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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리스러브 이유미 Aug 21. 2022

「눈송이를 미치게 기다리다.」 글쓰기가 테라피인 이유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를 읽고

감성이 메말라 간다. 시간을 쪼개서 계획을 세우고 체크리스트를 하나씩 지워가며 열심히 살고 있지만 이유 모를 갈증이 짙어지고 있을 때 띠지의 글에 이끌려 책「 매일 읽는 헨리 데이비드 소로 」를 펼쳤다.


계절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라.
봄과 함께 초록으로 자라고 가을과 함께 황금 빛으로 익어라.




지금부터 쓰는 글은 글을 쓰려고 시작한 글이 아니라, 책을 읽다가 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어 컴퓨터에 앉아 써 내려가는 글이다. 다소 거칠고, 맥락이 없고, 정돈되지는 않더라고 내 안의 날것을 그대로 볼 수 있으니 내게는 좋은 글이다. 물론 발행하기 전데 고치고 또 고치겠지만 날 것의 메시지들은 그대로 남겨둘 것을 미리 다짐하고 글을 시작한다.



 '프랑스 혁명가'라는 말이 떠오르게 하는 흑백의 사진과 문장.(소로는 프랑스 출신은 아니다. 흑백 사진이 주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뜻이다. '프랑스'와'혁명가'라는 언어 자체가 주는 고풍스러움이 그렇다.) 


"계절이 흘러가는 대로 살아라.

봄과 함께 초록으로 자라고 가을과 함께 황금 빛으로 익어라."


나는 이 말을 씹고 또 씹었다. 그리고 이어지는 서문의 시작.

오늘날 우리는 시계와 달력으로 조정되는 삶을 산다. 시간은 매우 작은 단위로 쪼개져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사회생활을 조절한다. 그러나 헨리 데이비드 소로는 시계와 달력을 이용해 흘러가는 시간을 나누고 통제하려는 현대성에 저항했다. 그는 현존하는 시간을 펼쳐서 탐구하고자 했다. 죽은 듯 무감각한 시계가 아닌 살아 있는 해시계로, 인공적인 시간이 아니라 계절들이 활기차게 도착하는 매 순간을 세상에 알려 주는 시계로 주의를 돌렸다.  


이 책은 헨리의 일기를 엮은 책이다. 제목에 "매일 읽는"을 자연이 주는 시계를 따라 선물처럼 하루를 받아 누리라는 뜻으로 받았다. 나는 매일 이 책을 한 장씩 읽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또 지키지 못했다. 벌써 4페이지를 넘기고 있다. 그 짧은 문장 속 단어들이 마치 얼음물속에 던져진 것처럼 정신을 깨우고, 굳어있던 오래된 쳇바퀴를 다시 돌리듯 무겁게 생각을 움직이게 하고 있었다. 감탄과 전율로 언어에 매료되어 멈출 수가 없다. 글을 쓰고 싶다. 욕망이 솟구친다. 나는 이제 겨우 글을 쓰기 시작한 애송이인데 윌든을 쓴 핸리의 글을 탐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일기를 이렇게 쓸 수 있을까.



글쓰기 책을 많이 읽었다. 공통적인 몇 개의 원칙이 있다. 그중 하나가 "설명하지 말고 보여줘라."이다. 묘사를 하라는 뜻이다. 독자가 글이 주는 현장에 있는 것처럼 경험하게 쓰라는 말이다. 묘사는 아주 자세하고 길게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사진으로 찍으면 한 컷인 장면을 하나하나 설명하자면 A4지 한 장도 부족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책은 두세 줄에 나를 그곳으로 데려다 놓는다.


코트 소맷자락에 내려앉은 눈송이를 유심히 보았을 때 그것은 완벽한 결정체였다. 여섯 개의 빛살이 뻗어 나간 별 모양으로, 마치 바큇살이 여섯 개인 납작한 수레바퀴 같았다. 가운데에서 빛나는 스팽글 주위로 각각의 바큇살들이 작은 소나무의 모습으로 완벽하게 배열되어 있었다. 이 작은 수레바퀴들이 하늘에서 벌어진 전투에서 부서진 전차들처럼 아래로 떨어진다. 우리는 보석으로 된 눈과 비를 맞는다. 19p


이 글을 보고 나는 눈송이를 미치도록 기다리고 있다. 눈송이 가운데 빛나는 스팽글 주위로 소나무 모양을 완벽하게 배열된 수레바퀴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하늘에서 무수히 떨어지는 보석을 상상하고 있다. 풍요롭고 위대한 삶을 선물한 신의 배려를 나는 고대하고 있다.



내게도 보석 같은 겨울의 추억이 있다. 연애를 시작하던 해에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막 잠이 들려던 때 전화가 울렸다.


"옷 따뜻하게 입고 잠깐 나와봐."


문을 열었을 때 캄캄한 밤을 함박눈으로 하얗게 칠한 배경에 서서 머리와 어깨에 소복이 쌓인 눈으로 눈보다 더 하얗게 웃고 있던 내 사람. 그 웃음에 반해서 결혼까지 했는데. 서울대 언덕길을 걸으면 가로등 아래 눈들이 반짝이면 우주의 별들이 세상으로 마실 나온 것 같았다. 눈앞에 펼쳐진 보석 카펫을 한걸음씩 걸을 때마다 바스락 거리며 마치 드레스 자락이 부서지는 소리를 냈다. 딸기 탕후루의 얇은 설탕 막을 처음 깨물을 때 나는 소리 같기도.




나는 지금 아들과 시장을 보러 가기로 약속했는데 이 책을 펼치다니 미쳤다. 그러는 게 아니었다. 이 눈송이 하나가 나를 키보드 앞으로 데려다 놓았다. 글쓰기에 또 반했구나. 글에 또 빠졌구나. '아들아 미안. 잠깐만.'



 한 동안 읽히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다. 그러니 글쓰기가 싫어지더라. 그러다 다시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기로 했다. 내 본능에 충실한 글을 쓸 때 나는 글을 쓰고 있었다. 다른 일을 하려고 하다가도 결국 키보드를 누르고 있다. 이 책은 사람의 자연으로의 본능은 의식을 깨우고 읽게 하는 힘이 있다는 걸 가르쳐 줬다. 사람의 욕망은 통한다. 나를 자유롭게 풀어두고 가장 중심에 있는 본능에 충실한 글을 쓸 때 사람들도 공감하고 읽게 된다. 그러니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쓸 때 다른 사람도 읽고 싶은 글이 된다는 것이다. 결국 읽히는 글이 된다. 이 깨달음은 아주 중요하다. 다시 나를 쓰게 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나를 구속하지만, 자연은 나에게 자유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소망하지만 자연 속에서 나는 있는 그대로도 만족한다. 자연이 주는 즐거움은 사랑하는 이의 솔직한 말을 들을 때 느끼는 즐거움과 같다.  17p


사람들은 나를 구속하지만, 글쓰기는 나에게 자유다. 사람들 속에서 나는 다른 세상을 소망하지만 글쓰기를 할 때 그 안에서 나는 쉼을 얻는다.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사람들 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혼란스러울 때 나는 글을 쓴다. 글쓰기는 유일하게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자연스러운 나로 있을 수 있게 한다. 나 자체로. 글쓰기가 테라피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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