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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그때 대학을 갔어야 해, 내가 왜 마음이 약해져서는

 #1

“올해도 경제가 어려울 거야. 아직도 갈 길이 먼데 벌써 마이카 시대니 뭐니 사람들이 겉멋만 들어서는, 쯧쯧. 칠팔십 년대처럼 아껴 써야 잘 사는데 말이야. 그 대단하다는 일본도 흥청망청 쓰다가 정신 못 차리는 걸 보고 사람들이 왜 배우는 게 없는지. 미국이라고 우릴 언제까지 도와주겠어?”


 1994년, 새해가 밝았다. 세밑부터 태평은 밥상머리 앞에서 누가 묻지도 않은 경제 전망을 늘어놓았다. 미자는 별 대꾸 없이 신혼 때 산 보온밥통에서 밥을 펐다. 4개의 밥그릇에 꾹꾹 눌러 담아 태평과 세 아이 앞에 차례로 놓았다.

  

 “남기지 말고 다 먹어라. 밥 남기면 농부들한테 죄짓는 거야.” 


 미자는 세 아이에게 단단히 일렀지만 진현은 밥그릇을 받자마자 말없이 일어나 밥을 절반이나 덜어냈다. 미자는 진현을 흘겨보며 거실로 나갔다.


 “엄마는 안 먹어?”


 남은 밥을 가지고 식탁의 자기 자리로 돌아온 진현이 미자에게 물었다. 


 “속이 안 좋아서 이따 먹을게. 너네들 먼저 먹어.”


 태평은 식탁의 한가운데를 차지한 구운 고등어를 젓가락으로 절반 살살 갈라 등뼈만 발라내고는 잔가시가 있나 요리조리 한참을 살폈다. 이제 먹어도 되냐는 진오의 물음에, 태평은 대답 대신 먹기 좋은 크기로 살을 발라 어린 아들의 밥그릇에 놓았다. 그러자 진현과 진원도 차례로 젓가락을 들었다.


 “올해는 우리 가족에게 중요한 해야. 진현이는 중학교 가니까 공부 열심히 해야 해. 중학교 공부는 국민학교와는 또 달라요. 진오도 유치원 다니면서 응석 부릴 나이는 끝났어. 국민학교 가면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고. 무엇보다 남자들은 처음부터 서로 누가 센지 반드시 겨뤄보니까 절대 밀리면 안 된다. 아, 그리고 진원이는 이제 4학년인가?”


 진원은 아빠의 질문을 듣고도 입 안의 고등어와 흰 밥을 야무지게 씹느라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런 동생을 대신해 진현이 대답했다.


 “3학년.”


 “그래, 3학년도 중요한 시기지. 진원이는 이제 진오랑 같이 학교 다녀야 하니까, 동생 잘 챙기고.” 진원은 대답 대신 고개만 살짝 끄덕였다.  


 태평은 진짜로 할 말이 이제야 생각난듯 미자에게 주방으로 오라는 손짓을 했다. 미자는 짐짓 못 본 척 했다. 


 “한 가지 더, 할 이야기가 있다. 다음 달부터 엄마가 빵집을 시작할 거야. 엄마는 아침부터 일하느라 바쁠 거고 아빠도 회사 갔다가 퇴근해서 엄마 도와야 하니까 이제 너희들도 되도록 자기 앞가림은 스스로 해. 그리고 당분간은 할머니와 같이 살게 될 거야.”


 지금껏 아무 말도 없이 밥만 먹던 진원이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할머니는 어느 방에서 지내는데요?”


 거실의 낡은 가죽 소파에 앉아 잠자코 말을 듣던 미자가 대신 답했다.


 “진현이랑 진원이는 큰방 같이 쓰고, 진오가 할머니랑 작은방 같이 써. 조만간 작은방에서 진원이 책상 빼서 진현이 방으로 넣을 거야. 진오는 이제 국민학교 들어가니까 원래 혼자 자야 하는데, 방을 같이 쓰니까 당분간은 할머니랑 같이 자.”


