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럽고 사랑스럽다.
태희가 첫 알바(아르바이트라고 적어야 하나 잠시 고민했지만 요즘은 다들 알바라고 하니 그냥 알바라고 적었다.)를 시작했다. 고1, 돈을 벌기엔 이른 나이일지도 모른다. 최근 몇 달 내가 수입이 없다 보니 빠듯한 상황을 태희는 이해를 많이 해줬다. 아무리 그래도 하고 싶은 것도 사고 싶은 것도 많은 나이다 보니 알바를 하기로 결심한 모양이다.
"엄마 저 알바 구하는 것 좀 도와주세요."
"어떤 걸 도와줘야 해?"
"그냥 어떤 곳에서 일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같이 좀 보고 찾아주세요."
사실 미성년자 알바생을 구하는 곳이 많지 않다 보니 선택지는 크게 많지는 않았다. 대부분 저가커피전문점, 고깃집, 치킨집 같은 곳이었다. 처음에는 고깃집에 면접을 보러 갔었는데 잘 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난 내심 안심했다. 고깃집 알바는 불도 있다 보니 혹시라도 다칠까 봐, 음식들을 많이 날라야 하니 어찌 되었건 더 힘들지 않겠는가? 그 후 한참 동안 태희의 알바 구하기 미션은 업데이트가 없었다. 그냥 포기했나? 했는데
"엄마! 면접 보러 오래요. 치킨집이에요."
면접 보러 오라는 곳이 없어서 태희는 주저 없이 가기는 했지만. 나는 속으로 집에서 거리가 좀 있긴 했지만, 학원 다닐 때 혼자서 자주 가기도 했던 곳이고 할머니 할아버지 댁도 근처니깐 등등 따질 것 다 따져보고 면접을 보러 가라고 했다. 면접에는 합격을 했고 매일은 아니고 저녁에 2-3시간씩 저녁에 일을 하기로 결정했다. 태희가 난생처음 자기 힘으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기분이 참 복잡 미묘했다. 집에서 보이는 아이의 모습과 사회에서의 아이의 모습은 많이 다른 걸 알지만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태희의 첫 알바지만 우린 함께 여러 가지를 처음 경험 해 보았다. 근로부모동의서라는 것도 처음 작성해 보았고, 보건소에서 보건증 검사를 처음으로 해보기도 했다. 물론 태희의 보건증 검사 말이다. 나는 아직 한 번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태희가 하교한 후 함께 보건소에 방문했다. 평일날 보건증 검사를 하러 가기에 보건소가 멀었다면 참 힘들었을 텐데 집 바로 옆이 보건소라서 참 다행이었다. 청소년증이 없는 태희는 학생증과 주민등록등본을 지참해야 했다. 마침 며칠 전에 내가 주민등록등본이 필요해서 한통 떼놨는데 일이 척척 들어맞으니 왠지 기분이 좋았다.
보건증 검사항목은 감염병 관련 검사가 주를 이루기에 태희는 요식업에 해당하는 폐결핵 검사를 위해 X-ray를 찍고 장티푸스와 파라티푸스 검사를 위해서 항문 검사를 한다. X-ray 촬영 후 다음 검사장으로 갔었는데 태희보다 먼저 검사안내를 받은 사람이 화장실로 향하는 게 보였다. 검사지를 건네주자 면봉이 담긴 통을 하나 주시며 "면봉을 항문에 넣어 대변이 묻혀 통에 넣어주시면 됩니다."라고 설명해 주셨다. 나는 태희가 잘 이해할 수 있게 벽에 붙은 사진을 보며 다시 얘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아까 화장실로 가신 분이 굉장히 당황한 표정으로 다시 돌아오셨다. 그리고는 검사관에게 "똥꼬 말이에요?"라고 경악에 찬 목소리와 표정으로 다시 물어보는데 왜 부끄러움은 우리의 몫일까? 나와 태희가 참 많이 부끄러웠다. 물론 똥꼬는 맞지만, 그럼 어디에 면봉을 넣어야 한다고 생각한 걸까? 아무튼 그날의 일을 떠올리면 아직도 태희와 나는 서로 웃음을 터뜨린다. 그 일이 충격적이었다 그런 건 아니지만 태희랑 둘 사이에 함께 얘기할 수 있는 거리가 생겼다는 게 좋았다.
알바를 한지는 3주 정도 되었다. 며칠 전 태희가 "엄마 저 이제 맥주 따를 줄 알아요."라고 하길래 내가 장난으로 "자랑스러워?"라고 물어봤다. "아니에요 히히." 아이들이 요즘 이런 사소한 얘기들을 종종 해주는데 난 그게 참 좋다. 자랑스러워?라고 내가 물어봤지만 사실 내가 자랑스러웠다. 고1 아이가 맥주를 따를 줄 알아요.라고 한 말에 자랑스럽다고 하는 엄마가 어디 있냐고 하겠지만 맥주를 따를 줄 아는 게 자랑스러운 게 아니라 점점 아이의 사회가 커져가고 있다는 게 자랑스러웠다. 콩알만 하던 (사실 태희와 태율이는 절대 콩알만 하지는 않았다. 둘 다 4kg이 넘는 무게로 태어나서) 아이들이 어느새 자라서 돈도 벌러 가고 처음 해보는 일을 경험하고 익숙하지 않은 일도 배워가는 모습이 정말 자랑스럽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