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의 기세가 올라가는 7월의 무더운 날씨였다. 에너지 절약 지침 때문에 청사의 냉방은 미지근했고 사무실에 앉아만 있어도 목에 닿은 셔츠 깃이 축축해졌다. 충분한 냉방 대신 2명에 하나 꼴로 제공한 선풍기 바람에선 연신 더운 바람만 밀려왔다. 도저히 일이 잡히는 날씨가 아니었고, 머리엔 얼마 남지 않은 여름휴가 계획만 가득했다. 공부를 잘해야 더운 날 시원한 곳에서 일한다는 어렸을 적 엄마의 말이 떠오를 땐, 그저 쓴웃음만 나왔다.
일의 효율의 오르지 않아 그저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데, 한국프로축구연맹(이하 ‘K리그’)에서 전화가 왔다. K리그가 이번 시즌 올스타전을 대신하여 세계적인 축구 선수 호날두가 포함된 유벤투스와 방한 친선경기를 갖게 되었으니 문체부 장관을 주요 인사로 경기에 모시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통상적인 초청이었다. 야구, 축구, 농구, 배구, 골프 등 각 프로 리그의 연맹에서는 매년 올스타전이나 시상식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주무부처인 문체부에 초청장을 보냈다. 하지만 종목 간의 형평성이나 장차관의 바쁜 일정 등을 고려했을 때, 올스타전이나 시상식과 같은 연례적인 행사에 장관이 참석하는 것은 무리였다. 또한 아무리 호날두가 포함된 유벤투스가 방한하는 빅 매치고, 국민적인 관심사가 높다고 해도 정부 측 인사의 특별한 역할이 없는 행사에 장관을 참석시킬 수는 없었다. 더군다나 경기 일정을 살펴보니 7월 마지막 주. 황금 같은 여름휴가 시즌에 일을 벌이고 싶은 마음은 요만큼도 없었다.
일반적인 경우라면 사무관 선에서 상황을 종료할 사이즈의 일이었다. 하지만 전 국민적 관심이 있는 경기에 장관을 초청한 만큼, 정식 서면으로 윗선에 보고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얼마 전 실무자의 자체 판단으로 정식 보고 없이 장관을 초청한 행사의 참석을 거절했다가, 추후에 이를 알게 된 장관실의 호된 질책이 시달렸다는 풍문도 마음 한구석에서 신경 쓰였다.
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 K리그에서 보내온 친선경기 관련 자료를 훑어보는데 예상과는 조금 다른 점이 보였다. 통상적인 경우라면 K리그나 중계방송사, 혹은 리그를 스폰서 하는 대기업에서 친선경기를 주최/주관하는데, 이번 경기의 경우에는 ‘더 페스타’라는 소규모 에이전시가 경기를 주최했다. 이런 경기엔 대규모 자금이 동반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다소 의외라고 생각했지만 민간의 계약 하나하나에 정부가 관여할 이유도, 권한도 없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넘겼다. 다만 장관이 참석하지 말아야 할 논거를 하나라도 더 찾고 있던 입장에서는 반가운 일이었다. K리그가 직접 주관하지도 않는 경기에 주무 부처 수장이 참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다행히 보고는 잘 끝났다. 장관이 참석하지 않는 방향으로 원활하게 마무리된 것이다. K리그에서는 아쉬워하며 초청 티켓이라도 보내주고 싶어 했지만, 나는 완강히 거절했다. 최대 수십만 원에 이르는 고가의 티켓인 점도 마음에 걸렸고, 무엇보다 티켓을 받는 순간 경기를 공짜로 보고 싶은 동료 직원들에게 시달릴게 뻔했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7월 내내 메신저와 사무실 전화로 혹시 호날두 친선경기 초청 티켓을 받을 수 없냐는 직원들의 문의가 줄을 이뤘고, 나는 세상이 어느 때인 데 아직도 공짜로 그런 걸 구하냐며 면박을 줬다.
친선경기는 엉망이었다. 교통 상황이 지체되어 경기 시작 시간이 한 시간가량 지체되었고, 불법 스포츠 도박 광고가 에이보드에 걸려 티브이 생중계에 노출되는 사고가 있었으며, 무조건 출전하기로 계약이 되어 있다던 호날두가 끝내 경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이른바 ‘호날두 노쇼’ 사건이다.
