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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Nov 21. 2023

첫눈이 내리던 날

내 마음에 그리는 고향


소나무 가지에 목화 꽃이 피었다.

첫눈이 소나무에 꽃을 피워 낸  사진한장이  고향 카톡방에 올라왔다.

사람의 일생이란 고향에서 점점 멀어지다가 마침내 그 고향으로 누운 채 돌아가는 것이라고  얼마전 칼럼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내 고향은 나룻배로 섬진강을 건너야 갈 수 있는 깡 시골이다.

지금은  다리가 서 있어서 차로 달리고 있다.    

       

옛날에는 섬진강 주변에는 밭이 많았다. 가을걷이가 끝나갈 무렵  튼실하게 자란 무, 배추가 김장철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을 어귀에 들어서면 초가집 지붕 위에 빠알갛게 익은 감이 꽃처럼 늘어져 있었다. 서리 맞은 감은 달기가 설탕과 비교할 수 없었다. 학교 다녀오다 주인 몰래 하나씩 뽑아 먹은 무도 손톱으로 껍질을 벗기면 쉽게 벗겨졌다. 점심시간에 차디찬 도시락 하나 먹고 허기가 진 친구들과 한 입씩 베어 먹는 맛이 얼마나 맛나고 달았는지 모른다.  

   

첫눈이 내리던 날 깜박했을까?

간밤에 미리 나무 청에서 꺼내지 못한 솔갱이 다발에 눈이 쌓였다.

눈 맞은 솔갱이가 아궁이 속으로 들어가자  매운 연기를 날리고 있었다.

그래도 잠시 후에 타닥타닥 타들어간 솔갱이는 아궁이에서 빨갛게 타오르고 무쇠솥을 달구었다.

기와지붕 위로 뻗은 굴둑에는 흰 연기가 몽글몽글 거리며 올라가고 하늘에서는 흰 눈이 내렸다.

 마당에는 모처럼 흰 융단이 깔렸다.

메리도 이리저리 뛰고 있었다.


마당 한쪽에 나무로 만들어 놓은 철봉 위에도 눈이 가득 쌓였다.

거침없이 흰 융단을 밞으며 발자국으로 한발 한발 내딛으며 꽃을 만들었다.

발자국으로 만든 꽃송이 위에서 냅다 뛰며 철봉을 잡았다.

하얗게 쌓인 눈이  얼굴을 덮었다. 그래도 철봉 위에 나비처럼 사뿐히 앉잤다.

앞산에는 꿩이 푸드덕 날아가며 또 다시 눈을 뿌리고 있었다.

마을을 가로지르며 장대하나를 걸어도 될 만한 거리의 뒷산에도 눈이 쌓였다.

장대 밑에는 올망졸망한 초가집, 간간이 보이는 기와집이 눈 속에 파묻혀서 그림을 그려놓았다.


아직도 고향의 초겨울 풍경은 내 기억 속에 그대로일 것만 같다.

그러나 수시로 올라오는 고향 풍경도 날마다 달라지고 있다.

골짜기 방언인 “골안”를  우리는 고란으로 불리며 자랐다.

그곳이 지금은 청계천처럼 멋지게 공사 중이다.

비뚤비뚤한 돌다리 건너서 봄이 되면 진달래 꺾고 여름이 되면 목욕을 했던 곳이다.

가재 잡고 대사리 잡으며 여름 내내 일 년 치 목욕을 끝내버렸던 “고란”이 지금은 많이 달라져 가고 있다.


그래도 장대 하나 걸치면 맞닿을 거리에 있는 앞산과 뒷산은 그대로이다.     

장대 밑에 올망졸망한 초가집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웅장하게 서있는 벽돌집이 세련되게 서있다.

둑을 높게 쌓아 올린 집 앞 냇가는 이제 내려다보아야만 볼 수 있다.  

고향도 새롭게 변해간다. 칠십대로 달려가는 나도 날마다 변해간다.

그래도 변하지 않는 내 마음속 고향은 그대로이다.

지금도 앞산과 뒷산을 이어주는 장대 위에 퍼진 햇살로 곶감도 삐득 삐득 말라가고 있을 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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