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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구별여행자 Feb 01. 2023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의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

당신의 인생의 창조주는 바로 당신 자신이다. 



사주를 보러 다니기 시작했을 때 나의 나이는 30대 초반이었다. 


30대 이전에는 친구들과 건대입구나 강남역 길거리의 노점에 들어가 재미로 타로점을 보거나 사주를 보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30대에 들어서면서 인연과 운명론에 깊게 빠진 나는 유명하다는 명리학자를 찾아다녔다. 내가 운명론에 빠진 이유는 단순했다... 30대가 되면 당연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가정을 이루는 건 줄 알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30대가 되어서도 나는 여전히 결혼은커녕 대학교 때 4년 정도 사귀던 전 남자 친구와 헤어진 이후로 연애도 못하고 있었다. 어쩌다가 썸을 타는 사람이라도 생기면 어김없어 애인이 있는 상태에서 환승연애를 하려고 하거나 그것도 아니면 장거리 연애를 해야 하는 인연들만 스쳐 지나갔다. 


어쩌면 난 결혼을 늦게 하거나 결혼을 하지 않을 운명을 타고난 건 아닐까라는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나의 고민을 진지하게 들어준 건 내가 사주를 보러 다녔던 명리학자 분들이었다. 그렇게 나의 현실이 아닌 사주와 운명에서 답을 찾던 나에게 큰 깨달음 비슷하게 온 적이 있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정확이 어떤 깨달음이었는지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런데 최근 읽은 책, 마일렛 작가의 <한 번 더의 힘>을 읽은 후 나의 깨달음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되었다. 


난 내가 얻은 깨달음을 예전의 나와 같이 사주와 운명에서 인생의 답을 찾고 있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다.


인생의 한 번쯤 사주와 운명에 대해서 생각해 보는 건 나쁘지 않다. 하지만 나처럼 현재에 살지 않고 사주와 운명에 집착해서 지나간 과거에 매달리거나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를 걱정하면서 살아갈 필요가 없다는 걸 분명히 하고 싶다. 


10대와 20대 시절 사춘기 시절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왜 그랬을까? 그때는 사주와 운명에 대해서 궁금해하지도 믿지도 않았다. 나의 운명은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믿었기에 삶은 언제나 (대부분) 희망과 기대로 가득했다. 하지만 30대는 시작부터 삐걱대기 시작했다.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들어서는 기분이 들었다. 친구들은 결혼한 친구와 그렇지 않은 솔로 친구들로 나뉘었다. 30대에 들어서기 전까지만 해도 개인적인 성취와 자기 계발에 온 힘을 쏟았지만 30대가 되면서 그런 건 다 소용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정확히 말하면 "Uncertainty"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이었다. 결혼을 해야 한다는 걸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실제로 연애를 하는 것 자체도 나에게는 엄청난 도전처럼 여겨졌다. 소개팅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오히려 소개팅을 하고 집에 오면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일만 반복됐다. 난 결혼이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일에 너무 지나치게 집착하고 있었다. 


그렇게 30대가 지나고 40대가 되었고 난 다시 30대 이전의 자유로운 나로 돌아갈 수 있었다. 10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난 불행했다. 그 누구도 아닌 "나"로 인해, 정확히 말하면 "나의 생각"으로 인해 난 불행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행복도 불행도 나의 선택이라는 진리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모든 행복과 불행은 외부의 요인으로 인해서 창조되는 것인 줄로만 알았다. 내가 아닌 외부에서 불행의 원인을 찾다 보니 사주와 운명에 집착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 내가 느꼈던 나의 모든 불행의 원인은 내가 원하지 않아도 반드시 겪고 지나가야만 하는 필연적인 통과의례인 줄 알았던 것이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수건을 입에 물고 흐느껴본 적이 있는가? 난 자주... 그런 밤을 보내야 했다. 


영화 매트릭스를 본 적이 있는가? 에드 마일렛 작가의 <한 번 더의 힘>에는 영화 매트릭스를 예로 들어서 우리 삶을 이렇게 묘사한다.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의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 


이 문장에서 뭔가 중요한 것을 찾았는가? 여기서 매트릭스라는 말은 중요하지 않다. 이 한 문장에 "당신"이라는 단어가 2번 나온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우리 자신의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 30대 난 내가 누군가 창조해 놓은 매트릭스에 내가 살고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연애도 결혼도 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 (결혼운이 강하게 들어오는 해) 내가 결혼을 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내가 그렇게 생각했던 이유는 지금 생각해 보니 난 이 세상에 "당신은 이미 누군가가 창조해 놓은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라고 이해했던 것 같다. 나 자신에게 해야 할 질문을 완전히 다른 곳에 가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끌어당김의 법칙에 관해 이야기하는 책들에서 공통적으로 나오는 "시각화"는 특별한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가 평생 동안 해온 일이다. 다만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을 시각화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서 긍정적인 생각을 시각화하기 힘들 뿐이다. 난 이 사실을 시각화 훈련을 하면서 깨달았다. 시각화 훈련을 할 때 끊임없이 부정적인 이미지가 떠오르고 부정적인 생각이 떠오른다. 다행히 시간이 흐를수록 조금씩 조금씩 부정적인 생각을 차단하고 긍정적인 이미지와 생각을 채워 넣을 수 있었다. 



"당신이 선택하고 싶은 길을 의식적으로 결정해야 한다. 모피어스가 네오에게 파란 알약과 빨간 알약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 의미는 무엇일까? 그가 네오에게 요구한 것은 운명과 자유의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라는 것이었다. 파란 알약은 운명을 상징한다. 이미 모든 선택이 정해져 있기에, 그에 따른 행동도 미리 정해진 것이다. 운명의 세계에서 선택이라는 개념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결정에 기초해 운명을 바꾸는 자유의지에 자신을 맡긴다." [한 번 더의 힘] 중에서 


영화 매트릭스에서 사는 사람들은 파란 알약을 먹은 사람들이다. 30대의 나처럼 말이다. 운명론에 빠지는 순간 파란 알약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파란 알약이 상징하는 것은 모든 선택에 정해져 있다는 것 그래서 그에 따른 행동도 미리 정해진 것이라는 것이다. 내가 40대가 되면서 30대 이전의 원래의 나로 돌아갈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빨간약을 먹었기 때문이다. 난 이제 더 이상 내 운명이 사주팔자 8글자에 한계가 지어져 있다고 믿지 않는다. 사주를 보러 다니고 또 개인적으로 사주 공부를 책으로 하면서 태어난 생년월일시에 따라 타고난 기질이나 성향, 성격등은 정해진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고 큰 틀에서 분명 10년 단위로 (대운) 인생의 큰 흐름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다. 하지만, 거기까지이다. 


내가 빨간약을 먹고 얻은 깨달음은 이렇다. 


첫 번째는, "우리 모두가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당신은 이미 당신 자신의 매트릭스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영화 속에서만 "자유의지"를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우리는 "자유의지"를 선택해야만 한다. 스스로 불행한 것도 "자신" 때문이며, 행복한 것도 "자신"때문이다. 남 탓, 운명 탓을 자주 하는 사람들은 자신 스스로 "불행"을 선택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행복도 불행도 선택이다. 

이건 진리이다. 


"Remember that happiness is your choice." [Elon Musk] 

기억하라, 행복은 너의 선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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