금요일 퇴근 후 홀가분한 마음으로 거실 소파에 드러누운 채 경기를 보기 시작했던 나는 중계가 끝날 때 즈음엔 자세를 고쳐 앉을 수밖에 없었다. 내 앞에 다가온 거대한 불운을 직감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끝나자마자 인터넷은 사람들의 분노로 들끓었다. 대중의 분노만큼 정치권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다수의 의원실에서 정부로 자료 요구가 빗발쳤는데, 공교롭게도 가장 먼저 요구한 자료는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의 경기 참석 여부 및 정부의 초청 티켓 수령 여부였다. 국민적인 이슈인 만큼 정부를 어떻게든 엮어 자극적인 보도자료를 내거나, 최소한 언론에 흘리기 위한 전형적인 그물망식 자료 요구였다. K리그의 호의를 거절하길망정이었지, 혹여 한 장의 초청 티켓이라도 받았더라면 그 당시 분위기를 비춰 볼 때 국민적 질타와 ⌜김영란법⌟에 의한 처벌에서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K리그와 ‘더 페스타’ 간의 계약서 등은 기본이고, ‘지난 10년간 K리그 친선경기에 관한 자료 일체’와 같이 광범위하고 무성의한 자료 요구가 줄을 이었다. 요구하는 시한도 매우 촉박했기 때문에 의원실의 자료 요구를 대응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일들은 쳐다도 보지 못할 지경이었다.
사실, ‘호날두 노쇼’와 관련한 민간의 계약서나 K리그 친선경기 등에 관한 자료를 정부에서 보유하고 있을 리는 만무하다. 그럼에도 국회가 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이유는 관련 법령의 구조 때문이다. ⌜국회법⌟, ⌜국회증언감정법⌟ 등에 따르면 국회는 민간이 아닌 정부에 광범위한 자료 제출 요구 권한을 갖고 있고, 정부는 ⌜민법⌟ 등에 따른 감독 권한을 통해 민간 사단법인(이 경우 ‘K리그’)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가장 괴로운 사람은 정부의 실무자이다. 주말과 밤낮없이 의원실의 자료 요구와 연락에 대응해야 하고, 때로는 상스럽고 무례한 보좌진들의 언행도 국회가 행정부 견제와 감독 기능을 수행하는 권한이 있다는 이유로 감수해야 한다. 더군다나 국회가 행정부에 ‘갑질’을 하는 만큼, 정부가 민간을 상대로 ‘갑질’을 하기는 어렵다. 객관적으로 보더라도 국회의 자료 요구는 지나치고 당연히 민간에서는 이를 모두 받아들이지 않기 때문에, 정부는 국회와 민간 사이에서 샌드백 역할을 자처할 수밖에 없다.
사건이 있은 지 1주일이 채 지나지 않아 대충의 윤곽이 드러났다. 계약서상에는 호날두의 45분 이상 출전 의무가 명시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유벤투스와 호날두는 일방적으로 해당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이다. ‘더 페스타’와 유벤투스, ‘더 페스타’와 K리그 간에 계약서에서 호날두가 45분 미만으로 출전할 때를 대비한 위약금 조항도 확인되었다.
민간에서는 발 빠르게 움직였다. 경기를 관람한 사람들 중 일부는 경기의 주최/주관사인 ‘더 페스타’를 상대로 티켓 가격의 일부를 돌려 달라며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논란의 크기에 비해 실체적인 진실은 비교적 단순한 사건이었다. 실패한 스포츠 이벤트였고, 그 대가는 서로 간에 계약으로 명시한 위약금으로 책임지면 될 일이었다. 상처받은 팬들의 마음이 안타깝기는 했으나, 소송에 의한 구제 이외에 대한민국 정부가 공적으로 개입하여 누군가에게 감독 권한을 행사하거나 혹은 법령과 제도 자체를 개선할 시사점이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
이쯤 되자 많은 의원실이 흥미를 잃어버렸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지 않은 의원실도 있었다. 여러 정황상 K리그도 ‘더 페스타’와 함께 실질적인 친선경기 주관사로 보이기 때문에 공동 책임을 져야 하고, 정부는 K리그의 책임을 확인하기 위한 감사를 당장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계약서상 주최/주관사인 ‘더 페스타’와, 경기 참가팀인 ‘K리그’는 명백하게 구분되는 주체였기 때문에 무리한 주장이었다. 아직도 그 해 여름을 생각하면 왜 정부에서 K리그를 비호하냐며, 수시로 전화를 해 다짜고짜 호통을 쳐대던 비서관의 목소리가 떠오른다. 그때마다 나는 죄지은 사람처럼 상대방이 제풀에 지칠 때까지 조용히 듣기만 했다. 이성적인 대화를 도저히 기대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행히 국정감사 기간이 시작되고, 다음 총선을 위한 후보 공천 시즌이 시작되면서 상황은 종료되었다.
