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용 빨간 사인펜을 들고 시작된 과장의 보고서 첨삭은 끝날 줄을 몰랐다. 처음에는 무엇을 보고하고 싶은지 아예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고, 다음에는 문장의 배열이 마음이 들지 않는다고 했으며, 마지막으로는 단어의 표현과 조사의 쓰임에 어깃장을 놓았다. 과장이 보고서를 난도질하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겪을 때마다 진땀이 날 정도로 민망했다. 말로는 아무리 심한 면박을 당해도 일을 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었지만, 내가 쓴 글이 남의 손에 난도질당하는 건 아무리 월급쟁이라 하더라도 약간의 모욕감을 동반했다.
과장이 보고서 위에 컴퓨터용 사인펜으로 대충 흘려 쓴 글씨는 내 자리로 돌아와 수정하려고 하면 제대로 알아볼 수 없었다. ‘이 글씨는 뭐라고 쓰신 거냐’고, 다시 물어볼 용기가 없어 문맥을 추측해 가며 수정하기를 수차례. 나는 나대로 답답하고 과장은 과장대로 짜증이 쌓이는 상황에서, 급기야 그는 특단의 대책을 내놓았다.
“내 메일로 보고서 보내.”
과장은 자신의 컴퓨터 모니터가 보이는 간이 의자에 나를 앉히고는 내용이 맞는 건지 확인해 가며 직접 보고서를 고쳤다. 지나가는 직원들이 이 쪽을 힐끗 쳐다볼 때면 교무실에 불려 간 학생이라도 된 것 같아 부끄러움이 밀려왔지만, 애꿎은 종이만 낭비해 가며 무한 수정을 반복하는 것보다는 이 편이 훨씬 나았다. 어찌 되었든 이런 식으로라도 일을 끝낼 수 있어 다행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완성된 보고서를 다시 내 메일로 보내며 과장은 기지개를 쭉 켰다. 오랜만에 보고서를 직접 쓰는 경험이 나쁘지 않았는지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 보였다.
“고생했어. 내 버전으로 국장님 보고 드려.”
나는 재빨리 컬러 프린터에 보고서를 걸었다. 국장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는 컬러로 인쇄한 출력물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공직사회에서 국장과 과장을 구분하는 보이지 않는 선은 바로 컬러와 흑백이었다. 사무관이 과장에게 보고할 땐 얼마든지 흑백 보고서로 보고해도 되지만, 국장에게 보고할 땐 컬러로 인쇄한 보고서가 아니면 어딘가 모르게 예의를 지키지 않는 느낌이었다.
공직사회 바깥에서 보면 전자 문서 시대에 보고서를 종이에 인쇄하고 직급에 따라 컬러와 흑백을 구분하는 문화에 아연실색할 사람들도 많겠지만, 그래도 공직사회의 보고 문화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천천히 바뀌긴 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상급자에게 보고할 때는 서류판에 보고서를 가지런히 넣고 스테이플러를 찍는 방향까지 신경 썼지만, 지금은 그 정도는 아니다. 그보다 한참 전엔 보고서에 ‘날개’까지 붙였다고 하지만, 그 역시 지금은 그게 무엇인지도 모르는 공무원이 태반이다. 참고로 날개는 보고받는 사람이 종이를 뒤로 넘겨 참고 자료를 보는 수고를 덜게 하기 위해, 본문 옆에 참고 자료를 작게 인쇄하여 날개처럼 테이프로 붙이고 접어 두는 걸 뜻한다.
“국장님, 보고 드리겠습니다.”
국장은 보고서를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미간을 만지작거렸다. 보고서가 썩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는 보고서에 본격적으로 손을 대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펜을 집어 들었다가, 불현듯 생각난 듯 물었다.
“장관님께 보고 해야 하는 사항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국장님만 보고받으시면 되는 사안이라고 그를 안심시켰다. 그제야 국장은 펜을 내려놓고 편안한 표정으로 설명을 들었다. 딱히 국장의 결심이 필요한 사항이 아니었기 때문에, 보고는 비교적 수월하게 끝났다. 이제 그만 자리에서 일어나려는데, 국장은 아직도 미간을 만지며 보고서를 한참이나 더 쳐다보았다.
