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 전시를 다녀와서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며 나라를 빛낸, 손기정과 마라톤 영웅들

by 곽한솔

광복 80주년 서포터즈 “YOUNG:光”으로 활동하며 "여기는 꼭 가볼 거야" 하고 찜해 놓았던 전시가 있습니다. 광복 80주년 특별전 중 하나로 지난 7월 25일 개시한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입니다. 이 특별전의 주인공은 마라톤 영웅 손기정 님으로, 그의 상징적인 업적으로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학창 시절인 IMF 직후 시기 고령의 나이에 CF에 출연하기도 하셨고, 지금도 많은 나이지만 2002년에 아흔이 넘는 나이까지 삶을 사셨기에 우리 기억 속에 늘 잊히지 않았지요.


이 전시를 꼭 소개해 드리고 싶은 이유는 먼저는 일제강점기 속에서 마라톤에 출전해 올림픽 금메달을 거머쥔 손기정 선수 이야기를 재 조명하고, 특히 손기정 선수와 더불어 함께 세계 마라톤 무대에서 메달을 획득한 잘 알려지지 않은 또 다른 마라톤 영웅들을 널리 알리고 싶어서였습니다.

특별전 포스터 사진 설명 : (좌)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당시 서윤복 / (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 당시 손기정 / (우) 1950년 보스턴 마라톤


국립중앙박물관은 광복 80주년을 맞이하여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를 개최합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에서 조국을 가슴에 품고 달렸던 손기정 선수와 그의 발자취를 따라 세계 무대에서 활약한 제자들의 이야기, 1988년 서울에서 성화를 봉송했던 감동의 순간들을 담았습니다. “족패천하足覇天下”, 두 발로 세상에 용기와 희망을 전한 손기정 선수의 이야기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전시기간 : 2025. 7. 25.(금) ~ 12. 28.(일), 10:00~20:00

전시시간 : 월, 화, 목, 금, 일 10:00~18:00(입장마감 17:30) / 수, 토 10:00~21:00(입장 마감 20:30)

전시장소 : 국립중앙박물관 상설전시관 2층 기증 1실

전 시 품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청동투구>(보물, 손기정 기증), <금메달>, <월계관> 등 18점



전시 장소는 이른바 '국중박'이라 불리며 근래에 젊은 세대 포함 많은 대한 국민과 심지어 외국인들에게까지 폭발적으로 사랑받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이었기에 날씨 좋은 가을에 마침내 다녀왔습니다. 서울 용산구에 소재하고 지하철역으로는 4호선 이촌역에서 가까웠습니다. 이촌역에서 박물관으로 가는 지하 통로에 특별전 포스터가 보이더라고요. 몇 분 걸었더니 박물관이 보였습니다. 첫 방문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입이 딱 벌어질 정도로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탄성이 절로 나오더라고요.


국립중앙박물관 전경


건물에 가까이 도달하니 건물 너머로 남산타워가 마치 액자에 담은 듯이 보이는 등 주변 전경은 더욱 아름다웠습니다. 건물 내 보안 출입문을 통과하고 전방을 봤는데 높은 층고와 넓은 내부에 다시 한번 감탄이 나왔습니다. 요즘 힙한 장소로 불릴만했고, 외국인들의 관광지로 사랑받을 만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별전 장소는 2층 기증관으로 가는 길목 길목마다 DID 설치물과 등신대 조형물, 대형 판넬 및 스크린 등으로 특별전 안내가 잘 되어 있어 찾아가기가 수월했습니다.


인물설명 : (좌)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 서윤복 / (중)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 (우)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 송기윤






AI로 구현한 특별한 영상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손기정 /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서윤복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함기용, 송기윤, 최윤칠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시상식 속 손기정과 1988년 서울 올림픽 송화봉송 주자 손기정

입구에는 삼면에서 우리의 마라톤 영웅들이 결승선으로 달리는 모습을 AI로 구현한 영상이 송출됐습니다. 먼저는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의 손기정 선수가 스타디움을 달리며 결승선까지 통과하는 모습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영상을 좋은 화질의 대형 화면으로 삼 방향에서 보니 더욱 감동이 크더군요.


