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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Jun 07. 2024

금낭화, 수국, 자생식물로 지은 옷

숲속 재봉사의 옷장

최향랑 글·그림 / 52쪽 / 16,000원 / 창비



봄날처럼 화사한 그림책을 보면 아직도 설렌다. 책에서 풀잎 냄새, 꽃향기가 나는 것 같아 살짝 코를 대어보았다. 그러고는 개나릿빛으로 우러난 국화차 한 잔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어두었다. 숲속 재봉사가 집에 놀러 온다면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재봉은 언제부터 배웠는지? 압화와 드라이플라워로 옷을 짓는 일이 힘들진 않은지, 입는 이의 몸에 꼭 맞춰 커지고 작아지는 옷 개발은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숲속 친구들에게 꼭 맞는 옷을 지어주던 숲속 재봉사가 돌아왔다. 전작 『숲속 재봉사』와 『숲속 재봉사와 털뭉치 괴물』에 나온 강아지 쿵쿵이, 레이스 뜨는 거미, 가위질하는 거위벌레, 길이 재는 자벌레도 함께. 이들의 변함없는 우정이 고맙고 반갑다.

숲속 재봉사는 꽃잎, 나뭇잎, 씨앗 등으로 정성껏 옷을 만들어 봄·여름·가을·겨울, 네 개의 옷장 안에 차곡차곡 넣어두었다. 지금은 여름의 시작이라 여름 옷장을 가장 먼저 열어보았다. 반 페이지 접지로 닫힌 옷장 한쪽 면을 손으로 펼쳤더니 여름 식물로 만든 옷과 모자가 얌전하게 걸려있다.

톱니 모양 꽃잎 레이스를 단 ‘패랭이 원피스’, 보랏빛 꽃받침을 이어 붙인 ‘수레국화 모자’, 요정 모자 같은 ‘물봉선화 고깔모자’, 꽃잎을 겹겹이 풍성하게 둘러 꿰맨 ‘수국 치마’의 귀여움이 한도를 초과했다.


손잡이와 다리를 씨앗 꼬투리로 달아 둔 옷장도 숲속과 잘 어울린다. 두꺼비와 수달과 장지뱀과 어치는 옷장 문이 열리자 좋아서 어쩔 줄 몰라 하는 표정이다. 봄, 가을, 겨울의 옷장에는 어떤 옷들이 들어있을까? 어떤 동물들이 와서 골라 입을까? 산철쭉 드레스, 금낭화 반바지, 산딸나무 재킷, 억새풀 목도리, 은행잎 스카프, 괭이밥 망토, 남천 목걸이, 박주가리 망토, 으아리 털모자. 작가는 우리나라의 자생식물들을 계절마다 담아내어 옷과 소품을 만들고 예쁜 이름을 지어주었다.

동물들은 각자 선물 받은 옷을 입고 숲속 재봉사와 어울려 즐겁게 논다. 봄에는 햇볕 가득한 숲길을 걷고, 여름에는 냇가에서 풀잎 배를 띄우고, 가을에는 들판에서 씨앗을 모으고, 겨울에는 첫눈 내리는 숲에서 눈사람을 만들며 정성껏 바느질하듯 고운 추억을 쌓는다.


달빛이 환한 밤, 숲속 동물들은 언덕에 ‘바투바투’ 앉아 함께 놀았던 일을 떠올린다. ‘이렇게 넓은 숲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만나 친구가 되었을까?’ 별똥별만큼 멋진 일이라고 모두들 생각한다. 거리 두기, 적당한 거리의 아름다움이 관계의 정석처럼 되어버린 요즘 문득문득 바투바투의 정이 그립다.

꽃잎이 옷이 되고 씨앗이 사람이 되는 세계로 다정히 안내하는 그림책을 오래오래 만들고 싶다는 작가의 바람을 응원하는 독자로서 숲속 재봉사가 들고 찾아올 다음 이야기가 벌써 기다려진다. 


김은아_그림책 칼럼니스트, 『who am I : 그림책 상담소』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6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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