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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avid Nov 25. 2020

지금부터라도

부모님

엄마


"이게, 무슨 일이니..."


 5시간이 넘는 거리를 부모님이 한 걸음에 달려오셨다. 아버지는 담담한 모습이셨고, 어머니 또한 크게 놀란 모습은 아니셨다. 내심 다행이라고 생각을 했지만 죄송스러운 마음 외에는 그 어떤 다른 마음이 들지 않았다.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는데, 어머니의 평정심은 그렇게 오래 가지 못하셨다.


 "어떻게 된거야아!!!!"


 어머니의 울음과 고함으로 시작된 울음은 삽시간에 집안 전체를 집어삼켰다. 오로지 아버지만이 홀로 이 집안이 울음에 삼켜지지 않도록 기둥처럼 가족들을 달래고 또 달랬다.


 "죄송해요...죄송해요..."


 이 말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주님!! 우리 아들 좀 살려주세요!! 주님은 능히! 못하는 것이 없으신 분이 아니십니까!!"


 구구절절히 어머니가 내 손과 아내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의 기도를 하셨다. 내가 아프기 시작하고 나서 지금까지 가장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다. 내가 가족들에게 얼마나 큰 죄를 지었으며, 얼마나 큰 고통을 안겨주었는지 절실히 느꼈다. 앞으로 얼마나 더 큰 고통의 시간들이 펼쳐질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이 울며 슬퍼하는 이유. 집안에 웃음이 사라져 버린 이유.


 그것은 바로 '나' 하나 때문이었다.




지푸라기


 부모님과 장모님의 인맥이 동원되기 시작했다. 검사를 다른 곳에서도 받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판단. 조금이라도 더 큰 병원에서 수술을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다는 판단이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다. 썩은 동아줄이라도 일단 잡아보고싶은 심정이었다.


 여기저기 가족들의 노력끝에 서울대학교병원 암센터에 연락이 닿았다. 순천향대학교병원에서 받는 검사결과를 가지고 서울대학교병원 암센터에 등록을 했다. 진료 예약일 까지는 10일.


 10일?


 그 동안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죄인인 남편과 아들이 있는 이 가정에. 아들의 암으로 슬퍼하는 부모가 있는 이 가정에. 남편의 암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지 못하는 아내가 있는 이 가정에. 10일동안 무엇을 하며, 어떻게 지내야 하는가. 그야말로 1시간이 한달, 하루가 1년 같았다.


 모든 먹거리는 다시 세팅되기 시작했다. 지금부터라도 막아야 한다. 더 커지는 것을 막아야 한다. 더 이상 이 빌어먹을 암더어리가 나를, 내 아들을, 내 남편을 잡아먹지 못하도록 해야한다.


 재미없는 건강식은 이때 부터 시작되었다. 각종 채소, 기름기가 있는 모든 음식들은 철저하게 식탁에서 치워졌다. 운동도 시작되었다. 하루에도 두어번 산책을 나갔다. 30분 이상 걸어서 몸을 따뜻하게 해야 나쁜 세포의 성장을 막을 수 있다.


 나는 말을 잃었다.


 염치가 없었다.


 아내는 그래도 희망을 주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계속해서 괜찮다고,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갑자기 시작된 시집살이도 당황스러웠을텐데, 남편이 이렇게 아픈게 화가 날 법도 한데, 아내는 끝없이 희망을 주며 곁을 지켜주었다. 그래서 더욱 염치가 없었다. 결혼한 지 아직 1년도 채 되지 않았다. 신혼의 단 꿈에 젖어 지난 달에는 태국으로 여행도 다녀왔다. 그리고 아직 그 여행의 추억을 꺼내먹으며 행복해 하고 있었는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이 깨어졌다.


 나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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