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정부 요인들의 광복 이후 귀국 과정 속 심경을 보여주는 감동의 전시
광복 80주년 서포터즈 “YOUNG:光”로서 지난 7월부터 매월 3개 이상의 콘텐츠를 여러분들께 선보여 왔습니다. 광복절 관련 행사, 안중근, 안창호, 윤봉길 등 우리나라 대표 독립운동가를 기념하는 전시관 방문 후기 및 광복 80주년을 맞아 진행된 특별전 전시 관람기 등이 있었는데요.
이 가운데 콘텐츠 첫 시작을 서포터즈 발대식 행사와 함께 <백범김구기념관> 해설 탐방을 통한 김구 선생의 일대기로 열었던 만큼, 마지막도 김구 선생과 관련된 이야기로 마무리하기로 했습니다. 대한민국 광복 역사를 가장 대표하며 핵심적인 인물이 김구 선생이시기 때문에 광복 80주년 기념 서포터즈 “YOUNG:光”의 대미를 장식하기에 안성맞춤이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백범김구기념관과 더불어 김구 선생 이야기를 엿볼 수 있는 또 다른 대표적 장소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김구 선생 서거 장소인 <경교장>으로 마침 이곳에서 광복 80주년 기념 경교장 작은 전시 <광복, 끝과 시작의 문턱에서>가 진행된다고 하여 다녀왔습니다.
광복 80주년 기념 경교장 작은 전시 <광복, 끝과 시작의 문턱에서>
전시내용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1945년 11월 23일 김구 주석은 처음 경교장에 들어섰습니다. 27년간의 투쟁 끝에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국으로 돌아와 바로 이곳 경교장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복 80주년은 곧 임시정부가 경교장에 도착한 지 80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광복과 환국.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어떤 길을 거쳐, 어떤 마음으로 저 문에 들어섰을까요?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환국 후 머물렀던 마지막 청사 경교장에서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가 보시기 바랍니다.
전시기간 : '25. 7. 15.~'26. 4. 5.
전시시간 : 화~일요일 9시~18시 (관람 종료 30분 전까지 입장)
전시장소 : 경교장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전시 장소 경교장은 서울시 종로구 새문안로에 소재하며 서울 지하철역으로는 5호선 서대문역이, 유명 명소로는 경희궁과 서울역사박물관과 가까이에 있으며 특히 강북삼성병원 부지 내에 있습니다. 경교장 건물이 병원 원무과로 건물이 쓰이기도 했던 역사가 있답니다. 관련 내용은 마지막에 별도로 알려드리기로 하고 먼저 기획 전시에 대해 나눠보겠습니다.
경교장 정문에 들어서니 바로 보이는 로비에 바로 전시가 보였습니다. 주제는 광복 이후 중국에 소재하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환국 과정을 그린 이야기로 "드디어 찾아온 광복", "다시 일어설 준비", "마침내 돌아온 조국"의 세 가지 파트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가장 좌측에는 김구 선생의 등신대와 함께 김구 선생이 화자로서 전시를 소개하는 문구가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80년 전, 1945년 11월 23일 나는 저 문을 통해 처음 경교장에 들어섰습니다. 27년간의 투쟁 끝에 해방을 맞이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조국으로 돌아와 바로 이곳 경교장에 머물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복 80주년은 곧 임시정부가 경교장에 도착한 지 80년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광복과 환국. 나와 내 동료들은 어떤 길을 거쳐, 어떤 마음으로 저 문에 들어섰을까요?
그러고 보니 어떤 마음으로 조국에 돌아왔는지에 대해 깊게 생각 못 해 봤네요. 광복 80주년 특별전을 통해 환국 직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의 단체 사진과 서명문, 환국 후의 기념사진을 여러 차례 보기는 했는데 단순하게 '기쁜 마음이셨겠지' 정도로만 추측해 보았을 뿐이었습니다. 그 해답은 바로 전시에 있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과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는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에 발맞춰 한국광복군을 창설하고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발표하면서 군사 활동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대외적으로 미국-영국과 같은 강대국과 공동 작전을 벌이며 참전하는 것을, 대내적으로는 좌우 진영 세력이 합심해 민족 통합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했고요.
