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물의 요정과 운전기사
아침에 낯선 기사가 인사했다. 체코에서 여덟 시간 버스를 타고 왔다고 했다.
어제까지 열심히 운전하던 기사는 친절하다는 인상을 남기지 못하는 재주가 있었다.
키가 크고 영화배우처럼 잘생긴 젊은 기사는 등장 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났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이 안 돼서 수입이 좋은 기사를 하는데 일주일 근무하고 일주일은 쉰다고 했다.
놀랍게도 체코는 대학까지 무료 교육이라고 했다.
학자금 융자를 받아 빚으로 대학 생활을 시작하는 우리의 젊은이들이 안쓰러웠다.
청년인 줄 알았는데 서른일곱 살이며 아내와 딸이 있다고 했다.
기사는 틈만 나면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이야기를 나누었다.
암에 걸려 투병 중인 아내가 심심할까 봐 그런다고 해서 감동했다.
나는 또 상상의 나래를 폈다.
기사의 아내는 틀림없이 물의 요정일 거라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차창 밖으로 초지가 이어졌다.
이들은 왜 아까운 땅을 놀리고 있을까?
우리나라 같으면 온갖 농작물과 인삼을 재배할 텐데!
스플릿 꽃 무리 길을 한 시간 넘게 달리자 황무지가 시작되었고
가끔 회백색과 카키색을 섞은 것 같은 올리브 농장이 지나갔다.
한 컷의 풍경도 놓치지 않기 위해 부신 눈을 잔뜩 찡그리고 밖을 내다보았다.
산비탈에는 키는 작지만 해묵은 줄기가 고목처럼 굵은 포도밭도 있었다.
3시간 뒤 세게드 도니에 있는 바닷가 호텔에 도착했다.
유럽인들은 키가 커서 그런지 화장실 거울이 높게 달려 있었다.
까치발을 들어야 얼굴 반이 보였고 콘센트도 한 개밖에 없어 굉장히 불편했다.
달마티안의 황홀한 꽃이라 불리는 스플리트로 왔다.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스플리트에서 여생을 보내려고 유명한 석공을 동원해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이 된 거대하고 웅장한 디오클레티안 궁전을 지었다.
궁전의 위치는 시내 한가운데였고 신하와 하인들의 살던 200여 개의 집에는
현재 상점, 카페 등을 운영하는 사람 1만여 명이 거주하고 있었다.
디오클레티안 궁전 지하
낡은 성곽조차 아름답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는 극심한 류머티즘 환자였다.
애민 정신이 뛰어나 불철주야 뛰어다니며 일을 해서가 아니라
항상 누워서 맛있는 음식을 실컷 먹고 타구에 토한 다음 또 먹기를 반복했기 때문이었다.
욕심 많은 황제는 교황이 자신보다 지위가 높아지는 것이 싫어서
세례도 받지 않다가 임종 직전에 종부 성사를 받았다고 했다.
이집트에서 열 개의 기둥과 스핑크스를 가져왔다는 열주 광장에 섰다.
스핑크스는 코가 없고 허리도 잘려있었다.
박학다식한 가이드가 그 이유를 상세하게 설명했는데 구경하느라고 듣지 못했다.
예쁘고 청순하게 생긴 여대생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동생이 흔쾌히 허락하자 가이드가 가로막았다.
"제가 인천공항에서부터 입이 닳도록 말씀드렸죠!"
무슨 말을 했었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크로아티아는 소매치기 천국이라고요!”
아, 맞다. 하지만 사진까지 못 찍어 주게 하는 것은 좀 심하지 않나?
“돈도 돈이지만 여권 잃어버리면 그야말로 개고생 하십니다. 여대생은 미끼고 여러 명이 뒤에서 노리고 있습니다. 자, 가방 앞으로 돌리시고 조심하십시오.”
크로아티아는 국민 60%가 농업이고 나머지는 가이드라고 했다.
때문에 농부나 가이드가 아닌 군상들은 모두 소매치기라고 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 일인 국민소득이 세계 28위 32,000달러이고 크로아티아는 57위 14,000달러였다.
크로아티아 종교지도자였던 그레고리우스 닌의 짙은 카키색 동상이 공원 중간에 우뚝 서 있었다. 엄지발가락을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했다. 나도 빠질 수 없었다. 요강보다 큰 엄지발가락은 사람들의 손길에 닳고 닿아 수세미로 공들여 닦은 방짜 유기처럼 반짝반짝 빛이 났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의 삶은 곳곳에 숨어있는 행운을 찾는 보물 찾기와 같은 것이 아닐까?
스플리트를 떠나 해안도로를 달렸다.
호수처럼 잔잔한 바다에 구름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구름이 거울을 보는 시간이다.
쉿! 이럴 때는 조용히 해야 한다.
만리장성 다음으로 큰 성벽과 염전으로 유명한 작은 마을 스톤에 도착했다.
거칠고 높은 산과 성벽이 근엄하게 사람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스톤의 견고한 성벽
소금이 금처럼 귀해서 주변국들의 침략을 막으려고 높은 성을 쌓았다고 했다.
드문드문 엉겅퀴꽃이 핀 도로를 따라 조금 걸으니 드넓은 염전이 보였다.
우리나라 서해안과 다르지 않아 정겨웠다.
좁고 깨끗한 골목을 들어서니 담장 안에 탐스러운 오렌지가 주렁주렁 매달려있고
그 이웃집에는 하얀 오렌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있다.
향기로운 오렌지 꽃향기를 고이 데려다 머리맡에 오래오래 간직하고 싶었다.