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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미숙 May 18. 2024

달구새끼와 텃밭

한나절  뜰방에 비친 햇볕도 한참 머무르다 마루턱으로 올라섰다.  

그때 마실 다녀오신 어머니의 외침이 들렸다. 

"저놈의 달구새끼 상추 다 뜯어 묵었네" 모가지를 빼고 이제 막 부리로 상추를  쪼으려는 순간이었다.

고함소리와 간짓대 흔드는 소리에 놀래서 줄달음치며 도망갔다. 

이른 봄에 부화한 병아리가 이제 날개가  제법 올라서 중간치가 되었을 때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달구새끼는 날갯짓하다 상추밭에서 퍼드득  거리더니 주저앉았다. 

나불 거리던 상추밭이 금방 쑥대밭이 되었다.



대문에 들어서며 시어머니께서 "아이!

 해 넘어가기 전에 상추밭에 물 좀 줘라"  

" 네"  마지막 기저귀 행군 세숫대야를 들고 뒤꼍 텃밭으로  향했다. 

출렁거린 세숫대야를 힘껏 돌리며 물을 쫘악  찌끄렀다. 

햇빛에  반사되어 구슬이 된   물방울이 사방으로 흩어지며 포물선을 그렸다.  

갑자기 물벼락 맞은 상추는 허리가 다 부러졌다.

아이! 해 넘어가기 전에 물을  줘야지

무슨 대낮에 물을 주냐? 글고 물조리개로 줘야지 세숫대야 있는 대로  돌려서 주먼  쓰겠냐? 

힘도 좋다 하시며 분질러진 상추와 쑥갓을 솎아내셨다.

 화가 나신 시어머니 뒷모습을 보니 오늘따라 유난히 낭자가 꼿꼿했다. 

해 넘어가기 전 물 주라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큰 실수를 한 것이다.

그날도 상추밭이 쑥대밭이 되었다. 점심밥상은  밭인지 밥상인지 온통 푸르름속에 듬성듬성 고추가루가 꽃이 되어 피었.




이번에는 달구새끼가 망쳤으니 저 닭을  잡아야 되나? 허리 부러진  여린 상추와 쑥갓을 솎아오신

어머님은 된장에 참기름 치고  손가락으로 사알살 어르고 달래듯  무쳤다.

 마지막  깨소금 솔솔 뿌려 큼지막한 접시에 날아갈 듯 아내셨다. 

다들 밥보다 상추가 많은 비빔밥을 맛나게 드셨다.

시원하게 물 한 대접 드시고는 망친  텃밭에 다시 쑥갓이랑 상추씨를 얻어 뿌리려고 재복이네로 가셨다. 

그런데 다시 심은 텃밭을 달구새끼가 망쳐버린 것이다.




그래도 그중에 살아남은 상추와  쑥갓이 효자노릇 톡톡히 했다. 반찬이 어중간하면 무조건

뒤꼍 텃밭만 가면 먹거리가  화수분처럼 솟았다. 시어머님이 수고한 덕분이지만 ~~ 

상추가 세어질 무렵 섬진강에서 투망으로 건져 올린 피라미와 은어가 풍성했다. 

은어는 골라서 회로 먹으면 참외처럼 달고 향기가 낫다. 

피라미는 고추장 풀어서 매운탕 끓였다.  

펄펄 끓어오르자 한소쿠리 씻어놓은 상추를 손으로 뚝 뚝 끊어 넣었다.  

풋고추도 손으로 숭덩숭덩 분지르고 마늘은 칼등으로 퉁퉁 깨트  제법 큰

냄비에 펄펄 넘치도록  끓였다. 

온 가족이 한상에 둘러 먹다 보면 어느새 큰 냄비는

채로 가되었다.




상추밭을 휘젓으려다 간짓대에 놀래서 나자빠진 암탉도 벌써 많이 자랐다.

가끔 어디다 알을 낳은 지  날개쭉지에 힘없이 걸어오는 폼이  상했다.

마침내 뒤안 정제 나무청 위에서 알을 낳고 있는 암탉 벼슬을  발견했다. 

세상에나! 오지게 일곱 알 중에 방금 난 따끈따끈한 알도 함께 있었다. 

어머니는 그때부터 암탉에게 모이를 많이 던져주었다.

마치 황금알을 기대한 것처럼,,,



같이 먹고살자고 상추밭에 푸성귀도 뜯어먹 구박받던   암탉이 갑자기 실세로 급 부상했다.

  간짓대로 쫓김 받던 그때를 아는지 모르는지 날마다 알을 낳고 한들한들 부엌 쪽으로  걸어온다.

간짓대 사건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

 속으로 푸성귀 좀 나누어 먹으면 안 되나 달구새끼는 날마다 텃밭을 기웃거렸다. 

그때마다 세워둔 간짓대 여지없이 흔들었다. 

그러나 지난날 우리들의 만행을  용서하고 날마다 따끈따끈 알을 선물다. 

어떤 놈은 여름철 보양식으로 털이 온통 뽑힌 채로  우리들 밥상으로 올라왔다.




용서하지 못한 것은 서로 적이 된  정치가들 뿐이다.    

옳고 그름으로 따지며 상대방의

죄가 더  크다고 난리를 친다.

그들이 닭보다 나을까?

닭이 그들보다 나을까?



# 한나절 # 상추 # 텃밭 # 암탉# 쑥갓 #시어머니 # 달걀 #용서  #은어 # 피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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