다음으로는 근래 개봉한 영화 "1947 보스톤" 덕분에 조금 알려졌지만 아직까지 업적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최초로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세계 신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한 서윤복 선수의 영상이 흘렀습니다. 이어서는 무려 1~3위를 우리나라 선수가 싹쓸이한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영상이었습니다. 함기용, 송기윤, 최윤칠 세 선수가 환하게 웃으며 함께 달리는 모습에서는 전율이 돌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보스턴 마라톤에서 감독으로 이끈 손기정과 메달을 취득한 선수들의 이야기는 해당 전시 파트에서 조금 더 상세히 설명드리겠습니다.


마지막으로는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의 당시 스타디움을 달리는 손기정 선수와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성화 봉송 주자로 스타디움을 뛰는 고령의 손기정 선수가 나란히 나오는 영상으로 이 영상의 백미였습니다. 여느 특별전에도 대형 스크린 영상 송출이 있는 편인데, 전시 주제를 잘 집약하면서도 보는 이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는 제가 본 영상 중 가장 임팩트 있는 영상이었습니다. 영상을 두 번 본 다음 전시장으로 입장했습니다.




비극의 시대 속 세계 마라톤 제패

희망도 꿈도 없는 길고 긴 암흑의 터널이었다. 절망만이 가득하던 그 시대에 내가 택한 것이 마라톤이었다. 마침내 올라선 마라톤 세계 정상에 맞본 것은 좌절감뿐이었다. 되찾은 내 내라의 광복 기념 체육대회에서 태극기를 들고 들어가며, 나는 가슴속에 묻어두었던 감격에 겨워 울었다.
-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1983) 중에서> -


"그의 얼굴에는 긴장이나 고통의 기색조차 없었고 표정은 마치 대리석 가면처럼 굳어 있었다. 오직 그는 앞만 보고 달렸고 관중들의 엄청나 환호조차 그를 흔들 수 없었다" - 뉴욕타임즈 1936년 8월 10일 자 기사 -
"세계 우리 앞에 굴복 마라손의 패업 완성", "초인 손기정 쾌기록(2시간 29분 19초) 3착은 남승룡 군" - 매일신보, 1936년 8월 10일 자 호외 -

첫 번째 전시는 손기정 선수의 베를린 올림픽 우승 소식을 다룬 기사 등이 게시된 공간이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기사 글을 보는데 잘 알고 있는 내용이지만 가슴이 먹먹해지더라고요. 우승을 눈앞에 두고 있으며 관중들의 환호성 속에서도 일장기를 달고 뛰었기에 기뻐할 수 없었던 그 마음은 제가 감히 가늠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승한 것이 기뻐할 수 없었던 것을 넘어서 도리어 좌절감을 주었다는 손기정 자서전 속 글귀에 조국에 대한 그의 마음이 진심임이 느껴졌고요. 올림픽 출전을 위해 국적을 바꾸는 현시대에 비추어 보면 더더욱 시사하는 바가 크지 않냐는 생각입니다.

1936년 8월 24일 자 <아사히신문> 원본의 일장기를 말소한 8월 25일 자 <동아일보> 기사


유명한 기사 속 사진이죠. 일장기가 그려진 유니폼과 월계관을 쓴 사진과 같은 사진에서 일장기를 지운 동아일보 기사 속 사진이 나란히 나열돼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속 손기정 선수의 대한 국민의 우수한 역량과 비통한 모습, 언론사에서의 일장기 말소 등 각자의 위치에서 조국을 위한 행동을 했던 것이죠. 마지막 사진은 손기정 선수가 광복을 맞은 1945년 광복 기념 체육대회 기수로 태극기를 들며 감격의 눈물을 흘리는 모습입니다. 보는 제 마음도 울컥해지더라고요.



