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복바지에 깊게 손을 찔러 넣고 어깨를 움츠린 채 노량진에서 집으로 오는 버스를 기다렸다. 밤이 깊을수록 스며드는 초겨울의 한기를 막아내기엔 작년에 산 춘추용 회색 정장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럴듯한 겨울 코트를 사고 싶었지만 고시생 주제에 더 이상 부모님께 손을 벌릴 염치는 없었다.
그렇게 얼마를 서성였을까. 드디어, 집으로 가는 버스가 도착했다. 퇴근 시간이 제법 지나서인지 앉을자리는 넉넉했다. 좌석에 앉아 무심코 돌아본 버스 창엔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의 내가 선명하게 비쳤다. 작년의 탈락을 결코 되풀이하고 싶지 않았지만 모의 면접 결과는 올해도 실패를 가리키고 있었다.
행정고시 3차 시험은 구조적으로 잔인했다. 50:1의 경쟁률을 뚫고 1차 PSAT 시험과 2차 논술 과목 시험을 통과한 합격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치러, 10명 중 1명을 무조건 탈락시켰기 때문이다. 2차 논술 시험까지 힘겹게 통과한 수험생 중 그 누구도 본인이 면접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애초에 모두가 의자에 앉을 수는 없는 게임이었다.
탈락자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도 없었다. 그 당시만 해도 3차 면접 탈락자는 어떤 인센티브도 없이 다음 해 1차 PSAT 시험부터 다시 응시해야 했다.(현행 제도는 3차 면접에서 탈락하면 다음 해 1차 시험을 면제) 보통 일정 조건 아래에서는 차수 별로 유예 제도가 있는 다른 시험과 비교하면, 그 당시의 행정고시 시스템은 수험생에게 말도 안 되게 잔인한 방식이었다. 게다가 11월에 면접에서 탈락하고 3개월 후인 다음 해 2월에 바로 1차 시험을 치러야 했기 때문에, 수험생에겐 한치의 방황도 용납되지 않았다.
남들 앞에서 말하거나 논리적으로 토론하는 일은 자신 있었기 때문에 3차 면접시험에서 떨어질 거란 생각은 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지나친 낙관이었을까. 2010년 가을, 2차 시험에 통과했지만 3차 면접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면접에서 탈락했다는 사실보다 더 괴로운 건, 떨어진 이유를 도통 알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시험 당국은 면접관이 부여한 점수조차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에, 왜 10명 중 1명에 내가 포함된 건지 그 이유를 도무지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공무원을 할 운명이 아닌가 보다 하고, 군대에 입대하려고 했지만 그조차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 그 해에는 천안함과 연평도 포격사건이 연달아 터지며 남북간의 전쟁 분위기가 고조되었기 때문에 부모님을 포함한 주변에선 입대를 만류했다. 군대라는 최후의 옵션도 사라진 상황에선 다시 고시 공부 밖에 할 게 없었다. 이제 와서 포기하기에는 너무 아깝지 않냐는 전형적인 매몰 비용의 오류도 작용했다.
다음 해, 평년보다 훌쩍 높아진 경쟁률을 뚫고 2차 시험까지 다시 통과했다. 일 년간의 공부가 헛되지는 않았는지 전년도보다 훨씬 좋은 성적이었다. 그리고 다시 면접 준비. 작년보다 적극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 나서 2차 합격생들을 수소문하고 면접 대비 스터디를 꾸렸다.
실제 시험처럼 토론과 개별면접을 하고 피드백을 서로 주고받는 준비 과정은 전년도와 대동소이했다. 스터디를 같이 했던 동료들은 이렇게 잘하는데 작년에 왜 떨어졌는지 모르겠다며, 올해는 꼭 붙을 거라고 기운을 불어넣어 줬다. 나 역시 면접 탈락을 그저 운의 문제라고 치부했다. 작년의 2차 시험 성적이 합격생 중에는 하위권인 데다 군대를 다녀오지 않아 나이가 어리기 때문에 면접관들이 죄책감 없이 떨어트리기 좋았을 것이라고, 영원히 증명할 수 없는 가설도 스스로 만들어냈다.
