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장은 일주일에 잘해야 1번 정도 세종청사로 출근했다. 그는 일주일의 대부분을 서울에서 있었다. 대단한 일정 때문은 아니었다. 장관에게 대면으로 보고 하기 위해 서울사무소에 한없이 죽치고 있거나, 국회를 방문하는 식이었다. 자택이 서울에 있다는 점도 그가 세종에 잘 내려오지 않는 이유 중 하나였다. 각 과에서는 국장의 편안한 동선을 위해 눈치껏 금요일 오후와 같은 애매한 시간대에 전문가 간담회 등의 일정을 만들어냈다. 그 덕분에 국장은 일정을 마치자마자 서울에서 편안하게 바로 귀가할 수 있었고, 대부분 세종에 사는 실무자들은 핸드폰을 붙잡고 금요일 오후 매진 행렬인 서울역->오송역 KTX 티켓팅을 열이나게 시도해야 했다.
국장이 세종 청사에 내려오는 날은 과장 이하 실무자들 입장에선 일주일에 한 번밖에 없는 대면 보고 기회였기 때문에, 각 과의 보고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다. 관료제의 일원답게 다들 일주일 간 얼마나 열심히 일했는지 상사에게 티를 내고 싶어 했고, 국장 역시 아랫사람들의 경쟁을 즐겼다.
‘요즘 아무개 사무관은 일이 없나 봐?’
국장이 세종에 내려왔는데 사무관이 얼굴도 비추지 않으면 뒤에서 듣기 딱 좋은 말이었다. 그래서 사무관들은 굳이 급한 사안이 아니더라도 대면으로 보고할 거리를 만들어냈다. 피차 서로 간에 바쁘니 메일이나 카톡으로 편하게 보고하라는 말은, 지나고 보면 보통 빈말이었다.
월요일이었다. 일주일 만에 서울에서 내려온 국장은 오송역에서 14:48분 기차를 타고 다시 서울로 올라갈 예정이라고 했다. 그는 월요일 오전부터 장관 주재, 차관 주재 회의 등에 불려 다니느라 사무실을 비웠기 때문에 점심 식사 이후 겨우 한 시간 정도가 사무실 자리를 지키는 시간이었다.
그래서일까. 점심시간이 채 끝나기 전인데도 국장의 방 앞에는 보고를 위한 줄이 길게 늘어섰다. 다행히 그날은 나도 점심을 일찍 먹고 서두른 덕에 차례는 넉넉해 보였다. 가끔 직급이 높은 과장들이 새치기 보고를 하는 걸 감안하더라도 말이다. 드디어 긴 기다림 끝에 내 차례가 되었다. 똑똑 노크를 하고 국장의 방으로 들어가려는데 어디서 나타났는지 다급한 목소리의 후배가 내 앞을 막아섰다.
“선배님, 죄송한데 제가 먼저 보고 할게요. 국장님이 바로 찾으셔서요.”.
후배의 보고가 끝나기를 기다리며, 컬러 프린터로 정갈하게 인쇄한 보고서를 엄지와 검지로 괜히 만지작거렸다. 야속하게도 후배는 한참이 지나서야 나왔고, 그게 시간이 허락한 마지막 보고였다. 나와 눈이 마주친 국장의 비서는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지 않냐는 뉘앙스로 어깨를 한 번 가볍게 으쓱했다. 신데렐라처럼 국장은 정해진 시간이 끝나면 떠나는 사람이라는 걸 다 알지 않느냐는 뉘앙스였다.
후배는 미안하다고 거듭 사과했다. 그런데 사실 그에게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국장이 열일 제치고 먼저 찾았다는데 말이다. 오히려 몇 기수 선배인데도 여태껏 ‘말과’(末課)를 전전하는 내 죄가 더 크다면 컸다.
후배는 일도 잘했고 성격도 싹싹해서 누구나 좋아했다. 그래서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도 매번 ‘일과’(一課)로 만 옮겨 다녔다. 가는 곳마다 일이 힘들다는 그의 투정은 사실은 자랑의 다른 표현이었다. 그에 반해 나는 업무와 성격 모두 어딘가 삐딱한 부분이 있어 입사 이래 ‘말과’만 전전했다.
