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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Oct 28. 2021

직장인의 한끼를 책임지는 구내식당 이야기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배가 고프면 의미가 없다는 말이다. 새벽같이 출근해서 하루 종일 고된 일을 하는 산업 역군들이라라면 더 말해 뭐하랴. 우리나라의 경제를 책임지는 수많은 직장인들의 허기진 배를 채우는 곳이 바로 구내식당이다.


구내식당이 음식의 소금처럼 직장인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곳이다. 하지만 구내식당에 대한 기록은 찾아보기 힘들다. 기껏 찾아도 식당내부와 요리 사진을 올린 인터넷 홍보가 대부분이다. 이에 필자는 구내식당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 시화공단(시흥스마트허브)의 한 구내식당을 운영하는 노명순(58)씨를 만나 인터뷰하였다.


노명순(58)씨는 필자가 근무하는 회사에서 이용하는 구내식당을 운영한다. 저녁 배식이 끝나고 낮 시간의 분주함이 사라진  분위기에서 깔끔하게 닦은 테이블에 마주 앉아 구내식당의 이모저모를 들어봤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요?

“새벽 세시 반에서 네시에 부식이 와요. 잠깐 깼다가 여섯시에 일어나요. 아침 식사는 여덟시에 끝나요. 여덟시 반까지 씻고 준비하면 같이 일하는 동생이 여덟시 40분에서 45분이면 출근해요. 그때서부터 다시 전쟁인거야. 점심은 두시에서 두시 반 사이에 끝나요. 그렇게 하고 세시 반이면 또 해야 돼요, 저녁을. 7시 정도면 일과가 끝나요. 심심할 시간이 없어요. 씻고 들어가 티비 보다가 핸드폰 좀 만지다 그냥 자요. 어떤 때는 열시도 안돼서 자나 봐요.”


가족들은?

“나는 여기서 자요. 그래야 아침을 해드리죠. 주중에는 여기에 있다가 토요일 날 점심 해드리고 집에 가죠. 갔다가 일요일 날 오후면 또 와요. 월요일 아침 때문에. 우리는 가족이 셋인데 주중에는 각자 살아요. 남편은 아산에 있고 나는 여기에 있고 우리 딸은 화성 집에 있고.”


구내식당만의 특징이 있나요?

“구내식당이 일반식당하고 다른 점이 있지요. 한식, 중식, 양식 다 할 줄 알아야 해요. 경력이 되니까 하는 거예요. 여기는 음식을 많이 해서 한 번에 내놓잖아요. 뷔페식으로. 일반 식당은 상차림이고. 상대적으로 손이 덜 가고 일이 적어서 가격이 저렴한 거죠.”


메뉴는 어떻게 짜시나요?

“주먹구구식으로 하고 싶지 않아 영양사를 채용했어요. 영양사가 메뉴 다 짜주고 부식을 발주해요. 보통 구내식당은 영양사 채용 안 해요. 나도 사람인지라 힘든 음식, 손이 많이 가는 음식은 피하고 싶어요. 하지만 영양사가 짜준 메뉴에 맞춰 조리해요. 영양사는 상주하지 않지만 팩스, 전화, 카톡으로 이야기를 나누고 조율해요.”

식사는 몇 명이나 하나요? 점심때 특히 붐비지요?

“점심시간 기준으로 볼 때 120명 정도 식사하러 와요. 식비는 4,500원이예요. 회사는 한 여덟 군데 되는 것 같은데요, 가장 적은 데가 두 명, 제일 많은 데는 다 먹으면 35명 정도예요. 많은 인원 있는 데가 없어요. 50명만 넘으면 다 자체 식당을 해요.”

얼마 전이였지요. 점심 시작 시간에 엄청 몰렸어요. 건너편에 있는 회사의 이사님이 식사하러 오신 거예요. ‘이사님 꼭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이렇게 오셨는데 이 시간에 너무 사람이 너무 몰려서 이사님네가 한 십분만 뒤로 미뤄주셨으면 좋겠는데요.’라고 부탁했어요. 그다음부터 그 회사 사람들은 딱 열두시 십오 분에 오시는 거예요. 그래서 조정이 됐지요.