마라톤 우승자의 조국 알림

(베를린 올림픽 우승 후) 수많은 축하객들을 만나는 동안 가장 큰 고민은 어떻게 하면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리느냐는 것이었다. ... "손긔졍"이라는 한글 사인과 곁들여 조선 지도를 그려주거나 "KOREA"라는 영문자로 국적을 표시해 주었다.
-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1983) 중에서> -

저 같으면 세계 우승을 한 다음 쏟아지는 축하를 만끽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일제강점기였더라도, 시상식 자리가 아닌 사석에서의 축하는 마음껏 누리고 기뻐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였다면 말이죠. 그런데 손기정 선수는 달랐습니다. 그 와중에도 어떻게 하면 내가 일본 사람이 아니라 조선 사람인 것을 알릴까 고민을 했다네요. 앞선 전시와 같이 시상식 위에서 고개를 숙인 일화 등은 잘 알고 있었지만 수상 이후에 조국을 어떻게 알릴까 고민했다는 이 부분은 처음 알았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기념사진집
손기정이 1936년 8월 15일에 서명한 엽서 /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 수상자 서명 책자


제대로 된 훈련체계가 없었던 국권 침탈 상황 속에서, 진짜 불모지 분야 마라톤에서 무려 세계 신기록으로 올림픽 우승을 차지하며 올림픽에 한 획을 그었다는 사실로도 자랑스러운데, 이후의 조국을 위한 행동과 마음은 실로 위대했습니다. 많은 국민들께서 이 사실을 잘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마라톤 우승 기념 전시물

별도의 공간에 마련된 이곳은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굉장히 멋있기 귀하긴 한데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가 왜 손기정 님이 가지고 있었고 기증한 것일까요? 무려 보물로 지정된 타 고대국가의 유물을 말이죠. 알아보니 딱 손기정 선수 때까지 올림픽 마라톤 우승자에게 그리스의 고대 투구를 제공했다네요. 이 귀한 보물을 선뜻 기증한 하늘에 계신 손기정 님께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또 언제 대한민국에서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를 볼 수 있을까요? 이곳 특별전에서 이 귀한 보물을 볼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청동 투구(기원전 6세기 추정, 1994년 손기정 기증)
1936년 베를린 올림픽 금메달과 월계관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상장


보물만큼 귀한 유물들이 연이어 전시돼 있기도 했는데요. 그것은 바로 1936년 베를린 올림픽 우승 금메달과 월계관, 상장입니다. 언뜻 봤을 때에는 올림픽 기념주화와 같은 동전인 줄 알았습니다. 90년이 다 된 귀한 올림픽 금메달을 이렇게 보네요. 무엇보다도 월계관이 비록 색은 바랬지만 원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언론매체 속 흑백 영상이나 사진으로만 봤으며 손기정 선수가 시상식 때 가지고 있었던 바로 역사적인 그 월계관을 실물로 이렇게 보다니 감개무량하더군요. 마지막 전시물은 우승 상장입니다. 상장은 90여 년 전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스타디움을 나타낸 디자인이며 보관상태까지 괜찮았습니다.



족패천하! 보스턴 마라톤 제패

(1947년) 보스턴 하늘 높이 태극기가 올랐다. 시상대 위에선 서윤복 군도, 관중석에 있던 나도 북받쳐 오르는 감격에 눈물을 흘렸다. 태극기를 달고 이룬 최초의 승리였다. 나는 11년 전 잃었던 내 조국을 다시 찾은 듯한 심정이었다. ... 우승 후 백범 김구 선생은 한국의 이름으로 나가서 우승한 서윤복 군을 축하해 주었다. 선생은 '족패천하'라는 글씨를 써주었고, 서윤복 군은 가보처럼 액자에 넣어 애지중지했다.
(1950년) 제54회 보스턴마라톤대회처럼 통쾌한 적도 없었다. 함기용 군이 우승하고, 송길윤 군은 2위, 최윤칠 군은 3위를 차지해 보스턴 하늘에는 태극기만이 가득했다. 전 세계 마라톤계는 또 한 번 한국 마라토너들의 우수성에 탄복했다.
- 손기정 자서전 <나의 조국 나의 마라톤(1983) 중> -
"한국 선수, 보스턴 마라톤 대회 압도적 우승" 뉴욕타임즈 1947년 4월 20일 자 기사 -
"보스턴을 뒤덮은 한국 선수들... 1,2,3위 모두 한국이 차지" 뉴욕타임즈 1950년 4월 20일 자 기사
족패천하 글귀 /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관련 뉴욕타임즈 기사

"족패천하"라고 명명한 김구 선생의 작명 솜씨는 대단합니다. 정확한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선수로서만 활약한 것이 아닌, 감독 및 지도자 손기정으로서의 역량과 성과도 대단했습니다. '서윤복'이라는 선수를 발굴하고 양성해 대한민국 최초로 태극기를 달고 우승에 기여한 것입니다. 그것도 무려 세계 최고 권위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 신기록으로 말이죠.


