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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14. 유리 집을 깨고

여행

“숲아. 나 길을 떠날 거야.”

“드디어 용기가 생긴 거야?”

“응, 길을 찾아볼게.”

“언제나 곁에 잊어. 잊지 마.”   

       



2014년 봄. 나는 길을 잃었다. 온통 안개뿐이다. 나만의 정원을 떠나온 지 3년이 흘렀지만 여전히 길을 헤매고 있었다. 앞도 뒤도 보이지 않았다. 소녀는 유리 집을 떠난 것을 후회했다.  '떠나는 게 아니었어'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길을 찾을 수 없었다. 숲의 말이 기억났다. “언제나 곁에 있어.” 소녀는 마지막 힘을 다해 소리쳤다.      

“숲아. 나는 길을 잃었어.”

“소녀야, 많이 자랐구나.”

소녀는 몰랐지만 길을 떠나면서 계속 자라고 있었다. 

“정원을 떠나는 게 아니었어. 나에게 길을 알려줘.”

“소녀야, 네 안에 이미 답이 있어.”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공감대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돌봄과 치유를 위한 비폭력 대화라고 했다. 절실했다. 사람과의 단절, 나와의 단절은 더 짙은 안갯속에 가두었고, 우울한 날은 계속되었다. 무기력했다. 동굴에 머무는 날이 많아졌다. 가족도 같이 슬펐다. 아이들과 남편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 했다. 비폭력 대화가 나를 깊이 이해하고 타인과 연결해 준다고 했다. 간절히 바랐다.   

   

“당신은 지금 어떤 느낌인가요?”

“답답하고 막막해요.”     

“왜 그런 느낌이 드나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당신이 정말 원하는 건 무엇인가요?”

“나는 안전하고 자유롭기를 원해요.”     

“당신을 불안하게 하고, 자유롭지 못하게 막는 가장 큰 장애물은 무엇인가요?”


“나요. 나예요.”     

 안개가 걷혔다.  


    



유리 집은 유일한 안식처였다. 그 안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했다. 유리벽은 어디에도 있었다. 사람들은 내 안으로 들어오지 못했다. 외로웠다. 나는 왜 다섯 살이었을까. 아빠에게 매달려 찍은 사진 속 나는 다섯 살이었다. 그때 멈추었다. 불행을 기억하기 전의 나이였다. 유치원에 근무하면서 다섯 살 아이들을 보고 알았다. 어렸다. 보호받아야 했다. 딸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사랑스러움을 보았다. 안아주면 가슴에 안겨 보드라운 숨결이 피어올랐다. 내 안의 소녀가 불쌍했다. 피어올라야 했다.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자신 안으로 꽁꽁 숨어버린 소녀였다. ‘사랑받고 싶었구나. 품이 그리웠구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눈 맞춤해 줄 사람이 필요했구나. 그렇게 너는 숨었구나.’  

   

다시, 정원으로 갔다. 다섯 살의 소녀가 길목에 앉아 있었다.     

“안녕, 소녀야.”

“누구야?”

“나는 너지.”

“내가 그렇게 커?”

“응. 너는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스럽게 자랐어. 많이 아팠지?”

“나는 여전히 아파.”

“내가 안아줄게. 나랑 같이 가자. 여기 있으면 계속 아플 거야. 너도 나도.”

“세상은 무서워. 여기는 외롭고. 나도 행복해질 수 있을까?”

“내가 도와줄게. 해피봉도 있고, 사랑하는 아이들도 있어.”

“그래, 해볼게.”

“할 일이 있어. 유리 집을 깨야 해.”   

  

절벽 위에 유리 집이 있다. 바다를 바라보며 앉아 있던 곳이었다. 

“너는 저 바다로 가기를 동경했지?”

“맞아.”

“우리는 할 수 있어.”

우리는 유리 집을 힘껏 밀었다. 유리 집은 절벽 아래로 떨어졌다. 유리조각이 튀어 오르며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거렸다.     

“안녕!” 

유리 집과 마지막 인사를 했다. 

  

“긴 여행이 될 거야. 잊지 마. 너는 혼자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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