12시 반에 오는 회사도 있어요. 앞에서 배식한 거를 치우고 작은 식기에 다시 세팅해요. 다른 회사보다 늦게 오시니 음식이 부족할 때가 많은데 그렇다고 앞의 분들을 안 드릴 수도 없고. 그래서 식자재를 조금 더 시켜요. 그래서 어떤 때는 냉동실에 꽉 차요.”


공단이라 외국인 노동자도 식사를 하잖아요?

“외국인 노동자는 한 일곱 명 정도 되죠. 미얀마, 네팔, 케냐, 돼지고기 안 먹는 나라가 어디지? 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은 일 년에 한 번인가 기도를 해요. 한 달간. 밥을 안 먹어 가면서. 저녁에 생선하고 야채만 먹어요. 한 번은 주방 입구에 서 있는 거예요. 김 가져간다고.

돼지고기 대신에 닭고기를 많이 써요. 오늘 저녁에도 계란 스크램블 했는데 햄 대신에 닭고기 넣었어요. 햄을 안 먹으니까. 그 나라 사람들은 그런 게 들어있으면 그냥 음료수만 가지고 올라가요. 그러면 나는 또 마음이 아프지. 아홉시까지 일해야 하는데 밥은 안 먹고 그렇게 올라가는구나. 해서 될 수 있으면 몇 명이래도 먹게 하려고 음식을 따로 준비해요. 돼지고기가 있을 땐 계란 프라이 몇 개, 돈까스가 나오면 생선까스를. 잡채, 카레, 짜장도 닭고기를 넣어요. 그 사람들이 알려나 몰라, 이 마음을. 그래도 어느 정도는 알 거예요.”


쓰레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시나요?

“쓰레기 치워주시는 분들 도움을 많이 받아요. 음식물 쓰레기를 앞에 통에 넣으면 차가 와서 실어가요. 한 달에 내가 십삼만 원을 지불하면 너무 깨끗하게 통까지 싹 소독해서 이물질 하나 없이 해 와요. 어휴, 처음에 시작할 때는 그걸 몰라서 음식물 쓰레기를 봉투에 담아가지고 차에다 싣고 가다가 쏟아져서 그걸 세차하고. 한 달 가까이를 그렇게 했어요. 돈을 떠나서 깨끗하게 치워 주시니 그게 너무 고맙죠. 버리는 게 일이에요, 버리는 게.

일반 쓰레기 치워주시는 분은 신천동에서 오신데요. 겨울인가 커피를 드시러 오셨어요. 쓰레기 때문에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러면 쓰레기 여기 앞에다 내놓으세요. 나도 좋고 아주머니도 좋고.’ 식재료 포장 쓰레기는 냄새가 나잖아요. 그래서 매일 버려요, 냄새 안 나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식당이름이 채우미인데 ‘아름답게 속을 채워준다’라는 뜻이에요. 그러려면 청결이 우선이라고 생각해요. 나에게는 완벽주의적인 면이 있어요. 물론 나랑 같이 일하는 사람이 힘들겠죠. 눈에 보이면 그거 빨리 닦고 치워야 돼요. 손 씻는 개수대를 내려고 수도꼭지를 빼놨는데 너무 좁아서 못 놓았어요. 그거 하나만 했으면 완벽한데.”


사람들에게 따스한 끼니를 제공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꼼꼼하게 준비하는 노명순씨. 크게 드러나지 않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그에게 든든함을 느끼며 인터뷰를 마쳤다.

세상에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도 주목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기록에서 제외되기 십상이다. 이 한 편의 글이 시흥시의 어느 곳에선가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사람들을 기억하는 밀알이 되기를 바란다.


시흥스마트허브에는 9,183개 업체에 67,176명이 근무하는 것으로 집계되었다(2019년 6월 기준, 출처 시흥시청 기업지원과). 업체당 평균 7.3명이다. 많은 근로자들이 중소업체에서 일하고 있다는 말이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다. 하물며 하루 종일 힘을 써야 하는 산업역군에게 말해 뭐하랴.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대부분 자체 식당이 있지만 인원이 적은 업체들은 주로 공단 내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해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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