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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13. 두 번째 프러포즈

결혼할까요

"나 결혼할 거야. 프러포즈해줘!"


스물일곱이 되었다. 갑자기 결혼이 하고 싶어졌다. 해피봉은 우리가 만나던 스물넷 해에 첫 번째 프러포즈를 했다. 카페에서 만나기로 한날 꽃다발을 들고 와 내게 결혼하자고 했다. 만난 지 일 년도 안됐는데 결혼이라니. “그래, 언젠가 하자.” 하고 넘겼다. 그 뒤로는 결혼 이야기를 해도 말을 돌렸다. 결혼은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아빠와 엄마의 결혼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좋은 적이 없었다. 그 사이에서 마음을 채울 수 없어 허덕이던 자식들은 사랑을 몰랐다. 


아무리 좋아 결혼해도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게 확실했다. 증거는 주변에 수두룩했다. 일찍 결혼한 친구는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했고, 갑자기 아이를 낳은 친구는 인생이 송두리째 없어졌다고 했다. 계획에 없던 임신을 한 친구는 입덧으로 직장을 그만두고, 승승장구하는 직장 동료들을 보며 자괴감이 든다고 했다. 


세 살배기가 있는 친구와 식당에 갔다. 아이는 잠깐 귀여웠다. 돌아다니고, 물을 쏟고, 졸리다고 우는 통에 밥도 못 먹고 돌아 나오며 절대 결혼은 안 할 거라 생각했다. 행복하다는 친구 집에 가도 마찬가지였다. 아이를 곱게 키우고, 집안일을 돌보며 좋다는 친구를 보니 나는 가정과 아이에게 나눠줄 사랑이 없었다. 결혼을 하면 안 되겠구나 했는데 어느 날 결혼하고 싶다는 마음이 쑥 들어와 나를 재촉했다. 해피봉이면 웃으며 살 수 있을 거 같았다.      

“봉아. 우리 결혼하자. 프러포즈해줘.”     

그의 황당한 표정을 보니 놀라게 하는 데 성공했군. 매번 나만 당했는데.      




동네 레스토랑 룸을 열었다. 웨딩드레스를 입은 풍선 신부가 꽃을 들고 서있었다. 빨간 풍선으로 촘촘히 채워 만든 커다란 하트가 보였다. 풍선에 매달린 줄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우리 결혼할까?”

“그래.”

“이 풍선 만든 거야?”

“응. 신부는 엄청 어렵더라. 아침부터 만들었어.”       


풍선을 보니 웃음이 났다. 몇 해 전 그 풍선을 어떻게 잊을까. 

화이트데이에 우리가 자주 가던 셔먼트리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다. 사당역에서 나와 30미터쯤 가서 왼쪽으로 돌면 보이는 2층 카페였다. 코너를 도는데 카페 2층부터 바닥까지 늘어진 대형 현수막이 보였다. 화이트데이라 행사를 하나 했다. 아니었다. 현수막에는 우리 사진을 배경으로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쓰여 있었다. 하늘 위로는 빨간색 노란색 대형 애드벌룬이 흔들리며 웃고 있었다. 집으로 오는 길, 애드벌룬은 바람을 뺄 수도, 터트릴 수도 없었다. 친구에게 빌린 자동차 위에 동동 매달고 집으로 왔다. 빨강, 노랑 스마일이 도로를 떠다니니 온 동네가 잔치였다.     




프러포즈를 받았으니 결혼을 했을까. 맞다. 우리는 그해 결혼을 했다. 사랑의 조각들을 퍼즐에 채워갔다. ‘그렇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났으면 좋으련만. 여전히 동굴을 오갔고, 숲의 소녀는 소녀였다. 지켜야 할 것이 많아진 나는 유리 집 안에서 더 예민하게 세상을 관찰했고, 유리벽은 더 두꺼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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