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 long, partner.
우리가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한다. 대학 새내기 시절, 개강 전 OT에서 곱슬머리를 노오랗게 물들인 채 사투리를 내뱉는 웬 부산놈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특별한 이야기 한 마디 나누지도 않았건만 쌩노랑 머리가 임팩트가 컸던 모양이다. 두 번째 기억은 3월 첫 MT. 1호 CC가 되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그 녀석은 갖은 술이란 술은 다 마시며 다구리를 (은유가 아니다) 당해야만 했다. 이 때 찍힌 사진이 동기들 사이에 한참 돌았는데,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사진만 보면 과장 안 보태고 집단 린치라고 해도 할 말 없을 정도였다. 다들 많이 웃으며 즐거워했던 그 모습이 잔상처럼 남아 박제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 우리 둘은 그닥 잘 맞는다고 할 수는 없었다. 성격, 성향, 관심사, 대화 방식에 이르기까지 많이 달랐다.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매주 만나 연습을 하고 뒤풀이를 다녔지만 쉽게 가까워지지 않았다. 방학이면 일주일씩 지방에 내려가 전수를 받으며 숙식을 함께 하고 (풍물패였다) 가을이면 공연 연습한다고 거의 매일 몇 시간씩 봤는데도 그랬다. 내가 친한 친구들은 동아리 밖에 따로 있었고, 그 녀석도 그랬을 것이다. 그 때 그 녀석이 누구랑 친했는지 내가 떠올리지 못하는 걸 보면 말 다했지 뭐.
그 녀석과 짱친이 된 건 3학년부터였다. 앞선 2년 간 같은 동아리를 하며 함께 쌓아 온 시간이 있었기에, 그리고 3학년이 되어서도 여전히 동아리 활동을 공유하고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고 우리가 갑자기 서로에게 딱 들어맞는 사람이 된 건 아니다. 그보다는 다양하게 뻗쳐 있던 각자의 관심사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한두 가지로 수렴하고 (그 중 '樂'에 대한 열정이 핵심 공통분모), 후배들을 가르치고 동아리를 잘 꾸려가기 위한 고민을 나눌 사람이 서로밖에 없었으며, 결정적으로 당시 둘 다 여자친구가 없었다 (네?).
우리 두 사람 모두 군대를 빨리 갈 생각이 없었던 반면 (그 녀석은 전문연구요원 대체복무, 나는 졸업 후 장교 선택) 다른 동기들은 대부분 현역 입대를 했기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서로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커졌다. 내가 휴학을 마치고 4학년일 때 그 녀석은 석사과정을 밟고 있었는데, 나는 중도(중앙도서관)에서 그 녀석은 대학원 실험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각자의 서식지에 머물다 밤늦게 신촌 바닥으로 기어 나오면 자정 무렵이었고, 그렇게 술을 마시며 하루를 털어낸 후 새벽 2~3시쯤 각자의 하숙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늦은 밤에서 이른 새벽 사이에 걸쳐 있던 그 시간이, 그 시절 삶의 낙이었다.
지나온 관계의 궤적을 연대기순으로 짚어가다 보니 이런 소소하면서도 위장된 우연이 하나둘 쌓여 사람의 관계를 만들어가는 거구나 싶다. 둘 중 하나가 농악에 관심이 시들해졌다면 달랐을 테다. 실제로 다른 동기 하나는 3학년이 되면서부터 동아리 활동을 멀리 했는데, 이전까지 정삼각형에 가까웠던 우리 셋의 관계는 이 시기를 기점으로 이등변삼각형으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둘 중 하나가 남들처럼 1학년이나 2학년 마치고 현역 입대를 했다면 이 역시 큰 영향을 미쳤으리라. 아마 우리의 우정도 완전히 다른 모습이지 않았을까? 물론 정말 인연이었다면 전역한 이후라도 깊은 우정을 나눌 수 있었겠다마는.
졸업 이후에도 변함없던 그 녀석과 나의 거리는 서른이 넘어가며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우선 물리적으로 멀어졌다. 그 녀석은 미국으로 떠났고 나는 영국을 시작으로 여러 나라를 정처없이 떠돌았다. 첫 2년 정도는 괜찮았는데 거기서 또 두 해 정도가 더 지나고 나니 어쩔 수 없는 변화가 생기더라. 오랜만에 만났을 때, 처음으로 이 친구와 함께 있는 게 어색했다. 오랜만에 만났으니 그렇겠지, 당연한 거야, 다시 만나면 또 다를 거야,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하며 다음을 기약했지만 예전과 같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흘러 우리 둘 다 한국에 돌아왔지만 나는 서울에, 그 녀석은 대전에 터를 잡았다. 녹록지 않은 현실에 한 번 보자는 말을 지키기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었다. 서울에 일이 있어 올라온 그 녀석을 두어 번 짧게 만난 게 전부였다. 그나마 크게 어색하지 않았다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겠다.