면접 일자는 다가왔지만, 스터디 활동은 매너리즘에 빠져가고 있었다. 고만고만한 수준의 수험생들끼리의 피드백은 잠시의 위안을 위한 칭찬 일색에 불과해서 어떨 땐 지겹기까지 했다. 실력을 냉정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수험생이 아닌 외부의 평가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그리하여 스피치 학원에 비용을 지불하고 모의 면접을 보기로 했다. 1회의 강의 치고는 꽤나 많은 금액이었지만, 상황이 상황인지라 스터디원 모두가 흔쾌히 동의했다. 정답이 없는 면접시험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된다고 하면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이 강한 때였다.
모의 면접을 보기로 한 스피치 학원은 노량진에 있었다. 금테 안경을 쓴 깐깐한 인상의 강사는 전직 공무원 출신이라며 본인을 소개했다. 강사의 차가운 인상 때문인지 1회성 모의 면접인데도 진짜 실전처럼 어딘가 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모의 면접이 모두 끝나고 강사는 수험생 각자에게 개별적으로 피드백을 주었다. 차가워 보이는 인상과는 달리 덕담에 가까운 평가가 이어졌다. 그저 좋은 말이나 들으려고 스피치 학원까지 찾아온 건 아니라서 솔직히 몇십만 원의 수강료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내 내 순서가 되었다. 일순간 공기가 달라졌다. 강사는 내게 지난해 면접에서 떨어진 결정적인 이유를 찾았냐고 물었다. 그저 덕담이나 하겠거니 하고 앉아있다가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당황한 나를 앞에 두고, 강사는 올해도 이런 식이면 어렵겠다며 강하게 몰아붙였다. 그가 주로 내게 지적한 문제는 면접을 임하는 자세였다. 남들과 토론을 할 때 상대방의 발언을 시시콜콜 모두 반박하려는 자세, 심사위원의 말에 무조건 긍정하지 않고 자신의 논리를 자꾸 전개하려는 태도를 특히 문제 삼았다. 잘못한 건 없는데도 부끄러운 마음에 나도 모르게 얼굴이 발갛게 달아올랐다.
강사의 솔루션은 특별하지 않았다. 그저 ‘Yes, But’, ‘Yes, then’과 같이 상대방의 말을 부드럽게 수용하는 커뮤니케이션 스킬을 알려준 것에 불과했다. 하지만 모의 면접을 계기로 작년의 탈락이 그저 운의 문제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경각심을 갖게 되었다. 이유 없는 합격은 있지만, 이유 없는 낙방은 없다는 고시계의 오랜 격언은 왜 그제야 떠올랐을까? 모의 면접을 계기로 2가지 원칙만 지키자는 마음을 먹고 3차 면접장에 들어갔다.
‘토론할 때 절대로 상대방의 말을 직접 반박하지 않는다, 면접관의 말은 무조건 긍정한다.’
2번째 면접 결과는 합격이었다. 강사의 진단은 결과적으로 적중한 셈이다. 그는 10명 중 1명만 떨어트리는 행정고시 3차 시험의 본질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 논리 전개를 얼마나 특출 나게 잘하는지 자신의 주장을 상대방에게 끝까지 관철시키는지 보다는, 무난한 태도와 역량을 보여주어 사람들 사이에서 튀지 않고 자신을 낮추는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훨씬 중요한 시험이라는 사실 말이다.
시험은 단순히 시험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를 떨어트려야 하는 면접시험에선 상사의 어떤 말에도 토를 달지 않을 것 같은 무난한 화법이 합격에 유리했을지 몰라도, 대내외적으로 다양한 이해관계를 절충해야 하는 실무에서는 상대방을 설득하는 토론 역량이 중요할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공직사회에서 필요한 태도는 나의 기대와는 전혀 달랐고, 시험과는 오히려 매우 가까웠다. 실무에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있어 상하급자 간의 토론은 가장 쉽게 생략되었다. 그저 상급자는 하급자에게 지시를 전달하고, 하급자는 그를 수행하고 다시 보고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 공직사회에서 '회의'란 상급자가 일방적으로 말하고 하급자는 업무수첩에 내용을 받아 적는 행위의 다른 말이었다.
