체에서 복도가 사무실보다 차지하는 공간이 많은 보여주기식 공간 구성, 청사 각 동간의 연결은 지향하지만 도시와 건물의 연계는 무시하고 도로망과 필지를 제멋대로 드나드는 도시의 침입자. 그리고 그 안의 공무원.


 진오와 같은 과에서 일하는 허 주무관이 파티션을 두 번 두드렸다. 진오가 시선을 옮기자 그는 가벼운 손짓을 하며 조용히 말했다.


 “이 사무관님, 잠깐 커피 한 잔?”


 그들은 나란히 복도로 향했고, 뒷모습을 곽 과장이 힐끗 쳐다보았다. 남의 눈을 피할 곳이 없는 청사 내에서 담배를 피우지 않는 사람들이 그나마 이야기를 나눌 곳은 옥상정원뿐이었다. 기네스북에도 올라 있다는 세계 최대의 정원이었지만,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사무실 바로 근처의 엘리베이터가 닿는 그늘진 자리만 찾았다.  


 “이제 그만 과 옮기세요. 하실 만큼 하셨어.”


 허 주무관이 도입부 없이 대뜸 이야기를 꺼냈다.


 “곽 과장님이 옮기래요? 아니면 어디 좋은 자리가 있어요?”


 평소에 그가 곽 과장과 친한 걸 아는 터라 진오는 빈정이 상해 받아쳤다.


 “사무관님이 곽 과장님 밑에서 얻을 게 있어요? 어차피 그 양반 퇴직이 내후년인데. 나도 비고시라서 편하게 이야기하는 건데, 비고시들이 중앙부처 과장 달고 새파랗게 어린 고시 사무관들이랑 잘 지낼 것 같아요?”


 “제가 곽 과장님하고 싸울까 봐 그러세요? 저도 안 싸워요, 몇 년 찬데. 그동안 더한 과장들도 많이 만나봤어요. 예전에 누구였더라, 어떤 과장은 술 먹고 저한테 오징어 땅콩 던지고 막 그랬는데.”


 “솔직히 우리 과 같은 말과(末課)에서는 승진도 못해요. 이 사무관님도 정책과 같은 일과(一課) 가셔야지. 이 사무관님 기수도 이제 막 승진들 하시던데?”


 진오는 승진에 별 관심이 없다며 정색했지만, 마음속에선 승진한 동기와 그렇지 못한 동기를 구분했다. 승진한 놈들은 일에 미쳐 윗 사람들 빨아 잘나가는 영혼 없는 놈, 승진하지 못한 놈들은 능력이 없어 이미 성공하긴 그른 놈. 행정고시를 붙어 연수원을 수료하고 같은 부처에 배치받았을 때 출발선은 얼추 비슷해 보였는데, 막상 신호탄이 울리고 나니 뛰어가는 속도는 제각기 달랐다.


 “제가 20년 전에 9급으로 들어와서 지금까지 딱 3번 승진했거든요. 근데 공무원 생활하면서 좋았던 적이, 딱 그 3번이에요. 솔직히 공무원 일이란 게 자기 이름 석 자는 어디에도 없고, 그냥 기관이나 기관장 이름을 대신하는 건데 좋을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래도 승진할 때만큼은 오롯이 자기 이름 석 자 박고하는 거예요.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승진에 대해서 그렇게 쉽게 이야기하시면 이 동네에서 사람들하고 어울리기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셨으면 좋겠어요?”


 “정책과로 옮기시죠. 교통정리는 제가 알아서 할게요. 대신 정책과장님이랑 찐하게 저녁 한 번 드시죠.”


 진오는 정책과에 가면 지금보다 얼마나 바빠질지 짐작해 보았다. 그나마 전담하던 연이의 등원과 목욕도 장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연차가 쌓였는데 승진과 무관한 자리에서 지낼 수만도 없는 노릇이었다. 남들은 승진 자리로 가기 위해 인사과에 로비도 한다던데, 어쩌면 이게 기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알겠어요. 알겠는데, 왜 저한테 이런 제안을 하시는 거예요?”


