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자냥의 5분 소설
밤 열 시를 넘은 시각이었다. 선재는 병실에서 나와 복도를 거닐었다. 가벼운 교통사고로 입원한 그는 환자복만 입지 않았다면 누구도 그를 환자로 보지 않을 만큼 멀쩡해 보였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랬다.
그러나 밤만 되면 욱신욱신 온몸이 쑤셔댔다. 전치 2주 진단을 받고 이참에 좀 쉬어 볼 셈으로 병원에 입원을 해버렸다. 낮에는 그냥저냥 견딜 만했다. 문제는 밤이었다. 그날 밤도 어쩐지 쑤시는 듯한 느낌에 잠에서 깨어 병실 복도로 나왔다. 4인 병실에서 늙은 환자들의 앓는 소리를 듣고 있자니 더더욱 몸이 아파오는 듯한 기분이었다.
복도 불빛은 희미했다. 병원 의자에 사람들이 간혹 앉아 있는 게 보이기도 했지만 거의 인기척조차 없는 조용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복도에 앉아 숨을 돌리고 있는데 저벅저벅 발소리가 들려왔다. 소리가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려보니 한 여인이 피곤한 듯 털썩, 복도에 놓인 기다란 의자에 주저앉는다. 그러고는 깊은 한숨을 훅 토해내고 눈을 질끈 감았다.
어디서 낯이 익은 얼굴. 누구일까. 병실을 드나들던 보호자인가…. 많이 본 얼굴이었다. 선재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리고 그 얼굴을 곧 기억해냈다. 병원 근처 전철역에서 늘 보던 그 얼굴이었다.
검게 그을린 얼굴. 질끈 동여맨 포니테일 머리. 남루한 무채색 옷. 옆으로 맨 검은 보조 가방. 뒷축이 닳은 운동화….. 역에서 그녀는 비슷하게 생긴 또 다른 여인과 함께 늘 남모르는 타인들에게 말을 걸었다. 주로 그들의 첫마디는 다음과 같았다. “얼굴에 참 좋은 빛이 서려있으세요.” 선재도 몇 번이나 팔을 붙잡힌 적이 있었다.
‘누가 입원을 했나?’ 선재는 잠시 생각해본다. 그러나 포니테일 그녀는 미동도 없이 두 눈을 감은 채 숨을 몰아 쉴 뿐이었다. 선재는 곧 알아차렸다. 지금 이 병원 복도의 차디찬 나무 의자가 무채색 그녀에게는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구원의 안식처이자 쉼터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