그런데, 갑작스러운 일본의 항복 선언으로 이 모든 준비가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 소식은 내게 희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일이었다. 수년 동안 애를 써서 참전을 준비한 것도 모두 허사로 돌아가고 말았다. - 김구 <백범일지> -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은 물론 광복을 맞이한 것에 대한 기쁜 마음도 있었지만 이처럼 허탈함도 컸는데 충분히 공감 가는 대목입니다.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국에 유리하게 진행되던 상황인지라 한국광복군이 여기에 참여한다면 일본의 항복 선언에 보다 큰 역할을 했을 것이지 않겠어요? 임정 요인 분들께서 이에 대한 희망과 확신이 있으셨을 것인데 하루아침에 허사로 돌아가 버렸으니 얼마나 실망스럽고 허탈했을까요?
전시 속 한국광복군과 한미 군사합작 '독수리작전' 관련 사진들을 보고 나니 임시정부와 한국광복군에서 얼마나 준비를 많이 하고 있었는지와 동시에 이것이 수포로 돌아감에 따른 실망이 얼마나 컸을지에 대해 십분 이해가 되었습니다. 임정 요인들은 바로 이러한 심경 속에서 환국을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실망감과 허탈감이 컸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다시 힘을 냈습니다. 1945년 9월 3일 "국내외 동포에게 고함"을 발표하며 이 광복이 우연이 아니라 우리의 노력 끝에 이뤄졌음을 알리는 등으로 말이죠. 그러면서 중국에 남아있는 교포들의 안전 확보 및 귀국을 도왔고요.
특히 한편으로는 향후 국군 창설의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한인 청년들을 모집해서 광복군 병력을 확충했다고 하는데 이 부분이 감명 깊었습니다. 당장 광복의 기쁨이나 이와 관련된 일을 넘어서서, 국군 창설 기반 마련이라는 미래를 내다보는 일을 추진했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한민국 헌법은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고 하고 있는 만큼 당시 임시정부의 해외 자국민의 안전과 미래를 내다보며 국방력을 강화하려는 이러한 활동과 정신을 현재 우리 대한민국 정부가 잘 이어받아 실천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임시정부의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임정 요원들은 또 한 번 아쉬움 마음을 겪어야 했습니다. 남한 지역에 군정을 실시한 미국이 임시정부의 귀국을 개인 자격으로만 허용했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임정 요원들은 충칭을 떠나 상하이를 거쳐, 정부가 아닌 개인 자격으로 환국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입국을 안 할 수는 없고... (중략)... 한편으론 개인 자격으로 들어온다고 하더라도 정신적으로나 실체적으로나 임시정부로서 귀국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해 줄 것이다. 틀림없는 확신을 가지고 입국을 한 거지요.
- 서울시청 역사문화재과, 광복 70주년 기념 구술자료집 <대한민국 임시정부 마지막 청사 경교장> 윤경빈 부분 발췌.정리 -
무늬는 개인 자격 귀국이지만 당시 우리 조국인 모두는 임시정부로서 귀국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요? 김구의 비서로 일하기도 했던 독립운동가 윤경빈의 위 전언에 의하면, 임정 요원들은 비록 개인 자격 귀국이지만 임시정부로서 귀국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고 우리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해 줄 것이라 확신했다고 합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정말 그렇게 생각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파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1945년 11월 23일 늦은 오후, 마침내 김구 주석과 임정 요인 15명이 탑승한 비행기가 김포 비행장에 착륙했습니다. 수많은 인파가 나와 이들을 열렬히 환호했을까요? 아닙니다. 환영 인파 하나 없는 고요한 도착이었습니다.