 진오의 얼빠진 질문에도 허 주무관은 뜸을 들이며 최대한 성의껏 대답했다.  


 “조직에는 못난 사람도 있고 잘난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 차이가 본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는 훨씬 작아요. 그러니 윗 사람들은 잘난 사람이 제 목소리 내고, 못난 사람이 도태하는 것보다 모두가 조직 자체에 충성하면서 비슷하게 융화되길 원해요. 잘난 놈 설쳐봐야 어차피 못난 놈보다 2배 일하는 것도 아니고 못난 놈이 굼 띠어봐야 착하면 뭐, 써먹을 데는 많으니까. 아랫사람들은 그걸 모르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래서 저 같은 사람들이 나서서 조율을 좀 하는 거예요. 사무관님이 기계의 너트나 볼트라면 저는 윤활유 같은 역할이랄까. 게다가 사무관님하고 나하고는 아직 볼 날이 많이 남았으니까. 나중에 과장, 국장 달면 지금 일은 잊지 말고 이자 두둑이 쳐서 갚으세요.”  




 방이 여러 개 딸려 있는 참치집. 일찍 도착한 진오와 허 주무관은 방의 출입문을 등지고 앉았다. 그들은 음식을 주문할지 묻는 종업원을 물리고, 정 과장을 기다리며 멀뚱멀뚱 앉아 녹차가 섞인 물만 마셨다.  


 “늦어서 미안해. 서울 다녀오는데 오송역에 사람이 많아서. 세종도 사람이 갈수록 많아지는 것 같아. 여긴 한적해서 좋았는데 말이야.”


 정 과장이 방 문을 열고 들어왔다. 진오와 허 주무관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반사적으로 일어섰다. 정 과장은 앉으라며 좌중을 정리하고는 외투를 능숙하게 옷걸이에 걸고 가방을 정리했다. 이 집의 구조가 꽤나 익숙한 모양이었다.


 “이 사무관이 웬일로 술을 다 먹자고. 반가워서 허 주무관한테 바로 날 잡자고 했어. 고시 후배들이 술 먹자고 그러면 난 무조건이거든. 근데 이 사무관이 원래 밤에 활동하는 스타일은 아니잖아?”


 박쥐도 아니고, 원래 밤에 활동하는 사람은 도대체 누구일까 생각하느라 진오는 대답할 타이밍을 놓쳤다. 말의 공백이 생기자 허 주무관이 일단 음식을 시키자며 벨을 눌렀다. 참치 3인 세트에 주종은 당연히 소맥.


 공무원들은 어떤 안주에도 소맥을 먹었다. 값싸고 청량하게 취할 수 있는 대신, 다음날 숙취가 심했다. 안주도 없이 정 과장이 소맥을 말아 석 잔쯤 돌리자 벌건 참치가 나왔다. 서빙하는 여종업원은 여기가 뱃살, 여기가 등살, 여기가 지느러미라며 참치의 부위를 한참 설명했다. 그녀는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울 정도로 짙은 화장을 했고, 치마는 터무니없이 타이트했다. 게다가 셔츠 단추를 몇 개 푼 탓에 서빙을 하며 몸을 숙일 때마다 앞섶 사이로 윗가슴이 슬쩍슬쩍 보였다.


 “이모, 한 잔 드시고 잘 부탁드립니다.”


 정 과장은 소주 잔에 만원 한 장을 동그랗게 말아 능숙하게 내밀었다. 그녀는 익숙하게 소주를 받아 마시고는 나중에 뱃살 조금 더 드릴 테니 드시다 부르라며 돌아섰다. 나가는 그녀의 뒷모습을 정 과장과 허 주무관이 한참을 쳐다보았고, 진오는 괜히 민망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정 과장님. 이 사무관이 일도 잘하고요, 성격도 좋고요. 곽 과장님 밑에서 고생도 많이 하지만, 그렇다고 생색내는 거 한 번도 못 봤습니다. 어차피 정책과 총괄 자리에 있는 유 서기관이 이번에 승진해서 곧 소속 기관으로 나가지 않습니까? 그 자리에 이 사무관이 가면 잘 할 것 같은데요.”


