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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루잉오렌지 Apr 01. 2024

우울은 '치료'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가장 좋은 친구.

우울증은 일종의 상태다. 


우울증 말고도 대부분의 정신질환에도 적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상태라는 게 어떤 의미냐면, '우울증'이라는 것 자체가 나의 성격이 되어간다는 의미다.



질병으로 비유하자면.. 감기는 잠깐 앓으면 끝이다. 몸살도 마찬가지다. 며칠 아프고, 다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다.


하지만 코로나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코로나는 일반 감기와 비슷한 취급을 한때 받았지만 사실 감기와는 결이 다르다. 후유증이란 게 있기 때문이다. 그 후유증은 우리의 뇌에 돌이킬 수 없는 변화를 일으킬지도 모르며, 그 변화는 내 앞으로 남은 인생 전반에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아니면,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해보자. 치매는 병이지만, 동시에 상태이기도 하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 '그 사람 감기 걸린 사람이야'라고 소개하진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 치매 걸린 사람이야'라고는 소개할 수 있다. 치매는 확실하게 그 사람의 모든 행동에 영향을 준다. 원래 그 사람이 얼마나 멋진 사람이었는지 통째로 잊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우울증도 비슷하다. 실제로는 아무리 멋진 사람이라고 해도, 세상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이란 낙인을 아무렇지 않게 씌울 수 있게 만드는 것이 우울증이다. 실제 같은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그리고 그 낙인은 세상이 아니라, 본인이 씌우는 것이다. 본인이 그런 가면을 쓰면, 세상도 가면을 쓴 나를 바라본다. 실제의 나가 아니라 내가 쓴 우울이라는 가면을 평가한다. 


왜냐하면 '실제의 나'는 환상이니까.







나는 나의 우울을 지혜롭게 사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다. 


왜냐하면 우울은 이미 나의 인생에 끈덕지게 늘러붙어버렸고, 더이상 떼낼 수 없는 동반자 관계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우울은 나를 설명하는 단어가 되어버렸다. 



우울은 나의 인생 전반에 걸쳐 극심한 영향을 미쳤고, 먼 과거의 우울증이 한번 생성해버린 나의 행동 패턴은 무의식 속에서 수십년동안 계속 나를 조종해오고 있다. 한번 변화한 정신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는다(사실 난 원래라는 개념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나는 싫어도 이 우울과 영원히 함께 해야하며, 그럼 적응 혹은 현실도피밖에는 답이 없다. 




그래서 난 적응하기를 택했다.



치료가 아니라, 변화를 해야 한다. 나를 이루는 수많은 파편 중 하나, 가장 치명적인 결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여, 이를 바탕으로 성장하길 택했다.


사람은 감정에 따라 움직이는 무척 감정적인 존재이며, 내가 현재 어떤 기분에 있느냐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일이 달라진다. 내가 기분이 좋으면, 다른 사람의 기분도 좋게 만들어줄 수 있다. 화가 나면, 그 분노를 성장에 대한 동기부여로 삼을 수 있다. 깜짝 놀란다면, 몸을 반사적으로 빨리 움직일 수 있다.



그럼 우울하면 뭘 할 수 있을까? 



흔히들 우울은 그저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 뿐이며, 인생에 하나 도움이 되지 않는.. 반드시 치유를 해야 하는 병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울은 내가 나 자신을 파헤칠 수 있는 가장 좋은 시간이다.


어떤 것이 날 우울하게 만드는지, 내가 왜 힘든지, 내가 느끼는 이 감정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파헤칠 수 있다. 기분이 좋고 행복할 때는 절대로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다. 내가 나다움을 가장 잘 알아낼 수 있는 시간대가 바로 우울한 시간이다.



나는 오랜 시간 내가 통제 불가능할 정도로 수많은 생각에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소위 말하는 생각 많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좋아하지도 않았다.


소심함. 우유부단. 결정장애. 흔히 그런 소리를 듣는 부류의 사람. 생각이 지나치게 많아서 행동으로 잘 옮기지 못하는 그런 사람이며, 그렇기 때문에 나는 생각 그만하고 실천하란 소리를 많이 들었다(생각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생각이 강제로 되는 건데 말이다. 그런 무신경한 '조언'을 들을 때면 난 언제나 화가 솟구쳤다). 나는 그런 사람들에게..



