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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한독서 Dec 18. 2024

가족의 ‘다름’을 인정하기

상자 속 친구

이자벨라 팔리아 글 / 파올로 프로이에티 그림 김지연 옮김 / 32쪽 / 13,000원 / 이야기공간



“무슨 일인데 이렇게 긴장했을까? 내게 이야기해 줄 수 있겠어?”

잔뜩 웅크리고 앉아있는 Y를 보는 내내 가슴이 아팠다. 캠퍼스에서 학생들과 함께하다 보면 유년 시절의 상처를 해소하지 못하고 어른이 된 경우를 만나게 된다. Y는 앞에 나가서 발표하기보다 뒤에서 연구하고 자료를 만들어주는 것으로 만족하는 성향이라 할 수 있다. 조용히 자신의 세계에서 즐기며 만들어낸 결과물로 타인과 소통하고 그것이 인정받을 때 기쁨을 누리며 관계 맺기를 하는 것이 좋았고 주변에서 고맙다고 말해주는 것을 인정이라 여겨서 스스로 괜찮았다. 문제는 성격이 대쪽 같고 남에게 지기 싫어하는 Y의 어머니로 인해 일어났다. ‘사람이 겁에 질리면 안 된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거다’라며 Y를 강하게 몰아붙이는 것도 모자라 이런 Y를 무가치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에 있었다. Y는 집단에서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하려는 욕망이 강한 부모님 앞에서 무기력할 수밖에 없었다.


Y를 만나며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바로 Y 부모님의 상담이었다. 가족이 하나의 정서 체계이며 유기적으로 움직인다는 심리학자 머리 보언의 주요 개념이 적용된다. 아이가 어른이 되긴 했지만 부모는 양육자의 위치에서 여전히 아이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내 자녀가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노심초사하며 아이를 지켜보게 되고 아이는 그 불안과 걱정을 고스란히 받아내는 입장에 서기 때문이다.


상담하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다른 한 가지는 바로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 것이었다. 사회는 앞에서 진두지휘하는 사람만 존재하는 곳이 아님을, 뒤에서 알게 모르게 움직이는 구성원들이 각자의 역할을 다해야 그 강점들이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흐르는 곳임을 Y의 부모님도 알고는 있었을 것이다. 개인의 ‘성향’에 따라 무엇을 하며 살아갈 때 자신이 정말 행복한지를 느끼고 사회적으로 유용한지를 알 수 있으며 타인과 다름을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다. 심리 상담을 할 때 개개인의 성격 유형을 파악하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뢰할 만한 성격 검사로 에니어그램, MBTI, TCI 기질검사 등을 들 수 있다. 검사마다 각 성향의 장단점을 들여다볼 수 있어 내가 어떤 점에서 뛰어나며 어떤 점들을 보완해야 하는지 파악하는 도구들이다. 검사를 통해 본 다양한 성격 유형에 관한 자료를 양육 스타일과 연결 지어 활용할 수도 있다. 자신의 성향을 이해하고 건강한 방식으로 표출할 때와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표출할 때를 나누어 보도록 상담에 적용하면 아이에게 결과적으로 얼마나 큰 차이를 보일 수 있을지를 알 수 있다. 돌봄의 손길이 필요한 아이가 가장 밀착되어 관계 맺는 존재가 양육자이므로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줄이는 데에 적절한 지침이 될 수 있는 것이다.

1년의 상담 시간을 거쳐 Y는 “그나마 숨을 쉴 수 있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아이 상담보다 부모 상담에 비중을 더 두고 시간을 할애했고 무엇보다 Y의 부모님 성향이 Y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분석해서 이루어진 결과라 할 수 있다.


상담 중 Y의 부모님에게 읽어보라고 추천한 그림책은 여러 권이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크게 받아들였던 그림책이 『상자 속 친구』였다. 어느 날 구멍이 두 개 뚫린 커다란 상자가 평화로운 숲속에 나타난다. 상자를 발견한 동물 친구들은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언제 온 건지, 무엇이 들어있는지 궁금은 하지만 겁이 나서 저만치 서서 상자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상자가 흔들리기 시작하고 누군가 있는 것이 확인된 이후 동물들은 나름의 자기 방식으로 관심을 보이지만 “싫어어어어어!”라며 거칠게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한걸음 물러선다. 이때 어쩌면 누구는 속이 상했을 수 있다. 누구는 ‘쳇’ 하면서 화가 났을 수 있다. 당황했을 수도 있고 다시는 안 보겠다고 돌아설 수도 있다. 그러나 너그럽고 여유를 가진 친구의 “그럴 수도 있다”라는 말에 모두는 동의를 보내준다. 이후 상자 속 친구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모르지만 그를 위한 동물들의 진심 어린 노력이 정말 눈물겹도록 아름답고 따듯하다. 이들의 기다림과 배려, 넉넉한 마음과 노력은 결국 상자 안의 친구가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하는 큰 힘이 돼주었다.

거칠게 다그친다고, 내 속도대로 밀어붙인다고, 내 방식이 맞다고 강요해서는 안 된다. 기다림 가운데서 상대방이 가진 아픔의 무게를 이해하고 관심과 배려의 진정성이 전달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책을 통해 각각 개인의 아픔도 다르고 그것을 마주하며 이해하고 사랑하는 방법도 다 다를 수 있음을 마음으로 담을 수 있다. 아무리 부모라도 너와 내가 성향상 다를 수 있음을 인정해야 서로가 행복하게 살 수 있다.


김영아_독서 치유상담사, 『내 마음을 읽어주는 그림책』 저자


- 이 콘텐츠는 <월간그림책> 2024년 12월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 행복한아침독서 www.morningreading.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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