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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5. 나 그렇게 반장 된 거야?

미스터리

인생에 치욕스러운 사건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말할 것이다. 6학년 반장이 되었다. 인생은 미스터리다. 최고의 미스터리는 내가 반장이 된 사건이었다. 유달리 내성적이고 말이 없었다. 눈에 띄지 않는 아이였다. 5학년 이후 더 심해졌다.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 않았고, 말도 거의 하지 않았다. 한, 두 명의 친구들과 어울릴 뿐이었다. 신경성 두통과 위장장애로 결석하는 날이 많았다. 반장선거가 있던 날도 복통으로 결석했다. 다음날 엄청난 소식을 들었다. 내가 반장이란다. 도대체 왜? 누가 추천해서? 애들은 왜 날 뽑은 거야? 


선생님은 나보다 더 난감해 보였다. 차별을 대놓고 하는 선생님이었다. 선생님이 예뻐하는 애가 있었다. 누가 봐도 알았다. 모범생인 그 애는 부반장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반장의 부모는 할 일이 많았다. 운동회가 있으면 다른 부모들을 모아 아이들과 선생님의 간식을 준비했다. 학부모회가 어떤 간식을 갖고 오는 가는 선생님들의 자존심 싸움인 듯했다.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어느 반은 햄버거를 돌렸다더라 같은 말이 떠돌았다. 반장의 능력은 부모의 재력과 능력에 따라 달라졌다. 반장은 엄마도 반장이어야 했다. 선생님은 이제 막 선출된 반장을 보고 있었다.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목소리는 기어 들어가고 엄마는 본 적도 없는 아이가 반장이라니. 어떤 핑계를 대서라도 재투표를 하고 싶었을 테지만 나도 선생님도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부끄러워서. 선생님은 마땅한 핑계를 찾지 못해서.


상황이 주어지면 어떻게든 시간은 흐른다. 한 학기를 꾸역꾸역 넘기기는 했다. 몸 둘 바를 모르는 몇 가지의 기억을 남긴 것 빼고는 그랬다. 학급회의시간. 6학년이니 나름대로 형식을 갖추어 개회선언, 안건 제안, 협의, 동의와 제청, 폐회선언의 순서를 흉내 내며 진행을 해야 했다. 이제 조용하고, 작고, 마른 아이가 앞에 나와 “지금부터 학급회의를 시작하겠습니다.”를 외쳐야 한다.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 순간이다. 이제 막 사춘기에 접어든 6학년의 특징은 자기가 아는 것이 전부라는 것, 사람들을 자기만의 기준으로 줄 세워 '자기기만' 또는 '자기 연민'에 빠진 다는 것이었다. '자기 연민에 빠진 어린 새'는 '자기 기만자' 50명의 시선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한마디 못하고 서있었다. 선생님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 했다.  2학기 반장이 될 운명을 타고난 똘망한 아이의 연민을 받으며 앞에서 벙긋거리는 입을 따라 또 몇 마디 했다. 집에는 학급회의를 가르쳐줄 사람이 없었고, 나 또한 찾지 않았다. 


스승의 날 반장 엄마는 일일교사가 되었다. 왜 스승의 날은 1학기에 있는 걸까. 일일 선생님을 해줄 엄마가 없다. 엄마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지만, 여전히 술을 마셨고, 한숨을 쉬었고 어린 새보다 심장이 작았다. 그런 엄마를 아이들 앞에 세울 수는 없었다. 아마 스트레스로 학교에 오기도 전에 병이 날 테니. 호랑이 이모가 대신 나의 체면을 세워주었다. 기억이 맞다면 이모는 그날 자만심과 겸손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는 에피소드와 입담으로 풀어내 친구들을 깔깔 웃게 했다. 1학기 인생 중 그나마 어깨가 펴진 날이었다. 선생님은 심부름을 시킬 때도, 상의를 할 때도 부반장을 불렀다. 유일무이했던 반장 시절은 총애하는 부반장의 방석을 차지한 죄로 좌천되어 멀찌감치에서 둘의 모의 장면을 지켜보는 장면으로 막을 내렸다. 


늘 생각했다. 학교에 결석한 나를 왜 반장으로 뽑았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결론이 나지 않으니 선생님과 나를 골탕 먹이려고 장난으로 뽑은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 반장이었으니 동창회에 더 나가고 싶지 않았다.


     



해피봉은 무언가 생각난 듯 심장 뛰는 눈웃음으로 나를 보며, 하얀 치아를 드러냈다. 

“5학년 때 결국 한마디도 못했는데 6학년 때 또 같은 반이 된 거야. 신이 불쌍히 여기고 다시 기회를 주신 거라 생각했지. 너랑 친해지려고 작전을 세웠는데 실패했어.” 

“뭔데?”

“너는 반장, 나는 부반장이 되는 계획이었어. 용돈이 하루 200원이었거든. 일주일 후에 반장선거가 있다는 거야. 그때부터 용돈을 모았지. 반장 선거날 아침에 막대사탕을 한 봉지 샀어. 우리 분단, 옆에 분단 애들에게 사탕을 나눠줬지. 반장 뽑으라고. 애들은 막대사탕을 받고 얼굴도 모르는 네 이름을 썼어. 네가 반장이 된 거야. 아~그런데 부반장 투표에서 한 표 차이로 졌어. 그래서 실패했지.”     


이런. 맙소사. 나 그래서 반장 된 거야? 치욕스러웠던 사건의 미스터리가 이거였던 거야? 세상에.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한다면 외조의 왕이 되겠군. 그나저나 그때 알았다면 너를 두고두고 저주했을 텐데. 정말 신이 도왔구나. 다행이었다. 아이들이 나를 골탕 먹이려고 반장으로 뽑은 게 아니었다. 내가 앞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을 때 적어도 한 명은 눈에 콩깍지를 쓰고 애정의 눈으로 바라봤겠구나. 50개의 비난의 눈빛 중 하나가 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 

    

인생은 미스터리다. 정말 그렇다. 평생 묻힐 수 있었던 사건의 전말을 이렇게 알게 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을 알고부터 반장이던 순간이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사건만은 아닌 게 되었다. 퍼즐 조각이 하나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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