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행복한 청소부 Nov 21. 2020

울보의 라일락

  다른 형제들과 달리 어릴 적부터 나의 병치레는 유달랐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혼자만 탈이 났다. 피부병을 늘 달고 살았고 조그만 상처도 쉽게 낫지 않아 병원에 수시로 가야 했다. 체력이 약한 나는 형제들과 뛰어놀다가도 금방 지쳐서 집에 먼저 들어와야 했다. 게다가 살도 찌고 피부병으로 늘 붉은 얼굴이었던 나를 형제들은 못난이라 놀렸다. 부모님도 다른 형제와는 달리 나에게 예쁘다고 말하거나 다정하게 안아준 적이 없었다. 나이 차가 얼마 안 나는 자매들과 다투거나 놀림을 받을 때면 나는 울기부터 했다. 그저 슬프고 억울했다. 울보라고 놀려도 툭하면 울음이 터져 나왔다. 엄마도 내가 울 때면 그만 울라며 화를 냈다. 그래도 나는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유치원 미술 시간에 소풍 때 과자 따먹기 시합을 하던 장면을 그렸다. 선생님은 내가 우리 반에서 그림을 가장 잘 그렸다며 앞으로 나와 무엇을 그렸는지 설명해보라고 말했다. 앞으로 나간 나는 그림을 들고 울기 시작했다. 당황한 선생님은 왜 우냐며 물었다. 뭔가 뜨거운 것이 솟구쳐 대답할 수가 없었다. 울음의 원인은 그 그림에 있었다. 소풍날 나는 엄마가 보는 앞에서 과자 따먹기 시합에 들어갔다. 다섯 명씩 조를 짜고 출발선에서 뛰어 철봉에 실로 매달린 과자를 따먹고 결승선에 들어가면 되는 거였다. 다만 높이 매달린 과자를 따먹을 땐 손을 뒷짐 지고 입으로만 먹어야 했다. 

  내가 속한 조가 출발했다. 나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한 시간에 과자가 매달린 철봉 앞에 도착했다. 껑충 뛰면서 입을 가져가 보았지만, 높이 매달린 과자를 조금도 먹을 수가 없었다. 그사이 몇 번 시도하다 안 되는 아이들은 재빨리 손으로 따서 먹고 뛰었다. 눈치가 없었던 나는 다른 아이들이 결승선에 도착했을 때까지 과자를 따먹기 위해 뒷짐 진 채로 계속 껑충거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엄마가 내게로 와서 멍청하게 뭐 하는 거냐며 화를 내고 내 등을 때렸다. 엄마의 손에 끌려 나오며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울었다. 울음은 내 제일의 언어였다. 


  초등학교 2학년이 되어 부쩍 친구들에게 관심이 커지자 못생긴 외모가 자꾸 신경이 쓰였다. 한번은 무슨 용기가 나서인지 거실 소파에 누워있는 엄마에게 가서 나만 왜 이렇게 뚱뚱하고 못생기게 낳아줬냐며 따지듯 물었다.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듯이 나를 쏘아보다가 시끄럽다고 한마디 하고선 안방으로 들어가 문을 세차게 닫아버렸다. 나는 문에다 대고 살 빠지는 약이라도 사달라며 악을 쓰며 울었다. 처음엔 소리를 지를 때마다 속이 시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반응이 없자 겁이 났다. 엄마는 마치 내 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어디론가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엄마의 침묵은 무서웠고 나를 둘러싼 모든 공간이 텅 비고 검은 어둠으로 가득 채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더는 울 수가 없었다.  


  그해 5월, 나는 안과에 눈이 아프다는 여동생을 데리고 갔다. 의사 선생님에게 진료를 받는 동안 동생은 내 손을 잡고 놓지 않았다. 선생님은 동생의 진료를 마치고 나를 잠시 보더니 가까이 와보라고 했다. 내 눈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그는 내일 부모님 모시고 다시 병원으로 오라는 말을 했다. 

  왼쪽 눈동자에 언제부턴지 모르겠지만 좁쌀만 한 하얀 점이 생겼었다. 금방 없어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다. 그 점이 문제였다. 다음날 엄마와 나는 함께 병원에 갔다. 눈 검사 후 엄마는 의사 선생님과 조용히 이야기를 나누더니 엑스레이를 찍어야 한다며 나를 검사실로 데려갔다. 굳은 얼굴의 엄마는 아무 말 없이 검사실 문만 바라보았다. 검사 결과 나는 결핵에 걸렸고 결핵균이 눈에 생겼는데 다행히 몸에는 퍼지지 않았다고 했다. 진료가 끝나자 여전히 아무 말 없던 엄마는 나를 데리고 약국에 갔다. 약사에게 상상도 못 한 비싼 약값을 들었을 때 엄마에게 그런 돈이 있을까 걱정됐다. 놀랍게도 엄마는 지갑에서 많은 돈을 꺼내서 줬다. 약국을 나오며 나에게 한 번도 빼먹지 말고 약을 잘 먹으라고 했다. 울음을 꼭 참고 떨리는 목소리로 꼬박꼬박 약을 잘 먹겠다고 말했다. 여전히 차갑게 굳은 엄마의 얼굴을 보면서 안 그래도 엄마는 울보인 나를 싫어하는데 병에 걸려 돈까지 쓰게 했으니 내가 더 싫겠다는 생각에 한참 가슴이 아팠다. 


  병원에서 돌아온 나에게 형제들은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검사 결과를 물었다. 나는 일 년 동안 약 먹으면 낫는 병이라고 의사 선생님에게 들은 대로 말했다. 다들 뭔가 극적인 상황을 기대했는지 살짝 실망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다음날, 학교에서 돌아온 나에게 여동생은 잔뜩 겁먹은 표정으로 결핵에 걸리면 죽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밤 엄마가 이모와 통화하는 걸 들었다고 했다. 동생에게 그런 소린 두 번 다시 하지도 말라고 혼을 내고 거실 유리문을 열고 마당으로 나갔다. 나도 결핵이 무서운 병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누구에게도 자세히 물어보지 않았다. 너무 무서웠기 때문이다. 죽는다는 생각해보니 두려움에 마음이 죄어 왔다. 숨이 가빠왔고 얼굴에 열이 올랐다. 잠시 크게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마시는데 어디선가 꽃향기가 풍겨왔다. 마당을 둘러보니 구석에 심어놓은 라일락 나무에 꽃이 피어 있었다. 꽃이 핀 줄도 모르고 있었다. 나는 그곳으로 다가가 연보라색 작은 꽃에 코를 대고 오랫동안 향기를 맡았다. 흐르는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라일락 앞에서는 그래도 괜찮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곱져 놓은 한라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