 엄마의 단호함에 누구도 감히 토를 달지 못했지만, 진현은 얼마 남지 않은 밥을 입에 얼른 욱여넣고 일어나는 것으로 약간의 항의를 대신했다. 새해가 밝았고, 빵집이라는 새로운 시작을 앞뒀는데도 어째서인지 집안 분위기는 물먹은 빨랫감처럼 무거웠다. 한참을 밥을 우물거리며 씹던 진오가 물었다.


 “우리 집에 외할머니 말고 또 할머니가 있어?”


 “진오 아기 때 의정부로 간 할머니 기억 안 나? 하긴 그때 진오는 너무 어려서. 진현이랑 진원이는 기억나지?”


 미자는 자기 방으로 들어 간 진현이 들으라는 듯 큰 소리로 물었다. 하지만 방 안의 진현과 식탁 앞의 진원 모두 별 대답이 없었다.


 “기집애들, 말을 안 해.” 


 미자가 소파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가족들이 모두 먹고 일어난 식탁의 한 귀퉁이에서 그녀는 식은 밥과 남은 반찬으로 식사를 시작했다. 태평이 아이들을 위해 야무지게 발라준 고등어는 껍질만 남았지만, 다행히 미자는 고등어 살보다 바삭한 껍질을 더 좋아했다. 


 식사를 마친 태평은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뉴스에선 북핵 위기로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지만, 바로 다음 꼭지에선 수출 호조와 세계적 저금리 등으로 올해도 경제가 큰 폭으로 성장할 거라 낙관했다. 그는 이리저리 바뀌는 뉴스의 논조에 따라 북한을 욕했다가 미국을 욕했고, 재벌을 욕했다가 노조를 욕했다. 옆에서 티브이를 같이 보던 진오는 궁금한 점이 많았지만 시사만평에 심취한 아빠에게 질문을 던질 용기가 없어 홀로 식사를 하는 엄마의 맞은편에 슬그머니 앉았다.


 “엄마, 빵 만드는 그건 딴 거야?” 


 지난봄, 미자는 이웃집 아줌마에게 얻은 두꺼운 기본서로 독학하여 제과제빵기능사 필기시험을 한 번에 합격했다. 문제는 바로 이어지는 실기였다. 밀가루와 베이킹파우더로 치대는 빵 반죽부터 우유와 버터로 생크림을 만드는 법까지 글로만 봐서는 도저히 이해가 어려웠다. 


 실습 준비를 위해 필요한 각종 재료비를 계산해 보니 집에서 연습하는 것보다 되려 학원이 쌌다. 태평은 생활비도 빠듯한데 무슨 학원이냐며 반대했지만 당신 월급으로 세 아이 대학 등록금까지 책임질 수 있냐는 아내의 현실론에 결국 굴복했다. 오래전부터 미자는 막내가 학교를 가는 시점부턴 무슨 일이라도 할 작정이었다. 

 그렇게 미자는 여름부터 가을까지, 진현과 진원이 학교를 간 사이 진오를 데리고 영등포에 있는 제빵학원을 다녔다. 사십 평생, 태어나 처음 다녀보는 학원이었다. 학원은 친절했다. 아이를 데려왔다고 타박을 할 법도 한데 선생님과 수강생들은 진오를 그저 귀여워했다. 선생님은 엄마를 기다리는 진오를 그냥 지나치지 않고 짤 주머니에서 입으로 생크림을 바로 짜줬고, 수강생들은 연습을 하고 남은 빵을 아낌없이 맛보게 해 주었다. 커다란 오븐에서 갓 구운 빵의 향기와 보드라운 촉감은 슈퍼에서 사 먹는 싸구려 설탕 범벅 ‘스위트골든볼’과는 차원이 달랐다.


 “그럼, 당연히 땄지. 엄마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어. 진오도 엄마 아들이니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지?”


