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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Jul 30. 2024

민원인 앞에 공무원은 목소리를 잃은 인어공주 같아서

  국장과 과장이 나란히 사무실을 비운 무두절(無頭節)이었다. 딱히 급한 일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반차를 내기는 아까운 금요일의 한낮이었다. 나는 우리에 갇힌 동물들이 의미 없이 같은 자리를 빙빙 맴도는 것처럼, 마우스 위에 검지만 움직여 쓰지도 않을 보고서를 열었다 닫았다를 반복했다. 퇴근만이 교정할 수 있는 현대인의 정형행동이었다. 


  파트너인 주무관은 이미 자리를 비운 지 오래였다. 동료와 커피 한잔하러 나간 모양이었다. 무의미하게 손가락만 움직이는 나보다는 훨씬 생산적이고 사교적인 활동이었다. 그때, 주무관의 사무실 전화가 요란하게 울렸다. 두 번째 까지는 받지 않고 두었는데, 세 번째 울리는 성가신 전화벨 소리엔 다른 동료들의 눈치가 보여 무시할 재간이 없었다. 결국 나는 통화 버튼의 별표(*)를 두 번 눌러 전화를 당겨 받았다. 걸걸한 목소리의 중년 남성이었다.

     

  “어제 야구 보셨습니까?” 


  민원인이 대뜸 물었다. 어제 프로야구를 하는 시간에 나는 불행하게도 회식에 끌려갔었다고 대답하려다가, 제정신을 차리고 다시 물었다.


  “프로야구가 하루에 5경기라서요, 어떤 경기를 말씀하시는 거죠?”


  “어제 기아 광주 경기 말인데요, 심판이 볼을 자꾸 스트라이크로 잡아서 기아가 졌습니다. 그 심판 하루 이틀도 아니고 기아 경기마다 편파 판정을 하거든요. 그 심판 이름이 뭐냐면..” 

 

  심판의 판정에 대한 민원인의 성토는 길게 이어졌지만, 민원의 요지는 간단했다. 기아타이거즈에 대한 특정 심판의 편파 판정이 의심된다는 것이다. 본인도 처음에는 단순한 오심인 줄 알았지만, 매일 보다 보니 의도적인 편파판정이라는 강한 확신이 든다며 열변을 토했다. 심판 판정에 대한 질의는 국민신문고를 통해 하루에도 몇 개씩 들어오는 익숙한 민원이었고, 처리하는 방법도 비교적 정형화되어 있었다. KBO(한국야구위원회)에 해당 민원을 복붙 하여 그대로 질의하면 KBO가 답변을 하고, 정부는 그 답변을 그대로 붙여 민원인에게 답변하는 식이었다. 



  KBO에서 정부에게 하는 민원 회신은 늘 비슷했다. 명백한 오심일 경우 심판을 징계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심판의 재량으로 보아야 한다, 다만 앞으로는 심판에 대한 교육을 보다 철저히 하여 보다 공정한 경기를 진행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식의 다소 방어적인 답변이었다. 관료인 나보다 더 관료적인 답변이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따지고 보면 틀린 답변은 아니었다. 게다가 민원인 중 일부는 스포츠토토나 불법 스포츠 도박에 배팅했다가 돈을 잃어 괜히 화풀이할 대상을 찾고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답변에는 신중을 기하는 게 나았다. 



  통화는 30분이 넘게 계속되었다. 나는 수화기를 귀에 대지도 않은 채 민원인이 먼저 지치길 기대하며 건성으로 ‘예예’ 추임새만 넣었다. 하지만 그는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 금요일 오후에 다시는 전화를 당겨 받지 않으리라 다짐할 정도였다. 전화가 길어진 탓일까. 나는 한순간 긴장을 놓고,  민원인에게 해서는 안 되는 질문을 했다. 


  “기아타이거즈가 선생님께 뭘 해줬다고,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감히 민원인을 대상으로 공무원이 긴장을 놓은 대가는 컸다. 그는 왜 자신과 기아타이거즈를 모욕하냐며 흥분하기 시작했다. 최대한 진정시켜 보려 했지만, 꺼져가는 불씨에 휘발유를 부은 것처럼 그의 분노는 활활 타올랐다. 이윽고, 그는 내게 회심의 한 방을 날렸다. 


  “내가 전주에 있는데 지금 세종으로 찾아갈 거니까, 공무원 양반 거기 딱 기다리쇼.” 


  민원인은 전화를 쾅하고 끊었다. 큰일 났다. 민원인에게 맞아 병원에 실려가는 공무원에 대한 뉴스가 머리를 스쳤다. 난 여태껏 싸움도 한 번 해본 적 없는데.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으면 친구 따라 주짓수라도 배워 둘걸 하는 쓸모없는 후회도 했다. 그렇게 2시간 여가 흘렀을까. 거짓말처럼 청사 안내 데스크에서 전화가 왔다. 민원인이 찾아오셨으니 내려오라는 전화였다. 드디어 이런 날이 오는구나. 내 촉새 같은 입 때문에 난 언젠가 망할 줄 알았다. 그게 오늘이구나. 뒤늦게 자리에 돌아온 주무관은 ‘제가 내려갈까요?’라고 친절하게 물었지만, 내가 벌인 일이니 내가 책임지겠다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돌아선 다리는 후들거렸으리라.