비행기에서 내리기 전, 일행 모두 마음속으로 대대적인 환영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런데 환영 인파는 고사하고 아무도 임시정부를 맞으러 나와 있지 않았다. 환영 인파와 함께 흔들 태극기를 준비해 왔으나 꺼내 들 필요가 없게 되었다. 풀만 무성한 비행장을 둘러보는 백범 선생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 선우진, <백범 선생과 함께 한 나날들> -
환영 인파와 함께 흔들 태극기를 준비했는데 그러지 못하게 된 임정 요인들의 실망감을 생각하니 눈물이 맺혔습니다. 저는 경험해 보지 못한 결코 헤아릴 수 없는 실망감일듯했기 때문입니다. 이번 작은 전시의 종반부임에도 여기까지는 그야말로 "새드 무비"입니다. 광복을 위해 준비했던 활동들은 허사로 돌아가고, 임시정부로서의 귀국도 물거품으로 돌아가고, 귀국했을 때 환영해 주는 이는 없고 말이죠.
임시정부로서가 아닌 개인 자격의 입국이라 국민들의 관심이 적었던 것일까요? 당연히 아닙니다. 환영 인파가 없었던 이유는 이들의 정확한 환국 일이 국내에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임정 요인들이 경교장에 도착한 뒤에야 이 소식을 들은 사람들이 거기로 나와 환호했다고 합니다. 상하이에 남아있던 임정 요인들이 마저 귀국한 뒤 12월 19일 현재 동대문역사문화공원 일대인 '서울운동장'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개선 전국환영대회"가 열렸는데 이때 모인 인원이 무려 15만 명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지금도 15만 명이 모인다는 것은 비현실적인 일인데, 서울연구원 서울연구데이터 서비스 통계에 의하면 80년 전 1945년도 서울의 인구는 지금의 10%로도 안 되는 90만여 명에 불과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얼마나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인지 조금은 짐작이 되시지요?
그렇습니다. 당시 우리 국민들은 임정 요인들을 아주 열렬히 환호했습니다. 우리 정부를 이끄는 위정자임을 인정함은 물론 조국 광복을 위해 헌신한 데에 대한 깊은 감사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제야 백범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이 환하게 웃을 수 있었겠다 생각하니, 제 마음이 다 벅차오르더군요.
나와 나의 동료는 일개의 시민의 자격으로 귀국하였습니다. 동포 여러분의 부탁을 받아 가지고 노력한 결과에 이와 같이 여러분과 대면하게 되니 대단히 죄송합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나에게 벌을 주시지 아니하시고 도리어 열렬하게 환영해 주시니 감격한 눈물이 흐를 뿐입니다. 나와 나의 동지는 오직 통일된 독립자주의 민주국가를 완수하기 위하여 여생을 바칠 결심을 가지고 귀국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조금도 가림 없이 심부름을 시켜주시기 간절히 바랍니다. 조국의 통일과 독립을 위하여 유익한 일이라면 불 속이나 물속이라도 들어가겠습니다.
- 김구, 1945. 11. 23. 귀국 후 성명문 <꿈에도 잊지 못하던 조국> -
김구 선생의 위 여섯 줄의 성명문에서 제가 몇 번이나 감탄했는지 모릅니다. 먼저 일개 시민의 자격으로 귀국한 것에 대해 죄송하다고 표현한 점입니다. 본인의 잘못이 절대 아님에도 임시정부의 책임 있는 자로서 사과를 표현한 그 마음과 용기에 감동받았습니다. 이어서 임정 요인들이 오직 통일된 독립자주의 민주국가를 완수하기 위해 여생을 바치겠다고 한 그 다짐에서 감명받았습니다.
또한, 국민을 위해 조금도 가림 없이 심부름을 시킬 것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과 조국 통일과 독립을 위해 유익한 일이라면 물불 가리자 않고 들어가겠다는 그 의지에 굉장히 감탄했고 감동받았습니다.
