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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Jul 02. 2024

점심의 정치학

  아침의 부산함이 가라앉은 사무실, 시계는 막 11시를 향하고 있었다. 이따금씩 울리는 사무실의 전화 소리를 제외하면 조용하고 한가한 오전이었다. 일의 속도를 올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언제 어디에서 예상치 못한 일들이 터져 나올지 몰랐기 때문에, 여유가 있을 땐 즐기는 게 나았다. 


  다가오는 점심시간에는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며 구내식당의 식단표를 탐독하고 있는데, 모니터 좌측 하단에서 주황색의 영롱한 불빛이 반짝였다. 점심이나 같이 먹자는 선배의 메시지였다. 귀찮은 마음 반, 불러줘서 고마운 마음이 반이어서 점심 제안을 수락할까 말까 고민하던 찰나, 의자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나는 반사적으로 재빨리 대화창부터 닫았다.


   “오늘 혹시 점심 약속 있으셔? 과장님은 없다는데..”


  굳이 고개를 돌아보지 않아도 옆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있었다. 비염이 섞여 약간 높은 톤의 목소리, 누구에게나 반만 존대하는 어법은 서무의 트레이드마크였기 때문이다. 


  그녀는 기능직에서 일반직으로 전환한 고참 주사였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항상 이 시간만 되면 과장의 점심 약속 여부를 재빠르게 확인하고는, 과원들 사이를 유영하듯 돌아다니며 과장의 점심 메이트를 구했다. 시대가 바뀌었으니 그럴 필요 없다고 과장이 좋게 이야기를 했다는데도, 20세기에 입직한 자신만이 할 수 있는 마지막 남은 업무라고 생각했는지 끝까지 과장의 점심 비서 역할을 고집했다. 


  대부분의 직원들은 그녀의 점심 강권을 가볍게 물리쳤지만, 짬밥이 크게 밀리는 젊은 고시 사무관인 나는 그녀의 말을 완전히 무시할 수 없었다. 군대로 치면 소위가 주임원사 말을 계급으로 누르기 어려운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녀의 목소리엔 희망이 묻어 있었다. 더군다나 점심 약속이 있는 직원은 거의 매일 약속이 있고 없는 직원은 매번 없는데, 나는 전형적인 후자에 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날만은 그녀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지 않았다. 이틀을 연달아 과장과 함께 서울 출장을 다녀온 터라,  3일 연속으로 과장과 불편하게 점심시간을 보내면 정말로 속이 부대낄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만은 선배의 부름에 냉큼 달려가는 예쁜 후배가 되리라 마음먹고는 최대한 상냥한 목소리로 그녀에게 답했다.    


  “오늘은 제가 오랜만에 약속이 있어서요. 식사 맛있게 하세요.”  


  부처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공직사회에서 사무관급 이하 일반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누구와 무엇을 먹을지 결정할 자유는 비교적 넓게 보장되는 편이다. 약속을 잡아 따로 먹든 구내식당에서 대충 해결 하든 특별히 눈치를 주는 사람은 없다. 

 

  상급자와 점심을 먹는 걸 당연시하는 문화도 대체로 사라졌다. 서울에 청사가 있던 10여 년 전에는 과원들이 돌아가며 상사를 모시는 문화도 있었다고 하지만, 세종시 이전 이후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국과장 이상 보직자들은 서울 출장이 많아, 점심을 세종에서 먹는 날이 훨씬 드물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세종에서 점심을 먹는 날에는, 간부들도 특별히 따로 챙길 필요가 있는 직원들과 약속을 잡아 식사하는 걸 선호한다. 물론, 과장이 약속이 없는 날에는 눈치껏 과 내에서 점심 조를 차출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지만 인간적인 차원에 불과한 문화일 뿐, 강제성은 없다. 일부 지자체에서 아직도 남아 있다고 하는 ‘모시는 날’(하급자가 돈을 모아 상급자 식사를 대접하는 날)과 같은 적폐에 가까운 인습은 적어도 중앙부처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동료들과 따로 약속을 잡아 점심을 함께 먹는 시간은 대단히 유용하다. 평소에는 잘 알지 못하던 다른 과의 직원들과 안면도 트고, 이런저런 어려움도 공유하면서 부처 내에서 일어난 오만가지 정보를 교환한다. 물론, 자신이 모시는 상사에 대한 욕이 절반 이상이지만 말이다. 






  싱그러운 햇살 아래 청사 주변의 호수 공원을 거닐며 삼삼오오 커피를 든 채 누군가의 농담에 모두가 까르르 웃는 모습은 회사에서 몇 안 되는 보기 좋은 풍경이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아름다운 풍경과는 달리 직원들이 점심시간에 임하는 속내는 사실 대단히 복잡하다. 