작년 가을 큰 맘 먹고 대전에 내려갔다. 한 번 가야지 가야지 하면서 내내 벼르고 별렀던 일이다. 기차를 탈까도 했지만 이래저래 번거로워서 직접 차를 몰았다. 몸도 마음도 지친 상태였지만 오랜 친구와의 만남이 그 모든 걸 이겨낼 에너지를 주리라 기대했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대화는 뚝뚝 끊겼고 흐름은 쉽사리 재건되지 않았다. 어색함을 달래보고자 옛날 이야기를 꺼냈지만 그것도 그 때뿐이었다. 오래 전 신촌의 새벽 거리를 거닐 때 자연스럽게 이어지던 시시콜콜하지만 탄력 있던 대화는 이제 더 이상 그 자리에 없었다.
나도 알았고, 그 녀석도 알았다. 이미 서로의 삶에서 많은 공통분모가 사라졌다. 오랫동안 각자 다른 길을 걸어 온 탓일 테다. 우리는 더 이상 학생이 아니며, 우정과 사랑과 미래를 이야기하며 밤을 지새우던 20대가 아니다. 악기를 손에서 놓은 지도 오래되었다. 나와 달리 대화가 끊기는 걸 잘 견디지 못하는 그 녀석은 애꿎은 당구 이야기만 끊임 없이 늘어놓았다. 이제는 우리 사이에 특별히 나눌 만한 이야기조차 많지 않다는 걸 둘 다 알았지만, 그리고 어쩌면 상대가 그렇게 느끼고 있다는 사실 역시 서로가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구태여 입 밖으로 꺼내지는 않았다. 대개의 경우 확인사살은 득보다 실이 크다는 것, 역시 알고 있으니까.
나이를 먹으며 각자의 삶을 살다 보면 자연스럽게 거쳐야만 하는 과정임을, 아무리 머리로 이해한다 할지라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다른 친구는 다 그럴 수 있다 쳐도 이 녀석만큼은 아니길 바랐기 때문이다. 서운함, 야속함, 씁쓸함, 그리고 쓸쓸함까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바스라져 가는 관계를 바라볼 수 밖에 없는 기분은 수용보다는 무력감에 가까웠다. 어쩌면 이미 예전에 정리가 되었어야 하는데 여지껏 질질 끌고 온 건 아닐까. 적당히 놓아보내주었어야 하는 관계에 억지로 심폐소생을 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누구의 잘못도 아님을 알지만, 그 엄연한 '사실'이 내 마음의 빈 자리를 채워주지는 못한다.
<토이스토리 3>는 대학에 가게 된 앤디가 어릴 때부터 함께 지내 온 장난감들을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담은 애니메이션이다. 마지막 장면에서 앤디는 장난감들을 이웃집 어린 소녀 보니에게 전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카우보이 우디를 비롯한 장난감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고마웠다고.
그리고 떠나는 앤디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우디가 나지막이 읊조리는 한 마디. "So long, partner."
"So long"이라는 문장에는 다른 작별의 인사말과는 다른 무게감이 있다. 저 짤막한 인사에 "너와 오랫동안 함께 해서 정말 좋았어, 언제 우리가 다시 만날지는 모르겠지만 함께 한 시간들 잊지 못할 거야, 고마워."라는 뜻이 함축되어 있는 것만 같다. 이제는 내 아이가 태어나서 이 영화를 보고 즐기고 슬퍼하는 게 더 적당할 나이일 텐데, 왜 내가 아직도 이렇게 마음이 아리는 건지.
이별의 순간이 왔다고 해서 꼭 누군가의 마음이 변질되었기 때문인 건 아니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앤디와 우디의 이별에 남긴 영화평론가 이동진의 짧은 감상평이 무력하게 순응한 채 애써 잊고 지내던 내 마음에 위로를 주었다. 그래, 그저 시간이 흘렀을 뿐임을.
사실 그 녀석과 나의 우정에 작별이라는 말을 쓰기엔 심히 거창하다. 지금이 끝은 아닐 것이다. 우리는 앞으로도 종종 연락을 주고받고, 가끔은 통화를 할 것이다. 때로는 얼굴을 마주보는 날도 있으리라. 하지만 지금은 각자의 삶을 살아야 할 때, 각자의 자리에 충실해야 할 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언젠가는 맞이했어야 할 순간이 온 것 뿐이다.
누군가와 멀어질 때는 이렇게 서로를 떠나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야속하고 섭섭한 마음은 고이 접어 내려놓을 수 있기를 바란다. 네가 내 삶에 있어서 좋았다고, 네 덕분에 그 당시 내가 그토록 빛날 수 있었다고, 네가 있었기에 그 때 그 시절이 나에게 의미 있게 남을 수 있었노라고, 그래서 고마웠다고. 내가 한때 연을 맺었으나 멀어진 많은 이들에게, 특히 옛 연인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그리고 내가 떠날 때 역시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기억하고 보내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작별을 맞이하는 자세가 그 동안 함께 나눴던 연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그 녀석과 다시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언젠가 어떤 계기가 주어진다면, 그건 그만큼 더 흘러간 시간이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리라. 예전과 비슷하지만, 예전과는 다른.
그 때까지 잘 살자. So long, partn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