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규칙 40가지 - 번역 (25)
아침 식사는 한 날의 가장 중요한 식사다. 이것을 철썩같이 믿으며, 엘라는 주중이든 주말이든 무슨 일이 있어도 한결같이 부엌으로 향했다. 좋은 아침 식사는 그날의 기운을 좋게 만든다고 그녀는 생각했다. 여성잡지에서 읽은 바에 의하면, 매일 정해진 시간에 함께 모여 차분하게 아침을 먹는 가족은, 제각기 시간에 쫓겨 허둥대며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집을 나서는 가족에 비해 훨씬 단합이 잘 되며 화목하다고 한다. 그런데 엘라는 이러한 조사 결과를 굳게 믿으면서도, 정작 잡지에 묘사된 것같이 화기애애한 아침 식사를 경험해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엘라네 가족의 아침 식사는 각각의 사람이 전부 다 다른 방향으로 행진하는 은하계의 충돌이었다. 먹고 싶은 게 겹치는 적 없이 모두 따로따로 다른 음식을 원했는데, 그것들은 언제나 엘라가 다 함께 먹도록 준비한 아침 식사와는 영 딴판인 것들이었다. 재닛이 잼을 바른 토스트 빵을 깨작거릴 때, 에비는 꿀 바른 시리얼을 우적우적 씹어대고, 데이빗은 달걀 스크램블을 가져다주길 참을성 있게 기다리고 있는데, 올리는 절대 아무것도 먹지 않겠다고 버티고 있는 꼴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아침 식사는 중요했다. 엘라는 매일 아침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면서, 그녀의 아이들이 절대로 도넛이나 과자 같은 허접한 걸 먹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게 둘 수 없다는 결의를 다졌다.
하지만 오늘 아침에 엘라는 부엌에 들어오자마자 커피를 내리고 오렌지즙을 짜고 빵을 토스터에 넣는 대신,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열었다. 그녀는 인터넷을 연결하고 아지즈로부터 메일이 왔는지 보려고 들어갔다. 기쁘게도 메일이 와 있었다.
친애하는 엘라,
당신과 따님의 관계가 좋아졌다는 소식을 듣고 정말 기뻤습니다. 저는 어제 이른 새벽 모모스테낭고(Momostenango) 마을을 떠났답니다. 참 이상한 게, 단지 며칠밖에 머물지 않았는데도 작별을 고할 때가 왔을 때는 슬프고 비통하기까지 합니다. 과테말라의 이 작은 마을에 내가 다시 올 수 있을까요? 그럴 수 없겠지요. 내가 좋아했던 곳을 떠날 때면 번번이 나는 그곳에 나의 일부를 남겨놓고 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우리가 마르코폴로만큼 멀리 여행을 다니는 쪽을 선택하든, 아니면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곳에 머물러 살든, 삶은 탄생과 죽음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매 순간이 태어나고 매 순간이 죽고 있어요. 새로운 경험들이 피어나려면 오래된 것들은 시들어야 하죠. 그렇지 않나요?
모모스테낭고에 있는 동안 명상을 하면서 당신의 아우라를 시각화해보려고 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세 가지 색채가 보였습니다 : 따스한 노랑, 연한 주황, 차분한 금속성의 보라. 이렇게 세 가지가 당신의 색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요. 각각의 색으로 있을 때나 함께 어우러졌을 때나 모두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과테말라에서 마지막으로 들른 곳은 차줄(Chajul)이라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거기엔 흙벽돌로 지어진 집들과 나이를 초월한 지혜로운 눈동자를 가진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집집마다 모든 연령대의 여자들이 장엄하고 화려한 태피스트리를 짜고 있었어요. 저는 할머니 한 분에게 태피스트리를 하나 골라달라고 하면서, 노쓰햄튼에 살고 있는 한 여성분에게 드릴 거라고 말했지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더니 뒤쪽에 있던 거대한 직물 더미에서 하나를 뽑아냈어요. 신에게 맹세컨대, 거기 켜켜이 쌓아놓은 게 50장은 족히 넘어 보였고 이 세상의 색깔이란 색깔은 모조리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았지요. 그런데 그 할머니께서 당신을 위해 골라낸 그 태피스트리는 오로지 세 가지 색깔로만 짜여있는 겁니다 : 노랑, 주황, 그리고 보라. 이 기막힌 우연의 일치가 만일 신의 섭리라면 당신이 그것에 대해 알고 싶어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서신을 교환하게 된 것이 그냥 우연의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신 적 있나요?