스포츠 팬들의 분노가 집중되는 사건을 맡아본 건 ‘호날두 노쇼’ 사건이 처음은 아니었다. 일 년 전, 선동렬 감독의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선수 선발에 관한 논란을 대응한 경험이 있었다. 논란은 선수 선발 때부터 불거졌다. 일부 야구팬들은, 선동렬 감독이 실력이 아닌 병역 혜택 등을 고려하여 선수 선발을 했다고 비판했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비난 여론이 가라앉기는커녕 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었다. 다수의 의원실에서는 정부와 한국야구위원회(이하 ‘KBO’)를 대상으로 선수 선발에 관한 모든 자료 등과 함께 선동렬 감독의 연봉과 판공비 등 논란과는 무관한 자료 일체를 요구했다. 그리고 국회는 기어코 선동렬 감독을 국정감사장에 증인으로 세웠다.
국정감사 당일, 여론은 반전되었다. 국회의원들이 한국 야구의 레전드인 선동렬 감독을 상대로 그의 전문성과 인격을 무시하는 발언을 일삼자 야구팬들은 총구를 돌려 국회의원들에게 포화를 퍼부었다.
정부의 실무자 입장에서 ‘선동렬 감독 논란’은 ‘호날두 노쇼’ 사건보다 대응하기 훨씬 까다로운 사건이었다. ‘호날두 노쇼’ 사건은 대중적인 비난의 화살이 호날두와 유벤투스 등 정부의 감독 범위에서 벗어난 대상에 집중되어 있어 국회나 언론에서도 정부와 그 사건을 연결하기 쉽지 않았다. 반면, ‘선동렬 감독 논란’은 KBO와 국가대표 감독에게 비난이 집중되었기 때문에, 그들을 감독하는 상급 기관인 정부가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받기 쉬운 상황이었다. 국정감사를 계기로 여론이 급 반전되었기 망정이지, 만약 여론이 계속 좋지 않았다면 정부가 KBO를 상대로 왜 특정 선수를 뽑았고 어떤 이유로 특정 선수를 뽑지 않았는지에 대해 감사라도 벌려야 할 판이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선동렬 감독 논란을 바라보면, 이게 과연 정부가 개입할 일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 최고의 선수 출신 감독이 코치진과 상의하여 국가대표팀 선수를 선발하였다. 이는 회의록과 회의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실이다. 대표팀 선수 선발 결과가 일부 야구팬들의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감독이 누군가에게 부정한 청탁을 받고 선수를 선발했다는 논리로 바로 연결될 수 있을까? 게다가 부정한 청탁을 받고 선수를 선발했다는 논리를 주장하려면, 그렇게 주장하는 측에서 그에 합당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 하지만 고작 제시하는 증거가 선수 선발 회의자료에 있는 오타 몇 개라면 과연 부정 청탁이 합당한 의문이라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사안과 무관한 감독의 판공비, 현장이 아닌 티브이로 리그 경기를 보며 선수를 체크한다는 지엽적인 사실로 감독을 공격하는 것은 어떻게든 여론을 등에 업고 당사자를 흠집 내기 위한 쇼의 한 장면에 불과했다. 그런데 단순히 여론이 안 좋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그러한 쇼에 장단을 맞춰야 하는가?
선동렬 감독 논란에서 보듯 여론은 언제나 급변한다. 대중과 스포츠 팬들은 그럴 수 있다. 대중의 변덕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고, 스포츠 팬들의 스타와 스포츠에 대한 애증은 굉장히 복잡해서 논리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여론의 폭발성을 무분별하게 공적 영역으로 끌고 들어와 자신의 이름을 언론에 알리려는 포퓰리즘에 능한 정치인들이다. 그들은 그저 기사에 한 줄이라도 나올 만한 이슈를 가져와 선악구도의 문제로 치환하는데 능하다. 정치인은 정의의 사도, 정부는 문제 해결을 포기한 무능한 감독자로 프레이밍 하기 위해 국정감사장 등에서 장관이나 증인을 향해 소리를 질러 댄다. 국민이 국회에 막강한 권한을 부여한 취지와 목적을 완전히 망각한 채 말이다. 그리고 여론이 잠잠해지면 언제 그랬냐는 듯 하이에나처럼 또 다른 이슈를 찾아 헤맨다.