영화 2년 전 개봉한 <1947 보스톤>과 여러 매체에서 근래 소개가 돼 조금 알려지긴 했지만, 사실 서윤복 선수를 제가 알게 된 것도 불과 10년이 되지 않았습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는 무려 1~3위를 함기용, 송기윤, 최윤칠 세 한국 선수가 기록했다는 대 기록 역시 이때 함께 알았답니다. 한 국가에서의 1~3위 동시 석권은 50년이 지나 2007년 케냐 선수들이 베를린 마라톤 대회에서 재현한 것이 유이할 정도로 위대한 기록입니다.


이 대단한 일을 몇 년 전에 알았으며, 저의 지인들도 잘 몰랐다는 점에 비추어 아마 아직도 많은 분들이 모르고 계시지 않을까 합니다. 최윤칠 선수는 후에 1952년 헬싱키 올림픽에서는 4위, 1954년 마닐라 아시안 게임에서는 1,500미터에서 금메달, 5,000미터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네요.

우승 기념 황금열쇠(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 우승 기념 배지(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자 서윤복의 사진(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전시관 입구의 AI로 구현한,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속 함기용, 송기윤, 최윤칠 선수의 달리기 모습


몬주익의 영웅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황영조 선수,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은메달리스트이자 2001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51년 만에 한국인으로서 우승한 이봉주 선수 이전에 마라톤 영웅들이 있었음을 기억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선수 손기정의 위대함만 알고 있었는데 감독 손기정이 지도자로서 위의 두 보스턴 마라톤 대회 모두 함께했고 기여했다는 점은 저도 이번에 처음 알았습니다.


이번 특별전에서는 1947년 서윤복 선수가 거머쥔 우승 기념 황금열쇠와 1950년 함기용 선수의 우승 기념 배지, 그리고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관련 사진과 1950년 감독 손기정과 1~3위의 선수들이 함께 찍은 사진도 보실 수 있습니다. 역사적 의미가 깊은 값진 전시물을 여러분들께서도 꼭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손기정 감독과 KOREA 유니폼을 입은 한국 선수단 / (우)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1위로 결승선을 끊는 서윤복 선수



+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시상식 사진 : 왼쪽이 남승룡, 가운데가 손기정 (출처 : 손기정 기념재단)


여기서 꼭 하나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위의 보스턴 마라톤 대회 영웅과 더불어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동메달리스트 남승룡 선수를 기억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개인 종목도 팀워크가 필요하다는 사실은 쇼트트랙과 양궁 등 우리나라 대표 효자 종목 경기를 숨죽이며 보셨던 우리 국민 여러분들께서는 너무나 잘 알 것입니다. 손기정 선수가 1위를 한 데에는 러닝메이트 남승룡 선수의 공 역시 작용했을 것이고요. 이러한 여부를 떠나 역시나 그 시대에서 무려 3위를 하며 동메달을 따냈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올림픽 육상 100미터에서 동메달을 딴다고 생각해 보세요. 얼마나 대단한 일입니까. 그런데 남승룡 선수는 90여 년 전에 불모지 종목에서 동메달을 땄습니다. 시상식 일화 중 손기정 선수가 부러웠다는 이유가 1위를 해서가 아니라 월계수로 일장기를 가릴 수 있었다는 것에서였습니다. 그리고 본인은 최대한 가려보려고 바지를 명치까지 최대한 끌어올렸음을 사진을 통해서도 확인이 가능합니다. 같은 사진에서 역시 손 선수와 마찬가지로 표정이 어두우며 고개를 숙이고 있고요.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감독 손기정과 마찬가지로 지도자로서도 활약을 했는데 바로 1947년 보스턴 마라톤에서 서윤복 선수를 지도하는 것을 넘어서서 플레잉 코치로 출전했던 것인데요. 지금도 노장에 들어가지만 당시 36세면 운동선수로는 많은 나이에도 플레잉 코치로 출전하여 14위를 기록했다고 합니다. 순위보다 출전한 이유가 깊은 울림을 주는데요. 첫 번째는 서윤복 선수를 위해 플레이메이커 역할을 하기 위해, 두 번째는 일장기 대신 태극기를 달고 뛰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전라남도 순천시 남승룡로(출처 : 카카오맵지도 캡처)

