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U Oct 11. 2022

직시 (直視)

내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직장인이라면?


*해당 글은 특정 상황을 가정한 픽션입니다. 재미로 보아주세요.




‘아, 진짜 회사 때려치울까.’


잠깐 눈을 뜬 사이에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남자가 시야로 들어왔다. 출력된 남자의 생각은 회로를 틀어 나의 대뇌로 입력되었다. 눈을 질끈 감았다. 이래서 출근할 땐 대중교통 안 타는데. 어젯밤 운전을 하다 골목 모퉁이 제멋대로 주차된 차에 사이드 미러를 박은 게 화근이었다. 안 그래도 운전 실력이 썩 좋지 않은데 한쪽 사이드 미러 없이 도로에 나서는 건 아무래도 위험했다. 아니 애초에 회사에 덜컥 들어간 내 잘못인가. 시야에 들어온 사람들의 생각을 모조리 읽어버리는 쓸데없는 능력은 실로 대단해 보일지 모르지만, 나에겐 약물로 치료되지 않는 정신 질환의 일종일 뿐이다.




때는 언어를 터득하기 시작한 6살 무렵이었다. 당시 가전제품을 주력으로 판매하는 기업에서 연구원으로 일하던 부모님은 대부분 늦은 저녁이 되어서야 퇴근하셨다. 덕분에 나는 맞벌이 가정을 대상으로 교육비를 지원해주는 동네 어린이집에서 가장 늦게 하원하는 어린이로 등극했다.


하원 시간에 맞춰 데리러 올 부모님을 기다리던 날, 원장실에 있던 전화기의 벨 소리가 텅 빈 건물의 공기 분자를 타고 장엄하게 울려댔다. 평소에는 경박하고 가볍게 울렸다면, 그날은 유독 차분하고 엄숙했다. 머리카락을 있는 힘껏 높게 틀어 올린 원장이 얼굴만 한 큐빅이 박힌 귀걸이를 달랑거리며 종종걸음으로 원장실에 들어갔다. 한참을 심각한 표정으로 통화하더니 아까와 같은 리듬의 종종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유난히 동공이 커다랗던 원장은 원래도 왕방울만 한 눈을 위아래로 쫘악 늘이며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다.


“세상에 어떡하니.. 안쓰러워서 어떡해..”


갑자기 속이 메스꺼웠다. 메스꺼움의 감각에 낯설어하던 찰나, 이어서 들려오는 목소리.


‘부모 죽은 애가 우리 어린이집 애라니, 불길해.’


…?


원장의 입은 굳게 닫혀 있는 반면 눈동자는 요동을 치며 흔들린다.

어디서 들리는 소리지, 분명 원장의 목소리는 맞는데 입은 움직이지 않잖아.


그런데 내가 혹시 부모 죽은 애야?


그렇다 부모님은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아직도 영문을 모른다. 당시의 나는 고작 6살이었으니까. 알고 지내는 친척도 없었다. 단숨에 평범한 가정집 출신에서 보육원 출신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시끄럽고 때로는 혐오스럽기까지 한 보육원 사람들의 속마음을 읽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평생 스스로를 방 안에 가뒀다. 그런 나를 기업 면접장으로 끌고 간 건 단지 최소한의 경제 활동이 필요한 스무 살, 내 나이였다.


기본적인 자격증 시험을 치르는 것도 곤혹스러웠다. 시험장에 있는 사람들을 쳐다보지만 않는다면 간신히 문제에 집중할 수 있었다. 시야에 없는 사람들의 속마음까지는 들리지 않으니까. 대신 가끔 모르는 문제가 있으면 한 번씩 앞사람 옆사람을 곁눈질로 쳐다봤다. 운이 좋으면 문제의 답을 얻어낼 수 있었다. 오히려 좋네.


면접은 더 수월했다. 면접관의 생각을 읽으니 어느 순간 원하는 대로 분위기를 주도할 수 있었다. 물론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면접관 아저씨의 멱살을 잡고 싶을 때도 있었지만. 입사를 하고서는 나를 향해 쏟아지는 마음속 언어들을 혼신을 다해 무시했다.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사람들의 속마음을 마주하는 건 괴롭다. 우습지만 그럴 때마다 눈을 게슴츠레 떠서 시야를 흐리게 만든다. 듣기 싫은 말을 들을 때 사람들은 귀를 막지만 나는 눈을 감는다. 세상을 똑바로 직시하는 게 나에게는 가장 어려운 일이다.




간신히 사무실에 도착했다. 툭- 누군가 내 어깨를 치고 간다.


“어머 정말 죄송해요.”


뒤를 돌아보니 동공보다 훨씬 큰 렌즈를 끼고 머리를 높게 묶어 올린 직원이 한껏 미안한 표정으로 사과를 한다.


‘계약직 주제에 눈은 얻다 달고 다니는 거야. 아침부터 거지 같네.’


직원의 얼굴 위로 6살 어린이가 마주했던 원장의 얼굴이 겹쳐진다. 전류가 흐르듯 온몸이 부르르 떨리며 닭살이 돋는다. 연이어 익숙한 메스꺼움이 내 몸을 지배한다.



두 눈을 감지 않고도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날이 올 수 있을까? 글쎄 모르겠다. 사람을 이해하고 사랑하기 위해 눈높이를 맞추고 눈빛을 주고받던 때가 절절하게 그립다.


지금은 기억에서 완전히 사라져 버린, 호기심에 가득  표정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직시하던 나의 어린 시절이.









상황

위 글은 '내가 다른 사람의 속마음을 읽을 수 있는 직장인이라면?' 이라는 가상의 상황 설정으로부터 출발한 픽션입니다.


글 연재 패턴

1주차 - 신문 기사나 사설 등을 기반으로 다양한 사회 현안에 대해 글을 씁니다.

2주차 - 하나의 키워드를 설정하여 자유롭게 에세이 형식의 논픽션 글을 씁니다.

3주차 - 하나의 상황을 설정하여 자유롭게 소설 형식의 픽션 글을 씁니다. (본문 글은 여기에 해당)

4주차 - 콘텐츠 (영화, 드라마, 도서, 영상 콘텐츠 등) 를 보고 느낀 감상을 글로 씁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우리 좋은 꿈 꾸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