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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밤토끼 Jun 03. 2022

멸종 위기의 커피, 생존 위기의 농부들

지속 가능한 커피 이야기(2)

몇 년 전 SBS에서 방영하던 <맛남의 광장>을 종종 보곤 했다. 방송의 취지는 전국 각지의 특산물을 소개하고 백종원씨를 비롯한 출연자들이 함께 특산물을 활용한 신메뉴를 개발하여 지역 특산물의 소비 촉진과 인식 개선을 하는 것이었다. 가끔 보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어느 지역을 가든, 어떤 특산물을 소개하든 공통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있었다. 첫 번째는 폭우로 혹은 가뭄으로, 한파로 혹은 폭염으로 작황이 좋지 못하다는 것. 두 번째는 힘들게 농사짓고 어업 한 농수산물을 헐값에 유통업체에 넘긴다는 것이었다.  


커피도 농작물입니다.


물론 커피가 '커피나무'에서 열리는 '체리(열매)' 통해 수확된다는 것은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나에게 커피는 농작물이 아닌 '아메리카노'혹은 '라떼' 인식됐다. 커피가 땅의 농작물이라는 것은 나에게 뻔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커피=농작물'이라는 등식이 완성되면 <맛남의 광장>에서 강조된 지역 특산물의 어려움과 다르지 않다. 커피 생산량과 품질은 다른 농작물과 마찬가지로 기후에 의해 일차적으로 결정된다. 그러니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위기는 커피 재배에 치명적이다. 한편에서는 일회용품 사용이 비일비재한 커피 문화가 기후위기, 탄소배출, 생물 다양성의 위기 등에 대한 책임 주체로 지목되며 변화를 요구받지만 커피도 환경오염의 피해자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를 다양한 측면에서 살펴보면 커피는 어떤 지점에서는 문제의 원인이자 결과이기도 하다. '커피 산업' 전반으로 사회학적 상상력을 발휘했을 때 '커피 한 잔'의 무게는 꽤나 무거워진다. 현대경제연구원에 의하면 2018년 기준 대한민국 성인 1인당 연간 커피 소비량이 353잔이라고 하니 커피를 마시는 1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 생각해보는 것은 향후 커피 문화의 방향성을 제시해줄 지도 모른다.




커피 생산의 위기 : 멸종 위기의 아라비카


아라비카 커피의 열매(커피체리) (사진 출처 : RBG Kew)


아라비카 커피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많은 커피 종이다. 그리고 우리에게는 인스턴트커피의 대중화와 고급화로 꽤나 익숙한 커피종이기도 하다. 2019년 영국 왕립식물원 큐가든(Royal Botanic Gardens, Kew)이 발표한 보고에 의하면 야생 커피 종의 60%가 멸종 위기에 처해 있고, 60% 안에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아라비카의 야생종이 포함되어 있어 커피 생산의 미래가 불투명하다고 한다(* 60%라는 수치는 멸종 위기 식물의 전 세계 추정치인 22%와 비교했을 때 매우 높은 수치이다). 큐가든 과학자들에 의하면 야생 커피 종의 멸종 위기 원인은 삼림 벌채, 기후변화, 곰팡이 병원균 및 해충 확산에 기인한다.


아라비카 야생종은 현재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 레드 목록에 멸종 위기종으로 등록되어 있으며, 이것은 향후 품질 좋은 새로운 커피 작물을 만나기 어렵다는 것이기도 하다. 나아가 호주 기후학회(TCI)는 기후변화에 따른 조치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2080년에는 커피가 멸종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2080년이면 내 나이가 97세이니 다행인 걸까...?




지금이야 어디를 가나 쉽게 마실 수 있는 것이 커피지만 커피나무는 재배가 굉장히 까다로운 작물이다. 기온이 너무 높아도, 낮아도 안 되고 강수량과 습도에도 매우 민감하여 품질 좋은 커피는 열대 국가의 차가운 온도(18~21℃ 사이)에서 자란다. 한국의 한 여름 기온을 떠올려보면 '열대 국가의 차가운 온도'는 현실에 존재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언어도단 같다. 내가 안전한 베란다에서 키우다 죽인 온갖 식물들을 떠올려보면 커피라는 작물은 도대체 어떻게 재배와 수확이 가능한가 싶기도 하다.


