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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NJ May 16. 2024

1,000원


 우리는 비빔밥과 미역국, 그리고 김치를 쟁반에 챙겨 그늘 아래자리를 잡았다. 아기는 돗자리에 대자로 누워 파닥파닥 헤엄을 쳤고, 주변 사람들은 아이를 보며 한 마디씩 덕담을 건네셨다. 아들과 딸을 데리고 우리 옆에 자리를 잡은 아주머니는 아기의 손을 잡아주셨다. 그런데 예전부터 악력이 심상치 않다 생각했던 아기가 낯선 이의 손을 놓아주지 않는 대치 사태가 발생했고(고집이 보통이 아니다) 아주머니가 가방에서 1,000원짜리 지폐를 꺼내고 나서야 상황이 종료되었다. 우리는 모두 함께 웃었다. 아기는 도대체 신이 났을까?


 우리는 빈 그릇을 한쪽에 밀어 두고 햇살 사이로 불어오는 바람의 냄새를 즐겼다. 아들이 둘이 있다고 하셨던 아주머니는 요즘 나라에서 아기를 낳으면 얼마를 주는지 물으셨다. "한 1억 주나?" 우리는 출산 격려금으로 300만 원 남짓의 돈을 받았었던 것 같다. "아마 대출을... 싸게 해 줄 거예요." 아주머니는 실망한 눈치였다. "TV에 하도 그런 이야기가 나오니....  우리 때랑 뭐가 달라진 줄 알았는데...." 아주머니는 요즘 시대는 남자들이 힘든 시기라며 내 편을 슬쩍 들었다. 나는 실실 웃으며 아기 엄마를 바라봤고, 아기 엄마는 이를 잊지 않고 있다가 나중에 살짝 심술을 부렸다.


 우리 가족의 이름에 건강과 형통함을 빌며 작은 초에 불을 붙였다. 아기 엄마는 대웅전에서 절을 올리는 동안 나는 아기와 함께 불상을 구경했다. 위장과 마음이 모두 불러오는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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