국회의 무분별한 자료 요구도 문제가 많다. ⌜국회법⌟ 등을 보면 개별 국회의원실은 자료 요구의 주체가 아니며, 상임위원회가 의결을 통해 자료 요구의 주체가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현실에선 개별 국회의원실이 위원회의 의결 없이 자료를 요청하고, 행정부는 ‘을’의 입장에서 임의 제출 형태로 이를 따른다. 위원회의 의결이라는 최소한의 국회 내부 절차도 생략하다 보니 목적과 의도를 밝히지 않고 스스럼없이 행정부의 공문서 목록 일체 등을 요구한다.
요구하는 자료의 분량도 상식에서 벗어난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10년 치 자료를 모두 인쇄하여 의원실로 제출하라는 식이다. 이는 명백히 정부의 실무자를 길들이기 위한 일종의 갑질 수단이다. 이 모든 과정은 행정력 낭비로 이어진다. 의도와 목적을 모른 채 국회에 제출하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자료, 그리고 그를 보고하기 위해 만들어야 하는 내부 보고자료 등은 끝이 없다.
더 큰 문제는 이 모든 일이 정책 목표나 공익과는 전혀 관련 없는 헛짓거리라는 점이다. ‘호날두 노쇼’ 사건과 ‘선동렬 감독 논란’에 정부가 대응하는 일이 대체 스포츠산업의 발전이나 국가대표 경기력 향상과 어떤 관계가 있단 말인가? 국회가 나서지 않아도 어차피 ‘호날두 노쇼’ 사건은 법원의 판단이, ‘선동렬 감독 논란’은 팬들의 민심이 가라앉을 시간이 해결해 줄 문제였다.
국회나 여론에 대응하는 중앙정부 내부의 리더십도 문제가 많다. 장관 등 고위공직자는 국회와 여론이 무엇이라고 하든 해당 이슈가 정부가 관여할 문제인지 아닌지 정확하게 판단해야 하고,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고 판단한다면 언론이나 국회에 그러한 의사를 단호하게 밝힐 의무와 권한이 있다. 고위공직자들이 가르마를 제대로 타 줘야, 행정력의 낭비를 줄이고 조직이 정책 목표에 걸맞은 진짜 일을 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호날두 노쇼’ 사건과 ‘선동열 감독 논란’에서 경험한 바에 의하면, 고위 공직자 그 누구도 문제를 단호하게 끊어주지 않았다. 그저 국회의원의 공세에 ‘살펴보겠다’는 식의 원론적인 답변만 반복했고, 내부적으로도 어떤 방향으로 대응하라는 아무런 지시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실무자는 바텀업(bottom-up) 식으로 언론에서 제기하는 모든 쟁점에 대한 자료만 무한히 생산하며, 국회와 언론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렸다. 관료로서 일에서만큼은 누가 뭐라 해도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의 가오는 술자리에서나 통했을 뿐, 정작 절실히 필요할 때는 공허했다.
중앙부처 사무관은 무척이나 바쁘다. 야근과 주말 출근도 불사해야 하고, 퇴근 이후에도 현안이 터져 언제 누군가에게 연락이 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갖고 살아야 한다. 하지만 사무관이 아무리 바쁘게 일하면 무엇하겠는가. 정작 중요하지도 않은 현안에 대응하느라,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진짜 일을 위해 할애하는 시간은 얼마 되지도 않는데. 구성원들이 이러한 처지니, 정부는 당연히 유능한 조직이 될 수 없다.
더 큰 문제는 진짜 필요한 일이 아닌 헛짓거리를 위해 자신의 인생을 갈아 넣는 공무원들의 자괴감이다. 밤늦게 청사에 홀로 앉아 인생이 거대한 수렁 속에 빠졌다는 느낌을 받는 사무관이 많아질수록, 정부는 깊게 병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