  다면 평가(多面評價). 인사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해 상급자, 동료, 하급자가 개인을 평가하는 인사 평가 제도의 하나로 몇 년 전부터 공직사회에 도입되었다. 기존에는 상급자에 의한 평가로만 승진자를 선발하였다면, 도입 이후에는 상급자에 의한 근무평정 점수와 상하급자, 동료들의 다면 평가 점수를 합쳐 승진자를 선발한다.


  다면 평가는 윗사람의 평가만큼 동료나 하급자의 평가 역시 승진의 중요한 요소임을 인정하는 제도다. 상급자에게만 잘 보이는 사람보다는, 상하 간의 직급에 걸쳐 모두에게 두루두루 인정받는 사람이 더 나은 인재라는 판단이 깔려있다. 승진에 있어 다면 평가의 영향력은 결코 작지 않다. 문체부의 경우에는 다면 평가가 승진 점수의 30%를 차지한다. 근무평정에 의한 점수 차이가 근소할 경우에는 다면 평가 점수가 승진의 판도를 좌우할 정도로 중요하다. 


  다면 평가를 잘 받기 위해서는 자신의 ‘인지도’를 높여야 한다. 공직사회에서 ‘인지도가 높다’는 2가지 의미를 갖는데, 하나는 친한 동료가 많다는 의미고 또 다른 하나는 나를 모르는 직원이 작다는 뜻이다. 승진을 앞두고 단기간 내에 친한 동료를 사귀는 일은 어렵기 때문에, 직원들은 다면 평가에서 선전하기 위해 보통 후자의 인지도를 높이는데 집중한다. 이를 위한 가장 좋은 기회는 점심시간이다. 점심시간은 저녁 자리와는 달리 한 시간 남짓으로 시간이 정해져 있어 부담이 덜하고, 그리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면평가 제도가 도입된 이후 점심시간은 단순한 친목 도모를 위한 여가 시간이 아닌, 경쟁의 시간이자 자기 PR의 최전선이 되었다.


  다면 평가의 취지는 좋다. 위에만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위아래 모두에게 잘하는 사람이 조직에서 인정받아야 한다는 의미니까 말이다. 하지만 다면 평가제도는 공직사회의 많은 제도가 그렇듯이 좋은 취지와는 달리 실제로는 몇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먼저 평가자의 범위 문제이다. 현행 제도는 기본적으로 모든 직원이 특정한 직원을 평가할 수 있다. 특별한 요건이 없어도 평가자와 피평가자 사이가 성립되기 때문에, 지나가다 복도에서 서로 목례만 나눈 직원 사이에서도 서로가 서로를 평가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평가자가 피평가자를 잘 모르는 경우 자신의 판단에 의해 평가에서 제외할 수는 있지만, 단순히 개인의 선의에 기대는 방식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평가의 공정성 문제를 야기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의 성과와 인성을 직원들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는가? 


  최악의 경우에는 조직적으로 세력이 개입하여 승진이 필요한 특정 직원의 평가를 밀어준다든가, 혹은 승진을 경쟁하는 다른 직원의 점수를 악의적으로 낮게 줄 수도 있다. 학연, 지연, 입직 경로까지 다양한 형태로 공직 사회에 존재하는 사적인 네트워크가 선후배의 승진을 위해 조직적으로 개입하여 평가를 왜곡해도 막을 길이 없다.


  근무하는 부서의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인지도 차이가 평가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비판의 한 축이다. 자연스럽게 많은 직원들과 접촉하는 인사, 재정 등 지원 부서에서 근무하면 부처의 전 직원과 자연스럽게 일로 연결 되는 반면, 일반 사업 부서에서 근무하면 다른 과의 직원들과 업무상 별다른 접촉이 없기 때문에 인지도를 쌓기가 어렵다. 


  물론, 인지도가 높다고 해서 무조건 다면 평가가 좋다는 보장은 없다. 안 좋은 방향으로 유명한 직원은 종종 다면 평가에서 테러를 당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는 극히 일부의 예이다. 비슷비슷한 삶의 궤적을 가진 공무원들 사이에서 성과와 인성의 차이가 사실 얼마나 나겠는가. 고만고만한 사람들 사이에서의 다면 평가는 결국 인지도 싸움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항간에는 전형적인 지원 부서인 인사과 출신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승진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해 다면 평가의 전면적인 도입을 주도한 것 아니냐는 낭설도 퍼져 있었다. 물론 많은 소문이 그렇듯 정확한 사실 관계는 파악할 수 없지만 말이다.


  다면 평가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자, 같은 부서에 근무했던 경험이 있는 직원 간에만 서로를 평가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개편하자는 대안 등이 논의된 적이 있다. 하지만 평가자의 모수가 작아지면 오히려 포섭이 수월하기 때문에, 다면 평가를 잘 받기 위한 로비가 지금보다 횡행할 것이라는 문제가 역으로 제기되었다. 


