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이야기

약과

by 윤자매



약과를 보면 보라가 생각난다.
보라는 내가 기억하는 네 살짜리 애들 중에서 가장 예뻤다. 특히 눈이 예뻤는데 보라 할머니의 눈과 똑같았다. 동그랗고 크고 예뻤다.


보라는 동네 아이들 사이에서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았는데 그것들은 엄마와 관련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친구 말에 의하면 집을 나간 엄마가 집으로 찾아왔었다고 한다.

왜 왔는지는 모르는데 보라 할머니에게 주저리주저리 떠들고는 자신의 이야기가 끝나자 방문을 열고 나갔다고 한다.

그러자 보라는 엄마를 따라나섰고 엄마에게 나도 같이 데려가라고 붙잡았다고 한다.

보라 엄마는 보라를 매섭게 노려보며 말했다고 한다.

“나 네 엄마 아니야, 엄마라고 부르지 마.”

보라를 뿌리쳤고 보라는 마당에 엎드린 채로 울었다는 내용이었다.

확인된 사실은 없다. 얼마나 지어진 것이고 얼마나 보태진 것인지도 모른다.

사실인지 거짓인지가 우리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우리에게 보라 엄마는 나쁘고 엄마가 없는 보라는 불쌍하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과자 봉지 아니면 약과를 들고 있었다.
계피향이 나는 그 약과가 나는 먹고 싶었다. 오래 쥐고 있어서 형태가 거의 망가진 그 약과를 한참이나 바라보고는 했다.

보라 할머니가 일을 나가면 보라는 혼자였다. 그러면 같이 놀아줄 아이들을 찾아 여기저기로 돌아다녔다. 보라는 B를 좋아했는데 B는 동생 친구였다. B의 집 아니면 우리 집에서 같이 모여 놀고는 했다. 학교를 다녀오면 문 앞에 놓인 낯선 예쁜 구두는 보라의 신발이었다. 보라는 과자를 들고 왔기 때문에 과자가 없으면 아이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다. 아이들과 또래가 아니다 보니 재미있게 놀기보다는 어찌 보면 어린 보라를 봐주기 식이 되어 버렸던 것 같다.
그나마도 과자가 없으면 아이들은 같이 놀아주기 싫어할 때도 있었다. 아이들은 보라를 좀 귀찮아했다.

“보라가 죽었어.”
일을 다녀온 아빠가 그렇게 말했다.

트럭을 돌려 나가다가 뛰어가는 보라를 치었다고 한다. 우물가에서 아이들이 많이 놀았는데 거기서 차를 돌리다가 보라를 치었고 이장 아저씨는 피를 흘리는 보라를 안고 사색이 되어 서 있었다고 했다.

우물가 앞에 살던 친구 말에 의하면 피 냄새가 오래도록 났다고 했다. 보라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길에 죽었다고 했다. 처음 간 병원에서 거부당했고 더 큰 병원으로 옮기는 길에 죽었다고 했다. 어른들의 말로는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아 보라 장례식이 늦어졌다는 얘기를 들었다. 합의되지 않으면 왜 장례를 할 수 없는지 당시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차가워진 보라를 그대로 두는지 어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시간이 한참 흐른 후에 이장 아저씨를 우물가에서 보았는데 감옥에 있다가 나왔다고 들었다. 손등으로 햇볕을 가리며 저 멀리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어린 마음에 캄캄한 감옥에 오래 있어서 햇빛이 너무 눈부셔서 저렇게 손으로 가린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농사일로 항상 까만 피부였던 아저씨의 피부가 창백하리만큼 하얗게 보였다.

보라의 죽음은 죄책감을 느끼게 했다. 기분이 좋지 않거나 귀찮을 때 그 아이와 놀아주지 못한 사실에 마음이 무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우리는 어렸고 모두가 가난했다. 나는 할머니 할아버지만 죽는다고 생각했다. 늙어야 죽는다고 생각했는데 고작 네 살 아이가 죽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충격이 컸다.

지금도 약과를 보면 보라 생각이 난다. 계피향이 나던 커다란 눈을 가진 그 아이, 까맣게 썩어버린 앞니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던 보라의 웃음을 잊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