“보고서 연습 좀 더해야겠어. 보고서 앞쪽에 필요 없는 말은 좀 줄이고, 뒤에 내용을 늘려. 이런 건 다 본문에 필요 없는 내용이니까 붙임 처리하고..”
국장이 지적한 보고서엔 내가 쓴 원형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있었다. 과장의 전적으로 키를 쥐고 수정한 보고서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대놓고 말할 수는 없어, 괜히 멋쩍게 웃으며 더 열심히 하겠다고 국장에게 고개를 숙였다.
자리로 돌아와 내가 처음 썼던 보고서와 과장이 쓴 보고서를 서로 비교해 가며 읽었다. 국장은 내가 처음 쓴 보고서를 더 마음에 들어 했을까? 꼭 그렇지는 않았을 것 같다. 국장이 고친 보고서는 나와 과장이 쓴 보고서와는 또 다른 스타일이었으니까. ‘잘 쓴 보고서란 도대체 무엇일까’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는데, 지나가던 선배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나름의 위로를 건넸다.
“네가 고시 출신이니까 과장님이 보고서 열심히 봐주는 거야. 고맙다고 생각하고 제대로 배워. 고시 출신 아니면 남들은 그런 기회도 없단다.”
정부 보고서는 가독성에 목숨을 건 문서다. 보고서의 본문은 보통 한 장이며, 복잡한 통계나 보조 자료는 붙임으로 처리한다. 글자 크기는 15포인트로 일반적인 책자보다 상당히 큰 편이고, 개조식으로 작성되어 있어 형식적으로 읽기가 매우 수월하다. 네모, 동그라미, 작대기, 별표 등의 활용은 본문 안에서도 중요한 내용과 중요하지 않는 내용 간의 위상을 한눈에 드러내주는 역할을 하며, 하나의 문단이 두 줄을 넘지 않기 때문에 대충 봐도 문단 하나가 한눈에 들어온다.
정부 보고서 작성의 백미는 하나의 단어가 줄을 바꿔 걸쳐 있으면 안 된다는 불문율을 철저하게 지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속하게’라는 단어를 사용한다면 ‘신속’이 한 줄의 마지막, ‘하게’가 다음 줄의 처음에 걸쳐있도록 편집하면 안 된다. 자간을 조정해서 ‘신속하게’를 같은 줄에 위치하도록 문서를 작성하거나, 여의치 않으면 길이에 맞는 다른 단어로 대체해야 한다. 아래아한글 프로그램에서 자간을 조정하는 alt+shift+n과 alt+shift+w가 공무원에게 가장 익숙한 단축키인 이유이기도 하다.
정부의 보고서가 가독성에 목숨을 거는 이유는, 보고받는 사람의 입장을 가장 크게 고려하기 때문이다.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일수록 항상 바쁘고 업무 범위도 넓기 때문에, 그들이 제한된 시간 안에 핵심을 알아볼 수 있도록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사무관은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연수를 받을 때부터 ‘핵심만 간단하게’ 보고서를 쓰라고 귀가 따갑도록 교육받는다.
본격적인 실무를 맡게 되면, ‘핵심만 간단하게’라는 추상적 명제는 아무리 복잡한 사안이라도 1장의 보고서로 상황을 요약하라는 구체적인 지시로 떨어진다. 제목 등을 제외하면 1장의 보고서는 20줄 남짓. 극히 제한된 분량 안에서도 보고 해야 하는 핵심적인 내용을 빠짐없이 풀어놓는 기술은 그 나름대로는 예술에 가까운, 훈련으로 다져지는 스킬이다.
그래서일까. 공직 사회에서는 자신의 보고서 작성 능력을 자랑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만날 수 있다. 일을 남들보다 유달리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는 공무원들일수록 특히 그런 경향이 있다. 물론 실제로 능력이 없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실력을 현실보다 높게 평가한다는 ‘더닝-크루거 효과’(Dunning-Kruger effect)를 떠올려보면, 좀 웃음이 나는 일이지만 말이다.
