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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Oct 24. 2021

9. 겨울에 태어난 아이

선물

해피봉 집은 바로 옆 골목이었다. 1년이 지나고, 두 번째 겨울. 우리는 “유미야~”하면 들리는 거리에 사는 진짜 동네 친구이자 연인이 되었다. 해피봉은 시 쓰기를 좋아했다. 나를 기다리며 시를 끄적여 읽어주곤 했다. 시처럼 지낸 1년은 짧지만 많은 것이 녹아들어 갔다.    


   



“유미야. 나와봐. 갈 데가 있어.”     

밤 11시.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고, 현관문을 여는데 함박눈이다. 눈이 내리면 강아지처럼 좋아하는 내 손을 잡고, 골목으로 뛰어 나갔다. 여행코스는 점점 길어졌다. 관악구청까지 10분. 서울대학교 정문까지 20분, 신림동을 돌아 집까지 30분. 버스 열 정거장은 되었다. 서울대로 가는 길은 사람이 잘 다니지 않았다. 우리만의 덕수궁 돌담길이었다. 함박눈이 가로등 불빛에 반짝거렸다. 런웨이에 화이트 카펫이 깔렸다. 발 도장을 하나씩 찍는 일은 달 착륙처럼 거룩했다.   

   

서울대를 지나 평소 가지 않던 길로 데려갔다.

 “어디 가는 거야?”     

작은 산을 오르고 있었다. 손을 꼭 잡았다. 얼마 오르지 않아 눈으로 뒤덮인 공터가 나왔다. 

“여기 잠깐 있어 봐.”

“어디가, 나 무서운데.”    

 

봉이는 산에서 겪은 일을 알고 있었다. 내 안에서 천만년 화석이 된 이야기를 처음으로 꺼내던 날, 봉이는 말없이 나를 안아주었다. 그리고 오랫동안 내 등을 쓸어주었다. 12살 이후로 산에 가지 않았다. 영화에서도 산이 나오면 눈을 돌렸다. 빨리 돌아가야 하는 곳이었다. 꿈을 꾸었다. 나무들이 포개지며 만드는 어둠이 두려웠다. 누군가 숨어서 나를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나뭇잎이 흔들리며 바스락거리는 소리는 소름 돋았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붙잡고 도망가야 했다. 바람이 얼굴, 목덜미를 스치면 식은땀이 났다.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는 발을 떼어내려 안간힘을 썼다. 뒤를 돌아보며 버둥대다 검고 거대한 기운이 나를 덮치면 소리 지르며 잠이 깨곤 했다. 


 “유미야.”     

“선물이야.” 


빨간 리본을 턱에서 머리 위로 묶었다. 꽃받침을 하고 웃으며 얼굴을 흔들었다. 얼굴만 한 리본이 같이 흔들렸다. 나를 너에게 줄게. 가로등 아래 네가 서있다. 네가 서 있으면 빛이 된다. 눈이 내려앉으면 나무들이 포근하게 감싸준다. 나뭇잎이 손을 흔든다. 땅이 반짝거린다. 나무 사이를 뚫고 네가 활짝 피었다.  


꽃받침을 하고 
웃는 너는
꽃이구나
내게 온 꽃


나도 어느새 시인의 마음이 되었다. 

"나 안아줘. "내가 말했다. 그는 나에게로 와 나를 감싸 안고 등을 쓸어주었다. 향기가 났다.


     



"기다려봐."

또 어디를 가나. 나는 웅크리고 앉았다. 작아진 나를 감추기 위해 원래 그러려고 한 것처럼 바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두번째 손가락 끝이 눈에 닿을 때 마다 스르르 녹아 없어졌다. 눈이 내려 지우개가 되면 다시 쓰고 쓰면서 봉이를 기다렸다. 해패봉이 뛰어왔다. 손에는 쌀 포대가 들려 있었다.      

“여기 앉아 봐.”     

평평한 땅에 포대를 놓더니 앉아서 꽉 잡으란다. 책상다리처럼 포개 앉아 포대의 앞 모서리 가운데를 단단히 잡았다. 

"출발한다."

해피봉은 뒤로 돌아 포대 모서리를 잡고 달리기 시작했다. 바닥에 눈길이 생겼다. 야호. 차가운 겨울바람이 얼굴을 세차게 때리는데 밉지 않았다. 다음은 상급 코스. 작은 언덕에 포대를 깔았다. 봉이가 앉고 그 앞에 내가 앉았다. 나를 감싸 포대 앞 모서리를 잡고 발로 바닥을 힘껏 밀었다. 미끄러진다. 내려간다. 돌덩이에 걸려 엉덩이가 덩컹하면 소리내어 웃다가 중심을 못 잡고 옆으로 쓰러졌다. 그렇게 놀고 있으니 산이 산 같지 않았다. 자유롭게 날았다. 



    

    



겨울에 태어난 아이  
  
                                       해피봉   


눈처럼 맑은 눈의 아이
노을처럼 슬퍼하는
별처럼 여린 마음 이어라.

손을 주고 싶은 소녀여
하늘의 별과 같아라.

떨어지는 별로 가슴 아프지 말고
가슴에 받아 별처럼 빛 나여라.

가슴을 주고 싶은 소녀여
하늘에 별과 같아라.

별똥의 탄재를 생각지 말고
맑은 별빛만을 생각하여라.

눈처럼 맑은 눈에 
반짝이는 별만을 간직하여라.

겨울에 태어난 소여여
너는 항상 빛 이어라.



반짝이는 별만을 간직하여라....


나는 그렇게 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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