‘일과’와 ‘말과’? 이해를 돕기 위해 공무원 조직에 대한 이야기를 잠깐 하자. 1개의 중앙부처엔 보통 몇 개의 실(室)이 있고, 다시 그 안엔 몇 개의 국(局)이 있다. 그리고 1개의 국은 3~4개의 과(課)로 이루어지는데, 그중에서 조직도 순으로 가장 먼저 오는 과를 ‘일과’, 가장 마지막에 오는 과를 ‘말과’라고 한다.
일과는 인사, 조직, 예산 등 국의 업무를 총괄하며 국장을 근거리에서 보좌하기에 보통 승진도 잘되고 성과급도 많이 받는 반면, 말과에 가까워질수록 대체로 승진고과도 잘 받지 못하고 성과급도 낮게 받는다. 하다못해 을지훈련과 같이 잡다한 일은 말과에서 많이 차출하고, 해외출장과 같이 좋은 일은 일과를 더 챙겨주는 식이다.
소속된 과를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에 대해 공직사회 내에선 대체로 별 문제의식이 없다. 보통 일과의 경우 자료의 취합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이 길어 더 고생한다는 이미지가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공무원 개인은 소속된 과와 보직을 기준으로 성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에 맞춰 자신의 근무 행태를 최적화한다. 일과보다 말과에서 열심히 일하는 건 손해라고 생각하며, 말과에서의 업무는 일과로 넘어가기 위한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식이다.
하지만 공무원들의 생각이 어떻든, 현장에서 말과가 맡고 있는 업무는 일과의 업무만큼 중요하다. 체육 분야를 예로 들어 보자. 체육국 내에서 일과인 체육정책과에서 담당하는 국가대표 엘리트 체육을 진흥하는 업무가, 말과인 스포츠산업과에서 담당하는 프로스포츠를 활성화하는 일보다 반드시 더 중요한가? 상식적으로 당연히 그렇지 않다. 각종 스포츠의 근간이 되는 국가대표 엘리트 체육도 진흥해야 하지만, 1년에 천만 명 이상이 관람하는 프로스포츠의 발전이 그보다 중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는 해당 분야의 조직을 비교해 봐도 알 수 있다. 국가대표 엘리트 체육을 담당하는 대한체육회가 하는 일과, KBO(한국야구위원회), K리그(한국프로축구연맹) 등이 하는 일 사이에 우열이나 중요성을 어떻게 따지겠는가. 국가대표 육성과 프로스포츠 활성화 모두 한 나라의 체육 정책에 있어 아주 중요한 일임은 자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육국 내에선 대한체육회를 담당하는 자리와 프로스포츠를 담당하는 자리의 승진 고과는 현격히 차이가 난다. 전자는 보통 최상위의 승진 고과를 받는 반면, 후자의 승진 고과는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르다.
중앙 부처의 정책은 해당 분야에 종사하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더군다나 조직도 상의 순서는 과가 발생한 순서를 따르기 때문에 말과는 최근의 시대 흐름과 가장 밀접한 산업적 측면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오히려 미래 먹거리는 일과가 아닌 말과가 맡고 있는 분야에서 발견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고작 행정 조직도 상의 순서에 따라 담당자의 열의가 달라진다면 민간의 입장에선 이만큼 부당한 일이 또 어디 있는가. 정부가 민간의 특정 분야를 잘 되게 하기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법령 등 규제와 룰을 제때 현행화하거나 합리화하지 않으면 그 분야의 발전은 요원하다.
중앙부처 전체적으로 시야를 넓히면 상황은 더 암울하다. 실제로 사업을 수행하는 사업 부서보다 장관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기획조정실이나 인사과 등이 여러모로 우대받는 것이다. 그러니까 공직사회에서 사람을 평가하는 시스템의 핵심은 ‘높은 사람을 얼마나 근거리에서 보좌하는가’이기 때문에, 업무에 열의 있는 우수한 인재들은 실제 사업이나 정책을 수행하는 부서가 아니라 부처 전체의 업무 등을 종합하고 취합하는 기획조정실 등으로 몰린다.
하지만 정책이 잘 작동하기 위해서는 일선의 사업 부서가 유능하게 움직여야 한다. 마치 전쟁이 나면 실제로 전투를 수행하는 건 전방의 전투부대지, 후방의 국직부대나 본부의 군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취합 부서의 우수한 인재들이 자료의 요점을 장관에게 잘 전달한다고 한들, 솔직히 국민의 삶에는 별 변화가 없다.