정부 보고서에 대한 비판적 시각도 많다. 비판의 초점은 대부분 지나친 형식주의에 대한 것이다. 한 장, 한 문단, 한 줄과 같은 형식에 과도하게 집착하느라, 보고서에 담겨야 하는 핵심적인 내용에 제대로 신경 쓰지 못한다는 비판이다. 하지만 오히려 실무자의 입장에선 정형화된 보고서 형식이 정립되어 있는 것은 상당히 효율적인 일이다. 일이 조금만 숙달되면 형식을 맞추는 건 그다지 어렵지 않은 일인데 반해, 전임자들이 만들어 낸 보고서가 있는 경우엔 내용만 조금 변경하면 되기 때문에 정형화된 형식이 일의 효율을 배가한다.
또한, 개조식으로 작성하는 1장짜리 정부 보고서는 사건사고의 요약이나 행사계획과 같은 단발적인 정보를 쉽게 보고하기에 유용한 틀이다. 육하원칙에 따른 일의 진행이 일목요연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엔 1장짜리 보고서로 모두 담을 수 없는 문제들이 가득하다. 문제의 원인이 명확하지 않거나 다양한 요인이 얽혀 있으며, 해결 방안 역시 많은 논의가 필요한 문제들. 그렇지만 정부 보고서는 이런 문제를 다룰 경우에도, ‘핵심만 간단하게’라는 원칙에 경도된다. 1장에 모든 내용이 깔끔하게 담길 수 있도록 문제점과 원인, 해결 방안을 2~3가지의 맥락으로 포섭하고 서로 조응되게 구성하여 현실을 의도적으로 평탄화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실타래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복잡한 현실의 이해관계는 몇 가지의 단순한 맥락으로 의도적으로 치환된다.
장차관 등 정무직에게 사안을 보고해야 하는 국장급 간부 입장에서야 현실을 평탄화하여 보고하기에 수월한. 보고서를 선호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런 보고서 만으로는 현실의 문제를 정확하게 직시하거나, 문제의 적확한 해결을 위한 정책적 논의를 부처 내에서 촉발하기는 어렵다. 형식은 내용을 잡고 뒤흔드는 힘이 있다.
더군다나 현실을 의도적으로 평탄화하는 정부 보고서 작성법에 능해질수록, 정책의 실무를 직접 담당하는 사무관조차 문제를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으려는 습성을 갖게 된다. 복잡한 문제를 다양한 맥락으로 이해하고 설명하기에는 부적절한 정부 보고서의 형식상의 한계 때문에, 깊이 있게 문제를 탐구하기보다는 보고하기 쉬운 틀에 맞는 적당한 통계와 자료를 짜깁기하는데 몰두한다. 사무관이 자신의 업무에 대해 10을 알면 과장은 5를 알고 국장은 2를 알며 장차관은 1도 채 모른다는 이야기가 있다. 그런데 사무관조차 현실을 평탄화하는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 정도로만 문제를 얇게 파악하는 습성에 길들여지면, 10이 아니라 5도 모르는 채로 국가의 정책이 굴러간다.
또한 장차관 등 고위 공무원이 지나치게 바쁘고 업무 범위가 넓기 때문에 핵심만 간단하게 보고서를 작성해야 한다는 말은,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바쁘고 업무 범위가 넓다고 해서, 정무직은 일을 피상적으로 알아도 된다는 뜻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의 제약 조건 아래에서도 장차관은 그 분야에 능통하며 문제의 핵심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을 갖춘 사람이 맡아야 한다. 그래야 간결한 정부 보고서 안에서도 다층적인 함의를 찾아낼 수 있고, 복잡한 사안의 문제를 복잡한 상태로 보고하여도 문제를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장차관의 이러한 능력과 자신감은 정부 부처 전체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단초가 된다. 장차관이 5를 아는데, 국장 이하의 공무원들이 5만 알아서는 보고 자체가 성립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날이 갈수록 정치권에 줄을 댄 실력 없는 문외한들이 장차관으로 임명되는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라서 별로 희망이 보이진 않는다.
보고서에 정답은 없다. 세상의 문제에 대한 정답도 없고, 잘 쓴 보고서를 정의하는 정답도 없다. 정답이 없는 문제에 대해 공직사회는 ‘핵심만 간결하게’라는 집착을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보고하기 좋은 보고서를 만들기 위한 시간에, 복잡다단하게 변화하는 현실을 보다 정밀하게 이해하는데 더 큰 노력을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또한, 보고서를 예쁘게 쓰기 위해 복잡한 현실의 상황을 단순하게 평탄화하려는 유혹을 경계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