상급자의 지시도, 알고 보면 본인의 생각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상급자에게 들은 내용을 전달하는 중간 통로에 불과했다. 예를 들어, 월요일 아침 장관 주재로 실국장 회의를 하면, 장관의 말을 실국장급 간부들이 받아 적는다. 그리고 국장들은 다시 과장들을 불러 모아 회의를 한다. 과장들은 장관이 했다는 말을 국장의 지시를 통해 전달받는다. 그리고 다시, 과장들은 과원들을 불러 모아 똑같은 일을 반복한다.
그 과정에서 요구되는 공직자의 자질은 그저 상급자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순응하는 자세였다. 물론, 사무관선에서 추진하고 싶은 정책이 있을 땐 예외적으로 상사에게 그 필요성을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역시 상급자가 하급자의 말을 기꺼이 들어주는 행위에 불과할 뿐, 결과를 미리 정하지 않고 의견의 수평성을 전제로 서로 간의 의견을 피력하는 진정한 의미의 토론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상사라도 실무자의 의견을 경청하는 데서 멈췄을 뿐, 의견을 서로 간에 논박하는 작업까지 허용하지는 않았다는 의미다.
우리나라의 큰 조직 중에 유독 행정부만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공공이 아닌 민간에서도 조직이 커지면 토론보다는 지시 위주의 관료제가 득세할 수밖에 없고,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 유교적 문화 영향도 무시할 수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토론의 빈도가 조직의 강건함이나 유능함을 나타내는 유일한 지표라고 단정할 수도 없다.
그 모든 점을 감안하더라도 정부 안에서 토론의 부재는 대단히 위험하다. 순환 보직으로 인해 공무원 개개인, 특히 과장급 이상 관리자가 해당 분야에 대해 갖고 있는 전문성이 심각하게 낮기 때문이다. ⌜공무원 임용령⌟에 따르면 원칙적으로 실무자의 필수 보직 기간은 3년, 과장급 이상은 2년이지만 현실에서 근무하는 기간은 원칙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기관장의 재량을 인정하는 임용령 상의 폭넓은 예외 때문에 현실적으로 사무관은 2년이면 한자리에 오래 있는 축이고, 과장급 이상은 1년마다 교체된다고 봐야 한다.
이질적인 넓은 분야를 다루는 중앙부처의 특성 때문에 과장급 이상이 되어서야 해당 분야를 처음 맡게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문체부를 예를 들면, 특정한 법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저작권 분야에서조차 실무자로서 저작권을 한 번도 다루지 않고, 바로 국과장으로 보직을 맡게 되는 경우도 많다. 이는 ⌜저작권법⌟을 처음 본 사람이 저작권 정책을 총괄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그마저도 1년이면 자리를 옮기는 형국이니 일을 하면서 전문성이 쌓일 리도 만무하다.
전문성이 부족한 관리자가 구사할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은, 그나마 내용을 아는 실무자 및 공공기관과 머리를 맞대고 정책을 짜는 것이다. 관리자는 실무의 내용은 잘 모르지만 공직생활의 경험이 풍부하여 국회나 언론 대응 등 행정이 돌아가는 원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실무자와 상호 보완적인 관계이다. 하지만 지시와 명령, 보고 일변도의 정부 내에서 의사 결정을 위한 토론은 거세되어 있다. 세종시 이전으로 서울에서 과장급 이상 관리자들이 떠돌아다니는 소위 ‘길 국장’, ‘길 과장’ 세태도, 관리자와 실무자 사이의 간극을 벌이는데 한몫했다.
그 결과 해당 분야에 대한 정부의 깊은 이해는 온데간데없고, 정책의 선제적 대응이나 창의적 해결 방법 제시는 단순한 구호로 남는다. 실패를 반복하면 민간 기업은 망하거나 견제를 받기라도 하는데, 행정부는 태생적 독점성과 공공성 때문에 대체되거나 해체되는 일도 없다. 저출산은 심화되지만 저출산을 다루는 조직과 예산은 증가하듯이, 오히려 정부는 실패하면 조직과 예산을 더 지원받는 최악의 역 유인구조까지 갖고 있다.