순천시에 순천만 국가정원 앞을 지나는 '남승룡로'가 있고 '남승룡 마라톤 대회가' 순천에서 매해 열리기는 하지만, 업적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 이름이 덜 알려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보스턴 마라톤 영웅들과 함께 남승룡 선수의 위대한 행적도 꼭 기억했으면 합니다.



1988년 조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불꽃을 들다


내가 살아있을 때, 남의 나라 국기로 우승했던 내가 50여 년 후 우리 서울에서 올림픽에서 성화를 드는 것, 그것이 나로서는 베를린 올림픽 우승 이상의 영광이었다. 나는 너무나도 기뻐서 그 기쁨을 이렇게 (아이처럼 뛰면서) 표현하였다. - 손기정 생전 인터뷰에서 -


마지막 전시물 왼쪽에는 성화봉송을 하는 손기정 님의 영상이 있습니다. 이미 여러 차례 본 적이 있는 영상이지만 볼 때마다 늘 감격스럽네요. 1936년 타국가의 소속으로 올림픽 금메달을 딴 마라톤 선수가 그로부터 50년이 지나 국권을 회복한 자국에서 열린 올림픽에서 성화를 들고뛴다는 것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스토리가 아닌가요? 얼마나 기뻤으면 그 고령의 나이에도 아이처럼 펄쩍펄쩍 뛰었겠습니까? 그 모습에 저의 눈시울도 붉어졌답니다.


우리나라 국민뿐만 아니라 TV 중계로 "SOHN, KEE CHUNG 1936 GOLD MEDALIST"라는 자막과 함께 성화봉송 주자로 뛰는 모습을 본 전 세계인들도 감동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1988년 손기정의 성화봉송 모습 영상
손기정의 성화봉과 유니폼(1988년 서울 올림픽)


화면 속 손기정 님이 들었던 성화봉과 유니폼 실물이 전시돼 있었습니다. 그저 하나의 성화봉과 유니폼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서사가 담겨 있기에 값으로 메길 수 없을 정도로 귀한 물건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광복 80주년 특별전 〈두 발로 세계를 제패하다〉는 이처럼 손기정과 관련된 값진 전시물과 이야기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선수로서도 감독으로서도 “족패천하(足覇天下)”를 달성한 이야기와 또 다른 마라톤 영웅들의 이야기도 함께 엿볼 수 있어 더 좋았고요. 포스터 속 손기정 좌우의 선수가 누군가 했는데 전시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서 왼쪽은 1947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당시 서윤복 선수, 오른쪽은 1950년 보스턴 마라톤 대회 우승 당시 함기용 선수의 모습이라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습니다.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마라톤 선수로서와 1988년 서울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서의 모습이 교차된 사진과 입구의 AI로 재현된 족패천하 주인공들의 달리기 재현 모습은 특히나 인상적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 속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조국에 헌신하고 동포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준 손기정의 이야기 역시 광복 80주년을 맞아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분명히 있어 보입니다. 광복을 맞이한 지 80년이 된 상황에서 손기정 선수가 그러했듯이 우리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도 하나의 애국 활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특별전은 올해 12월 28일까지 계속되니 종료 전 꼭 방문해 보셨으면 하고요. 박물관 내외에는 볼거리 즐길 거리도 즐비하니 만큼, 특별전 관람 후 상설전시 보시고 주변 공원과 산책로 일대에서 힐링의 시간을 보내시는 것도 추천드립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언덕 계단 위에서 본 서울 남산타워 방면 전경
국립중앙박물관 언덕 계단에서 본 입구 방면 광경
국립중앙박물관 거울못과 청자정 광경
keyword
이전 14화광복 80년 특별전 《무너미에 깃든 독립운동가의 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