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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11. 신발을 선물하면 어떻게

이별

“소녀야. 왜 슬픔을 안고 있니?”

소녀는 유리 집 벽에 이마를 대고 웅크리고 앉아 밖을 응시하고 있었다. 숲이 말을 걸었다.

“숲아, 역시 내 말이 맞았어.

난 다시 불행해졌어.”    


 




나는 주기적으로 끝없는 우울로 떨어졌다. 가을로 넘어갈 무렵 팔을 들 수도, 몸을 일으켜 앉을 수도, 고개를 돌리기도 힘들었다. 땅이 온 힘을 다해 잡아당기는데 죽을힘을 다해 버티는 사람 같았다. 커튼을 치고, 깜깜한 방 침대에 가만히 누웠다. 깜깜한 동굴이다. 그런 모습은 아무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잘 웃고, 에너지 넘치고, 무슨 일이든 잘하는 사람이고 싶었다. 우울하고 힘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면 모두 나를 떠날 것 같았다. 

직장에 가기 위해 나를 일으켰다. 옷으로 변장하고. 화장으로 가면을 쓰고. 거울에 어둠을 남겨두지만 바로 따라붙었다. 어기적어기적 유치원에서 억지웃음을 짓고 동굴로 와서 깊은 잠에 빠지곤 했다. 나는 일상을 유지하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썼다. 종일 피 터지게 싸운 사람처럼 살이 빠지고, 입안이 부르텄다. 속이 쓰리고 머리가 아팠다. 울 수도, 웃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는데 물먹은 이불처럼 무거웠다.     


“숲아, 한동안 괜찮았는데. 조절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결국 다시 여기로 왔어. 예민하고, 볼품없고, 가치 없고, 우울해. 사람은 누구나 밝고 잘 웃는 사람을 좋아해. 내가 괴물에게 끌려가 동굴에 있어야 한다는 걸 알면 해피봉도 떠날 거야. 누군가 내 곁을 떠나는 걸 보고 싶지 않다. 내가 먼저 떠나는 게 좋겠어. 역시 혼자인 게 어울려.”

“혼자가 어울리는 사람은 없어. 해피봉은 다르지 않을까? 네가 말해준 해피봉은 좋은 사람이었어.”

“우리 엄마도 좋은 사람이야. 그리고 나를 낳았지. 그리고 버렸어.”     


눈을 감으면 잠을 자는 건지 영혼이 몸에서 나오는 건지 몽롱한 상태로 꿈을 꾼다. 마음이 우울하면 반복해서 꾸는 꿈. 바다가 보이는 언덕에 앉아 모래사장에서 노는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다정한 바다도 거칠어진다. 파도가 일렁이며 높아지더니 모래성을 삼킬 듯 빠른 속도로 밀고 들어왔다. 피할 틈도 없이 모래성과 아이들을 삼켰다. 좁고 길게 바다로 나 있는 절벽 끝에 사람들이 서 있다. 땅이 갈라지고, 사람들이 바다로 떨어졌다. 남은 사람이 손을 뻗어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파도가 땅을 갉아먹으며 남은 사람들도 삼켰다. 바다는 내가 앉아 있는 언덕까지 몰아쳐 나무를 삼키고, 마을을 삼키며 무섭게 달려왔다. 뒤를 돌아보며 도망갔지만 이내 도로까지 깊이 스몄다. 물이 턱까지 차오르고, 죽을 것 같은 두려움이 코앞에 느껴질 때 소스라치게 놀라며 눈을 떴다. 같은 꿈이다. 잠드는 것도 무서워지면 몸을 잔뜩 웅크리고 옆으로 눕는다. 괴물이 이번에는 언제쯤 놓아줄까.     




“유미야.

잠깐 나와봐.”     

전날도 해피봉에게 짜증을 냈다. 짜증은 불규칙했다. 아니, 규칙이 없었다. 어제는 괜찮았던 말이 오늘은 아니었다. 해피봉은 가만히 옆에 있었다. 짜증보다 더 난감한 건 울 때였다. 여자가 울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안절부절못했다. 그때도 그냥 옆에 있었다. 그런 날이 되풀이되던 어느 날. 해피봉이 왔다. 문을 열자 나를 훔친 미소가 여전히 서 있었다.      

“잠깐 걸을까.”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바람이 볼살을 스치고 지나갔다. 하늘이 서서히 저녁노을로 물들었다. 좋아하는 계절이 오고 있구나.     

“ 우리 헤어지자.”     

사랑하지만 사랑하고 싶지 않다. 사랑도 사치다. 먼지 같은 감정까지 쓸어 모아 나를 견뎌야 했다. 감옥 같은 동굴에 해피봉을 끌어들일 수 없다. 거짓말이다. 그냥 쉬고 싶었다.     

“왜.”

“너를 봐도 더 이상 떨리지 않아.”

“사랑은 노력하는 거야. 어떻게 매일 떨려.”

“그냥 좋은 거지 노력하면 그게 무슨 사랑이야.”

“힘들구나.”     

“선물사 왔어. 볼래?”

헤어지자는 사람에게 선물을 내미는 너는.

받을 수 없었다. 해비봉은 박스를 꺼내어 내밀었다.

깊은 숨과 얕은 웃음. 뚜껑을 열었다. 바닥도 끈도 하얀 운동화였다.     

“신발을 선물하면 어떻게. 신발 사주면 헤어진다는 말도 몰라? 그러니까 우리가 헤어지지.”

해피봉은 말없이 운동화를 꺼내어 발 앞에 놓았다. 신발을 보는데  너의 등이 쑥 들어와 운동화를 하나씩 신겨주었다. 먼 길 가려는 내게. 넘어지지 말라고 끈도 꽉 묶었다.     

“괜찮아지면 이 신발 신고 다시 나한테 와.”     


가슴이 울었다.

원통해서 울고,

서러워서 울었다.

천둥 치듯 울었고,

폭포같이 울었다.    

 

"숲아~~~

숲아~~~

숲아~~~     

그가 떠났어."  


나는 매일 혼자가 되는 연습을 했다. 혼자가 되었을 때 슬프지 않도록, 혼자가 익숙해지도록 그 쓸쓸함을 계속 연습했다. 마침내 혼자가 되었다. 하나도 익숙하지 않았다. 더 깊은 동굴로 들어갔다. 이제는 괴물이 어디로 끌고 가 휘둘러도 상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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