대한민국의 혼이 살아 숨 쉬는 곳, "경교장"
전시가 열리는 경교장은 본래는 1938년 친일 행위를 한 최창학의 소유로 '죽첨장'으로 불리었다가, 1945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들의 환국 후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김구 선생과 임정 요인들의 숙소로 사용되었습니다. 또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1949년 김구 선생이 서거한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후에 중화민국대사관 사택, 월남대사관, 병원시설로 이용되다 2010년대에 들어 실제 복원이 시작되었고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습니다.
1층에는 임시정부 선전부 활동 공간과 귀빈식당 등이, 2층에는 임정 요인 숙소와 응접실(서재), 김구 선생이 서거한 자리 책상과 집무실 등이 재현되어 있습니다. 특히나 서거 후 많은 인파가 몰린 장례 현장 사진 등을 볼 수가 있고요. 지하에는 경교장의 역사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김구 선생이 걸어온 길, 그리고 '김구 서명 태극기'와 '김구 회중시계', 서거 당시 혈흔이 남아있었던 '김구 혈의', '데드마스크' 등의 전시물도 있습니다.
"작지만 강렬한 전시였다"
광복 80주년을 맞아 여러 기관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소재의 수많은 특별전이 열렸고 지금도 열리고 있는데요. 80년 전 광복 직후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와 임정 요인들의 환국 과정에서의 심경 등을 집중적으로 다뤘다는 점에서 특히나 훌륭한 기획 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은 전시를 표방했지만 그 어느 전시보다도 강렬했습니다.
미처 생각 못 했던 점들도 여럿 알게 되었고, 광복 이후부터 귀국까지의 몇 개월간의 여정만으로도 임시정부 요인들의 노고에 깊은 감사의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잘 안 알려진 어느 "임시정부 요인"의 이름을 접했을 때 큰 감흥 없이 보냈었는데 이제부터는 임정 요인이었다는 인물이 있다면 마음속 깊이 감사와 존경의 마음을 가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더군다나 <광복, 끝과 시작의 문턱에서> 전시 장소가 다름 아닌 "경교장" 아니겠습니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걸어온 길과 백범 김구 선생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경교장의 소중한 전시도 함께 관람할 수가 있습니다. 이 작지만 강한 전시는 내년 4월 5일까지 열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렇지만 가급적 광복 80주년을 맞이한 올해가 지나기 전에 광복했던 그 직후 임시정부 요인들이 환국하는 과정과 그들의 심경 및 위정자로서의 그들의 마음가짐을 전시를 통해 느끼면서 광복의 의미를 되새겨 보셨으면 합니다.
이와 함께 광복 80년을 맞이한 현재 우리 대한민국이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그 과정에서 나의 역할은 무엇이며 무엇을 할 수 있으며 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도 생각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원한 대한민국의 광복을 위해서 말이죠!
이 콘텐츠를 끝으로, 광복 80주년 서포터즈 “YOUNG:光” 그 5개월간의 활동이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제80주년 광복절 경축식 등 행사와 특별 전시관, 대표 독립운동가 김구·안중근·안창호·윤봉길의 기념관 관람 및 그 후기를 국민 여러분들에게 생생하고도 자세하게 전달했는데요.
활동을 통해 독립운동가에 대한 감사함과 미안함, 지금 내가 누리는 것에 대한 행복 등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도 했고 제가 잘 몰랐던 독립운동가와 역사적인 사실도 많이 알 수 있었습니다. 비록 이 활동은 끝이 났지만 제가 느끼고 배웠던 모든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제 마음속에서 언제나 함께 할 것입니다.
앞으로 매년 계속될 광복절 경축식과 애국지사의 활약상 및 숨겨진 이야기를 꾸준히 전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동안 길고 긴 제 콘텐츠를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