자리에서의 성과를 묻지 않고 어떤 보직에 있느냐로 승진 고과를 평가하는 시스템으로는 공무원을 안정적인 수비수로 키워낼 수 있어도 날카로운 공격수로 길러 낼 수는 없다. ‘무엇을 얼마나 잘했느냐’를 묻지 않는 평가 시스템은, 새로운 생각과 창의적인 정책으로 우리 사회의 문제를 해결할 유인을 전혀 제공하지 않는다. 공무원은 그저 연공서열에 따라 제공되는 보직경로에 따라 ‘존버’만 잘하면 되기 때문이다. 초임 때는 사업 부서에서 일하다가 중고참이 되면 일과로 자리를 옮기고, 더 시간이 지나면 기획조정실 등에서 부처의 전체 업무를 총괄하는 보직을 받는 식이다. 어차피 해당 보직에서 어떤 성과를 보였는지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다. 그저 보직경로를 충실히 밟기만 해도 승진은 알아서 뒤따라온다.
이러한 구조 아래에서 공무원은 문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두지 않는다. 순환보직에 따라 한자리에서 머무는 기간은 길어봐야 2년이니, 그저 문제 해결을 최대한 미루거나 해결하는 척만 하다가 보직을 옮긴다. 사무관만 그런 것이 아니다. 과장이 되고, 국장이 되면 이러한 사이클은 더 짧게 반복된다. 국과장이 한 보직에 머무는 시간은 일 년 남짓에 불과하다.
드물기는 했지만, 유사한 문제의식을 드러냈던 장차관도 있었다. 특히 관료 출신일수록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직원들 앞에서 대놓고 ‘특정 과에서 승진을 독점하면 말과에서는 누가 열심히 일할 것인가? 승진이 편중되지 않게 실국장들이 신경 쓰라’고 질책하는 장차관도 있었다.
하지만 그가 국장 일 때를 돌이켜보면, 딱히 일선의 사업 부서나 말과를 챙겨 주는 사람은 아니었다. 본인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며 일이 많아 보이는 직원들 위주로 승진을 밀어주는 전략이 평판이나 조직 관리 차원에서 확실한 우월 전략이기 때문이다. 손해가 우려되어 자신도 하지 못했던 일을 후배들에게 질책해 봐야 무엇이 변하겠는가?
사실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선 공직사회 전체적으로 지금과는 다른 인사 평가체계를 마련할 필요가 크다. 이는 성과를 기반으로 한 ‘직무급제 도입’ 등 다양한 주제를 심도 있게 고민해 봐야 하는 사안이다. 하지만 ‘공무원의 업무가 성과로 측정되어 비교할 수 있는가?’라는 난제 앞에 모두가 입을 다문다. 그러다 보니 공직사회에서는 그저 윗사람들을 가깝게 보좌하는 괴로움을 견디며 ‘존버’를 잘하는 사람이 후하게 평가되는 현재의 시스템이 유지된다.
⌜딜버트⌟는 아이큐가 170인 천재 샐러리맨 딜버트가 무능한 상사와 무의미한 업무 속에서 얼간이 취급을 당하는 만화로, 스콧 애덤스가 1989년부터 연재하여 전 세계적으로 큰 사랑을 받았다. 만화에서 변화와 혁신이 두려운 회사는, 업무의 개선을 위해 끝없이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딜버트를 귀찮은 바보라고 생각한다.
‘딜버트의 법칙’은 여기에서 나왔다. 가장 무능력한 직원이 간부로 승진할 가능성이 역설적으로 가장 높다는 법칙이다. 너무 똑똑한 사람은 무슨 일을 저지를지 불안하기 때문에 승진시키기 어려운 반면, 아무리 바보라도 부하에게 호통을 치는 상사의 역할은 감당할 수 있으므로 먼저 승진시킨다는 인사 원리이다. ‘존버’로 대표되는 공직사회의 인사원칙은 ‘딜버트의 법칙’과 과연 얼마나 다를까? 어떤 성과를 냈는지를 묻지 않고 단순히 어떤 보직을 맡아 몇 년을 버텼는 지로 인사고과를 나누는 공직사회의 평가 구조 아래에서, 딜버트가 얼마나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를 생각해 보면 답은 이미 나와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