공무원들이 근무하는 청사의 공간 구조도 지시와 명령 일변도의 문화를 조성하는데 기여한다. 신경건축학(Neuroarchitecture)에 따르면 공간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친다. 비교적 최근인 2014년에 완공한 세종청사를 예로 들어보자. 세종청사는 행정의 상호 연결과 탈권위를 상징하기 위해 3.5Km에 이르는 거대한 수평의 형태를 갖고 있다. 하지만 놀랍게도 세종청사의 내부 구조는 복도가 전체 면적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을 제외하고서는 70~80년대에 지은 기존의 정부청사와 별반 다른 점이 없다.
일단, 제공하는 공간의 크기와 위치가 계급 사이의 명확한 구별을 나타낸다. 국장급 이상의 간부에게는 별도의 집무실을 제공하고, 과장급 이하 직원들에겐 테일러주의의 산물인 큐비클(cubicle, 한 사람씩 들어가는 칸막이가 있는 작은 사무 공간)을 제공하는 식이다. 과장급 이하에서도 계급에 따라 차등을 둔다. 과장은 복도에서 가장 멀고 창문에서 가장 가까운 채광이 좋은 위치에 앉아 사무실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사무관급 이하 실무자들은 계급과 연차가 높을수록 과장 쪽에 가깝게 앉는다. 결국 과에서 계급이 가장 낮은 서무 직원이 복도에 가장 가까운 자리에 앉아, 수시로 지나다니는 사람들의 무심한 눈빛에 쉽게 노출되는 구조이다. 이러한 명확한 계급의 차등을 두는 공간 구조에서 정책에 대한 토론을 하자고, 바깥에 앉아 있던 실무자가 가장 안쪽에 있는 국장의 방을 쉽게 노크할 수 있을까? 웬만한 사람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동료 직원 사이의 활발한 소통과 토론에도 세종청사의 내부 공간 구조는 적합하지 않다. 사방이 막혀 있는 전형적인 회의실은 있지만, 사람들의 적당한 시선 안에서 동료 간에 편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흔한 오픈형 커뮤니티조차 없기 때문이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창의적인 정책을 위한 소통은 둘째 치고, 사적인 이야기를 편하게 할 공간도 없어 공무원들은 복도 한구석에 숨어 참새들처럼 속닥대야 하는 신세이다.
세종청사의 외형은 수평(Flat), 연결(Link), 자원순환(Zero)의 이상을 담고 있다. 그런데 이 거대한 수평의 매스는 왜 정작 내부에서 일하는 직원 간의 토론과 소통에는 그토록 무관심하게 설계된 걸까? 내부의 구조만 보자면 세종청사는 21세기의 건물이 아니다. 오히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오피스의 전형을 제시한 루이스 설리번(Louis Sullivan)과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 20세기 중반 사무실의 기계적 합리화를 추구한 르코르뷔지에(Le Corbusier, Charles-Edouard Jeanneret-Gris)의 시대에 더 가까운 건물이다.
사회에서 ‘저 사람 무난하다’는 말은 보통 칭찬이 아니다. 부리기는 좋으나, 업무에 별 방향성이 없다는 뜻을 애써 돌려 표현한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은 모두 조직에서 무난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처럼 튀어봐야 좋을 것이 없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 무난한 사람들만 남은 결과는, 결코 무난하지 않다. 사골 우려먹듯 반복되는 정책 재활용, 편리한 현상 유지, 뒷북 대응과 같은 정부의 아마추어리즘은 튀지 않는 공무원들이 만들어 낸 무난하지 않은 결론이다. 영혼 없이 지시받은 대로 떠드는 관리자와, 회의만 시작되었다 하면 고개를 숙이고 업무수첩에 지시를 빼곡하게 적을 줄 밖에 모르는 실무자의 ‘무난한’ 조합으로는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