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12. 다시 우리를 이어준 건

술주정

6개월이 지났다. 동굴 생활은 일상을 찾아가고 있었고, 감정은 병에 담아 유리 집 더 깊은 곳에 감추었다. 행복, 기쁨, 놀람이 사라졌지만 절망, 두려움, 불안에 대한 감정도 무뎌졌다. 그래야 살았다. 그동안 해피봉은 잘 지내고 있다며 웃는 사진을 보냈다. 몸은 반쪽이 되어가고 있으면서. 다시 만날 용기가 나지 않았다. 반복할까 두려웠다. 두 번은 이별할 자신이 없었다. 그와 헤어지고 수지로 이사를 갔다.     

 



 엄마가 봉천역 1번 출구 앞에 쓰러져 있다. 눈이 펑펑 내린다. 이런 날은 내 주먹을 그의 손으로 감싸고 호호 불어주었는데. 쓸쓸한 눈이 세차게 내린다. 엄마 친구에게 전화가 왔었다. 엄마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정신을 못 차린다고 했다. 내가 나타나자 엄마 친구는 짐을 떠넘기듯 가버렸다. 엄마 앞에 한동안 서 있었다. 놀랍지는 않았다. 봉천동에 살 때는 매일 마시더니 수지로 이사 가면서 뜸해진 대신 이렇게 몰아서 마셨다. 다른 때는 택시라도 태워 보내더니, 오늘은 감당이 안 됐나 보다. 그렇겠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늦은 밤 눈 오는 길을 서둘러 가던 사람들이 흘낏흘낏 쳐다본다. 학교 친구, 교회 사람들 가장 많이 다니는 길목이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발을 자박자박 움직이며 생각했다. 술 취한 사람이 얼마나 무거운지 들어본 사람만 안다. 그 작은 체구를 넷이 들어도 꿈쩍도 안 한다. 도울 사람을 찾아야 했다. 유일한 한 사람이 떠올랐지만 차마 전화를 할 수 없었다.   

  

10분이 채 되지 않아 그가 왔다. 눈길에 미끄러지는 줄도 모르고 달려왔다. 눈물이 났다. 

“미안. 엄마가.... 무거워서 나 혼자 못 들어서. 부를 사람이 너밖에 없어서.”

“응. 그래. 잘했어. 춥다. 어서 가자.”     

택시를 잡고, 그가 엄마를 업어 차에 태우고 따라 탔다. 

“택시에서 내리면 모시고 올라가야 하잖아.”     

말하지 않아도 내 속을 훤히 보는 사람이었다.




연애 초 봉천에서 과천으로 출근을 했다. 잦은 야근에 아침도 못 먹고 지하철역으로 뛰어다녔다. 지각하지 않을 만큼 아슬하게 올라타 숨을 돌리면 전화가 왔다.      

“어디야?”

“봉천역. 겨우 차 탔어.”

“아침 먹었어?”

“당근 못 먹었지.”

“배고프겠다.” 

    

사당역이다. 세 정거장을 서서 졸다가 내리는 문 앞에 섰다. 열차가 역으로 천천히 들어가고, 뛸 준비를 하며 가방을 단단히 들었다. 문이 열리고 나가려는데 “어! 해피봉이다.” 해피봉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안녕.”

“하. 뭐야? 내가 이 문에서 내리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럴 거 같았어. 내가 예지력이 있잖아.”

“어디서 오는 거야?”

“학교 버스 기다리는데 너 배고플까 봐. 이것만 주고 가려고.”


내 손에 쥐어준 검정 비닐봉지에는 포장마차 토스트와 바나나우유가 들어 있었다. 아직 뜨거운 걸 보면 품에 품고 있었을 거다. 너는 그런 아이였다.     




택시가 아파트 앞에 멈추었다. 엄마를 다시 업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신발을 벗기고, 이불을 펴고, 엄마를 눕히고. 그사이 미동도 없던 엄마가 갑자기 불렀다.     

“봉아.”

“네, 어머니.”

“왜 이렇게 오랜만이야. 자주 보자.”

“네.”     

해피봉은 엄마를 끌어안고 토닥토닥해드렸다. 그 모습이 낯설었다. 엄마를 안아본 기억이 없었다. 엄마는 집을 나갔다 다시 돌아왔지만 마음으로는 돌아오지 못했다. 나는 여전히 버림받은 아이였다. 엄마는 다시 잠이 들었다.  

         

 “고마워.”

“괜찮아. 이런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

“차도 끊겼는데 자고 가. 

눈도 많이 내리고. 

내일 밥 사줄게.”     


네가 좋다.


         

이전 12화 11. 신발을 선물하면 어떻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