 자리를 만든 목적을 허 주무관이 노골적으로 설명하자 정 과장이 씨익 웃었다.


 “이 사무관, 곽 과장한테 일은 잘 배웠어?”


 “예, 뭐..”


 “하긴 비고시 과장한테 뭘 배웠겠어. 그 양반 퇴직하고 나갈 자리만 알아보고 있을 텐데. 고시 과장한테 일 잘 배우고 승진하는 게 낫지.”


 “그럼요. 저도 비고시지만 고시 과장님들이 훨씬 좋습니다. 일도 깔끔하게 하시고, 사람 힘들게 안 하고요. 특히 정 과장님은 우리 부 에이스 아니십니까. 5년 만에 사무관에서 서기관 승진한 전설의 주인공이란 소문이 아직도 파다합니다.”


 허 주무관의 티 나는 아부에도 정 과장의 얼굴엔 웃음이 가득했다. 진오도 여기까지 왔는데 할 말은 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용기를 냈다.


 “곽 과장님한테는 배울 만큼 배운 것 같습니다. 이제 정 과장님 밑에서 정말 일 열심히 해보고 싶습니다. 총괄 자리에 한 번 생각해 주십시오!”


 “이야~ 이 사무관이 이런 면이 있었어? 내가 그동안 잘 몰랐네.”


 “과장님, 사무관님. 분위기도 좋은데 러브샷 한 번 하시죠, 러브샷! 러브샷!”


 허 주무관이 옆에서 손뼉을 치며 바람을 넣었고 테이블을 가운데 두고 진오와 정 과장은 서로의 팔을 꼬은 채로 잔에 남은 술을 모두 털어 넣었다. 술병이 제법 쌓였는데도 진오는 긴장한 탓인지 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정 과장은 진오가 마음에 들었는지 본격적으로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나이는 몇 살인지,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 결혼은 했는지, 아이는 있는지 등을 샅샅이 물었다.


 “고향이 어디야?”


 “서울입니다.”


 “그니까, 서울 어디.”


 “목동입니다.”


 “이 사무관님은 목동 출신에 서울대 나와서 행시를 붙었네요. 완전 엘리트네요, 엘리트. 참, 정 과장님도 서울대 나오셨잖아요. 이거 직속 후밴데요.”


 허 주무관의 호들갑과는 별개로 정 과장의 호구조사는 멈추지 않았다.


 “와이프가 거기 사람이라 내가 목동을 좀 알지. 몇 단지 살았어?”


 “아.. 목동 아파트는 아니고요. 2단지 신목중학교 앞 쪽에 보시면..”


 진오는 곤란한 표정으로 불필요한 설명을 길게 늘어놓았다. 거짓말을 하다 들킨 사람처럼 얼굴이 화끈댔다.

 “하긴, 목동도 넓잖아?”


 정 과장의 호구조사가 드디어 끝나려는 모양이었다. 허 주무관이 ‘목동 넓죠, 넓습니다’라며 건배를 유도했다. 또다시 모두 원 샷.


 “야, 이 사무관. 내가 20년 일해보니까 자리 찾아다니는 놈들은 생각보다 승진도 잘 못해. 그냥 궂은일, 시키는 일 마다않고 열심히 하다 보면 자기 기회가 다 온다. 공무원은 말이야, 소명의식이 있어야 해, 소명의식이.”


 정 과장은 취기가 꽤 올라온 것 같았다. 테이블 위의 음식과 술이 다하자, 허 주무관은 그에게 2차로 좋은 데를 가자고 은근히 유도했다. 진오는 화장실을 가는 척하며 핸드폰을 확인했다. 민정이 오늘도 늦냐며 보낸 메시지가 있었지만 답은 하지 않았다. 지금 자신은 목줄에 감긴 애완견 마냥 귀가시간을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는 위치가 아니었다.