 

  청사 1층으로 내려가서 입구를 지키는 청원경찰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민원인이 통화 끝에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나를 찾아왔으니, 혹여 무슨 일이 생기면 지켜보다가 좀 도와 달라고 말이다. 하지만 청원경찰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는 듯 시크하게 반응했다.


  “별일 없을 거예요.”


  드디어 민원인이 내 앞으로 다가왔다. 키는 나보다 작다. 몸무게는 더 나갈 것 같다. 검은 모자, 검은 상하의. 폼이 예사롭지 않다. 한발 물러선 자세는 돌격하며 내 턱을 노리는 건가. 턱을 치면 나는 바로 파운딩을 시도하면 되는 건가, 도망가야 하는 건가. 혼자 격투 장면을 브레인스토밍하며 떨리는 마음을 안고 인사를 건넸다.


  “전화 통화했던 사무관입니다. 멀리까지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아. 예.. 생각보다 세종시가 전주에서 머네요. 안녕하세요, 괜히 제가 바쁜 시간 뺏은 건 아닌지..”


  “아까 이야기는 죄송합니다. 그게 모욕하려는 의도가 아니라.. 하여간 죄송합니다.” 


  민원인은 몇 시간 만에 저절로 화가 풀려있었고, 나는 내 경솔한 발언에 대해 사과했다. 막상 얼굴을 마주하니 서로를 향하는 대화에는 온기가 돌았다. 민원인은 야구에 애정이 많은 평범한 시민이었다. 그는 심판에 따라 판정의 기준이 달라지며 승패를 좌우하는 문제에 대해 분통을 터트리며 한참을 이야기했고, 나는 KBO에 소중한 의견을 잘 전달드리겠다고 대답했다. 대화 끝에 그는 국민의 의견을 경청하는 참된 공무원이라며 악수까지 청했다. 오후 내내 롤러코스터를 탄 기분이었다.






  민원의 80%는 이야기를 경청하고 맞장구만 잘 치면 수월하게 끝이 난다. 보통은 뭘 원해서가 아니라, 내 말 좀 한 번 들어달라고 관공서에 전화를 거는 사람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문제에 대한 해결 방법이 명확하지 않은 건 민원인도 알고, 공무원도 안다. 입장에 따라 민원인은 더 자세히 이야기하고 싶고, 공무원은 할 일에 쫓겨 대화를 빨리 끝내고 싶어 할 뿐이다. 특히 공무원은 한 사람인데 민원은 많을 경우 기계적으로 대답할 수밖에 없다. 민원실에 근무하지 않고서야 다른 할 일도 많은데, 민원인만 상대하고 있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상황을 반대로 이야기하면 공무원에게 민원인은 크게 중요한 존재가 아니라는 방증이기도 하다. 특히 중앙부처에서 국민의 단순한 민원을 상대하는 일은 업무 우선순위에 있어 한참이나 밑에 있다.    


  민원은 개인만 제기하지 않는다. 의원실이나 대통령실 등 소위 ‘힘 있는’ 기관에서도 중앙부처에 민원을 넣는다. 한 의원실에서 본인 지역구의 프로선수인 아무개 아들이 연맹으로부터 징계를 받았는데, 부당한 징계라는 탄원이 있으니 살펴보라는 민원이 기억난다. 말이 좋아 민원이지, 직접 해당 연맹과 의원실을 방문하여 그간의 경과와 재발방지 대책, 선수에 대한 구제대책을 내놓으라고 몇 번이나 닦달을 하는 통에 다른 일에 집중을 못 할 정도였다. 상황을 파악하고 보니 선수에 대한 징계는 정당했고 재발방지 대책은 필요 없었으며 구제대책은 애초에 논의되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님이 직접 챙기시는 민원이라는데 감히 일개 공무원이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 해 겨울, 뭐라도 하는 척을 하기 위해 몇 번이나 여의도로 찾아가 진행 상황을 보고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별다른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확인한 의원님은 흥미를 잃어버렸다. 사실 합리적인 설득의 결과물은 아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아무개의 아들이 징계를 핑계로 군대를 갔다고 한다. 


