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보다 웃긴 중학교 2학년 현실 학교 생활
요즘 뉴스에 나오는 학교 이야기는 연일 시끌시끌하다.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하고,
교권 추락으로 교사들이 시위하고,
고교학점제로 자퇴생이 늘고,
사교육 과열이 심각하다는 보도까지.
하지만 정작 학교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아이들에게 무엇을 가르쳐야 하는지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다.
그 와중에도 매일 교복을 챙겨 입고
지각 3분 전에 뛰어나가는 우리 집 중2 남학생의
학교생활은 날마다 크고 작은 에피소드로 가득하다.
수업 시간, 쉬는 시간,
동아리, 체육, 행사까지—
아이들에게는 매 순간이 ‘그저 하루’일지 몰라도
그 하루하루는 담장에 핀 꽃처럼 작고 파릇하고 선명하다.
어느 저녁 식탁에서
영어 시간에 있었던 이야기 하나에
가족들 모두 웃느라 밥을 못 먹었다.
사건은 이랬다.
장소 : 중학교 2학년, 영어 하(下)반 수업시간.
등장인물 :
영어 선생님
동구: 중1 영어시험 7점을 받고 ‘하반’ 으로 배정된 친구
민노랑(가명) : 중1 내내 잠만 자다가 중2되어 열공 중인 학생
이영빵(가명) : 중1 때 모든 선생님에게 문제아로 찍혔다가, 2학년엔 반장이 된 우리 아들
영어T: “ '~한', '~하는', '~ㄴ'으로 끝나는 단어는 형용사라고 생각하면 돼.”
동구: “선생님! 그러면 ‘당근’도 형용사인가요?”
(교실 정적 → 여기 저기서 키득키득!)
민노랑: “야~ 그러면 나는 ‘민노랑’인데 ‘ㄴ’ 들어가니까 형용사냐?”
동구: “야. 바보냐. 니는 'ㄴ'이 앞에 들어가잖아~ 너는 부사지.”
이영빵 : ......
교실은 더는 참을 수 없는 박장대소가 터졌다.
이 이야기로 우리 가족도 며칠을 웃었다.
우리 아들은 이영빵이다.
작년엔 학교에서 종일 잠만 자고, 이동 수업도 놓치고,
모든 선생님들에게 찍히고 2학년에 영어 하반이 되었다.
그랬던 아이가 2학년이 되더니
“나는 공부 잘하는 인기남이 될래.”
스스로 설정을 바꾸고 반장이 되었다.
중2병으로 방황을 시작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시기.
우리 아들은 스스로 범생이로 전환했다.
그 동기가 뭐였는지는 나도 모른다.
우리가 한 건 그저,
중1 담임 선생님과 남편이 절친이 된 것뿐이다.
(지각과 결석이 많아 거의 매일 통화한 덕분이다.)
야단치지 않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주고,
맛있는 걸 해주고,
아이가 다시 돌아왔을 때 관계가 상하지 않도록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 애썼을 뿐이다.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게 원인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그렇게 해도 굳게 닫힌 문 앞에서
눈물 흘리다 분노로 번지는 부모를
너무도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그저, 아이의 때가 된 것이겠지.
뉴스는 대치동의 선행 열풍과
사교육 경쟁으로 시끄럽다.
하지만 숨어서 한숨 쉬는 많은 부모들은
중2병, 사춘기로 방황하는 아이들로 인해 마음 아파하며
우리 아이가 학교만이라도 잘 다녔으면 한다.
나는 애초에 대학을 내려 놓았다.
좋은 대학은 부모도 함께 가야한다.
아이를 대학에 보내려면 영어유치원, 선행학습, 책육아,
그 모든 걸 일찍부터 시작해야 한다.
부지런한 부모는 아이가 부담되지 않도록 일찍부터 습관도 잘 들여주고 학습도 잘 챙겨주고 학습 습관이 쌓여야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다. 아이의 꾸준함 만큼 부모의 꾸준함도 중요한 일이었다.
나는 게으른 부모였다.
처음에는 자책도 많았다.
첫째 딸은 뒤늦게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하는 마음에 밀어넣다가 부작용에 혼이 났다.
그래서 둘째는
일찍 내려놓는 대신
나와 아들의 강점을 살려보기로 했다.
우리의 강점은 잘 노는 것이었다.
놀이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찾아봤다.
그런데 대부분은 영유아 놀이 이야기뿐.
청소년의 놀이는
도무지 방법도, 안내도 없었다.
아들에게 배우기로 했다.
아들은
학교생활도 일종의 놀이, 게임처럼 생각하는 듯 하다.
자기만의 규칙을 만들어
생활은 이렇게,
공부는 저렇게,
애니메이션 캐릭터처럼 자신을 설정하고
그걸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지난 주는 중간고사였다.
아이는 학원을 다니지 않는다.
아이의 모든 학습은 선생님들과 친구에게서 온다.
모르면 선생님께 묻고,
1학년 때 놓친 수학은
그때 공부 열심히 했던 친구를 붙잡고 배운다.
성적이 잘 나오지는 않았지만
노력하는 태도를 마음껏 칭찬해주고 싶다.
하지만 노력만으로는 어려운게 현실이다.
아이는 예고에 가고 싶어 한다.
그런데 예고도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걸 들은 모양이다.
1학년 때 다 놓았으니, 자신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한다.
나는 말했다.
"다른 길이 있을거야!"
시스템을 바꿀 순 없다.
그러니 나는 지금 이 아이의
행복과 자존감, 자기주도성을 지켜주고 싶다.
학교가 아니더라도
이 아이가 자기 길을 찾아갈 거라고 믿는다.
다행인건 중학교 2학년인 지금도
아들은 자발적으로 잘 놀고 있다.
유치원과 학교에서
‘놀이를 제공하는 교육’에 대한 가이드는 있지만,
‘아이 스스로 놀게 하는 방법’은 없다.
아이들은 점점 놀이를 잃고 있다.
교육에서 놀이가 왜 중요한지를
설득해야 하는 사회가 안타깝다.
놀이의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재미다.
재미가 있어야 논다.
반대로 말하면,
재미가 있다면 학습도 놀이가 될 수 있다.
놀이에 몰입해본 경험이 있는 아이는
진정으로 재미있는 일을 찾으면 스스로 몰입할 거라 믿는다.
시험 전날 아침에도 중2 아들은
역사 시험 범위인 4대 문명의 스토리를
게임 시나리오처럼 신나게 말하다가
학교에 갔다.
부모가 성적에만 제한을 두지 않으면
아이는 선택지가 많아진다.
공부법도, 길도, 가능성도 다양해진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하지만 아이의 목적지는
‘행복한 삶’이지
‘서울’은 아닐지도 모른다.
좋은 대학 = 행복한 미래라는
잘못된 공식을 버리면,
아이의 인생엔 훨씬 많은 선택지가 생긴다.
아이는,
모로 가도
자기만의 행복한 길을
스스로 찾아갈 것이다.
어른이
방해하지 않기만 한다면.
시험 당일.
공부는 다 못했지만
가방엔 컴퓨터 사인펜 30개,
수정테이프는 1박스.
안 챙겨온 친구들 나눠주겠다고
가득 챙겨 간 아들은
오늘도 자발적 반장이다.
성적은 놓치더라도
자기 사람은 절대 안 놓치는 아이.
그런 아들이 좋다.
나는 오늘도,
그런 아이를
믿고, 기다리고, 웃으며 바라본다.
세상은 성적표를 먼저 보겠지만
나는 오늘도
그 아이의 손에 들린 사인펜을 먼저 본다.
그게,
이 아이의 진짜 가능성 같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