 “응, 근데 엄마가 빵집 하면 내가 좋아하는 빵 다 만들어줄 거야? 케이크도 다 먹어도 돼?”


 미자가 ‘그렇다’고 하자 진오는 목청 높여 ‘엄마 최고!’를 외쳤다. 태평도 모자간의 대화가 듣기 좋았는지 슬그머니 티브이 소리를 조금 줄였다. 그때였다. 진현이 방문을 벌컥 열고는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엄마가 빵집을 하든 말든 상관없는데 나는 할머니랑은 같이 살기 싫어. 할머니가 망치로 옛날 우리 집에 있던 장독대 다 깨버리고 도망간 거 아직도 기억나는데, 그런 사람이랑 어떻게 같이 살아? 엄마가 바빠서 그러는 거면 가양동 외할머니 모셔 오면 되는 거잖아!”


 언니의 말에 소극적 지지라도 하는 모양인지 진현의 뒤엔 진원도 서있었다. 하지만 맏이의 일격에도 미자는 여유로웠다. 식탁 위의 그릇과 식사의 잔해를 느긋하게 정리하며 응수했다.


 “외할머니는 교회 다니느라 바쁘셔. 권사님이 얼마나 바쁜지 아니. 그리고 할머니한테 그렇게 말하는 거 아니야. 하여간 아빠랑 엄마랑 다 정리해서 이야기한 거니까 시끄러워, 토 달지 마. 그리고 너는 집안일이나 좀 도우면서 그런 이야기를 해. 이제 중학생인데 밥만 먹고 쏙 일어나는 거 봐. 말 나온 김에 너, 설거지나 해.”


 진현은 엄마의 말을 반박할 논리가 없었다. 방문을 벌컥 열고 나왔을 때의 패기는 어디로 갔는지 슬금슬금 방으로 동생과 후퇴했다. 집안에는 미자가 덜그럭대며 설거지하는 소리가 가득했다. 소란에도 잠자코 있던 태평은 다시 티브이 소리를 키웠다. 뉴스의 순서는 날씨를 알리는 마지막 꼭지였다. 내일은 세밑답게 한파가 몰아칠 예정이었고, 곳에 따라 눈이 온다는 소식도 있었다.  




 진오의 국민학교 입학식 날. 머리에 무스를 발라 오른쪽으로 치우치게 단정히 넘기고 흰 셔츠에 나비넥타이를 맸다. 넥타이가 목에 졸리는지 진오는 연신 목을 만졌다. 국민학교는 집에서 아이의 걸음으로 20분쯤. 중간에 횡단보도를 3개나 건너야 해서 이제 막 학교에 입학하는 아이가 홀로 다니기는 쉽지 않은 길이었지만, 미자는 진오에게 ‘오늘이 엄마랑 가는 마지막 날이다’ 생각하고 길을 정확하게 숙지하라고 몇 번이나 일렀다.

 

 미자는 동생을 챙겨 등교하라고 입학 전부터 일렀지만 진원은 칼같이 거절했다. 정해진 시간보다 1시간이나 먼저 등교하는 습관이 있어 매일 아침 겨우 지각을 면하는 언니와도 같이 다니지 않던 진원이, 동생을 데리고 다닐 리가 없었다. 미자는 ‘도대체 학교에 그렇게 일찍 가서 혼자 무엇을 하냐’고 몇 번이나 물었지만, 진원은 빙그레 웃기만 할 뿐 별 대답이 없었다.


 “골목길에선 차가 갑자기 튀어나오니까 늘 신경 바짝 쓰고, 자꾸 땅 밑만 보지 말고 고개 들어 앞을 쳐다봐. 횡단보도에서는 찻길에 달라붙어서 기다리지 말고 노란선 뒤에서 기다리고. 진오야, 엄마 말 듣고 있어?”


