딱 기다려 네덜란드

17. 나의 절친

by 글마중 김범순

중학생이 되어서도 밤새도록 딸 손이나 팔, 머리카락을 잡아야 잠을 자던 큰 손녀였다. 그토록 힘들게 하더니 어느새 훌쩍 자라 제법 숙녀티가 난다. 9월이면 고3. 사춘기 절정인 중2 작은손녀는 사진 찍히는 걸 싫어하고 올리지도 못하게 한다. 그 심정 누구보다 잘 알기에 존중하기로 했다.


“엄마, 외출 준비하세요. 10분 뒤에 출발할 거예요!”

벌떡 일어나 화장을 고치고 화사해 보이는 핑크빛 겉옷을 걸치며 부지런히 밖으로 나갔다. 딸, 사위, 큰손녀, 작은손녀는 검은색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작은손녀가 말했다.

“오늘은 드레스 코드가 검정인데 할머니 옷이 좀.”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부설 라익스 레스토랑 간다면서 웬 드레스 코드?”

“괜찮아요. 검은색 옷 안 가지고 온 것 같아서 엄마한테는 일부러 말 안 했어요. 어서 가요.”

네덜란드는 5월 4일이 우리나라 현충일과 비슷한 기념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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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박물관 부설 라익스 레스토랑 -


미슐랭 1 스타라더니 입구부터 남달랐다.


실내를 가득 메운 사람들이 이야기를 나누며 여유롭게 음식을 먹고 있었다.

돌아보니 단연코 내 옷이 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주눅 들지 않기로 했다.


- 요리에 따라 포크와 수저가 달랐다 -


오후 8시가 되었다. 사이렌이 울리고 2분 동안 2차 세계대전으로 인해 목숨을 잃은 모든 희생자를 위해 묵념했다. 애국심이 남다른지 아니면 아버지가 참전 용사였는지 중년 남자가 벌떡 일어나 고개를 깊이 숙여 엄숙한 분위기에 비장함을 더했다. 그에겐 몹시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2분이 그토록 길다는 걸 오랜만에 체험했다.


사위가 직원에게 작은 손녀가 숙제를 마치지 못해 여유가 없다며 음식을 빨리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다. 전달받은 주방은 금방 술렁거렸다.


- 유채꽃 쌈 속에 명이 잎이 한 장 들어있었다 -


양식을 자주 먹지 않아 음식이 가진 특성에 대해 잘 모르고 미각이 덜 발달해서 그런지 맛이 뛰어나다던가 또 먹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야채즙 비슷한 것을 초코볼 속에 넣은 요리가 있었는데 보기는 1등이고 맛은 최악이었다. 어쩌다 그 음식 사진을 안 찍었는지 모르겠다. 몹시 아쉽다.


- 예쁘고 맛있는 아이스크림 -


디저트까지 무사히 내보낸 주방에서는 요리사가 된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며 음식을 완성한 자신들이 대단하고 그렇게 빨리 내보낸 음식을 전부 먹는 한국인도 놀랍다며 환호했다.


사위 역시 불가능할 줄 알았던 빨리빨리가 유럽에서 이루어졌다고 밖으로 나와서도 거듭 강조하며 아주 신기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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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박물관 부근의 아름다운 야경 -


딸 내외는 작은 손녀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가고 큰 손녀와 둘이 호숫가를 산책했다.

서쪽 하늘에 커다란 별이 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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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손녀가 저게 무슨 별이냐고 물었다.

"글쎄, 북극성 아닐까?"

"할머니랑 같이 보니까 오늘따라 더 크고 예뻐요. 할머니, 저도 할머니랑 절친하면 안 돼요?"

"왜 안돼, 절친이 둘이면 더 좋지!"

"와, 신난다. 나도 할머니랑 절친됐다!"


재작년 여름 방학 때 큰손녀는 학원 다니느라 서울 친가에 있고 작은 손녀만 우리 집에 있었다.

매일 저녁 공원을 산책하며 가족에 대해 친구에 대해 감정 조절과 결핍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어느 날 작은 손녀가 말했다.

"할머니는 저의 절친이에요."




















ㅅ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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