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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4. 2020

뜻밖의 소식

검사

 "여보, 나 변을 보는데 피가 나와"


 2014년 2월, 부천 순천향대학병원에 위내시경과 대장내시경 검사를 예약했다. 간혹 술을 많이 마시거나 매운것을 많이 먹은 다음 날이면 혈변을 볼 때가 있었다. 말이 혈변이지 변에 피가 묻어나오는 것은 확인하지 못했고, 그냥 진득한 빨간색 피를 눈다고 하는것이 더 정확할 것 같다. 간간히 있던 일이기에 크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작년 12월 부터는 횟수가 좀 잦아졌다고 생각은 하고 있었다. 화장실에 들어가서 변을 봐도 시원한 느낌이 아니라 뭔가 찜찜했다. 그런 느낌 후에는 반드시 배가 싸르르 아파왔다. 그리고는 피를 봤다. 정확한 증상은 주변사람들에게는 이야기 하지 않았고 그냥 혈변을 봤다고만 이야기 했다. 모두들 '치질'일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치질도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2014년 2월 13일, 검사가 시작되었다. 걱정되는 마음은 별로 없었다. 생전 처음 하는 내시경검사라서 떨렸던 것 외에는 다른 느낌도 없었고 걱정도 없었다.


 "잘 하고 와"


수면 내시경이라 보호자 동반이 필수여서 아내가 함께 가 주었다. 아내가 나를 배웅해 주고, 나는 검사실로 들어가 점점 잠에 빠져들었다.


 "......환자분, 혹시 집안에 대장쪽에 암이 있으신 분이 계십니까?"


 "아니오, 없습니다."


 "......그럼 집안에 암으로 돌아가신 분이나 병이 있으신 분은요?"


 "없는 것 같은데요..."


 언제 마취가 풀렸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나는 분명히 의사의 질문에 대답을 하고 있었다. 불편한 느낌이 항문을 괴롭히고 있었다. 아직 검사가 다 끝난 것이 아닌가보다. 그리고 잠깐동안 또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다시 차려보니, 회복실에서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생각보다 정신을 차리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금방 혼자 옷도 갈아입고 걸어서 아내가 기다리고 있는 대기실에 도착했다. 아내도 크게 걱정했던 눈치는 아니다. 잠시만 기다리라는 간호사의 말에 대기실 의자에서 둘이 장난을 치고 있었다. 검사결과는 분명히 며칠 후에 진료예약을 잡고 듣기로 되어있었다. 그러나 간호사는 우리 둘을 함께 진료실로 불렀다. 그리고 의사선생님과 마주앉았다. 표정이 좋아보이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크게 심각해 보이지도 않았다. 건강관리를 잘못 했나보다 싶었다.


 혼날 각오는 되어있었다.


 "두 분, 잘 들으세요. 검사 결과가 좀 심각합니다."


 "......네......"


 "제 소견으로는 대장암인 것 같습니다. 정확한 것은 조직검사 결과가 나와야 알겠지만, 경험상으로 이정도면 3기일 확률이 90퍼센트 이상입니다."


 "......"


 "그래도 대장암의 경우에는 생존률도 높은 편이라서 수술을 빨리 하고 치료를 해야합니다. 오늘 가족들하고 상의 하시고 바로 입원해서 수술날짜를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맞다.


 이런 장면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봤던 것 같다.


 주인공은 이런 말을 들으면 충격에 빠지던데, 나는 아무 생각이 없다. 아내 얼굴을 봤다. 아내도 나와 같이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것 같았다. 알겠다는 대답을 하고 병원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집에 오는 동안 아내와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집에 도착해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 문을 열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뭔가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더니 이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어떡해..."


 현관문 앞에서 버티지 못하고 아내의 품에서 펑펑 울기시작했다. 내가 울기 시작하니 아내도 자신조차 모르게 참아왔던 그 무엇인가가 터져버렸는지 울기 시작했다. 그 울음이 내 울음을 더 키웠고, 그런 내 울음은 또 다시 아내의 울음을 키우기를 반복하며 우리 둘은 울었다.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그냥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또 흘렀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어떠한 생각도 들지 않았다. 도저히 아내를 처다 볼 수가 없었다.


 "나 일단 좀 자고 일어날게..."


 집에 들어와서 가장 먼저 한 일은 잠자리에 드는 일이었다. 마취는 이미 다 깬 뒤였지만, 그냥 자야될 것 같았다. 완전히 이 몽롱함에서 깨어야 할 것 같았다. 자는 둥 마는 둥 깨어보니 30분 정도가 지나있었다. 아내는 같이 누웠지만 잠이 들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여보, 집에 전화좀 해줘..."


 아내에게 부모님께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다. 도저히 부모님께 내 이 뚫린 입으로 이 사실을 알릴 수 있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 걱정한 나머지 멀리 여수에 계신 부모님이 올라오시다가 사고라도 날까 무서웠다. 자세한 이야기는 올라오시면 하기로 하고 검사결과가 좋지 않으니 빨리 올라와 달라고 이야기했다. 장모님께도 사실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회사에 연락해서 결과가 좋지 않아 추가 검사가 필요할지 모르니 병가를 내겠다고 했다.


 태어나서 32년 만에, 취업을 하고 5년만에, 아내와 결혼하고 8개월 만에,


 그렇게 나는 죄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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