 다행히 정 과장은 허 주무관의 이야기에 시큰둥했다. 과장이 되고 나선 직원들이 아무리 2차를 가자고 해도 절대 가지 않는다는 말도 덧붙였다. 그는 결제를 하라며 지갑에서 카드를 뽑아 허 주무관에게 주었다. 진오는 카운터로 향하는 허 주무관의 뒤를 쫓았다. 로비를 하는 입장이니 자신이 살 요량이었다. 카운터 앞에서 허 주무관은 정 과장의 카드를 슬며시 집어넣고는 곽 과장의 이름을 말했다. 여종업원은 카운터의 장부에서 그 이름을 확인했고, 허 주무관은 가짜 영수증을 하나 요구했다.


 “어떻게 된 거예요?”


 “곽 과장이 작년에 우리 과에서 남은 업추비를 연말에 여기에다 미리 긁어놓고, 지만 와서 처먹더라고요. 어디다 그렇게 접대를 하고 다니는지 모르겠지만. 근데 과 업추비를 가지고 혼자만 쳐 먹으면 되나, 다들 같이 나눠 먹어야지. 그 양반은 상도덕이 없어, 상도덕이.”


 허 주무관이 영수증을 기다리며 혀를 끌끌 찼다. 곽 과장의 비밀을 어떻게 알았냐는 진오의 질문에, 그는 자신이 직접 카드를 긁고 갔는데 모를 리가 있겠냐며 빙긋 웃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닌 것 같은데요. 오늘은 그냥 제가 살게요. 인당 3만 원도 넘어서 업추비로 먹는 게 찝찝하기도 하고요.”


 “비공식적으로 오늘 자리는 정 과장님이 쏜 거고, 대외적으로는 곽 과장이 책임지는 겁니다. 어차피 감사실에 걸리면 골로 가는 거예요. 근데 오늘 우리가 여기 와서 먹은 걸 누가 알겠어요? 걸려도 애초에 긁으라고 지시한 곽 과장이 책임져야지. 정 과장님은 자기가 샀다고 생각하니 기분 좋고, 저는 참치를 공짜로 먹었으니 더 좋고. 사무관님은 참치를 공짜로 먹으면서 로비까지 했으니 따따블로 좋고. 그냥 저기 나가서 정 과장님한테 잘 먹었다고, 감사하다고 인사나 하세요. 괜히 여기서 나랑 실랑이하지 마시고. 이런 건 제가 다 알아서 합니다. 걱정 마세요, 걱정 마.”


 허 주무관은 가짜 영수증을 받아 카드와 함께 정 과장에게 돌려주었다. 진오는 허 주무관을 쫓아가느라 미처 챙기지 못한 양복 상의와 가방을 챙기러 다시 방으로 돌아갔다. 아까 서빙할 때 보았던 여종업원이 테이블을 막 정리하고 있었다. 진오가 옷가지를 챙기고는 가볍게 목례를 하고 나오려는데 그녀가 말을 걸었다.


 “젊은 오빠는 내가 보니까 너무 순진하다. 그렇게 해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겠어?”


 평소라면 모르는 사람과 길게 말을 섞지 않았겠지만, 진오는 이상하게도 그녀의 말에 화가 났다.


 “예, 밥벌이하느라고 힘들어 죽겠습니다. 이거 해라, 저거 하지 말아라 충고하는 놈들이 왜 이렇게 많은지. 나보다 직급도 낮은 새끼가 건방지게 내가 낸다니까 내지도 못하게 하고, 시발.”


 술자리 내내 오르지 않던 취기가 한 번에 올라왔는지, 진오의 얼굴이 벌게졌다.


 “중심이 없어서 그래, 중심이. 우리 젊은 오빠가 중간은 비어있고 겉에만 멀쩡해 보여. 그러니까 남이 누르면 그 모양대로 눌리는 거야. 그런데 중간을 채울 수 없으면 그냥 겉에서 봐도 흐물거리게 망가진 척하는 것도 방법이야. 무슨 말인지 모르겠지? 배운 양반들은 내 말을 잘 이해 못 하더라고.”


 그녀는 뭐가 재밌는지 킥킥대며 웃었고, 진오는 욕을 해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남기고 돌아섰다. 그의 등 뒤로 그녀가 소리쳤다.


 “다음에도 우리 가게 와요. 다음엔 더 잘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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