최근 높은 품질의 커피로 각광받는 스페셜티 등급의 커피가 바로 열대 국가의 고산지대에서 재배된 커피다. 열대 국가의 고산지대에서 커피가 재배된다는 것은 커피가 극강의 까다로움을 갖고 있는 작물이라는 의미이고, 열대 국가의 기온이 높아진다는 것은 커피 재배지의 고도도 높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고도가 높아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 중 하나는  재배 면적이 좁아짐으로써 품질 좋은 커피(특히 스페셜티 커피)의 생산량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커피는 환경오염으로 인한 기후변화의 피해자이다.  


기후위기로 인한 커피 농부의 빈곤과 생존 위기


지구 온도가 1℃ 높아지면 커피 재배 고도는 100m 올라간다(월간커피, 2020). 고도가 높아졌을 때 발생하는 문제는 재배면적과 생산량 감소뿐만이 아니다. 고도가 높아지면 커피 농부는 위험한 환경 속에 노동을 해야한다. 그리고 생산량 감소는 농부들의 생계문제로 이어진다.


커피 산업이 엄청난 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생산-유통-소비’ 체인의 맨 끝 부분에 수익은 집중되어 있어 산업의 수익은 커피 농부에게 재투자되기 어렵다(Mongabay.com, 2021). 공급과 소비 과정에서 일어나는 불평등한 수익구조로 인해 커피는 열대국가에서 가장 많이 수출하는 작물이면서도 커피 생산국과 농부에게는 빈곤 작물이기도 하다.


기후변화로 인한 생산량과 품질의 불안정성은 커피 가격의 변동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불안정한 커피 가격은 커피 농부의 교육, 주택, 음식, 의료 및 기타 기본 필수품에 대한 접근성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Boydell, 2018). 즉, 환경오염과 기후위기에서 비롯된 커피 생산의 문제는 커피 농부의 생존 문제이다.


커피 농장의 젠더 불평등과 아동 노동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지속 가능성과 관련하여 환경 이슈가 가장 뜨겁지만 UN의 SDGs(지속가능발전목표)에는 다양한 지속 가능성 이슈가 포함되어 있다. 양성평등, 불평등 감소도 SDGs에 포함되는 중요한 과제로 커피 산업에서 여성 농부와 아동 노동 문제는 지속적으로 거론되어 왔다.


환경보호단체인 Rainforest Aliance에 의하면 여성 커피 농부는 남성 커피 농부에 비해 자원에 대한 접근성이 훨씬 적기 때문에 남성보다 커피를 적게 생산한다고 보고한 바 있다. 또한 여성은 생산 활동에 집중되는 반면 남성은 지속 가능한 생산, 커피 수입과 판매 등에 대한 교육을 받아 여성에 비해 더 많은 커피 지식을 획득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커피 산업의 젠더 이슈에 관심이 깊은 민간단체와 몇몇 로스터리의 경우 여성 커피 농부의 임파워먼트를 위한 활동을 적극적 지원하기도 한다. 아동 노동 역시 오래된 문제로 일부 국가에서는 여전히 아동들이 농장에서 체리 피커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어(Boydell,2018) 아동 노동에 대한 대처가 요구된다.




지난해 커피 흉작과 물류대란으로 커피 원가가 상승되어 2022년 초쯤에는 커피 값이 상승할 수 있다는 언론 보도를 자주 접했다. 실제로 2022년이 되자 스타벅스와 커피빈 등 대형 커피 체인이 커피값을 인상했다. 흉작으로 인한 생두 가격 인상과 환율 상승까지 겹쳐 작은 로컬카페 대표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을 것 같다. 글 제목을 '생존 위기의 농부들'이라고 했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위기는 내 코앞에도 와있다.


(* 다음 글에서는 커피 생산과 유통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문제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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