  사실 다면 평가를 승진 점수로 바로 활용하는 한, 평가자의 범위를 어떻게 정할지에 대한 사안은 유불리에 따라 끝없이 제기될 문제였다. 평가자의 범위가 넓으면 넓어서 문제고, 좁으면 좁아서 문제니까 말이다. 그리하여 대안을 논의하는 시도는 금세 흐지부지되었다. 정답이 없는 문제 앞에서 공직사회는 언제나처럼 현상 유지를 택했다.


  근무평정을 잘 받고도 다면 평가에서 밀려 승진에서 아쉽게 미끄러지는 고참 직원들 사이에서는, 점심과 저녁을 막론하고 중형차 한 대 값만 쓰면 다음 승진 심사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는다는 경험칙도 퍼져 있었다. 특히 타부처에서 전입을 왔거나 9급 출신이어서 조직 내의 기반이 약한 직원들의 경우, 사람들과 밥을 먹는 일이 사실상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다면 평가 때문에 조직 내에서 약자일수록 돈과 시간을 더 들여야 한다는 슬픈 결론이었다.


  점심시간, 청사 근처에서 삼삼오오 짝을 지어 까르르 웃는 공무원들의 모습 뒤에는 이처럼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다. 수많은 동료들을 상대로 감정 노동을 해야 하는 상황보다, 차라리 상사의 점심을 무조건 챙기던 과거가 나았다고 말하는 공무원들도 많다.  


  나의 경우, 다면 평가 점수는 항상 평균보다 밑이었다. 원체 주변에 싹싹한 사교적인 성격도 아닌 데다가, 지원 부서는커녕 사업 부서의 말과 위주로 전전한 보잘것없는 커리어 때문에 인지도도 약했다. 


  결국 좋지 못한 다면 평가 결과는 서기관 승진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고참 사무관이 되어 근무평정 점수가 승진권에 속했지만, 다면 평가를 합친 점수가 낮아 연속으로 고배를 마셨다. 이쯤 되자, 주변의 동료들은 여러 가지 ‘활동’을 열심히 하라는 조언을 했다. 적극적으로 약속을 만들어 점심을 사고, 시간이 되는대로 이런저런 술자리에도 최대한 끼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어색하게 마주 앉아 잘 알지도 못하는 남의 뒷담화나 하며 즐거운 척 연기를 하기는 싫었다. ‘승진이 다가오니 너도 별 수 없구나?’라는 은근한 경멸의 눈빛도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즈음에는 일부러라도 구내식당에서 혼밥을 했다. 혼밥을 하다가 괜히 아는 사람을 마주치면 어색할 테니, 문체부에서 가장 가까운 교육부 구내식당이 아니라 10분 정도 떨어진 산업통상자원부 구내식당을 애용했다. 타 부처 사람들이야 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익명성 안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수 있었고, 복도로 모든 건물이 연결된 세종청사의 특이한 구조 덕에 춥고 더운 날씨에도 쾌적하게 산책이 가능해서 좋았다. 결국 이런 청개구리 심보 때문에, 나는 비슷한 순번의 사무관들이 전부 승진하고 난 이후에야 겨우 후배들과 함께 승진할 수 있었다. 






  정말로 보고 싶은 동료와 긴히 할 이야기가 있을 때는 특별히 약속을 잡아 같이 점심을 먹고 싶었다. 때때로 동료들과 함께 이루어 낸 쾌거와 성과가 있는 날에는 저녁에 거하게 술잔도 부딪히고 싶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는 매일매일의 일상에서 누군가에게 잘 보이기 위해, 혹은 언제일지 모를 승진을 위한 다면 평가에 대비한다는 명목으로 식사 시간을 관습적으로 할애하고 싶진 않았다. 어쨌든 점심시간은 근로시간에서도 제외되는 법정 휴게시간 아닌가.


  내가 너무 극단적인 개인주의자 아니냐고? 아니, 전혀 그렇지 않다. 영국의 인류학자 로빈 던바(Robin Dunbar)가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인간의 뇌가 감당할 수 있는 집단의 규모는 150명 정도이다. 가족 4~5명, 친한 친구 15명, 친구 45~50명, 집단으로 150명까지가 한 사람이 진정으로 사회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최대 숫자라는 의미이다. 한 사람이 감당할 수 있는 인간관계의 최대 수인 150은 그래서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고 불린다.


  문체부에 소속된 공무원의 숫자는 본부만 따져도 약 700명, 소속기관까지 합치면 약 2,000명에 이른다. 한 사람이 동료로서 감당할 수 있는 숫자를 아득히 넘어선다는 의미이다. ‘던바의 수’에 따르면 매일 다른 사람과 점심 약속을 습관적으로 잡는 사람은 알게 모르게 자신의 뇌에 엄청난 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극단적인 개인주의자가 아니라 뇌가 감당할 최대 숫자에 반응하는 평균적인 인간일 뿐이다. 


  ‘던바의 수’는 던바가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내게, 아니 다면 평가에 괴로워하는 수많은 공무원들에게 건네는 소박한 위로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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