 입학식은 평범했다. 선생님들이 모두 나서 아이들을 줄 맞춰 세우는데 열성을 다했지만 이제 갓 유치원을 졸업한 아이들은 잠깐의 공백도 참지 못하고 몸을 배배 꼬았다. 시간이 되자 교장선생님이 연단에 올라 훈화 말씀을 했다. 마이크 성능이 좋지 않은지 그가 입을 뗄 데마다 우웅- 울리는 소리가 귀를 괴롭혔다. 훈화가 끝나고 종이에 적힌 자신의 반으로 찾아가 담임 선생님과, 오늘 처음 본 친구들끼리 인사를 했다. 부모님들은 교실 뒷줄에서 자신의 아이가 남의 아이보다 키가 큰지 작은지를 따져 보며 아이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연신 손을 흔들었다. 미자는 벌써 세 번째 경험하는 국민학교 입학식이 지루했다. 새벽부터 셔츠를 다려 처음 교복을 입혀 보낸 진현이의 중학교 입학식이 잘 끝났는지가 사실 더 궁금했다. 


 입학식이 끝나고 미자와 진오는 지난달 문을 연 빵집으로 향했다. 이름은 ‘부부 빵집’. 포장 비닐부터 쇼윈도까지 불필요한 돈을 들이고 싶지 않아 권리금을 주고 들어온 가게의 상호를 그대로 이어받았다. 그래도 녹이 슬어 칙칙한 간판은 바꾸기로 했다. 같은 건물의 간판 집 사장님의 조언에 따라 새 간판엔 멀리서도 잘 보이게 빨간 바탕에 흰 글씨로 ‘부부 빵집’을 썼다.     


 “언니, 잘 다녀 왔어? 진오야, 이모가 입학 선물 샀어.”


 미도가 특유의 높은 목소리로 부산을 떨며 카운터 아래에서 선물을 꺼냈다. 진오는 신이 나서 금색과 은색이 섞인 포장지를 벗겼다. 펼쳐진 포장지 안에는 공책 몇 권과 연필 한 다스가 들어있었다. 


 “이제 국민학생이니까 공부 열심히 해. 엄마처럼.”


 선물이 장난감일 줄 알았던 진오는 내심 실망했지만, 역시 이모밖에 없다며 애써 밝게 웃었다.


 “오전에 손님 많았나 보네. 식빵이 얼마 없어. 오후에 기본 빵 좀 만들어야 하나?”


 미자가 듬성듬성하게 빵이 남은 진열장을 바라보며 말했다. 


 “언니 빵이 맛있나 봐. 이렇게만 장사되면 몇 년 안에 아파트도 사겠어.” 


 왕복 2차선 도로가 교차하는 조그만 사거리 모퉁이는 마을버스를 타고 내리는 사람들로 붐볐기 때문에 부동산에서 ‘부부 빵집’ 자리가 매물로 나왔다고 했을 때 미자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사거리의 유동량을 관찰했고 주변에 프랜차이즈 빵집은 없는지도 일일이 발품을 팔며 확인한 결과였다.


 미자의 장사는 처음이 아니었다. 학창 시절 내내 성적이 좋아 여고에서 일이 등을 다퉜지만, 70년대가 으레 그렇듯 그녀의 집에는 딸을 대학에 보낼 진취적인 부모와 학자금 모두 없었기에, 미자는 갓 스물이 되자마자 엄마와 남대문시장에서 신발과 액세서리를 떼다 팔며 대학을 가기 위한 학자금을 마련했다. 성실함과 싹싹함, 물건을 보는 안목이 겹쳐 미자는 3년 만에 4년제 대학 등록금은 넉넉히 낼 정도로 꽤나 큰돈을 벌었다. 물론, 허무하게도 그 즈음 태평을 만나면서 그 돈을 고스란히 결혼자금으로 쓰게 되었지만. 


 “그때 대학을 갔어야 해. 내가 왜 마음이 약해져서는.”


 미자의 후회는 늘 같은 시간, 같은 사람을 향해 있었고 진오는 엄마의 한탄을 들을 때마다 대학이 뭔지는 몰라도 덩달아 자기도 꼭 가고 싶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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