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의 고정관념을 깨는 놀이
유아교육을 전공한 나조차도 아이가 태어나면서 어떻게 해야 잘 키울까 불안한 마음에 ‘좋다’는 교구를 사주고, 육아법에 관한 영상을 찾아봤다. 아이를 키운다는 건,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되지만, 그 마음이 때로는 아이보다 한 발 앞서 나간다.
“잘 놀게 해주고 싶어요.” 부모들의 진심은 분명하지만, 어느 순간 놀이조차도 ‘시켜야 하는 것’이 되어버린다. 놀이터에 나가서도 아이가 혼자 노는 게 불안해 말을 걸고, 규칙을 알려주고, 정답 같은 놀이 방법을 가르쳐주려 한다. 나도 그랬다.
하지만 아이는 달랐다.
아이들은 정해진 놀이보다 스스로 만들어낸 놀이에 훨씬 더 오래, 깊이 몰입했다.
이 날의 몰입을 5년이 지난 지금도 잊지 못한다.
끝방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만들어준 2층 침대가 있는 두 아들의 방이었다. 매일 무언가 놀이를 만들어 놀지만 이 날의 웃음소리는 유독 컸다. 궁금한 마음에 숨을 죽이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이건 뭐지?'
상상치 못한 광경에 2층부터 아래로 유심히 관찰했다. 2개의 목발이 태권도 끈으로 2층 침대에 묶여 있다. 6살 동생은 목발의 모서리를 잡고 아래 형을 내려다본다. 끈은 아래에 펼쳐진 담요의 모서리에 연결되어 있고 11살 형이 그 안에 앉아있다. 형이 “지금이야!” 하고 외치는 순간 막내는 진지한 얼굴로 목발을 아래로 눌러 내린다. 목발이 지렛대처럼 기울면서 끈을 잡아당기자 담요가 바구니 모양이 되었고, 형이 잡혔다.
웃음이 터졌고, 다시 담요를 펼치고, 형과 동생이 위치를 위아래로 바꾸며 목발의 각도를 조정하며 실험은 몇 번이고 반복됐다.
처음엔 헛돌고, 끈이 미끄러지고, 담요가 한쪽만 올려지며 실패를 반복했다. 하지만 그 실패들이 아이들의 놀이를 멈추게 하진 않았다. 오히려 더 오래, 더 집중해서 해결 방법을 찾아갔다. 끈의 길이, 목발의 위치, 지렛대의 균형점… 마치 작은 실험자처럼, 아이들은 놀이 속에서 배우고 있었다. 그건 가르쳐서 되는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의 만들어내는 놀이는 참 신선했다. '어떻게 저 물건을 저렇게 쓸 생각을 했을까' 하는 놀라움으로 어김없이 낡은 고정관념을 깨부수곤 했다. 아이들은 일상의 물건을 놀이의 도구로 전환했고, 방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실험실로 만들었으며, 규칙조차 자기들이 직접 설계했다. 이 놀이는 진짜였다.
이런 놀이는 어른이 설계할 수 없다.
아이들은 어른들이 흔히 가진 세 가지 고정관념을 날마다 깨뜨리며 논다.
하나, 공간은 정해진 대로 써야 한다는 생각.
둘, 물건은 설명서대로 써야 한다는 믿음.
셋, 놀이엔 규칙이 있어야 한다는 고정관념.
어른이 정해주는 공간, 어른이 정해주는 쓰임, 어른이 정해주는 규칙… 그 모든 걸 벗어날 때, 아이는 비로소 자기만의 놀이를 만든다. 그리고 그 놀이는 상상 너머로 확장된다. 무엇을 배웠는지 묻지 않아도 그 순간 아이는 배움의 주인이고, 세상을 탐험하는 창조자가 된다.
놀이는 가르칠 수 없다.
창의성을 위해 관점을 전환하라고 말하는 세상에서,
아이들은 활짝 열린 유연한 시선으로
세상을 탐험하고, 발명하고, 실험하며 스스로 자란다.
'어떻게 해야 아이가 잘 놀게 할 수 있을까?'
어쩌면 질문의 시작이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다.
놀이를 교육하려 하지 말고, 아이의 놀이를 따라가면 좋겠다.
아이들이 만나는 일상의 사물과 시간과 공간을 있는 그대로 건네주고,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아이의 손에 맡기면 그 손끝에서 태어난 놀이는, 교과서보다 더 오래 기억될 것이다.
아이의 놀이를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어른일지 모른다.
아이가 만들어야 진짜 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