생각이 많았기 때문에 오히려 성공했다고. 생각이 나의 성장의 원동력이었다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었다.


설령 그것이 합리화와 현실도피라는 핀잔을 듣다 하더라도, 


그 합리화야말로 진실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조언과는 정반대로 실천했다. 생각을 더 깊게 했다. 많이가 아니라, 깊게. '나 지금 우울해'라는 생각에 취해있는 게 아니라, 내 우울이란 감정을 철저하게 심층적으로 파헤쳤다. '생각 많은 사람'이라는 개념이 부정적으로 여겨지지 않게, 오히려 남들에게 인정받는 좋은 성격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반항했다.




나는 왜 우울하지?




내가 지금 이런 생각들을 왜 하는 거지?




왜? 왜? 왜?




심층으로 사다리를 타고 내려가자, 나는 나 자신을 더 깊이 알 수 있게 되었다. 나는 잿빛이 다가올 때마다 핸드폰을 꺼내서 지금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장들을 메모장에 끊임없이 써내려갔다. 그건 글이 아니라 그냥 기록이었다. 전혀 정돈되지 않은 그저 의식의 흐름이다.


무아지경으로 수천자를 써내려간 후 멍하니 내가 쓴 장문의 혼돈으로 가득찬 메모장을 들여다본다. 내가 언제 이런 걸 썼는지, 어떤 심정으로 기록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바로 5분 전에 썼던 것인데도 불구하고. 내가 쓴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 기록을 탐구할 수 있었다. 제3자의 시선에서. 



마치 남의 글을 비평하듯이 정돈하고 그룹화해갔다. 어디 내놓기 부끄러운 내 글솜씨를 비웃기도 했다. 앞문장과 바로 뒷문장의 논리가 전혀 이어지지 않아,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싶다는 욕구가 솟구쳤다. 고쳤다. 다듬었다. 마치 가면을 조각하듯이 정성스럽게 다듬어갔다.



이것이 내가 '수련'했던 방법이다. 글쓰기, 그리고 나 자신을 통제하는 방법을.



그 수련 과정은 결코 다정하거나 따스하진 않았다. 나는 내가 쓴 글을 가차없이 지우고 몰아세우고 까내려갔다. 글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면 수백 수천자를 바로 흔적도 없이 죽여버렸다. 의미가 없는 글이라면 가차없이 쓰레기통에 버렸다. 부담없이 그럴 수가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쓴 글이라는 체감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나는 틀림없이 그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재미를 느꼈다. 점점 그 폭력적인 글쓰기는 나의 취미가 되어갔다. 나 자신을 치유하는 과정이라고는 틀림없이 표현할 수 없었지만, 어느새 나를 깊게 잠식하던 어두운 감정은 잔잔하게 승화되어갔다. 


이런 남들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운 취미를, 남들에게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고민했다. 글쓰기라고 하면 보여달라고 할 테고, 일기 쓰기라고 하면 의미가 묘하게 달라지는 데다가 이상한 취급을 받을 것 같았다. 글쓰기라는 취미 또한 평범하지는 않지만. 그래서 한동안은 누군가 취미를 물어볼 때마다 대충 노래나 게임이라고 얼버무렸다. 사실 그런 것들은 그만둔지 몇 년이 훌쩍 넘었는데도 말이지.



지금은 내 이런 취미가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건지 확실하게 알고 있다.




영감. 내가 우울을 깊게 들여다보자, 나의 오랜 친구였던 우울은 망설임 없이 내게 다가와 나의 영감이 되어주었다.




공포영화에서 귀신의 정체를 알고 나면 더이상 무섭지 않게 느껴지는 그런 효과가 있지 않은가? 그것과 똑같다.


두려움은 알지 못하는 것에서 생긴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이해할수록 나의 우울과 수많은 생각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



그 이후로, 나는 우울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의 친구이자, 동반자, 나의 뮤즈로서. 


이 우울이야말로 나를 작은 예술가로 성장하게 한 원동력이라고, 이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우울이 내 안에서 사라지진 않는다. 아마 앞으로도 영원히. 


하지만 고통에서는 벗어났다. 나에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언제나 우울했던 나는,


이제 우울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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