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크리스마스 캐럴이 들리기 시작하면 우주에 살고 싶었다. 세상 모든 집이 특별한 날 우리 집은 놀랍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유일한 친구였던 TV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크리스마스는 분명 산타가 선물을 가져다주는 날이라고 했지만 한 번도 선물을 받지 못했다. 크리스마스트리 아래 쌓인 선물 보따리를 푸는 장면은 늘 설레었다. 장난감 병정, 공주 옷을 입은 인형을 한번 만져보고 싶었다. 좋아하던 만화에서 봤다. 산타를 만나고 싶던 아이는 커다란 양말을 머리맡에 걸고 잠자는 척을 했다. 결국 아이는 잠이 들고 엄마 아빠를 닮은 산타가 몰래 들어와 선물을 넣어주었다. 그리고 이마에 키스를 하며 말했다. 사랑한다. 내 아기. 메리 크리스마스.
나도 "메리 크리스마스!" 인사를 해보고 싶었다. 엄마 아빠가 선물을 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어느 해 내가 가진 양말 중 가장 큰 양말을 머리 위 장롱 손잡이에 걸어두었다. 양말이 없어서 선물을 안주는 거라고 생각했다. 아침 일찍 눈이 떠졌다. 기대하지 않는 척했지만 쿵쾅쿵쾅 심장이 뛰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홀쭉한 양말을 입구까지 크게 열어 들여다보고, 손을 쑥 넣어 확인했지만 언제나 비어있었다. 한 번은 기적이 일어나길 바랐다. 기적은 없었다. 행복해야 할 거 같은 날이라 더 불행했던 크리스마스. 이후 크리스마스는 아무 날도 아닌 날이 되었다.
해피봉이 물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뭐해?”
“아무것도 안 하지.”
“그럼 내가 갈게.”
“우리 집에?”
“응”
여느 때처럼 조용한 크리스마스 전날. 해피봉이 문 앞에 도착했다는 소리에 마당으로 나갔다. 문틈으로 선명한 빨간색이 보였다. 문을 열고 헛웃음이 나왔다. 산타복을 입고, 빨간 보따리를 멘 해피봉 산타가 눈앞에 서있었다.
'오 마이 갓. 너란 아이는 언제나 상상을 초월하는구나.'
“나 너무 긴장해서 소주 한잔 하고 왔는데 냄새나?”
“아니. 뭐하려고?”
“크리스마스에 산타에게 선물 받고 싶다고 했잖아.”
“그랬지. 어릴 적에. 그 옷은 대체 어디서 난 거야?”
“누나네 어린이집에서 산타 아르바이트하고 빌려왔지. 나 들어가도 돼?”
“글쎄, 엄마가 뭐라 하실지.”
결국 산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방문 앞에 선 산타를 보는 엄마와 여동생의 표정을 보니 무슨 말이라도 해야 했다. 우선 소개를 했다.
“내 친구야.”
해피봉의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저는 산타입니다. 오늘 재미있는 게임을 할 건데요. 게임에 이기시면 선물을 받을 수 있습니다.”
무슨 게임을 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수수께끼, 동작 보고 맞추기 같은 시시한 게임이었던 것 같다. 우리는 서로가 어색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승부욕 앞에서는 가족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네. 게임을 열심히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님. 동생님. 아주 잘하시네요. 마지막으로 종이에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써서 산타 주머니에 넣어주세요.”
맙소사. 같이 있어도 다섯 마디 이상을 주고받지 않는 모녀 사이에 편지라니. 어색함에 온몸이 오그라 들 것 같았다. 엄마와 여동생은 진지하게 써내려 갔고, 산타주머니에 넣었다.
“그럼 제가 하나씩 꺼내서 읽어드리겠습니다.”
그 이후는 설명하지 않겠다.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눈물을 흘리거나 서로 끌어안고 울지는 않았다. 이벤트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아, 시원해.”
해피봉 얼굴에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스웨터에 산타 옷까지 입고 있었으니 얼마나 더웠을까.
"재밌었어?"
산타는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그 순간 알았다. 이 장면은 죽는 날 마지막으로 떠오르는 기억이 될 거라는 걸.
“숲아. 겨울이 되면 그날을 기억해.
겨울이 정말 아프게 추웠는데.
그날 이후 나의 겨울은 따뜻한 웃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