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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티콘 Apr 13. 2022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

리안 모리아티 신작 소설을 읽고

‘잠시 잠적할 거야! 해랑하는 일소낭에 군절 있는 21일 푸락엠에 가할 거야. 나가 호완해줘. 사랑해, 엄마가. (Going OFF-GRID for a little while! I’m dancing daffodils 21 dog champagne to end Czechoslovakia! Spangle Moot! Love, Mum.)’


이해 못할 문자 메시지를 남기고 발렌타인 데이에 갑자기 사라진 엄마 조이 델라니. 엄마가 실종되기 전에 집에 함께 있었던 아빠 스탠 델라니가 살인 용의자로 떠오른다. 사건의 발단은 6개월 전 9월 초에 델라니 부부에게 사반나라는 여자가 갑작스럽게 들게 되면서 시작되었다. 아닌가? 이십여 년 전 혹은 그 이전인 육십여 년 전에 시작되었는 지도 모른다.


낯선 여자 

    

낯선 여자가

내가 나고 자란 집에 있네

그 여자는 내가 버리고 온 

나의 침대에서

잠을 자고

내가 버리고 온

옷을 입고

내가 버리고 온 어머니를 위해

라자냐를 만드네

어머니는 나랑 통화를 하다가도

(여전히 나에게는 어머니에게 할 말이 남았는데도)

그냥 가버리네

그 낯선 여자가

자신에게는 당연히 그럴 권리가 있다는 듯이

단 두 음절로 어머니의 이름을

불렀다는 이유로

나의 어머니의 이름은 조이(Joy)라네

어머니가 낯 선 여자에게

대답하는

목소리에는 온통

기쁨(Joy)이 가득 차 있네

(pp. 191~192)


조이의 이야기


태어났을 때 부모님이 지어주신 내 이름은 조이 마거릿 베커였다. 궁금해할까봐 덧붙이자면 유명한 테니스 선수 보리스 베커하고는 아무 관계가 없다(하지만 나도 테스트 선수였다). 어머니의 이름은 펄이고, ‘아름다운’ 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는 내가 네 살 때 아버지가 우리를 버리고 떠났다는 충격에서 평생 헤어나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친구를 만나러 간다고 했는데, 그 친구가 2,000킬로미터가 넘는 머나먼 북부에 살고 있다는 말씀은 안 하셨다. 

아버지는 집을 나가고 3년 뒤에 ‘주먹질’을 하다가 돌아가셨다. 성질이 불같은 분이었다. 모두들 나를 다혈질이라고 하지만, 나는 단 한 번도 주먹질을 해본 적이 없다. 사람들은 늘 아버지가 나를 사랑했다고 말하지만, 물려준 게 다혈질이라니, 아버지의 사랑을 보여주는 걸로는 아주 우스운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p. 211)


스탠의 이야기


스탠 델라니는 여자들은 말로 피를 낼 수 있는 힘이 있음을 언제나 알고 있었다. 남편과 아들의 부드럽고 바보 같은 무방비 상태의 자아를 절단하는 것이 스탠의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는 취미였으니까.

아버지의 무기고에는 자신을 방어할 수 있는 현명한 말들이 들어 있지 않았다. 그저 잔뜩 겁을 먹고 움찔할 뿐이었고, 아내가 자신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도 영리한 농담을 했다는 듯이 바보같이 웃을 뿐이었다. 아버지는 그저 입을 닫고 침묵했다. 어머니의 심술궂은 말들을 그저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였다. 더는 참지 못했던 그날까지, 아버지는 그저 받아들이고 또 받아들였을 뿐이다.

(p. 557)


스탠은 열네 살 때, 아버지가 어머니를 방에서 집어 던져 의식을 잃게 한 장면을 목격했다. 아마도 스탠의 아버지가 그런 일을 한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것 같지만, 10대 소년에게는 너무나도 끔찍한 경험이었음이 분명했다. 

(p. 54)


열네 살이었던 스탠은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누워 있는 어머니를 향해 달려갔고, 그렇게 한 것은 잘한 일이었다. 언제나 스탠은 자신이 본능에 따라 가장 먼저 한 일은 어머니에게 달려가 어머니와 아버지 사이에 자기 몸을 끼워 넣은 거라고 스스로에게 말하지만, 멀리 날아가는 엄마를 보면서 머릿속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아주 작았지만 너무나도 끔찍하게 엄마를 배신했던 생각임을 절대로 잊을 수가 없었다.

엄마는 당해도 싸.

일흔 살이 된 스탠은 아버지의 엄청난 분노와 굴욕이, 고통과 상처가 가슴 안에서 부풀어 올라 눈 뒤에서 폭발하는 동안 두 손으로 아내의 살을 느꼈다.

(p. 558)


사반나의 이야기


“난 당신들을 모두 기억해요.”

“그날도, 당신은 나에게 고함을 쳤어요, 조이. 지금처럼요.”

“그때 당신은 데님 치마랑 페이즐리 셔츠를 입고 있었어요. 소매가 짧고 풍성한 셔츠요. 빨간 셔츠랑 어울리는 깃털 같은 귀걸이도 하고 있었고요. 정말 예뻤어요.”

“맞아요. 당신도 나한테 고함을 질렀죠, 그날.”

“굶주리고 있었으까요.”

“당신은 이해 못 해요. 난 정말 굶주리고 있었단 말이에요.”

“그날, 당신도 있었어요.”

“나한테 라켓을 던졌잖아요. 떠돌이 개한테 하듯이요.”

“당신은 나를 거지처럼 주방에서 쫓아냈어요. 그때 막 샤워를 하고 나왔었죠. 온통 젖은 채 파란색 목욕 수건을 허리에 두르고 있었어요. 나한테 쓰레기 동물이라고 했어요.”

“아무것도요. 당신의 눈은 나를 관통했으니까, 당신은 그저 나를 못 봤을 뿐이에요. 당신은 해리만 봤죠. 나는 테니스를 하는 아이가 아니었으니까, 당신에게 나는 존재하지도 않았아요.”

“정말로 나쁜 날이었어요.”

(pp. 466 ~ 475)


사건이 시작되고 '델라니 테니스 아카데미'를 운영했던 조이와 스탠, 그리고 네 명의 자녀 사이의 갈등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또한 델라니 식구들과 사반나의 가족들과의 얽히고설킨 과거사가 들춰진다.


제목 '사과는 떨어지지 않는다'는 영어 속담인 “The apple doesn't fall far from the tree.”을 따온 것이다.  속담을 직역해보면 ‘사과는 나무로부터 멀리 떨어지지 않는다’이다. 사과가 떨어져봤자 나무 그늘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말이다. 자식과 부모의 어떤 성격이나 하는 행동이 같은 방식으로 정말 많이 닮았을 때 쓰는 영어속담이다. 부전자전 모전여전이다. 비슷한 우리 속담으로 치자면 ‘피는 못 속인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라고 하겠다.

과연 조이와 스탠이 겪었던 어릴 적의 불행한 기억이 노년의 자신들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 자식들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끼쳤을까? 또 델라니 가족이 한 소녀에게 무심히 저지른 행동이 어떤 결말로 이어질 것인가?

가족 사이에 내뱉는 말 한마디, 타인에게 범한 무심한 행동에 대해 다시금 곱씹어 보게 하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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