따뜻한 인사를 담아,
아지즈
P.S. 원하신다면 제가 산 태피스트리를 우편으로 보내드릴게요. 아니면 우리가 나중에 만나서 커피 마실 때 드려도 되고요.
엘라는 눈을 감고 그녀의 아우라 색채들이 자신의 얼굴에 어떻게 감돌고 있는지 상상해보려고 했다. 흥미롭게도 그녀의 마음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성인이 된 모습이 아니라 어린 시절 일곱 살 때의 모습이었다. 그러자 큰 물결이 출렁이며 들어오듯, 스스로 멀리 떨쳐냈다고 생각했던 기억들이 그녀를 과거로 떠밀어갔다. 엄마의 모습, 빛바랜 연초록 앞치마를 허리에 두르고 손에는 계량컵을 든 채, 고통의 잿더미를 가면처럼 뒤집어 쓴 얼굴이다. 그때 벽에는 예쁜 색으로 반짝이는 종이 하트들이 대롱거리고 있었고, 천장에는 자기도 크리스마스 장식이 되어 파티 분위기를 돋우는 데 일조하고 싶다는 듯, 아버지의 몸이 매달려 있었다. 엘라는 아버지의 자살을 엄마의 탓으로 돌리며 보냈던 십대의 시간들이 기억났다. 어린 마음에 그녀는 자기가 결혼을 하게 되면 반드시 남편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고 절대로 결혼생활을 망치지 않겠다고, 결코 엄마처럼 되지 않겠다고 스스로에게 맹세했었다. 자기의 결혼이 엄마의 결혼과는 최대한 다른 것이 되게 하겠다는 열망으로, 엘라는 자신의 신앙 안에서 결혼하는 게 더 낫다고 여기며 기독교인과 결혼하지 않았던 것이다.
엘라는 불과 몇 년 전에야 나이 든 엄마를 더이상 미워하지 않게 되었고 최근에는 엄마와 좋은 관계로 잘 지내고 있기는 했지만, 그래도 과거를 회상할 때면 금세 가슴 속 깊은 곳에서 해묵은 통증이 느껴지곤 했다.
“엄마! ... 엄마! 안 들려요? 엄마!”
엘라의 어깨 뒤에서 속삭이며 킬킬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니 네 쌍의 놀란 눈동자들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 올리, 에비, 재닛, 그리고 데이빗이 모두 한꺼번에 같은 시간에 아침을 먹겠다고 와서는 그녀가 무슨 신기한 동물이라도 되는 듯이 탐색하며 나란히 서 있었다. 분위기를 보아하니 그녀가 알아챌 때까지 꽤나 한참 동안 그렇게 서 있었던 모양이다.
“잘 잤니? 모두들...” 엘라가 빙그레 웃었다.
“우리가 그렇게 부르는데 어떻게 못 들을 수가 있어요, 엄마?” 정말로 놀랐다는 듯 올리가 물었다.
“노트북 안으로 아주 들어가 버린 줄 알았네.” 엘라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데이빗이 말했다. 엘라가 남편의 시선을 따라가보니 노트북 화면에 아지즈 Z. 자하라가 보낸 메일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녀는 시스템이 종료되기도 전에 서둘러 노트북을 덮었다.
“문학 에이전시 일로 읽을 게 좀 많아서 그랬어.” 엘라가 눈동자를 굴리며 말했다. “보고서 작업을 하고 있었거든.”
“아니던데? 엄마는 이메일을 보고 있었잖아요.” 에비가 정색하며 사실을 폭로했다. 십대 남자애들이 모든 사람의 결점과 거짓말을 열심히 수사해서 들춰내려는 그 열망의 본질은 도대체 무엇일까? 엘라는 궁금했다. 아무튼 다행히도 나머지 가족들은 관심을 갖지 않았다. 사실 그들은 모두 눈길을 돌려 부엌 조리대 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엘라를 향해 유일하게 고개를 돌린 올리가 모두가 궁금해하는 것을 입밖으로 내어 물었다.
“엄마, 아니 어떻게 오늘 아침엔 음식을 하나도 안 만들어놓은 거예요?”
그제야 엘라는 가족들이 보고 있는 조리대를 향해 몸을 돌렸다. 거기엔 내려놓은 커피도 없었고, 달걀 스크램블도 없었고, 블루베리 소스를 바른 토스트 빵도 없었다. 엘라는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내면의 목소리에 동의하듯이 연신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네, 그녀는 생각했다, 어떻게 내가 아침 식사 준비를 까맣게 잊을 수가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