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의 상징인 풍차는 사람을 설레게 하고 동심으로 돌아가게 하며 상상력을 확장시킨다. 풍차마을은 암스테르담 북쪽 잔세스칸스에 있다. 18세기에는 700개 넘는 풍차가 있었으나 대부분 사라지고 지금은 관광용으로 몇 대 남겨 놓았으며 주변에 있는 집들은 의무적으로 외관을 가꾼다고 했다.
풍차 옆 둑길을 걸었다.
검푸르게 출렁이는 강이 땅보다 높아
이 둑이 무너지면 어쩌나 두려웠다.
- 둑보다 얕은 들판에서 엄마 뒤를 따르는 새끼오리들 -
- 풍차 박물관 -
박물관 뒤에 있는 해묵은 나무다리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 날개 회전의 힘으로 톱날이 움직여 통나무를 잘랐다 -
빵이 기막히게 맛있다는 풍차마을 울프샌드 카페로 왔다.
- 타일벽화 -
정교하고 아름다운 무늬 타일로 독특하게 꾸민 실내
거친 파도와 센 바람에 잔뜩 부푼 돛을 보니 해적선을 상징하는 것 같다.
- 고소한 당근 수프 -
- 맛있는 빵과 샐러드 -
점심을 먹고 동화 같은 마을을 지나는데 미술 교습소가 있었다.
마당에 들어가 그림 감상을 할 수 있었다.
가격표가 붙은 걸 보니 판매도 하는 모양이다.
- 색감이 강렬한 두 작품 -
몇 걸음 걸었을까?
영혼을 온통 사로잡는 덩굴 식물이 있었다.
- 담장을 빽빽하게 휘감은 으름 넝쿨에 달린 보라색 꽃 -
어릴 적 시골집 뒤란 큰 나무에는 으름 넝쿨이 무성했다. 주렁주렁 매달릴 으름을 떠올리며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했다. 하지만 그 꿈은 단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성품 깔끔한 할머니가 뱀 꼬인다고 깨끗하게 베어버렸기 때문이다.
스무 살 무렵 어찌어찌 으름을 손에 넣은 적이 있었다. 아까워서 먹지 못하고 모양을 꼼꼼히 살펴보았다. 바나나와 사돈의 8촌쯤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선지 모르겠으나 나의 영원한 로망은 으름과 다래 넝쿨이 우거진 집에 살면서 으름과 다래 열매를 질리도록 따먹는 것이다.
딸은 거실 메인 그림 화가 모녀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다며 부지런히 밀푀유나베를 준비했다. 도와주겠다고 하니까 혼자 하는 것이 편하다며 아무것도 하지 말고 식탁 의자에 앉아 책이나 읽으고 했다. 화가는 초면이지만 화가 딸은 갤러리에서 봤으니 두 번째 만나는 것이다.
딸은 후다닥 음식을 만들어 금방 상을 차렸다. 초인종이 울리고 튤립을 안은 화가 모녀가 들어왔다. 딸의 소개를 받은 화가가 덥석 끌어안으며 요란스럽게 인사맛을 건넸다. 어정쩡하게 안긴 나는 만나서 반갑다는 말조차 생각이 안 나서 웰컴만 외쳐댔다. 이럴 때 영어를 잘하면 얼마나 좋을까? 가슴치고 싶게 답답했다.
네덜란드 태생인 화가 모녀는 한국 음식은 처음인데 특히 김치와 고사리 나물이 맛있다고 극찬하며 밥 한 공기를 뚝딱 비웠다. 서글서글 성격 좋은 화가와 화가인 어머니보다 더 사람을 좋아하고 유머감각이 뛰어난 딸과의 식사자리는 유쾌한 웃음이 그치지 않았다.
알아듣지도 못하는 주제에 뭐가 그리 유쾌하냐?
나를 영포자로 만든 중1 영어 선생 양재기가 비웃는 것 같아 쏘아붙였다.
딸이 요점만 통역해 줘서 알아들었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