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란 참 신기하다. 집이 크든 작든, 방이 하나든, 둘이든, 셋이든 온갖 잡동사니가 쌓이는 공간이 생기니 말이다. 물건을 잘 버리지 못하는 집주인의 특성으로 방 한쪽에는 커다란 박스 대여섯 개가 오랫동안 쌓여있었다. 한참을 고이 보관하고 또 한참을 방치한 그 박스 안에는 에어캡이 가득 들어있었다.
택배로 도착한 물건들을 감싸고 있던 그 무수한 에어캡들. 나는 그것을 버리지 못하고 방의 일부 공간을 내줘가며 보관했다. 너무나 깨끗해 새것 같은 중고 에어캡은 나에게 '저장 강박'을 불러일으켰다. 그런 내 모습에 남편은 도대체 에어캡을 어떻게 처리하려고 그리 모으나 하기도 했고 그러려니 하기도 했던 것 같다.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꾸준히 구입하니 주문하지 않은 에어캡은 계속 생겼고, 딱히 사용할 곳은 없는데 버리질 않으니 에어캡 박스는 하나 둘 늘어났다.
에어캡을 처음 모으기 시작했을 때는 자원순환에 대해 고민이 깊지 않았다. 정말로 그저 너무나 깨끗해서 버릴 수 없었을 뿐. 아토모스를 운영하면서 과거에 비해 자원순환에 관심을 가지면서 모아둔 에어캡을 처리하기로 했다. 그리하여 2019년부터 모았던 에어캡은 2022년 1월에야 박스에서 해방되었다.
택배 발송을 위해 몇 차례 방문했던 우체국 한쪽에서 택배 발송 고객을 위해 비치해 놓은 에어캡과 '에어캡은 1인당 1매 제공'이라는 안내 문구를 본 뒤 우리 집 에어캡에게 인생 2회 차를 선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추측건대 우체국이 배송한 택배에서 파손이 생기면 곤란하니 서비스 수준에서 에어캡을 비치하고 있겠구나, 에어캡 구입 비용도 국가예산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혜화동우체국(집 근처)과 동소문동우체국(매장 근처)에 깨끗한 에어캡을 가져오면 재사용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다행히 두 우체국으로부터 가져와도 된다고 답을 듣고 2022년 1월 며칠에 걸쳐 에어캡을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 현재 동소문동우체국은 비닐로 된 에어캡을 받지 않으니 주의!)
에어캡 박스를 처리하고 난 뒤에도 집과 매장에는 에어캡이 꾸준히 발생했기 때문에 에어캡이 쌓이면 우체국으로 가져갔다. 갈 때마다 우체국 직원으로 부터 고맙다는 인사를 들었다. 보냉팩이나 종이팩/멸균팩은 관공서에서 재사용을 위해 수거 공간을 마련하거나 재사용에 대한 홍보를 하고 있지만 에어캡 재사용에 대한 정보는 볼 수 없었던 터라 내가 모은 에어캡을 받아 준 우체국에게 감사한 마음이 아주 컸다.
이전에 비해 인터넷 쇼핑을 그리 많이 하지 않고, 최근에는 종이완충제를 사용하는 업체들이 많이 생겨 비닐로 된 에어캡이 덜 발생한다. 그럼에도 온라인 쇼핑과 택배가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니 몇 년 전처럼 박스 단위로 에어캡이 모이기 전 재빠르게 우체국으로 향한다.
나처럼 깨끗한 에어캡을 버리는 것이 쉽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인근 우체국을 통해 에어캡에게 인생 2회 차를 선사하시길. 주의할 것은 인근 우체국에 반. 드. 시 에어캡 재사용에 대해 문의한 후 방문하시길 빈다. 개인적으로는 우정사업본부에서 ESG경영 차원에서 에어캡 자원순환을 진행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