  나는 의원실을 설득하기 위해 아무런 의미도 없는 보고자료를 작성하고 여러 번 서울로 출장을 다녀왔으며, 의원님에게 직접 보고하는 일정을 위해 하염없이 국회에서 대기했다. 의원실의 민원이 없었다면 들이지 않아도 되는 아무런 의미도 없는 어마어마한 노력이었다. 그에 비하면야 전주에서 찾아온 민원인에게 내가 들인 노력은 보잘것없이 작았다. 그저 일이 없는 한가한 금요일 오후에 1시간 정도 짬을 내어 청사 밑에서 간단하게 만났을 뿐이다. 내용적으로도 절차적으로도 억지를 부린 순서를 따지자면 그 의원실이 전주의 민원인보다 몇 수는 더 앞섰다. 하지만 의원실이 제기한 민원에는 열성을 다하고, 일반 국민의 민원을 그저 귀찮아한 건 ‘강한 자에 약하고 약한 자에 강한’ 제도와 시스템 그리고 ‘나’라는 치사한 개인의 성품이 합쳐진 결과물이었으리라.






  물론 그렇다고 해서 현재의 민원 처리 제도에 불만이 없는 건 아니다. 홈페이지에 공무원의 이름과 직급, 전화번호까지 대국민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을까. 민원을 원활하게 대응하기 위한 목적이라고는 하지만, 한 사람의 악성 민원인만 앙심을 품어도 전화 폭탄에 공무원은 다른 일을 못할 지경에 이른다. 일종의 행정력 낭비이다. 실제로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악성 민원에 대응하기 위해 대표번호나 이메일만 공개하기도 한다. 원활한 민원에 대한 대응과 행정력 낭비 사이에서 우리나라 행정기관들도 적절한 타협점을 찾아야 할 때이다.

 

  공무원 개인에 대한 심적, 물리적 보호도 부족하다. 일례로 문체부 당직실에 밤이나 새벽에 전화하여 무조건 게임 담당 공무원을 바꾸라고 난동을 부려 아주 유명한 ‘악성 게임과 민원인’이 있다. 지금은 일과 시간이 지났으니, 내일 출근 시간 이후 다시 게임과로 전화를 하시라고 아무리 친절하게 대응해도 돌아오는 건 ‘부모님 안녕하시냐’는 쌍욕이다. 당직을 서는 문체부 수백 명의 공무원이 매일 밤 한 사람에게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듣는데도 조직에서는 그 민원인에 대해 아무런 법적 조치도 취하지 않는다. 우리나라는 수백 명의 공무원에게 아무런 이유 없이 매일 밤 쌍욕을 퍼부어도 처벌받지 않는 나라다. 


  이러한 실무자들의 속도 모르고 높으신 나리들은 민원에 형식적으로만 답변하지 말고, 가족을 대하듯이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응하라고 ‘원론적인’ 지시를 내린다. 근엄하게 앉아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본인들만 대단한 봉사 마인드를 지녔다는 일념으로 말이다. 그렇게 말하는 고위 공무원들에게 나는 묻고 싶었다. 민원인에게 부모님과 관련된 쌍욕을 들으면서 당신은 얼마나 친절할 수 있느냐고, 수백 명의 부하 직원들이 매일 밤 당직실의 전화벨 소리에 화들짝 놀라는 건 아느냐고.       


  공무원의 입장이 아닌 한 사람의 민원인 입장에서 생각해 봐도, 현재의 구조에선 개인이 민원을 제기하는 형식으로 만족스러운 답변을 얻기는 매우 어렵다. 아무리 합리적인 민원을 국민신문고에 제기해도, 민원에 지친 실무자의 형식적인 답변만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사회에서 뭘 좀 안다는 사람들은 민원이 생기면 연줄이 닿는 대로 언론, 의원실, 권력기관, 전관에 줄을 대고 해당 관공서의 높으신 나리들에게 압력을 넣는다. 


  높으신 나리들에게 들어온 민원은 어느새 실무자가 최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로 탈바꿈한다. 그래서 옛말에 억울하면 성공하라는 말이 있었나. 공식이 아니라 비공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세상이다 보니 사회적 신뢰는 낮고 그에 따른 비용만 증가한다. 결국 애꿎은 전화통을 붙잡고 싸우는 건 하위직 공무원과 연줄이 없는 순진한 민원인뿐이다. 슬픈 풍경이다. 


  그 이후에도 악성 민원은 많았다. 특히 날이 궂고 비가 오는 날은 심했다. 날씨와 민원과의 상관관계를 누군가 연구한다면 분명 흐릴수록 민원이 늘어난다는 결과를 얻을 것이다. 전주의 민원인을 만난 이후 나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쓸데없는 추임새는 최대한 자제했고, 반드시 필요한 말만 신중히 골라 답변했다. 복지부동하지 말라며 화를 내고 끊는 민원인도 있었지만, 사실 그렇게라도 빨리 전화를 끊어줘서 오히려 고맙기도 했다.

 

  주무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자, ‘드디어 사무관님이 공무원 짬밥 좀 드셨다’는 칭찬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그가 전수해 준 비법이 있다. 무조건 ‘예, 아니요’로만 대답하면 5분 안에 전화를 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비법이 어딘가 모르게 다리를 얻는 대신 목소리를 잃어버린 인어공주 같아 슬펐다면, 그래 그건 나의 과도한 감정이입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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